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레벨업 속도는 9.8m/s^2 106화
윤성은 USB의 자료들을 백업하고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인사 기록도 좀 볼 수 있나요?”
“어떤 기록을 원하세요?”
“A급 헌터 서정원 씨에 대한 기록이요.”
“네. 찾아드릴게요. 하지만 기록 보관소에 없는 자료들이 그 헌터님의 근무처에 더 있을 수도 있어요. 현재 진행형인 기록들은 저희한테 넘어오지 않거든요. 약간 옛날 기록일 수 있다는 거죠.”
“네, 괜찮습니다.”
잠시 후 윤성은 서정원에 대한 자료를 받았다.
먼저 이력서를 확인했다.
직장을 여기저기 옮겨 다닌 서정원이 세 번째로 이직했던 곳.
‘백마 길드!’
게다가 그곳에서 5년이나 근무했다.
이 시기면 김진명이 백마 길드의 중역이 된 기간과 겹쳤다.
업무 일지를 열어보았더니 여긴 더 가관이었다.
-상수동 B급 던전 레이드(이나영, 최준수, 이원용, 서정원, 백마 길드 김진명)
-하급 헌터 장비 지원 관련 미팅(백마 길드 김진명)
-길드 지원금 결재(백마 길드)
-길드 연합 계획안 추진(백마 길드 김진명 시안)
-길드 지원금 결재(백마 길드)
-길드 지원금 결재(백마 길드)
-지역 균형 상급 헌터 배치안 결재(백마 길드 김진명 시안)
‘장난해? 이건 너무 대놓고 아냐?’
황당했다.
이 정도면 이 새끼 협회 직원이 아니라 김진명 비서 수준인데?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일단 얘가 홍창민을 고양시로 보낸 데 다른 이유가 있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혹시 개인 정보도 열람할 수 있나요?”
윤성이 직원에게 물었다.
“마스크맨님의 S급 카드라면 헌터 협회에 등록된 직원의 개인 정보 기록은 일부 볼 수 있어요. 협회 직원은 절반은 공직이기 때문에, 재산 내역 같은 것은 정보 보호 레벨이 좀 낮거든요. 아주 사생활과 관련된 것들은 못 보지만.”
“재산 내역 좋네요. 봅시다.”
자료를 열었더니 정말이지 난리가 났다.
일단 김진명과 미팅한 이후 6개월 이내에 집을 샀고, 차도 샀다.
무려 여의도에 있는 아파트와 벤틀리를.
그러나 마땅한 수익 루트는 없어 보였다. 협회에서 나오는 임금은 그것들을 살 수 있는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주식 같은 재테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걸로 김진명에게 돈을 받았다는 걸 증명하긴 어렵지만 둘의 관계가 굉장히 끈끈하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나도 마정석 밀매로 집을 샀으니 사실 할 말은 없지만.’
밀매로 체납한 세금을 가능한 빨리 어떻게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성은 데이터들을 백업한 다음 하드 카피들과 USB를 모두 반납했다.
“찾는 건 전부 봤습니다. 가보겠습니다.”
“잠, 잠깐만요!”
직원이 윤성을 붙잡았다.
“사진 찍어주신다고…….”
“아.”
윤성은 포즈를 잡고 S급 카드를 들어서 마스크맨임을 증명해 주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
차희는 업무가 손에 잡히질 않았다.
대체 재정이 어떡하면 이렇게 나빠질 수가 있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황당했다.
회계는 김시윤 차장이 담당했다. 아무래도 수상한데, 뭐 실수한 거 아냐?
“밥 먹으러 갑시다.”
복지부서 부장인 서한명이 일어나며 말했다. 사원들이 주섬주섬 짐을 쌌다.
“차희 씨는 밥 안 먹어요?”
옆자리의 젊은 남자 사원이 물었다.
“아, 저 속이 안 좋아서.”
“그래요? 뭐, 죽이나 약 같은 거 사다 드릴까?”
“아뇨. 생리통 때문이라.”
“아.”
그는 민망해하며 외투를 입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사원들과 부장, 김시윤 차장까지 모두가 빠져나간 후,
‘한번 찾아봐야지.’
차희는 잽싸게 일어나 김시윤 차장의 책상 앞으로 이동했다.
그녀는 컴퓨터를 부팅하고 회계 장부 폴더에 들어갔다.
눈에 가장 먼저 띄는 것은 지난달 장부 엑셀 파일.
-달칵.
파일을 열고 빠르게 훑어보던 차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화분(대) 200만 원.
“이게 무슨 헛소리야?”
차희가 미간을 구겼다.
“우리 부서에 화분이 어딨어?”
***
기록 보관소의 업무는 매우 따분하다. 하루 종일 별로 할 일이 없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나 각 부서의 막내 헌터들이었다. 상사의 심부름으로 필요한 자료를 찾으러 오는 거다.
그러나 기록 보관소의 직원 송유라는 지금 몹시 기분이 좋았다.
-야 대박. 나 지금 마스크맨 봄ㅋㅋㅋㅋㅋ
송유라가 친구들에게 카톡을 돌리기 시작했다. 셀카와 함께.
무려 마스크맨이 S급 카드를 들고 인증해 주는 사진이다.
친구들도 대개 마스크맨의 팬이었다. 사실 요즘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을까? 단번에 반응들이 쏟아졌다.
-와 뭔데 어디서? 회사에서?
-ㄷㄷ 갓스크맨…….
-목소리 좋냐? 목소리 완전 굵다던데.
-사실 여자라던데 진짜야?
-눈 봤냐? 가까이서 보면 눈 보인다던데 눈 봄??
-잘생겼어?
사실 눈은 못 봤지만 송유라는 카톡방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남자고 목소리 좋음ㅋㅋ 글고 개잘생김 눈매 완전 아이돌.
그녀는 혼자 킬킬 웃음을 터뜨렸다.
-야, 사인 받아야지, 사인.
-내 것도 부탁한다.
-사인 아래에 사랑해요 윤미 씨라고 적어달라 해.
“아, 그러네. 사인을 받을 걸 그랬네.”
-철컥!
송유라가 혼잣말을 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누군가 들어오자 송유라는 깜짝 놀라면서 자리에 고쳐 앉았다.
또 마스크맨이었다.
“한 가지 더 찾아봐야 할 것 같아서요.”
윤성이 휴대폰을 보면서 말했다.
방금 전, 나가는 길에 차희와 메시지를 주고받다 부탁을 하나 받은 것이다.
-나 얼마 전에 복지부서 회계 기록 쓴 거 차장님 모니터에서 봤는데 아무래도 이상해. 지난주에 무슨 200만 원짜리 화분을 하나 구입한 걸로 되어 있더라? 근데 우리 부서엔 화분 같은 거 없거든.
-뭔 소리야? 공금횡령했다고?
-그런 거 같아. 혹시 복지부서 회계 장부 내역 뽑아줄 수 있어? 한 3년 치 정도. 한번 검토해 보게.
별로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윤성은 기록 보관소 직원 송유라에게 S급 카드를 내밀면서 자료를 요청했다.
“금방 찾아드릴게요.”
그녀는 자료실로 뛰어가다 말고 우뚝 멈췄다.
“근데 복지부서의 회계 내역만 필요하신 건가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회계 기록은 각 부서별로 월간 장부를 정리하고 그걸 세금 명세서, 물품 내역서와 함께 재무부서에 보내면 재무부에서 총괄 처리하는 식이에요. 근데 부서 간에 공용으로 쓰는 비품 같은 것도 있고, 협력해서 처리되는 업무들도 있어서 그런 것들은 부서 기록으로 들어가지 않고 재무부 일반 기록으로 분류되거든요.”
“일단 복지부서 들어가면 전부 주세요.”
“음. 근데 그럼 하드카피는 제가 일반 기록물들에서 일일이 골라내기가 어려운데 USB만 드려도 될까요?”
“네. 좋아요.”
“그리고 혹시, 괜찮으시면 끝나고 사인 좀…….”
그녀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네. 해드릴게요.”
잠시 후, 윤성은 직원에게 복지부서 회계 장부 기록을 받았다. 이번엔 딱히 읽어보진 않았다. 봐도 모르니까.
대신 USB에 있는 3년 치 자료를 몽땅 이메일로 차희에게 전송해 주었다.
보안 수준이 높은 자료는 이런 식으로 외부에 유포하면 안 되지만 회계 장부 기록 정도는 상관없다.
차희는 나흘 밤을 꼬박 장부 탐색에 보냈다.
그녀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매일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회계 기록에서 잘못된 부분들을 예리하게 골라내었다.
엄청난 액수의 공금횡령 정황이 보였다.
그리고 이는 비단 복지부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재무부서의 회계에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생각보다 엄청 큰 문제잖아?’
나흘 동안 정리한 데이터는 전체의 불과 10%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10억 규모의 돈이 비었다.
최근 자료들부터 조사했는데 무엇보다 차희를 분노케 했던 것이 있었다.
-보호소 아동 유나, 지원금 300만 원(10월)
-보호소 아동 유나, 지원금 300만 원(11월)
이러한 차트들이다.
“매달 300만 원? 장난하나, 이 새끼들이…….”
차희는 실제 지원금 액수를 정확히 기억했다. 담당인 차희가 아니면 누가 알겠는가. 그녀에게 떨어졌던 지원 금액은 30만 원이었다.
게다가.
-보호소 아동 유나, 학예회 준비 보조금 1,000만 원(11월)
급격히 치솟는 혈압.
차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애한테 관심도 없는 것들이 애를 팔아서 돈을 빼돌려?
김시윤 차장한테 따져야겠다.
차희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가 멈추었다.
생각해 보니 김시윤도 공범이었다.
장부를 쓰다가 실수했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것들이니까.
재무부서에 큰 범인이 있고, 큰 줄기의 한 지류로 김시윤이 들어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재무부서에 있는 큰 놈은 어떻게 잡지?’
잠깐의 고민 끝에 차희는 인터넷으로 ‘공금횡령’, ‘협회 세금’, ‘협회 재정’ 따위를 검색해서 나오는 기사들을 닥치는 대로 모았다.
각 기사의 마지막 줄에 나와 있는 기자들의 메일 주소를 하나하나 긁어서 메모장에 붙였더니 총 102개가 되었다.
굳이 한 명씩 보낼 이유도 없었다. 이 정도 큰 사건이라면 한 번에 몰려들 테니까.
그녀는 단체 메일로 그들에게 회계 장부 내역과 직접 확인한 허실들에 대한 자료를 첨부해서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