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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09화 (109/260)

# 109

레벨업 속도는 9.8m/s^2 109화

“차희 씨 집 앞에서 한 놈 잡았습니다, 주인님.”

-그놈 묶어놓고 조금만 기다려.

“알겠습니다.”

아리가 차희를 돌아보았다.

“혹시 이놈 묶을 만한 노끈 같은 것 있습니까?”

“어……. 자, 잠시만.”

차희는 서랍들을 뒤지며 잡동사니들을 꺼냈다.

그러나 묶을 만한 것이라곤 테이프뿐이었다. 그리고 테이프 따위를 헌터가 못 끊을 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죠.”

아리가 눈을 번들거렸다.

약 20분 후, 전속력으로 차희의 집으로 온 윤성을 보고 범인은 깜짝 놀랐다.

“마스크맨?”

윤성이 마스코트인 방독마스크를 쓰고 왔기 때문이다.

차희, 이년한테 이런 백이 있을 줄이야?

잘못 건드렸다 싶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윤성도 범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놈 상태가 왜 이래?”

“묶을 만한 게 없어서 못 움직이게 관절 마디를 다 부러뜨렸습니다.”

아리가 말했다.

“……잘했다.”

여러모로 위험한 로봇이야.

윤성은 범인의 앞에 쪼그려 앉아서 얼굴을 관찰했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이름이 뭐지?”

“…….”

남자가 고개를 떨어뜨리며 대답을 거부했다. 하지만,

“주인님, 제가 미리 스캔해 뒀습니다. A급 헌터 주세형입니다. 백마 길드 소속, 김진명의 수족 중 하나이고 나이는 35세, 고향은 경산, 현재 거주지는 용산구, 생일은 4월 14일, 혈액형은 A형, 가족 관계는…….”

“됐어, 인마.”

윤성이 말했다.

오만 걸 다 조사해 놨군.

하지만 덕분에 누군지 기억이 났다. 백마중의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남자였다. 분명 그때 김진명에게 붙어서 ‘다음 대표는 형님이 되어야죠’ 하면서 아부를 떨었던 녀석이었다.

차희를 보호하려고 아리를 배치해 두었는데 뜻밖에 꽤 괜찮은 걸 포획해 버렸다.

“아리, 전부 녹화했지?”

“물론입니다.”

아리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윤성은 아리를 가리켰다.

“이 로봇이 모든 현장 자료를 녹화했다. 네가 살인을 저지르려 했다는 걸 말이야. 난 이걸 터뜨려서 그대로 널 살인미수로 감방에 처넣을 수 있어.”

“…….”

“그리고 기억 확인 마법을 써서 네가 누구의 사주를 받고 여기에 왔는지 확인할 거야.”

“기억 확인 마법? 그런 게 있단 말입니까……?”

주세형이 의심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단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날 윽박질러 봤자…….”

“그런 마법이 없을 것 같냐? 사람 말 듣는 S급 메탈로이드도 있는 마당에. 내가 뭐 하는 사람 같아?”

윤성이 주세형을 협박했다.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의 손가락에 뜨거운 빛의 구체가 모여들었다.

“이런 스킬은 뭐 언제 들어본 적 있어?”

“…….”

“이건 에너지볼트와 달라. 손가락에서 발사되는 순수한 빛의 파동이지. 내가 가진 스킬 중에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다. 그중엔 기억 확인 스킬도 있고.”

윤성이 한 손으로 주세형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급속 냉각 발동!>

스킬의 위력을 극미하게 줄였다. T505에게 썼던 게 힘껏 주먹으로 후려치는 거였다면 지금은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리는 수준이었다.

서늘한 감각에 주세형의 머리칼이 쭈뼛 섰다.

“흐음.”

윤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놈 때문인가.”

기억 확인 마법 같은 건 있지도 않지만 윤성은 정말로 그 스킬을 쓴 것처럼 허세를 부렸다.

“충성심이 대단하군? 주세형, 김진명이 대표가 될 것 같아?”

윤성이 물었다. 주세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기억을?”

사주를 받은 게 아니라 그냥 김진명한테 잘 보이려고 혼자서 움직인 것일 수도 있으니까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던진 미끼였다.

하지만 아주 쉽게 낚였다. 윤성은 마스크 안에서 풋, 터지는 웃음을 간신히 삼켰다.

“그럼 거짓말했겠어?”

“그럼 전 이제 경찰로 넘어가는 겁니까?”

“그럴 생각이었는데 바뀌었어.”

“네?”

“널 죽일 거다.”

윤성의 말에 주세형뿐만 아니라 차희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넌 김진명이 휘두르는 칼 정도에 지나지 않아. 잡아둬 봤자 별로 영양가 없지. 그리고 차희를 죽이려고 했던 건 절대 용서 못 해.”

“자, 잠깐만요.”

“남을 죽이려고 했으면 너도 죽을 각오를 했어야지. 아리!”

윤성이 아리를 불렀다.

“처리해.”

“네, 주인님.”

아리의 손이 거칠게 주세형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아리는 그대로 주세형을 질질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자, 잠깐만!”

“아리가 죽이면 시체가 발견되어 부검을 해도 메탈로이드의 흔적밖에 나오지 않으니까 내가 책잡힐 일은 없다.”

윤성이 끌려 나가는 주세형을 천천히 따라가면서 말했다.

“잠깐만요! 제가, 제가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주세형이 소리를 질렀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리가 멈칫하며 윤성을 돌아보았다.

윤성이 차가운 목소리로 아리에게 말했다.

“내가 멈추랬나?”

“죄송합니다, 주인님.”

-철컥.

아리가 현관문을 열었다. 주세형은 질질 끌려 나가며 절박하게 외쳤다.

“중요한 정보입니다! 협회와 관련된 겁니다!”

“김진명이 협회 돈을 먹었다는 거?”

윤성이 대꾸하자 주세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네가 아는 건 나도 알아. 네 기억을 읽었다니까. 김진명은 조만간에 처벌할 거다. 아직 증거가 없어서 문제지. 넌 증거 있어?”

“즈, 증거요?”

“돈을 주고받았던 것에 대한 녹취 자료라든지 그런 것. 네가 내부 고발하면 효과는 있겠지만 결정타는 못 될 거 아냐? 김진명이 잡아뗄 테니까. 그대로 질질 끌다가 대표가 되어버리면 곤란하거든. 그리고 김진명 같은 인물이 회계 기록에 의심 요소를 남겨놓지도 않았을 것 같고. 그렇지?”

김진명은 치밀한 남자라서 그런 것을 남기지 않는다. 주세형의 고개가 푹 구부러졌다.

“네 발뺌 못 할 강력한 증거를 줄 수 있다면 널 살려주는 것도 고려해 보겠는데……. 없지?”

주세형은 결국 흑흑, 울음을 터뜨렸다.

아리는 주세형을 도로 복판까지 끌어냈다. 그의 손아귀에서 뜨거운 고열이 피어오르는 순간,

“아, 잠깐만. 아리, 멈춰봐.”

윤성이 둘을 세웠다. 이 정도 겁을 줬으면 되겠지?

“생각해 보니 네가 살 방법이 하나 있군. 네가 증거를 만들어주면 되지.”

“네…… 네?”

“넌 김진명의 오른팔이니까. 그렇지?”

윤성이 마스크 안에서 사악하게 웃었다.

***

오후 네 시. 서정원은 김진명과 함께 망원동의 작은 카페 세미나룸에 앉아 있었다. 주세형이 중요한 얘기를 할 게 있다며 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소에도 비밀리에 회담을 할 때 이 카페의 세미나실을 이용했다. 방음이 잘 되고 협회 관계자들의 걸음이 뜸한 곳이기 때문이다.

백마 길드에 있는 김진명의 사무실을 쓰지 않는 이유는 서정원이 드나드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의심의 티끌만 한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 게 김진명의 방식이었다.

“갑자기 왜 보자고 한 걸까요?”

서정원이 물었다.

“글쎄. 시기가 시기니까.”

“그리고 지가 불러놓고 왜 늦는 건지.”

“곧 오겠지. 좀 기다려 보자.”

-끼익.

잠시 후, 주세형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카페에 들어섰다. 식은땀이 뚝뚝 흘렀다.

밤새 아리 때문에 부러진 몸 곳곳을 힐링으로 치료했는데 생각보다 더 오래 걸려서 늦었다.

마스크맨이 이유정이라는 A급 힐러를 데려와서 비밀리에 치료해 주었는데, 워낙 부러진 마디가 많아서 힐러 한 명이 혼자서 하룻밤 새 치료할 만한 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카페에는 손님이 꽤 많았다. 다섯 쌍의 커플이 앉아 있고, 창가 쪽에는 노트북을 두들기는 남자 한 명과 여자 셋이 있다.

이들 중 누군가는 마스크맨일 것이다.

마스크맨은 미리 세미나실에 초소형 카메라와 녹음기를 설치해 두겠다고 언질했다. 아마 돌아가진 않았겠지. 이 카페에 앉아 있을 거다.

주세형은 긴장감을 한껏 억누르며 세미나룸에 들어섰다.

먼저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서정원과 김진명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와.”

주세형이 침을 꼴깍 삼켰다.

“오,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그래. 근데 왜 그렇게 떨어?”

“아닙니다, 아무것도. 잘 지내셨죠?”

“본론부터 얘기하지.”

김진명이 손목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주세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서지원이 재무부서에서 빼낸 돈, 전부 김진명 대표님한테 간 게 맞습니까?”

“뭐?”

서정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중간에 조금씩 개인적으로 빼돌린 거 아니냐는 거다.”

주세형이 윤성이 써주었던 대본을 그대로 말했다.

몇 번 연습까지 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서정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면 서지원이 구속됐는데 아직까지 조용할 수가 있냐? 대표님 이름을 아직도 언급하지 않고 입 다물어주는 데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감방살이 좀 하고 나오면 보장되는 금액이 충분히 있으니까 구속된 다음에도 계속 침묵해 주는 거 아냐?”

“무슨 헛소리야?”

서정원이 짜증을 부렸다.

“난 전부 다 대표님한테 전달했어. 필요하신 금액 딱 맞춰 드렸다고. 이번에 영입 실적 엄청 나온 게 다 누구 덕인데 이래? 그리고 지원이 충성심 못 믿어?”

“걔는 원래 백마 길드 출신이 아니잖아. 그냥 네 동생이라고 믿고 가는 거니까 불안해서 그렇지. 차라리 네가 따로 모아둔 돈이 있었으면 좋겠어. 네 동생이 입을 계속 다물어줄 수 있도록.”

“참 나, 그건 대표님이 챙겨주시는 거고.”

“대표님, 서정원한테 얼마나 약속하셨습니까?”

“50억.”

“적군요. A급 하나 영입 못 하더라도 서지원한테 더 챙겨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서지원이 지금 입을 잘못 놀리면 우리까지 붙잡힐 수 있어요.”

“지원이 그럴 사람 아냐.”

서정원이 불쾌한 듯 말했다. 주세형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그걸 못 믿겠다고. 내가 최근에 들은 얘기가 좀 있어. 서지원이 빼낸 돈, 네가 중간에서 조금씩 빼서 숨겨두었다고. 그 돈으로 차도 사고 한 거 아냐?”

“그건 대표님이 선물해 주신 거야. 난 전부 다 대표님께 드렸다고.”

“정말이냐?”

“그래.”

“정말입니까, 대표님?”

“중간에서 정원이가 조금 먹었더라도 난 상관없다. 지금 나한테 들어온 액수가 충분하니까.”

“조, 좋아.”

주세형이 침을 꼴깍 삼켰다.

“다, 다, 다 되었습니다.”

그가 중얼거렸다. 서정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철컥.

세미나실 문이 열리면서 마스크맨이 들어섰다.

책상 테이블 아래에 부착된 녹음기에 모든 대화가 녹취되었다. 벽면에 걸린 초소형 카메라에는 얼굴도 완벽히 찍혔다.

원격으로 대화를 듣던 윤성이 입구에 서서 서정원을 쳐다보았다.

“S급 헌터 권한으로 당신들을 긴급 체포합니다. 공금횡령 혐의로 백마 길드 김진명과 서정원, 그리고 살인미수 혐의로 주세형.”

당황한 김진명이 주세형을 쳐다보았다.

주세형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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