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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04화 (104/260)

# 104

레벨업 속도는 9.8m/s^2 104화

“흠.”

확실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체감상 웬만한 길드의 몇 년 치 수입에 필적하는 양일지도 모른다.

그 양을 모조리 밀매하기에는 양심에 찔렸다.

그리고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번엔 C+ 타워에서 팔고 싶지 않았다.

“마스크맨의 정체나 입수 경로를 밝히지 않고, 의심도 받지 않고 판매하고 싶으신 거군요.”

에어포스가 말했다.

“바로 그래요.”

갑자기 아리가 끼어들었다.

“주인님, 제가 모두 처분해 드리겠습니다. 은행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해서 휴면 계좌 하나를 뜯어낸 후에 스위스 은행을 우회해서 세탁해서 드리죠. 최대 수익이 남도록 판매해 드리겠습니다.”

“아냐, 그러지 마.”

윤성이 에어포스의 눈치를 보며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에어포스가 말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지금 들고 계신 S급 카드는 헌터 은행과 연동되는 것입니다. 마스크맨의 계좌가 만들어져 있죠.”

“제 계좌가 있다고요?”

“네.”

“하지만 제 개인 정보가 없었을 것 아니에요? 제 동의도 없었는데 이런 게 만들어질 수 있는 건가요?”

“정확히 얘기하면 ‘마스크맨’의 신분을 만들었습니다.”

“네에?”

“꽤 힘들었습니다. 정부 행정부처와 얘기해서 명예시민으로 처리해서 넣었죠. 일산 수복전의 핵심이었으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세상에.”

“윤성 씨는 공식적으로 두 개의 신분을 가지게 된 셈이죠. 그리고 S급 카드는 가상 계좌 체크카드이기도 합니다. 발급과 동시에 계좌 연동이 되기 때문에 본인의 동의나 신원 확인이 없어도 카드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계좌가 개설됩니다.”

“맙소사, 이런 게 가능한 거예요?”

“원래는 불가능하죠. 일단 시민 등록을 한다는 게 신원을 특정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겁니다.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 하지만 윤성 씨는 아무런 정보도 없습니다. 그냥 공란으로 등록되어 있죠. 물론 윤성 씨가 원한다면 수정할 수 있지만요.”

에어포스가 빙긋 웃었다.

“저도 윤성 씨에게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죠?”

“전에 일산 수복전에서 제가 굉장히 높은 하늘에서 떨어뜨렸는데 어떻게 무사하신지. 그리고 당시의 파워가 SS급에 근접한 수준이었는데 원래 그 정도이신지.”

“음. 꼭 대답해야 하나요?”

에어포스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아직 J등급이나 랜딩 능력을 공개하고 싶진 않았다.

“물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최상급 헌터 중에선 자기 능력을 감추는 사람도 많고요. 그냥 궁금했던 것뿐이니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마워요.”

“그럼 전 볼일 모두 봤으니 그만 가보겠습니다. 손님이 계신 줄 알았다면 사실 다른 날에 오는 게 좋았을 텐데 갑자기 찾아와 실례했군요.”

그러자 차희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오는 길에 전화하시지 그랬어요. 집에 준비된 게 없어서.”

마치 갑자기 찾아온 탓에 손님 대접을 제대로 못해 미안하다는 투였다.

그러나 차희의 말에는 두 가지 속뜻이 있었는데, 하나는 ‘난 집주인과 같이 손님을 맞을 정도로 윤성이랑 친합니다’라고 관계를 과시하는 것이었고, 하나는 ‘남의 집에 불쑥불쑥 찾아오지 말고 미리 약속을 잡으세요’ 하는 경고였다.

둔한 윤성은 전혀 몰랐지만 에어포스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

“비행으로 곧장 오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미리 전화를 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하하. 다음에 봐요, 에어포스.”

윤성이 철없이 웃으며 인사했다.

에어포스가 떠난 후, 윤성은 다시 바토리와 마계에 대한 화제를 열었다.

에어포스와 함께 논의했다면 더 좋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바토리가 사실 마족이라는 걸 알리면 어떤 상황으로 치달을지 모르니 조심했던 것이다.

바토리의 분장과 모자를 헛수고로 만들 순 없으니까.

“만약 그룬헤잘드가 지구를 침공한다면 언제 어디로 올지 알 수 있나?”

“그건 정보를 더 입수해 봐야 한다. 내가 확인해 보지.”

“지구를 침공한다고? 그룬헤잘드가 누군데?”

차희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윤성은 잠깐 고민하다가 바토리의 정체와 마계에 대한 것들을 요약하여 들려주었다.

차희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지 말을 잇지 못하고 뻐끔거렸다.

“마, 마족이라고?”

“봐라.”

바토리가 모자를 벗어 뿔을 보여주었다.

“세상에.”

바토리는 약간 불안한 듯 윤성의 팔을 쿡 찔렀다.

“이렇게 내 정체를 공개해도 되는 것이냐?”

“차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괜찮아.”

윤성은 바토리에게 그룬헤잘드의 저택의 구조와 병력의 규모 등에 대해 물었다. 다행히 바토리가 잘 아는 내용들이었고 윤성은 상세히 기록했다.

저택은 아르동 남작의 성보다 다섯 배 정도 크다.

영지의 주민은 약 2만 명. 그중 군대는 1,300명 정도. 숫자 자체만 보면 인간 헌터의 수가 훨씬 많지만 문제는 질이다.

1,300명 중 바토리와 비슷한 수준의 실력자만 100명이 넘는다. 그중에서는 바토리 이상도 있다.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였다. 특히 그룬헤잘드 본인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집계할 방법이 없으니.

게다가 옛날에 하인스는 ‘그룬헤잘드가 인계를 침공하여 힘을 얻고 그걸로 마왕의 자리를 노리려 한다’고 말한 적 있었다.

그룬헤잘드는 아르동과 비슷한 방법이든 아니든 무슨 수를 써서 인간의 힘을 취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즉, 게이트가 범람해서 그룬헤잘드가 인계로 왔을 때 시간을 주면 그들의 군대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거나 질적으로 매우 강력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약 10여 분간 회의를 거친 끝에 바토리가 모자를 만지며 일어났다.

“아무튼 나도 최대한 빨리 정보를 모아 올 테니, 인간 측에서도 그룬헤잘드에 대한 대비를 해두는 게 좋을 거다.”

“그래. 내가 알아서 할게. 고마워.”

바토리가 떠난 후.

“이거 너 가질래?”

윤성은 차희에게 단검 칸자르를 내밀었다.

칸자르의 성능은 매우 우수했지만 그래도 종단속도의 단검이 더 손에 익고 좋았다. 이미 부활하기도 했고.

차희는 단검을 받고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두 사람은 다윤, 소윤과 함께 저녁 식사를 즐겼다.

32. 백마 길드

김샛별은 백마중의 비서였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까지 마친 엘리트.

그녀는 특유의 영민함으로 백마중의 수많은 사업을 능숙하게 다루었다.

하지만 백마 길드의 대표 백마중은 이제 없다.

백마 길드는 이제 A급 최상위권 헌터 중 하나인 김진명과 홍창민을 내세운 두 개의 계파로 나누어졌다.

김샛별은 비서용 책상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쏴아아아.

비가 와서 밖이 우중충했다.

쏟아지는 빗물에 젖은 창문.

저 아래에서 고급 세단 한 대가 멈추고 김진명이 내렸다.

“어서 오십시오!”

일렬로 늘어선 헌터들이 인사를 올렸다.

그들은 일제히 우산을 내밀어 김진명이 백마 길드까지 들어가는 길을 만들어주었다.

김진명은 차에서 자신의 가방을 꺼내어 수행 비서에게 던져 주었다.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노 룩 패스.

‘마음에 안 들어.’

김샛별이 눈살을 찌푸렸다.

원래부터 거만하고 거친 남자였다. 자신의 일은 잘하지만 남의 사정을 잘 봐주지 않는 이다.

김샛별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보았던 장면이 갑자기 떠올랐다. 소름이 쫙 올랐다.

***

약 3년 전의 일이다.

홍보팀의 신입 사원 하나가 갑자기 전화를 한 통 받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었다.

신입 사원은 팀 부장에게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얘기했고 허락을 받았지만,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당시 백마중의 지시로 홍보팀에 내려와 일을 보던 김진명이 막아선 것이다.

“지금 치료 중인 것도 아니고 이미 돌아가셨다면 지금 병원에 가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지 않나? 임종을 지켜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업무 끝내고 가게.”

김진명의 말에 홍보팀 내의 모든 직원이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싸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김진명과 함께 홍보팀에 내려와 있었던 김샛별은 머리카락이 다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몇 번이고 귀를 의심했다.

“나도 아내가 죽었지만 아내가 병실에 누워 있을 때도 내 일을 다 하고 갔었네.”

김진명은 그렇게 말했다.

“지금 아버지 보러 갈 거면 회사는 그만둔다 생각하고 가야 할 거야. 나는 책임감 없는 사람하고는 일 안 하니까.”

그 불쌍한 신입 사원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홍보팀 부장이 상황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간단치가 않았다.

모두가 김진명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 신입은 어떻게 되었을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얘기하고 울면서 나갔다.

그리고 실제로 김진명은 그를 잘라 버리려고 했지만 김샛별에게 얘기를 전해 들은 백마중이 무마해 주었다.

김샛별은 후에 의외의 사실을 하나 더 알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홍창민이 그 신입 사원을 찾아갔다는 것이었다.

홍보팀 직원들이야 당연히 동료의 부친상을 위로하기 위해 조문을 갔지만 임원인 홍창민이 찾아갔다는 것은 매우 의외였다.

홍창민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김진명 대신 그에게 사과했고, 적지 않은 위로금을 부조 명목으로 전해주었다.

‘홍창민이 대표가 되는 게 훨씬 낫다.’

김샛별은 머그잔에 담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시계를 보았다.

김진명은 지금 돌아왔다. 그는 나가면서 정확히 무슨 목적으로 나가는지, 언제 오는지, 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었다.

이미 대표라도 된 것처럼 막 나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김진명은 백마 길드의 차기 대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는 이번 일산 수복전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던 것이다.

그가 들어간 백마 팀 A조는 아성체 엘리지아를 22기나 처치했다. 게다가 김진명 혼자서 준성체 하나를 잡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팔에 부상을 입었지만, 팀 단위의 성과 중에서는 거의 최고였다.

그 라이벌인 홍창민은?

웃긴 일이지만 홍창민은 감염지 밖에 있었다. 고양시 성사동에서 던전 범람을 감독하는 컨트롤러로 들어간 것이다.

당연히 그가 감염지 복판에 들어가서 김진명과 경쟁할 거라고 믿었던 김샛별은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홍창민 파의 헌터들은 분개했다.

A급 헌터 중에서 홍창민만큼 강한 헌터는 손에 꼽았다. 같은 탱커 클래스에서는 김진명을 제외하고는 코르소, 주성호, 황유빈 정도가 전부.

그 정도의 실력자를 감염지에 투입하지 않는다니?

손해도 이런 손해가 없었다.

당연히 협회의 이 같은 결정에는 누군가의 입김이 있으리라는 추측이 나왔다.

김진명은 원래 협회 소속의 헌터였다. 백마 길드로 넘어온 것은 겨우 10여 년 전이었다.

아직도 협회에는 김진명이 쥐고 있는 줄이 굉장히 많았다. 본래가 처세에 능하고 인맥 관리가 철저한 인물이기 때문.

‘김진명이 홍창민을 고양시로 보냈다.’

김샛별은 초조한 듯 책상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백마 길드 주주총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39%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던, 최대 주주이자 대표였던 백마중이 죽었기 때문에 이젠 백마중의 아들 백무담이 최대 주주가 되었을 것이다.

백무담은 김진명을 좋아하지 않지만 홍창민을 뽑아줄 구실이 없었다. 김진명은 길드 내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고 실력도 우수하니까.

-뚜르르르.

마침 백무담에게서 전화가 울렸다.

“네, 백마 길드 김샛별입니다.”

-안녕하세요, 샛별 씨.

“안녕하세요.”

-아까 김진명 헌터님이 저희 집을 찾아왔었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제게 반협박을 했어요. 자기가 대표가 되지 않으면 백마 길드의 헌터 다수를 데리고 나가서 길드를 새로 만들어버리는 수도 있다고요.

김샛별이 깜짝 놀랐다.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했다고요?”

-물론 대놓고 노골적으로 얘기한 건 아니지만, 은근히 돌려 말하는 뉘앙스가 그거였습니다.

“김진명 헌터님한테 대표직을 주실 건가요?”

-고민 중이에요. 솔직히 막을 구실이 없어요. 이번에 김진명 헌터님이 얼마나 실적이 좋았는지 아시잖아요?

단순히 감염지 레이드만이 아니다. 김진명은 그 후에 기수 각성한 상급 후배 헌터를 대거 영입했다.

본래 헌터들은 인사과에서 영입하는 게 원칙.

그러나 B급 이상의 젊은 상급 헌터들은 길드 경쟁력과 직결되는 인재이기 때문에 대표가 직접 영입하기도 한다.

특히 지금의 백마처럼 크게 기울어진 길드 같은 경우엔 상급 헌터의 영입이 매우 중요했다.

따라서 김진명이 벌써 B급 일곱 명, A급 둘을 백마 길드로 데려왔다는 건 매우 큰 실적이었다.

홍창민 역시 영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 우수한 결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이대로라면 일산 레이드 경험과 상급 헌터들을 대거 영입한 경력을 인정받아 김진명이 대표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홍창민 헌터님이 뭔가 큰 걸 터뜨려 주셔야 해요.

백무담이 말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카드가 하나 있긴 있다.

김샛별은 통화를 종료하고 전화번호 주소록에 들어갔다.

-강윤성

A급 헌터. 게다가 재각성자다. 백마중 대표조차 영입에 실패했던 인물. 그 기록은 사내 인사과의 1급 기록물에 남아 있었다.

강윤성을 영입한다.

평범한 A급이 아니라 재각성자다. 세간의 이목을 모으기에는 딱 제격이었다. 홍창민이 그를 영입하고 재각성자라는 특이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언론에 크게 소개되어야 한다.

사실은 김진명이 더 많은 실력자를 모았다고 하더라도 프레이밍에 차이가 생기면 임팩트가 다를 것이다.

김샛별은 전화를 들어 윤성의 번호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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