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레벨업 속도는 9.8m/s^2 101화
같은 시각, 아리 역시 소각 스킬로 엘리지아 성체를 완전히 불태우는 데 성공했다.
바토리, 김성인, 최수혁 팀은 약간 고전하고 있었다.
근접전으로는 한국에서 1, 2위인 김성인과 최수혁이 앞에서 탱킹을 하고 바토리가 활을 쏘는 식이다.
마치 보스 레이드를 하는 느낌으로 S급 헌터 둘과 S급 마족 하나가 힘을 합쳐 성체 하나를 공략했다.
바토리는 수십 발의 화살을 엘리지아의 머리와 가슴에 꽂았지만 놈은 아직도 쓰러지지 않았다.
“아가씨! 도와드릴까요?”
안토니오가 새근거리며 물었다.
“되었다. 내가 인간의 도움을 받을 성싶으냐?”
바토리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일선에서 싸우는 김성인과 최수혁은 어이가 없었지만 뭐라고 소리칠 여유조차 없었다.
엘리지아의 펀치 한 발, 한 발이 치명적이라 그것들을 피하기도 급급했으니까.
하지만 바토리는 무책임하게 던져놓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녀에게도 비장의 수는 있다.
<암수살 발동!>
바토리가 쏜 검은 화살 한 대가 엘리지아 성체의 목을 꿰뚫었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스킬들과 거의 동일해 보였지만,
“크윽!”
엘리지아는 목에 뚫린 구멍이 재생되지 않자 당혹감을 느꼈다.
“아르동이 생명력을 흡수하는 것을 보고 어쩌면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지.”
바토리가 말했다.
“네 목구멍에 박힌 루비는 아르동이 쓰던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이 네 생명력을 흡수하고 있으니 재생할 수 없겠지.”
“크악!”
엘리지아는 황급히 목을 더듬었지만 루비는 목 안 깊숙이 파고들어 빼낼 수가 없었다.
쩔쩔매는 엘리지아를 향해서 바토리가 몇 발의 화살을 더 쏘았다.
-퓽! 퓨퓻.
차례로 이마와 가슴, 어깨에 꽂히는 검은 화살들.
엘리지아의 움직임이 서서히 둔해지기 시작했다.
-싸아악!
마수의 허리춤을 김성인이 장검으로 잘라 버렸다.
“와우! 대단합니다.”
안토니오가 생글생글 웃으며 바토리를 껴안으려 하자 바토리는 질색하며 그를 밀치고 빠져나왔다.
그때,
“안 돼! 샌드맨!”
최수혁이 소리쳤다.
샌드맨이 엘리지아에게 붙들려 있었다.
엘리지아의 완력은 재포니카 이상이다. 준성체 기준으로 말이다.
성체 엘리지아의 힘이라면…….
-파스스!
샌드맨의 몸이 박살 나버렸다.
하지만 약간 이상했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게 아니라 몸뚱이가 모래가 되어서 부서져 버렸다.
<모래귀신 발동!>
샌드맨의 최고 스킬 중 하나다.
엘리지아는 움켜쥔 손아귀에 옷가지만 남자 당황했다.
하지만 놀랄 여유는 없었다. 샌드맨의 모래가 엘리지아의 코와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큭, 캬아악!”
엘리지아는 모래를 뱉어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마수의 눈에 모래가 뿌려졌다.”
켄지가 중얼거렸다.
샌드맨이 매일같이 ‘네 눈에 마법 모래를 뿌려주마’라고 말하며 살해 협박을 사방에 퍼붓고 다니던 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정말로 엘리지아의 눈으로 모래가 들어가고 있었다.
그 눈과 입, 귀, 코에서 피가 흘렀다.
내부에서부터 치명상을 입은 엘리지아는 고통에 지쳐서 바닥에 주저앉았고, 그 등 뒤에서 모래가 뭉쳐 서서히 샌드맨의 형태를 갖추었다.
<건조 발동!>
샌드맨의 손끝이 엘리지아의 수분을 몽땅 흡수해 버렸다.
바싹 말라 버린 엘리지아의 사체는 힘없이 바닥에 눕고 말았다.
“크아아악!”
일호가 끔찍한 굉음을 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뜻밖에 윤성은 고전하는 중이었다.
용조로 찢어버려도 재생하고, 빛의 탄환을 무수히 박아도 재생한다.
인간 베이스가 아닌 만큼 특별한 스킬은 없지만, 순수 엘리지아인 일호의 최고 능력은 ‘재생’ 그 자체에 있었다.
신민수와 일대일로 겨루었을 때 일호가 승산을 자신할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일호의 생명력은 무한하기 때문에.
“쳇.”
윤성이 거리를 벌렸다.
어쩌면 좋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주인님.”
아리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며 소각을 발동했지만,
-콰앙!
화염이 발사되기 전, 수 미터를 도약한 일호의 발차기가 아리를 날려 버렸다.
퀸이 처소를 맡기고 간 군단장이다.
평범한 엘리지아 성체들보다 한참 강했다.
바토리는 루비를 담은 암수살을 쏘았지만,
-팅!
일호는 가뿐히 그 화살을 쳐냈다.
에어포스는 이제 힘이 다해서 더 이상 빛펀치를 쓸 수 없었다.
샌드맨이나 안토니오 역시 큰 스킬들을 쓴 후라 곧바로 전투에 참전하긴 어려웠다.
“어떡한담.”
윤성의 손에 땀이 흘렀다.
다른 헌터들처럼 적을 한 번에 소멸시키거나 내부에서부터 파괴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스킬이 없었다.
광폭한 물결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 해봤을 텐데, 지금 있는 스킬은 그보다 강하지만 효율적이진 않았다.
‘침착하자.’
윤성이 스스로를 달랬다.
재포니카 던전에서 마케로케라스도 잡았다. 그놈도 압도적일 정도로 강한 적이었지만 안에서 먹물 주머니를 터뜨리니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이놈도 그런 게 있으면 좋을 텐…….
“아!”
윤성의 눈이 커졌다. 입꼬리가 빙긋 올라갔다.
아직 윤성의 수를 파악하지 못한 일호는 윤성을 향해 돌진했지만,
-쾅!
윤성이 그에게 펀치를 먹였다.
그리고,
<용조 발동!>
가슴을 찢은 다음,
<인벤토리>
-먹물 주머니
마케로케라스의 맹독성 먹물을 꺼냈다. 서울로 돌아온 후에 조그만 유리병에 옮겨 담아두었던 독이다.
윤성은 그것을 재빨리 엘리지아의 가슴에 난 상처 속에 쑤셔 박았다.
상처는 곧 아물었고, 그 가슴팍을,
-쾅!
윤성이 힘껏 찼다.
충격 때문에 유리병이 깨졌을 것이다.
그 증거로 일호의 움직임이 굳었다.
피부 표면의 정맥들이 새까맣게 불끈불끈 서는 것이 보였다.
“큭.”
일호가 휘청거리더니 무릎을 꿇었다.
“잘 가라.”
윤성이 일호의 머리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빛의 탄환 발동!>
-콰앙!
일호의 머리가 폭죽처럼 터졌다.
일호가 죽은 후, 남은 엘리지아 잔당을 처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8,000점의 버프를 가진 윤성과 최상급 헌터 레이드 팀은 준성체 엘리지아들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적들은 여태까지 전황을 지휘하던 사령관을 잃었기 때문에 그리 강력한 전의가 없었다.
전쟁은 ‘수복전’에서 ‘소탕전’이 되었다.
엘리지아의 잔당은 감염 중심지인 일산역으로부터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지만 감염지에는 전국에서 모인 상급 헌터가 가득했다.
그들의 포위를 뚫고 바깥까지 살아 나간 엘리지아는 거의 없었다.
한 마리라도 나가서 도심을 돌아다닌다면 그야말로 민간 속의 맹수나 다름없는 위협이지만.
“처마 밑의 말벌 집을 제거한 후에는 원래 며칠 동안 처마 근처에 벌이 날아다니는 법이야.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공격성이 없지.”
***
아산병원 VIP 1인 중환자실.
병문하러 온 김성인이 말했다.
그 앞에 에어포스와 최수혁, 차예빈이 앉아 있었다.
고제하는 호흡기를 단 채로 의식이 없었다.
“회장님은…….”
“강한 분이니 언젠가 깨어나실 거야.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지 않은 것만 해도 켄지의 공이 컸어.”
김성인이 말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성공했어. 진심으로 축하하자고.”
“하지만 퀸을 잡지는 못했습니다.”
에어포스가 안타까운 듯 말했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퀸이 그곳에 있었다면 우리가 전멸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마스크맨이 안 왔더라도 전멸했겠죠.”
“그렇지. 그는 지금 뭘 하고 있는가? 혹시 연락되는가, 에어포스?”
“글쎄요. 본인이 자기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고, 때문에 저도 가급적 연락하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헌터 협회의 은인이야. 누군가 인사해야 하지 않겠나. 내가 직접 하고 싶지만 보다시피 나도 꽤 부상이 크고, 그가 정체를 알리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니까.”
“제가 가보겠습니다.”
“고맙네. 마스크맨 역시 큰 싸움을 거쳤는데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면 좋겠군.”
김성인이 말했다.
“회장님이 빨리 일어나셨으면 좋겠군요.”
“근데 마지막에 자네한테 무슨 얘길 했나?”
김성인이 에어포스에게 물었다. 쓰러지던 고제하가 에어포스에게 귓속말을 속삭이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아무 말도.”
에어포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살아남으라고만 하셨습니다. 협회를 부탁한다고요.”
“그랬군.”
김성인이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마스크맨을 한번 보러 가야겠습니다.”
에어포스가 헌터들에게 인사하고 병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