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레벨업 속도는 9.8m/s^2 088화
모든 신문과 뉴스가 발칵 뒤집어졌다.
전국이 엘리지아에 대한 얘기로 떠들썩한 것이다.
[엘리지아가 일산 밖으로 나왔다!]
[선유도 공원에 엘리지아가 출현했다!]
일산 봉쇄를 맡은 세인트 길드의 대표 김성인과 부대표 차예빈은 국회에서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도 억울하다.
일산 봉쇄는 완벽했다. 대체 어디로 어떻게 엘리지아가 새어 나왔다는 걸까?
에어포스는 안토니오와의 미팅을 끝내고 일정을 하루 당겨 귀국했다.
공항에서부터 기자들이 와글거리며 그녀를 귀찮게 했다.
가뜩이나 심란한데.
에어포스는 짜증 나는 걸 꾹 참고 기자들을 가로질렀다.
비행을 써서 협회로 직행한 그녀는 곧장 협회장 고제하를 찾아갔다.
“엘리지아 둘이 차태식과 황동수였다더군요.”
에어포스가 고제하에게 말했다.
“협회장님은 그들이 건강하게 돌아올 거라고 하셨는데요.”
“내게도 예상 밖의 일이었네.”
“도대체 회장님이 그들을 맡겼다는 ‘아는 분’이 대체 누굽니까?”
“그는 지구를 지키는 수호자야.”
“네?”
“이 행성의 탄생부터 함께한 초월자야. 지구를 지키고 있는 신이라고 할 수 있지.”
에어포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협회장님이 노망이 들었나 하는 표정이다.
그 얼굴을 읽은 고제하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정말일세. 자네가 안 믿을 것을 알고 있어서 얘기하지 않았지만. 내가 나중에 자네를 그에게 직접 데려가 주지.”
“그런 엉뚱한 얘기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요즘 매스컴에서 상당히 심각한 것 아시잖아요?”
“매스컴은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우리가 일산을 수복하고 나면 조용해질 거야. 일단 수복전에 집중해 주게. 나에 대한 의심이나 마스크맨에 대한 호기심은 이후로 미뤄두고. 수호자를 만난 다음엔 모든 의문이 어느 정도 풀릴 테니.”
엘리지아 얘기로 난리가 난 것은 언론만이 아니다.
인터넷 역시 시끌벅적해진 것이다.
-솔직히 진짜 무섭다 이민 갈까 생각 중.
-마스크맨도 사실 엘리지아였던 것 아닐까? 엘리지아의 배신자 같은 거지.
-갓스크맨을 모욕하지 마라. 이번에 엘리지아 잡은 것도 갓이시다.
-솔직히 백마중이랑 괴물로봇이 다 때려잡음.
-ㅇㅈ.
-그 로봇 진짜 뭐냐? 메탈로이드라고 하던데 처음 보는 타입 아님?
-갓스크맨의 드론이다.
-ㄹㅇ 현장 영상 보면 로봇 마스크맨한테 충성맹세 하다 뒤통수 한 대 맞던데.
-백마중을 후드려팬 엘리지아를 때려잡은 로봇의 통수를 갈기는 갓스크맨 당신은 대체…….
인터넷을 보던 윤성은 마음이 혼잡해져 창을 모두 닫았다.
상황이 아주 심상찮게 돌아간다.
시민들이야 아직 큰일이 벌어진다는 걸 예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윤성은 느끼고 있었다.
엘리지아가 서울 복판에 출현했는데 협회가 너무 조용하다.
마치 엘리지아가 돌발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게 당연하기라도 한 것처럼.
또는 엘리지아와의 전쟁을 미리 계획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오빠!”
소윤이 윤성의 방문을 두들겼다.
“왜?”
“휴대폰 화장실에 두고 나갔더라.”
“아.”
윤성은 문을 열고 휴대폰을 받았다.
“고마워.”
휴대폰을 확인한 윤성은 깜짝 놀랐다.
부재중 통화가 잔뜩 와있었던 거다. 어째 요즘 자꾸 전화를 제때 못 받는군.
[백마중(7)]
[에어포스(4)]
근데 불과 한두 시간 사이에 한국 S급 헌터와 SS급 헌터가 도합 열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고?
‘이번 엘리지아 건 때문인가?’
윤성은 찜찜한 기분으로 휴대폰을 들어 백마중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아, 윤성 씨!
윤성의 번호를 확인한 백마중이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백마중은 아직 윤성이 A급 수준의 재각성 헌터인 줄 안다.
마스크맨과 그를 연결짓지는 못했던 것이다.
“네. 전화하셨더라구요.”
-했죠. 중요한 작전이 생겨서 전화 드렸습니다.
“그게 뭔가요?”
-협회가 곧 일산을 수복하려고 할 겁니다.
“네에에?”
윤성이 기겁했다.
“전화로 할 얘기가 아니군요.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내일 오전 열 시쯤에 괜찮으십니까?”
윤성은 잠깐 고민에 잠겼다.
아마 에어포스가 전화를 건 이유도 일산 수복 작전 때문일 것이 분명했다. 마스크맨의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백마중에 비하면 에어포스는 훨씬 더 중요한 카드다. 사실상 4,000미터 이상에서 윤성이 랜딩하면 에어포스 말고 그를 막을 수 있는 인물이 대한민국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에어포스와의 관계에선 백마중과의 관계에서보다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일산 수복 작전에 대해서 백마중에게 모든 것을 들은 후에 에어포스와 통화해야겠어. 에어포스가 어떤 걸 부탁하더라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게.’
***
다음 날 오전 열 시. 백마중은 그의 밴을 타고 윤성의 행복아파트 근처에 나타났다.
인근의 조그만 카페.
윤성은 백마중의 호출을 받고 방 안에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버프 : 랜딩 406,081초>
4,300점 마일하이클럽 랜딩 버프다. 아직도 나흘 정도가 남아 있다.
너무 아깝군. 이 시간이면 던전을 털어도 몇 개는 더 털 수 있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 버프를 들고 백마중을 만났다간 백마중이 기절해 버릴지도 모르니까.
“버프 리셋.”
그리고.
“자가 진단.”
<강윤성>
<칭호 : 없음>
<힘 : 559, 순발력 : 559, 감각 능력 : 559, 지능 : 559>
<버프 : 없음>
<디버프 : 없음>
<분배 가능한 능력치 : 0>
<스킬 : 빛의 탄환(사용 가능), 급속 냉각(사용 가능), 통역(사용 가능)>
지난날들의 일일 랜딩과 메탈로이드들과 황동수를 잡으면서 얻은 레벨업을 통한 능력치 전반 상승.
능력치 총합이 2,200점 정도 된다. 백마중에게 처음 전투력이 아웃팅되었던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러면 의심받진 않겠지.
카페로 나간 윤성은 백마중을 만났다.
“뭐 마실래요?”
백마중이 물었다.
“사주시나요?”
“그럼요.”
“그럼 아이스 카페모카. 휘핑 없이요.”
커피를 마시면서 두 사람은 일산 수복 작전에 대해서 토론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B급, A급 헌터의 80%가 소집될 겁니다. 그들 모두가 감염지에 투입될 거예요.”
백마중이 말했다.
“감염지는 S급 엘리지아가 득실거리는데 A, B급을요?”
“아시겠지만 엘리지아는 유체, 아성체, 준성체, 성체로 나뉩니다. 막 태어나면 유체 상태고, 전투력은 차례로 B, A, S급 정도 돼요.”
“준성체가 S급인 겁니까?”
“그렇죠.”
“성체는요?”
“협회에 데이터가 없습니다. 김성인 대표도 성체를 본 적은 없대요. 엘리지아 성체는 여왕의 소굴에만 모여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A, B급 헌터들이 여왕의 소굴까지 들어가진 않습니다. 그 근처까지만 전투를 함께 해주면 이후는 S급 이상이 레이드할 겁니다.”
“사망자가 속출하겠군요.”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의 명운이 달린 일입니다. 이번에 뿌리 뽑지 못하면 점점 힘들어질 거예요. 외국에서 SS급 용병도 두 명 모십니다. S급 중 최상위권도 한 명 오고요.”
“그래서 저도 일산 수복에 뛰어들라는 것이죠?”
“A급 최상위권의 인재를 E급 배정지에서 썩힐 수는 없지요.”
“그럼 재각성 검사를 받아야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백마 길드에 가입하셔야 하고요.”
결국 올 것이 왔군.
어쩔 수 없지. 어차피 각오했던 일이다.
황동수와 차태식은 어찌 무마되었지만 이 일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윤성 역시 E급 배정지에서 자신의 전투력을 썩히고 싶진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백마중이 자리를 만들어준 이 기회에 가서 재각성 검사를 받고, A급 헌터로 일산 수복 작전에서 1인분을 해야겠다.
“알겠습니다.”
윤성이 답하자 마침내 백마중의 얼굴이 환해졌다.
“저희 길드에도 들어오시는 거죠?”
“그러죠.”
“됐어!”
백마중은 어린애처럼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A급은 대형 길드에도 그리 많지가 않다. 특히 능력치 총합이 2,000점이 넘는 초대형 A급이라면. S급 대신에 A급 던전의 컨트롤러로 들어갈 수도 있는 인재다.
현재 국내에서 이 정도의 실력자는 코르소 카다시안 부부, 홍창민, 김진명, 표진수, 이시열 정도?
이로써 백마 길드는 또 한 번 김성인 대표의 세인트 길드를 앞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정도의 인물이 참전하는 것은 일산 수복 작전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다.
물론 샌드맨이나 안토니오 같은 SS급의 도움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재검사는 언제 하실 겁니까?”
“오늘 오후…….”
말을 하던 윤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윤성과 백마중이 앉은 테이블은 창가 쪽이다. 윤성이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위치였다.
그런데 창문 밖으로 바토리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녀는 할 말이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화 끝나고 나오라고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백마중이 물었다.
“아뇨. 그게 저……. 재검사는 내일 하죠. 오늘 일이 좀 있어서요.”
윤성은 이후에 30여 분 정도 일산 수복 작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바토리가 신경 쓰여서 계속 창밖을 힐끔거렸지만 백마중은 떠들어대는 데 집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백마중이 나간 후, 드디어 윤성은 바토리와 얘기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야?”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 이곳은 너무 보는 눈이 많다.”
확실히 카페 앞이라서 오가는 객들이 좀 있었다.
뭔가 중요한 얘길 하려나 싶어, 윤성은 바토리를 이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앗! 어제 오셨던?”
다윤이 바토리를 알아보았다.
“잠깐 얘기 좀 할 거야.”
윤성은 바토리를 데리고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혹시나 동생들이 쓸데없는 얘길 들을까 봐.
“자. 얘기해 봐.”
“우선 이것부터 받아라.”
바토리는 웬 낡아빠진 고서 같은 걸 하나 내밀었다.
“이거 책장 열면 바퀴벌레 나오는 거 아니냐?”
“아, 아니다! 마법책이다. 마계에서도 귀한 것이다. 네가 부탁한 통역 마법을 내 친히 가져오지 않았느냐. 고마워하진 못할망정.”
“고맙다. 근데 미안하지만 나 이미 통역 스킬이 생겨 버려서.”
“뭐라고?”
“랜딩해서 얻었거든.”
“그 스킬을 써봐라.”
“흠?”
<통역 발동!>
윤성은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Kaan nahr'dak!”
바토리가 괴상한 억양으로 말했다.
윤성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뭐라는 거야?”
“5,000년 전 마계의 고대 언어다. 하등한 것. 이라는 뜻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네 통역 스킬은 하등한 스킬이구나.”
바토리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