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레벨업 속도는 9.8m/s^2 098화
“근데 사족 하나를 달면 저는 최근에 D급으로 승격했습니다.”
윤성이 주머니에서 자격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왜 S급으로 승격하지 않고?”
“제 전투력이 좀 고무줄처럼 들쭉날쭉해서.”
“정말 재밌는 분이군요. 일단 작전 컨트롤 센터로 가시죠. 부천시에서 이탈할 수 있도록 제가 지시를 내려둘…….”
에어포스의 말이 멈추었다.
지시를 내리기 위해 전투용 휴대폰을 찾던 그녀의 손이 허벅지의 맨살을 더듬었다.
“휴대폰이 사라졌군요.”
“에어포스 님도 재밌는 분이세요.”
윤성이 자신의 전투용 휴대폰을 내밀었다. 에어포스는 빙긋 웃으며 번호를 눌렀다.
-네, 작전 컨트롤 센터입니다.
“지금 센터 총괄을 누가 하고 있죠?”
-총괄? 권율민 A급 헌터님이십니다.
“권율민 헌터님 좀 바꿔주세요.”
-무슨 일이죠?
“부천시에서 D급 헌터 한 명의 작전지 이동입니다.”
-그거 상부랑 얘기된 겁니까? 작전지 함부로 이동하면 안 돼요.
“지금 얘기하고 있잖습니까.”
-허, 참나. 작전지 이동 사유가 뭡니까?
“자세한 건 얘기할 수 없고 쓸 데가 있습니다.”
-D급 헌터 이름이 뭔데요? 어디로 이동하는데요?
“이름은 강윤성이고 이동지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튼 급한 일이니 빨리 권율민 헌터님 연결해 주세요.”
-아오, 지금 장난하시나. 바빠 죽겠는데 진짜. 누군 급한 일 없어요? 무슨 D급 하나 가지고…….
“그리고 연결하는 김에 컨트롤타워에 한 가지 더 알려주세요. 부천시 컨트롤러 이성민 휘하의 여러 팀에 큰 피해가 발생했으니 전력 보강이 시급합니다. 많은 헌터가 자리를 이탈하거나 다쳤으니까 확인해 주세요.”
-아오 씨, 진짜 뭔 개소리야? 너 누구야?
“에어포스입니다.”
-누구시라고요?
“에어포스입니다.”
-자, 잠깐만요. 에어포스? 에어포스? ……왜, 왜 센터장 사무실로 직접 전화를 안 거시고…….
“제 전투용 휴대폰이 깨져서 빌린 것입니다. D급 헌터의 휴대폰이라 여긴 센터장 연락처가 저장돼 있지 않았어요. 어서 권율민 헌터님 바꿔주세요.”
현재 감염지 소탕 작전에서 에어포스의 권위는 고제하 바로 다음이다.
센터장인 A급 헌터 권율민에게 에어포스가 전화를 건 이유는 부천시에서 D급 헌터 강윤성을 차출한다는 통보를 위해서다.
윤성이 힘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을 아니까 자세한 이동지나 목적을 밝히진 않았지만,
“지금 감염지에서 가장 전력 보충 시급한 곳이 어딥니까?”
하는 질문은 했다.
윤성은 어쩐지 에어포스의 옆얼굴이 사악하게 느껴졌다.
윤성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봐요 에어포스, 이렇게 혹사한 후에 휴식 없이 바로 가자고요?”
하지만 에어포스는 통화에 집중하는 중이다.
권율민에게 상황을 전해 들은 에어포스가 깜짝 놀란 표정이 됐다.
“감염지 중심이요? 여왕의 방? 알겠습니다.”
그녀가 전화를 끊고 윤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메인 공격대가 여왕의 방 앞까지 갔대요. 어서 가요.”
“하지만 여기서 여왕의 방 앞까지 가려면 한참 걸릴 텐데.”
“절 안아요.”
“네?”
“어서.”
안고 비행하자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러는가.
당황한 윤성이 우물쭈물하자 에어포스가 다가와서 윤성을 껴안았다.
물컹 닿는 살의 촉감이 너무 생생하다.
윤성의 얼굴이 붉어졌다.
“갑니다. 좀 어지러울 수 있어요.”
에어포스는 윤성과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엄청난 속도다. 무슨 로켓을 탄 기분이군. 바람도 너무 강해!
윤성은 눈을 찡그리며 반쯤 감았다.
“에어포스!”
바로 앞에 껴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윤성이 소리를 질렀다. 바람 소리가 너무 큰 탓이다.
“왜요!”
“몇 미터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네?”
“몇 미터나 올라갈 수 있냐고요!”
30. 최상급 헌터팀의 전력
역대 최악, 최강의 마수종 엘리지아.
어찌 보면 그런 타이틀을 갖게 된 게 당연하다. 엘리지아는 일반 마수가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지구를 지배하던 패자였으니까.
마왕은 아직까지 지구에 관심이 없고 메탈로이드 마더는 군대를 모으는 중이지만 엘리지아는 발 빠르게 이 세계를 침공했다.
엘리지아가 다른 마수들과 다른 점은 크게 셋이다.
첫째, 엘리지아는 S급 마수보다 강하다. 준성체 엘리지아는 최소한 재포니카 같은 S급 마수들 이상의 전투력을 가진다.
하지만 성체 엘리지아는 그 이상이다. S급 인간 헌터들처럼 성체 엘리지아는 개체 간의 편차가 큰 편인데, 상위권에 있는 엘리지아들은 SS급 헌터들이 상대하기에도 만만치 않다.
둘째, 엘리지아는 우수한 지능을 가지고 있다. S급으로 분류되는 마수들은 대개 엄청난 피지컬을 가지고 있는 대괴수다. 재포니카를 생각해 보라. 그들은 재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괴물들이다. 하지만 대신 오징어 수준으로 지능이 낮다.
그러나 엘리지아는 인간에 필적하는 지성 종족이다.
셋째, 엘리지아는 엄청난 단결력을 가지고 있다. 퀸의 명령은 모든 엘리지아의 머릿속에 공명하여 빠르게 울리고, 엘리지아들은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여 적의 공격에 대응한다.
세 가지 강력한 특성 덕분에, 엘리지아는 그 무엇을 적으로 삼아도 두렵지 않다.
지난 8년간, 엘리지아에 대해 가장 많은 연구를 했고 누구보다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김성인은 찜찜한 기분이다.
너무 쉽다.
벌써 일산역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감염지의 중심이다. 처음 던전 범람이 시작된 곳.
지하철 출구로부터 엘리지아들이 바글거리며 쏟아져 나와 바로 옆의 초등학교 셋과 교회를 박살 내버렸던 비극의 순간이 눈앞에 선하다.
현장은 그때 그대로다. 무너진 신일 초등학교.
녹색 철조망 담을 부수고 들어오는 엘리지아들과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하며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던 순진한 아이들.
모교였던 그곳에 연사로 방문했던 김성인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압도적인 무력감에 자살하고 싶었다.
40년 후배이자 핏덩이같이 어린아이들이 마수들에게 도륙당하는 현장. S급 헌터로서 전력을 다해도 그들을 지킬 수 없다는 비참함.
8년 전이다.
그때도 엘리지아는 그렇게 강력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진격할 수 있나?
벌써 일산역이라고? 아무리 SS급이 셋에, S급이 6명이나 된다고 해도 이건 좀 이상하다.
김성인이 넌지시 불안감을 표하자 최수혁이 코웃음을 쳤다.
“아따, 성님도 참. 저 인형 같은 아가씨가 로봇이랑 같이 4인분 해서 그런 거 아입니꺼. 뭐가 그래 걱정입니꺼.”
“그런가.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를 유인하는 듯한 기분이야. 들어갈수록 점점 준성체들을 하나씩 늘려가며 우리가 딱 잡을 수 있을 정도로만 난이도를 올리는 게.”
“에이.”
“만약 여태까지 우리가 상대했던 준성체들이 모두 한꺼번에 나왔다면 우리가 이길 수 있었을까? 그리고 성체 엘리지아 신민수가 바깥에 있다는데 안쪽에는 왜 아무것도 없는 거야? 이곳은 여왕의 방이니까 경계가 더 삼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성인의 걱정을 들은 샌드맨이 코웃음을 쳤다.
“치킨처럼 굴지 말고 따라와라. 던전을 닫아줄 테니까.”
안토니오와 샌드맨이 지하철 역사 안으로 앞장서 내려갔다.
샌드위치 가판대가 부서져 있다. 유통기한이 지났을 과자들이 바닥에 잔뜩 흩어져 있었다. 역무원들이 쓰는 기관실은 창문이 깨져 있다.
전체적으로 쓸쓸하고 으스스한 분위기.
“다들 긴장 놓지 말게. 마력 반응 장난 아니니.”
고제하가 말했다.
하지만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털이 곤두설 정도로 분위기가 위협적이니까.
‘뭔가 큰 게 있다.’
샌드맨은 태어나서 공포를 느껴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엔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 상대는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무엇이지?
저벅, 저벅.
기관실 뒤편, 금이 간 기둥 옆에서 엘리지아 하나가 나타났다.
희멀건 몸체가 반질거렸다.
사람과 거의 똑같이 생겼지만 베이스는 인간이 아니다.
여왕이 무언가를 본 따지 않고 그대로 낳은 순수한 엘리지아다.
“생각보다 오는 데 오래 걸리는군.”
엘리지아가 말했다.
피잉!
바토리가 쏜 화살이 매섭게 엘리지아를 향해 날아갔지만,
탁!
엘리지아는 간단히 그것을 쳐냈다. 바토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인간에 마족에 메탈로이드까지. 대단한 연합군이군.”
엘리지아가 빙그레 웃었다.
“마족? 메탈로이드?”
안토니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헌터들이 바토리와 아리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 엘리지아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후후. 뭐 상관없다. 어차피 이 세계는 결국 엘리지아의 것이 될 테니까.”
헌터들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적의 가벼운 잡담에 집중할 여력이 없었다.
바토리는 잠깐 움찔했지만 그녀도 곧 개의치 않게 되었다.
“네가 여왕이냐?”
“그럴 리가. 내가 퀸이라면 너희가 지금 서 있을 수나 있겠나? 오금이 저려서 모두 주저앉았겠지.”
“네 정체는 뭐지?”
“성체다. 순수한 엘리지아 성체.”
“드디어 성체가 등장했군.”
고제하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군요.”
김성인이 장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엘리지아는 빙그레 웃었다.
“내가 퀸이 아니라고 했는데, 퀸께서 어디에 계신지 궁금하지 않나?”
“어디에 있는데?”
차예빈이 물었다.
“퀸은 이미 한국을 떠나셨다. 수호자가 차원 통로를 이상한 데 열어서 우리는 강제로 일산에 소환되었지만 지구를 정복하기에 이곳은 그리 좋은 스타트 포인트는 아니었으니까.”
“어디로 갔지?”
“고민 중이시다. 미국을 생각하시는 것 같더군.”
“불싯.”
샌드맨이 짜증 난다는 듯 욕설을 뱉었다.
“던전 게이트가 이곳에 있을 텐데 보스가 이곳을 떠난다는 게 말이 되냐?”
엘리지아는 하하하 웃었다.
“던전 게이트? 우리를 무엇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거냐? 일산역 지하에 열린 ‘게이트’를 확인한 이가 있나?”
헌터들이 조용해졌다.
사실 일산역 지하에 있었던 사람은 모두 사망했고 그 이후 일산을 수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 안이 어떤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마수가 나왔으니 일산역에 게이트가 있으리라 추측하고 있었을 뿐.
하지만 지금 이놈의 말은…….
“여기에 게이트가 없다는 것인가?”
켄지가 물었다.
“바로 그것이다. 퀸께서는 넘어오신 후에 직접 게이트를 닫으셨다.”
“그럴 수가 있나?”
“물론. 너흰 엘리지아가 계속 생산되니 게이트에서 넘어오는 거라고 믿었겠지?
“…….”
“그리고 게이트에서 오는 마수의 숫자엔 한계가 있으니까, 퀸에게 더 이상 인간 먹이를 주지만 않으면 엘리지아의 숫자는 늘어나지 않는다고 믿었을 거다. 그래서 일산 봉쇄 정책을 펼쳤다. 아닌가?”
엘리지아는 마치 헌터 협회의 간부라도 되는 것처럼 이쪽이 했었던 그동안의 전략을 술술 읊었다.
“그러나 퀸께서는 적을 먹지 않아도 엘리지아를 낳을 수 있다. 인간 베이스가 아닐 뿐이야.”
“맙소사…….”
“8년 동안이나 우리가 잠자코 있었던 이유를 아는가? 우리는 군대를 모으고 있었다. 마족이나 메탈로이드는 자기들의 차원에서 군대를 모을 수 있었지만 우리는 수호자에 의해 강제로 소환됐으니까.”
“이제 더는 못 모을 거다.”
고제하가 말했다.
“너희는 여기서 모두 죽을 테니까.”
“후후후, 안타깝지만 우리는 이미 충분히 모았다. 성체를 100기나 확보했지. 시작 지점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퀸께서는 머지않아 전 세계를 손에 넣으실 것이다. 아마 뉴욕에서 시작될 것이니 잘 지켜보아라.”
“내가 미국이란 나라에 별로 소속감은 없지만…….”
샌드맨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도 내 월급 나오는 곳이거든.”
<사구 발동!>
샌드맨이 사용한 모래 마법이 역사 바닥을 침식하며 엘리지아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