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90화 (90/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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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 090화

27. 일산 수복 작전(1)

헌터 협회의 장례식장.

한국의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백마중은 그저 강한 헌터가 아니다. 백마 길드의 수장으로서 그는 협회를 여태까지 이끌어온 인물이다. 이 나라의 헌터 세계에서 ‘사무적’으로도 중역이었다.

협회의 마력 주입 각성의 최고 책임자.

그의 손을 거쳐서 탄생한 헌터가 몇이었던가. 에어포스조차 각성에는 백마중의 도움을 받았다.

슬픔이 최고조에 치달았던 것은 물론 김성인이 장례식장에 나타났을 때였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헌터 협회의 가장 대표적인 라이벌 관계.

세인트 길드의 대표 김성인과 백마 길드의 대표 백마중.

장례식장에 들어오는 김성인의 걸음이 너무나 무거워 보였다.

퉁퉁 불고 새빨개진 눈으로, 향을 놓은 뒤 절을 올리고 자리에 앉은 김성인은 결국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다.

“흑…… 흑흑. 백마중! 백마중…… 네가 왜…… 으으으!”

생중계된 그 장면을 보는 시청자들도, 현장의 상급 헌터들도 모두 눈물을 훔쳐냈다.

헌터 협회는 전쟁 시작도 전에 중요한 전력을 잃었다.

조문하고 장례식장에서 나오는 에어포스 역시 침울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앞에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백마중이 누구에게 살해되었는지 혹시 짐작 가시는 것이 있습니까?”

“에어포스! 앞으로 각성은 누가 맡게 됩니까?”

“고제하 협회장님이 아직 보이지 않는데 언제 오십니까?”

에어포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비행을 써서 이곳을 탈출하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지만, 만약 이들이 김성인까지 귀찮게 한다면.

“그만하십시오. 확인되는 게 있으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신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 앞입니다. 여러분, 부디 예의를 지켜 소란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에어포스!”

“지금 사태가…….”

“S급이 죽는…….”

기자들의 질문은 추가로 이어지지 못했다.

에어포스가 마력을 발산했기 때문이다. 그녀로서는 매우 미약한 수준이었지만 기자들에겐 털이 곤두설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물론 기감이 둔한 일반인인 기자들은 그게 에어포스가 한 일인 줄 모른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을 뿐.

분위기가 싸해지자 에어포스는 그들을 헤치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따르르르.

에어포스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에어포스?

윤성이 말했다.

-마스크맨입니다.

“안녕하세요.”

-뉴스 들었습니다.

“혹시 조문 오셨다면 마스크를 벗고 조용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에 기자들이 가득하니까요.”

-이따가 마스크 벗고 가겠습니다. 그보다 에어포스. 백마중 대표가 누구에게 살해되었는지 저는 알아요.

에어포스의 눈이 커졌다.

아직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백마중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골목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몸에 난 외상은 날카로운 것으로 심장부를 찔린 상처 하나뿐. 범인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다.

“그게 누굽니까?”

-엘리지아입니다.

“네?”

에어포스가 당황했다.

“엘리지아의 감염지는 세인트 길드가 완전히 차단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나올 수는 없어요. 나왔다면 감시망에 걸려서 우리가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준성체 황동수가 나왔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성체 엘리지아가 밖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기감만큼은 에어포스, 당신보다도 높은 친구가 알려준 사실입니다. 백마중 헌터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그 분의 뒤를 따르는 엘리지아를 보았다고요.

“정말입니까?”

-확실합니다.

“이럴 수가…….”

-저는 계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윤성이 말했다.

-이번 전투에 참전하겠습니다. 하지만 헌터들과 함께 곧바로 퀸의 소굴로 진격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요?”

-대신 감염지의 변두리를 돌면서 바깥을 탐색할 겁니다. 엘리지아가 포위 밖으로 빠져나오는 길이 있다면 이번 전쟁 때 그리로 나오겠죠. 제가 그 길을 찾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성체가 퀸의 소굴로 돌아가는 걸 붙잡아 요격할 생각이고요.

“백마중조차 당할 정도의 상대입니다.”

에어포스가 말했다.

“각별히 신중을 기울여야 합니다, 마스크맨. 당신까지 잃으면 이 전쟁은 매우 힘들어질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윤성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전에는 얘길 못했지만…….

“뭐죠?”

-엘리지아 퀸은 SSS급입니다.

“뭐라고요? 어떻게 그런 등급이……. 그런 전투력이 가능한 건가요? 가늠이 안 되는군요.”

-뭐, 저도 그냥 전해 듣기만 한 거라서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더군요.

“알겠습니다. 주의하죠.”

-그게 답니까? 이길 방법을 계획해둔다거나 다른 건요?

“지금 계획을 조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성체가 일산을 나온 이상 한시도 지체해선 안 됩니다. 퀸이 SSS급이라면 그보다 더한 힘을 짜내어 파괴할 뿐입니다.”

-진심입니까?

“마스크맨. 제가 신민수와 싸우기 전에도 모든 이들이 말렸습니다. 신민수의 전투력이 SS급을 훨씬 넘을 거라고 모두들 얘기했죠. 그리고 저는 막 각성한 풋내기였으니 그를 꺾을 수 있을 리가 없다고.

-…….

“어떤 적을 이길 수 있느냐, 이런 가능성 차원의 질문은 사실 헌터에게 중요한 질문이 아닙니다. 성체가 일산을 나와서 백마중을 살해했습니다.”

에어포스가 말했다.

“이겨야죠.”

그녀의 목소리에 비장함이 묻어났다.

“반드시 이길 겁니다. 샌드맨과 안토니오가 함께라면, 당신이 도와준다면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성공하길 빌어요.

D급 강윤성으로 참전한다. 그리고 배치 받은 지역에서 상황을 간 보다가 엘리지아의 이동 통로를 찾아낼 셈이다.

퀸의 소굴에는 한국의 S급 헌터들에 더해 바토리와 아리가 들어간다. 거긴 그들에게 맡긴다.

조심해야 할 것은 그들이 퀸의 소굴에서 전투를 벌이는 도중에 엘리지아 성체가 튀어나와서 바깥의 상급 헌터들을 학살하는 상황 전개다.

그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 성체를 잡을 때까지 윤성은 바깥에서 대기할 생각이었다.

***

윤성은 마스크를 벗고 밤늦게 백마중의 빈소를 찾았다.

마스크맨으로 대단한 활약들을 벌였지만 그게 윤성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차희뿐이다.

여전히 협회에서 윤성은 불행의 아이콘이고 미운털 박힌, 건방진 하급 헌터였다.

가능하면 사람들이 북적댈 때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향을 지피고 절을 올린 윤성은 식사는 하지 않고 빠르게 나왔다.

“윤성 씨?”

갑자기 누군가가 윤성에게 말을 걸었다.

백마중의 비서.

옛날 <헌터의 품격> 상점에서 보았던 여자다.

백마중과 함께 들어와서 법인 카드로 윤성에게 헌터의 품격에서 가장 값비싼 마법 물품들을 사주었던 사람이다.

윤성은 그녀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조문 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녀가 인사했다.

“백마 길드 사정은 어때요?”

“다들 눈물바다죠. 그런데 윤성 씨, 혹시 백마 길드에 들어오실 건가요?”

“백마중 대표님께 그런 제안을 받았었죠. 혹시 대표님 돌아가시기 전에 언질 받으신 게 있나요?”

“아뇨. 윤성 씨를 스카우트하겠다고 나가신 게 제가 마지막이었어요.”

“그랬군요.”

“만약, 백마 길드에 입단하고 싶으시다면 저한테 연락 주세요.”

그녀는 윤성과 연락처를 나누었다.

[백마 길드 김샛별]

“이름이 김샛별 씨였군요?”

“네. 입사하시기 전에 꼭 저한테 먼저 연락을 주세요.”

어쩐지 눈치가 이상한데. 왜 이러는 거야?

윤성은 김샛별과 인사하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바깥에서 상급 헌터 세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셋 중 가운데 있는 남자는 윤성도 아는 얼굴이다.

A급 순위권 중 하나다.

백마 길드 김진명.

백마중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던 탱커다.

그의 좌우에 서 있던 남자들이 살랑거렸다.

“차기 회장은 당연히 선배님 아닙니까? 홍창민 따위가 어떻게 선배님한테 되겠어요.”

“당연하지. 여차하면 제가 레이드 때 묻어버리겠습니다, 형님.”

“야, 야.”

김진명이 그들의 입단속을 했다.

“대표님 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말 함부로들 하지 마라. 일단 감염지 레이드에 집중한다.”

***

이틀 후, 여의도 헌터 협회. 그곳에 기라성 같은 최정예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기자들이 약 60여 명. 대포 같은 카메라들 앞에서 고제하 협회장은 백마중 피살 사건에 대해 발표했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헌터 협회는 S급 백마중 헌터를 살해한 것을 엘리지아 성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기자회견장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잠깐 침묵이 흐른 후에.

“찌, 찍어. 속보로 내보내.”

기자 중 하나가 말했다. 순식간에 카메라 플래시 수십이 사방에서 폭발했다.

“엘리지아 성체가 지금 감염지를 나와서 서울 한복판을 걸어 다닌단 말입니까?”

기자들이 물었다.

“마스크맨에게서 들어온 정보입니다. 엘리지아 성체가 백마중 헌터를 노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스크맨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왜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죠?”

“협회는 마스크맨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까?”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고제하가 단언했다.

“그 이유는, 엘리지아가 아니라면 백마중을 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대한민국에 없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에어포스, 마스크맨 정도가 있겠지만 그들에겐 살해할 동기가 없으니까.

솔직히 엘리지아밖에 답이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지난번에는 엘리지아 준성체, 이번에는 성체입니까?”

“엘리지아 성체가 어떻게 감염지를 벗어난 겁니까?”

하는 물음이다.

고제하 협회장의 미간에 주름이 가득해졌다.

“협회도 현재 그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엘리지아 성체의 전투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엘리지아 성체는 여태까지 보고된 적 없습니다.”

고제하가 답했다.

그러자 답답해진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성체를 추적해서 파괴할 건가요?”

“지금 상황에서 계속 감염지 봉쇄 정책을 펴는 게 의미가 있습니까?”

고제하가 마이크를 들었다.

“바로 그에 대해서 발표하려고 합니다. 헌터 협회는, 일산 감염지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최고 전력을 동원하여 일산을 수복할 겁니다.”

다시 잠깐 침묵.

이어서.

“와아아!”

“찍어! 찍어! 속보 다시 내보내!”

“속보다! 일산 수복전!”

카메라 플래시가 무수히 터져 나왔다.

“추가 질문 없습니까?”

고제하가 물었다.

없을 리가 없다. 사방에서 기자들이 손을 들고 공격적인 질문들을 퍼부어댔다.

“어떻게 일산을 수복하겠다는 겁니까?”

“구체적인 작전이 무엇입니까?”

“미국에서 다른 헌터들의 지원이 오는 겁니까?”

“감염된 S급 헌터, 신민수도 아직 살아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상대하실 겁니까?”

“여왕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에어포스! 한 말씀 해주십시오!”

“에어포스가 여왕을 상대하게 되는 겁니까?”

질문 공세에 에어포스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림자처럼 고제하를 지키면서 무게감 있게 서 있었고, 곧 고제하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해외에서 용병들을 구했습니다. 미국의 SS급 헌터 샌드맨과 이탈리아의 SS급 헌터 안토니오, 그리고 일본의 S급 헌터 켄지가 지원할 겁니다. 신민수는 S급 헌터들이 힘을 합쳐서 상대할 것이고, 여왕은 에어포스와 샌드맨, 안토니오가 협공해서 상대할 것입니다.”

“여왕의 전투력에 대해 아직 집계된 바가 없는데 셋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무리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째서 이런 공략을 결정하게 된 겁니까?”

“안토니오나 샌드맨을 믿을 수 있습니까? 만약 그들이 여왕에게 당해서 마수화가 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갑자기 에어포스가 앞으로 성큼 나섰다. 순간 그녀는 미약한 마력을 분출했다. 고제하는 움찔하며 에어포스를 돌아보았다.

안 돼.

고제하가 눈빛으로 얘기했다. 에어포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한 번 해본 거라서 자신 있었다.

기자들에게 겁을 줄 생각은 없다. 마력을 쏘아 보낸 것은 자신감의 표출. 기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일 뿐이다.

전에 장례식장에서처럼, 에어포스에겐 극미량의 마력이었으나 일반인들에게는 소름 끼치는 위압감이었다.

어째서 몸이 굳었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치 거대한 맹수를 앞둔 피식자처럼 오금이 저린 것이다.

“저 혼자서도 여왕을 죽일 수 있습니다.”

에어포스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국민 여러분을 안심시켜드리기 위해 저희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로 했습니다. 안토니오와 샌드맨은 저만큼 강합니다. 그들의 백업이 있다면 일산을 충분히 수복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카메라 플래시들이 폭발적으로 번쩍였다. TV에 나가던 속보는 또 바뀌었다.

[에어포스, “혼자서도 엘리지아 여왕 레이드 가능.”]

엘리지아 성체가 서울을 돌아다닌다. 그것이 백마중을 죽였다!

협회는 엘리지아와 전면전을 각오했다!

전염병처럼 전국에 번지는 공포.

외국으로 나가는 비행기 표들은 빠르게 매진되었고, 쌀과 라면 따위의 생필품들은 마트마다 고갈되기 시작했다.

전 국민들이 일산에서부터 최대한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해남의 땅끝마을은 여느 때보다 사람이 붐비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 윤성조차도 긴장되었다. 지금은 4,300점의 버프가 없다.

게다가 엘리지아는 재포니카 같은 S급 마수종과 아예 레벨이 다르다.

“너희도 남쪽으로 대피해 있을래?”

윤성이 동생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고개를 저었다.

“내려가서 뭣해. 그리고 오빠는 전투에 투입된다며.”

D급 헌터 강윤성은 감염지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주변 봉쇄를 맡았다.

감염지에서 큰 전투가 벌어져서 마력이 불안정해지면 인근 지역에 새로운 던전이 생기거나 던전이 범람한다.

때문에 협회는 C급 이하의 헌터들로 일산 바깥 지역을 한 번 둘러쌌다.

윤성은 김포시의 사우동 근처 지역으로 배정되었다. 강서구에서 약간 북서쪽이었다.

일찍이 김포대교, 방화대교 따위의 다리들을 끊어버렸기 때문에 일산에서 던전이 범람했을 때 엘리지아들은 아래쪽으로 강을 넘어오지는 못했다.

때문에 아직까지는 안전했지만 이번에는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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