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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08화 (108/260)

# 108

레벨업 속도는 9.8m/s^2 108화

에어포스는 몹시 골치가 아팠다. 그리고 굉장히 화가 났다.

옛말에 맑은 물을 흐리는 것은 미꾸라지 하나라고 했던가?

하지만 지금 보니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언론은 아직까지 복지부서와 회계를 총괄하는 재무부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사건이 터진 후에 조사해 보니 각 부서마다 중역 중 몇몇이 조금씩 횡령을 저지른 모양이었다.

곤혹스러웠다.

고제하가 병중으로 누워 있는 지금, 협회에서 에어포스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른 S급 헌터들과 의논하기도 어려웠다. 그들은 협회 소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어포스는 비상 회의를 소집했다. 협회 소속의 A급 헌터들, 코르소와 카다시안킴, 이유정, 최중일, 태진수, 성희주가 참석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손님이 더 있었다.

“안녕하세요?”

마스크맨이 회의실로 들어오며 물었다.

“어서 오세요, 마스크맨.”

“마스크맨은 협회 소속이 아닌데 왜 부르신 건가요?”

카다시안킴이 물었다.

에어포스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번 사건의 자료 제공자니까요.”

윤성은 깜짝 놀랐다.

그는 에어포사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S급 실력자이면서 협회 소속이기 때문이 것으로 생각했었다. 에어포스는 마스크맨의 정체를 아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에어포스는 차희가 폭로한 정보의 출처가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차희와 윤성의 관계를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기록 보관소에서 마스크맨이 회계 차트를 가져가셨다더군요.”

에어포스가 말했다.

그래, 바로 저것 때문이겠지.

윤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그럼 자기가 자료 찾아놓고 폭로는 다른 사람 시킨 거예요?”

카다시안이 황당한 듯 물었다. 실망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차희의 공을 가로채 버린 기분이라 윤성은 얼른 해명하려 했지만 직전에 또 멈추었다.

잘못했다간 차희와의 관계까지 드러날 수 있다. 이미 매스컴의 집중 관심을 받고 힘들어하는 앤데, 알고 보니 마스크맨의 친구래! 하는 찌라시까지 떠돈다면?

더 이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나쁜 놈 되고 말지 뭐.’

윤성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어포스가 깔끔하게 무마해 주었다.

“두 분이 공동으로 일을 하신 것뿐입니다. 각자 회계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파헤치다가 우연히 서로 알게 되어 자료 공유를 하신 거죠.”

에어포스는 잡담을 마무리하고 회의를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재무부서에서 복지부서 회계를 총괄했던 서지원 씨가 구속되었어요. 복지부서의 김시윤 차장도 구속되었고요.”

에어포스가 말했다.

“하지만 제가 재무부서의 장부들을 조사해 본 바로는 그 두 사람 외에도 횡령한 이가 잔뜩 있습니다. 협회를 좀먹는 이런 기생충들을 여태 몰랐다는 게 몹시 화가 나는군요.”

“그 사람들도 전부 구속시켜야죠.”

마스크맨이 말했다.

“이미 제가 직접 경찰에 연락해 뒀습니다. 근데 문제가 있어요.”

“문제?”

“공금횡령은 횡령의 정황이 있더라도 사용 목적이 명확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어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카다시안킴이 황당한 듯 물었다.

에어포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도 이해가 안 되는데 그렇다더군요. 예를 들어 어떤 회계 담당이 단순히 장부 기록을 잘못해서 횡령의 정황으로 포착된 경우에 횡령죄를 적용하면 억울하다는 거죠.”

“불싯!”

코르소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원래 법은 실제 범인을 백 명 놓치더라도 무고하게 처벌받는 사람은 만들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좀 소극적으로 적용되니 그런 모양이죠.”

“구속되었으니 수사하다 보면 사용처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유정이 물었다.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시간은 좀 걸릴 겁니다. 그동안 협회가 입은 이미지 타격과 그들에 대한 처벌 수위를 결정해야죠.”

“사용처 제가 압니다.”

마스크맨이 손을 들었다.

헌터들이 깜짝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백마 길드로 들어갔습니다. 아마 정확히는 김진명한테.”

“네에? 뭐라고요?”

성희주가 경악했다. 원래 백마 길드 출신인 그녀는 백마 길드에 대한 애착이 꽤 깊었다. 백마중과의 관계가 돈독한 사람이었다.

“아직 확실한 물증을 잡은 건 아니지만, 서지원의 친언니가 서정원이고, 서정원은 김진명과 강력한 커넥션이 있어요. 서정원과 관련된 기록들을 조사해 보니 협회에서 했던 거의 모든 업무를 김진명과 함께했더군요. 그리고 김진명은 최근에 출처가 불분명한 돈을 굉장히 많이 쓴 것 같고요.”

“하지만 백마 길드는 원래 돈이 많잖아요? 그것만으로 단정 짓기는 좀…….”

“심증뿐이지만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백마중 대표님이 돌아가신 후 새로 대표직을 노리는 김진명은 엄청난 돈을 써서 상급 헌터들을 다수 영입해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고 해요. 돈의 출처를 묻는 길드 내의 직원들에게는 일산에서 많이 벌었다고만 답해주었죠.”

윤성이 말했다.

“하지만 일산 감염지에서 중요한 요충지들을 레이드한 백마 길드의 중역은 전부 김진명 그룹뿐이에요. 그 경쟁자인 홍창민과 여타 헌터들은 감염지 바깥으로 내몰렸죠. 그들이 감염지에서 레이드를 했다면 김진명이 감염지에서 얼마나 많은 수입을 올리는지 확인할 수 있었을 테니까.”

“홍창민?”

코르소가 반응했다.

“아! 아이 리멤버. 기억났습니다. 그 사람을 고양시로 보낸 게 서정원이었습니다.”

“서정원은 아마 김진명과 모종의 거래를 했고, 협회의 공금을 빼돌려서 김진명에게 몰아주었고, 김진명은 회사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데 그 돈을 썼다. 이런 건가요?”

에어포스가 정리했다.

“아직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말입니다.”

“서정원도 구속됐나요?”

이유정이 물었다.

“서정원이 구속될 일은 없죠. 그는 헌터 지휘국에 있어서 재무부서와는 아무 관계 없는 인물로 비치고 있을 테니까요.”

“아마 서지원은 횡령 목적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겁니다. 수사는 꽤 길어질 거고요.”

최중일이 말했다.

“하지만 계속 파헤치다 보면 서정원까지 가지 않겠습니까?”

태진수가 물었다.

“물론 그렇긴 한데 경찰에만 맡겨둘 순 없으니까요. 우리도 서정원을 직접 조사할 겁니다. 마스크맨, 좋은 조언 고맙습니다. 매번 빚지는군요.”

에어포스가 윤성에게 인사했다.

차희는 컴퓨터로 차트를 계속 읽고 있었다. 서정원과 김진명의 커넥션에 주목하여 두 사람이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를 꾸준히 확인하는 중이었다.

회의비 명목으로 수십만 원을 지속적으로 사용했지만 이딴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결정적인 한 방의 자료가 나와야 하는데.

-저벅저벅.

차희의 몸이 움찔했다.

현관 밖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낡은 옛날 주택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그녀의 자취방은 바깥의 소음들이 거의 그대로 들어왔다.

특히 이렇게 늦은 밤중에는 세상이 고요해서 더욱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이다.

원래는 숙면을 방해해서 거슬리는 정도였지만 요즘은 무서웠다.

혹시 백마 길드나 협회의 뒤가 구린 누군가가 보낸 사람일까 봐 겁이 났다. 어떤 헌터들은 자기가 당한 것을 절대 잊지 않고 반드시 복수하니까.

그리고 차희가 더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더한 것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기 전에 막아버리려고 할 수도 있었다.

-찰그락.

현관 문고리에서 소리가 났다.

온몸에 싸하게 소름이 돋았다.

차희는 책상에서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현관 문고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술에 절어서 뭉개진 발음이었다.

“우리 집이 아니네. 미안합니다.”

남자가 말했다. 그러고는 골목 위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저벅저벅 울렸다.

차희는 비로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깐이었지만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던 심장이 아직도 거칠게 쿵쿵 뛰었다.

“후우.”

생각해 보면 협회에서 상급 헌터 몇 명을 차희의 경호로 붙였다. 한동안 근처를 순찰하고 차희의 집 근처를 지킬 것이었다.

현관 바로 앞에 쪼그려 앉아 있지는 않겠지만 집 근처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위험해 보인다 싶으면 바로 개입할 것이다.

“너무 예민해졌나.”

긴장했더니 목이 말랐다. 차희는 물을 좀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지만, 사두었던 생수가 모두 다 떨어졌다.

“괜찮겠지?”

그녀는 외투를 걸치고 모자를 쓰고 나섰다.

골목이 어두컴컴했다.

‘가로등 고장 난 거 수리가 아직도 안 됐네.’

차희는 집에서 불과 80미터 떨어진 편의점으로 이동했다. 2L짜리 생수 6병 묶음을 샀다. 그녀가 혼자 옮기기에는 매우 무거웠지만 이편이 훨씬 싸니까.

차희는 끙끙거리며 생수를 들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생수병을 한 아름 끌어안고 걸으니 시야가 약간 제한됐다. 앞은 보이지만 발아래는 완전히 가려지는 것이다.

-턱.

“아!”

차희는 무언가에 발에 걸려서 앞으로 넘어져 버렸다.

생수병 묶음은 떨어지면서 무언가와 부딪히고 옆으로 굴러 내려왔다.

그것은 사람의 시체였다.

복장으로 볼 때 헌터다.

“무, 뭐야 이게…….”

순식간에 가빠지는 호흡. 놀란 차희는 벌떡 일어나 뒤돌아섰는데 한참 앞에 누군가가 있었다.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

그는 오른손에 작은 나이프를 쥐고 있었다.

도망쳐야 하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쪽으로 천천히 접근하는 남자.

“윽, 흐윽…….”

차희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흐르기 시작했다.

차희는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에 혼신의 기력을 쥐어짜서 달아나기 시작했지만 남자도 뛰었다.

저쪽은 헌터다. 차희보다 훨씬 빠르다.

차희는 집 앞까지 달려왔지만 놀라서 떨리는 손은 현관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제대로 누르지 못했다.

-삑, 삑삑.

번호를 잘못 눌러 현관에서 경고음이 났다.

남자는 벌써 차희의 집 바로 앞까지 올라와 있었다.

차희는 간신히 번호를 다시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지만 남자가 차희의 등 뒤까지 쫓아왔다.

날아든 손아귀에 차희의 머리카락이 잡혔다.

“꺄아아악!”

엄청난 힘에 집 안으로 뛰어들던 차희가 뒤로 쓰러졌다.

그 순간, 차희는 현관 앞의 신발장에 기대어 세워둔 단검을 집어 들었다.

칸자르.

근데 사용법을 못 들었다. 이게 무슨 마법이 있다고 했는데?

“뭐야? 그 단검?”

남자가 무기를 발견하고 코웃음을 쳤다.

“나와 싸우기라도 하려고? 나 A급이야, 멍청한 년아. 그러게 왜 함부로 나대? 나대길.”

그가 나이프를 역수로 쥐고 차희의 가슴을 찌르려는 순간.

-부우우웅!

차희가 든 칸자르가 빛을 발하더니 반투명한 막이 튀어나와 그녀를 감쌌다. 나이프는 막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뭐, 뭐야, 이건?”

놀란 남자가 차희에게서 물러났다.

바로 그 순간.

-쿠웅!

무언가가 차희의 현관 앞으로 뛰어들었다.

성인 남자보다 훨씬 큰 키와 건장한 체구. 시퍼런 금속의 단단한 몸체.

“메, 메탈로이드?”

남자가 경악했다.

차희는 한눈에 메탈로이드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윤성의 집에서 보았던 그 로봇이었다.

이름이 아리라고 했던가?

차희의 입이 약간 벌어졌다.

“주인님이 여길 지키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누가 살기를 띠고 접근하면 일단 제압하라더군요.”

엘리지아도 때려잡던 S급 메탈로이드다.

차희를 노리고 들어온 암살자는 헌터였지만 아리의 상대가 되진 않았다.

헌터는 나이프를 역수로 쥐고 아리를 향해서 날카롭게 뛰어들었지만,

-쾅!

펀치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암살자가 한 놈이 아니더군요. 한 세 명 있었습니다. 둘은 차희 씨를 지키는 헌터들의 주의를 끌고 이놈은 직접 죽이려고 들어왔어요. 밖에서 헌터들이 싸우길래 가서 정리하고 왔습니다. 가로등 앞에서 한 놈을 죽여 버렸고요.”

그러니까 아까 죽은 놈이 차희를 지키는 협회 관계자가 아니라 차희를 노리는 암살자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죽여 버린 게 이 로봇.

아리는 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서 암살자의 두 팔을 꺾어 제압했다.

-삐삐삐.

아리의 눈이 반짝이더니 통신이 연결되었다. 윤성의 휴대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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