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레벨업 속도는 9.8m/s^2 082화
윤성이 역정을 냈다.
정보처리 제어소는 곧 발전소이기도 하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단위 지역 내에 마력과 전력을 공급하기에 최적인 위치가 곧 지역 내 정보를 총괄 처리하기 가장 적합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곳이 바로 지역 내 중심지니까.
두 번째 이유는 정보처리 제어소의 핵심인 슈퍼컴퓨터가 먹는 마력과 전력의 크기가 너무 막대해서 지역 내에서 소비되는 양의 3할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발전소에서 멀어질수록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니까 발전소 위치에 슈퍼컴퓨터를 설치하는 게 최적이다.
윤성이 보았던 거대한 파이프와 톱니바퀴들. 모두 발전 시설이다. 바닥에서 끓어올랐던 거대한 스팀은, 이번 급수의 스팀 양이 너무 많아서 파이프가 터지지 않도록 개폐장치가 일시적으로 열렸기 때문이었다.
“앗.”
아톰이 눈을 반짝이더니 윤성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뭐?”
“저기.”
아톰이 손을 뻗어 가리킨 곳 끝에는 조그만 지게로봇 한 대가 윤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의 손에서 발사된 섬광이 지게로봇을 부쉈다.
“왜 부수는 거야?”
“우리가 잠입했다고 신고하면 어떡해?”
“이미 들켰을걸.”
“어떻게 알아?”
“정문으로 들어왔는데, 정문에는 출입자 감시 센서가 있어서 품번이 확인된다.”
“그건 왜 또 지금 얘기하는 거야!”
윤성은 아톰을 노려보다가 난간 너머의 지하로 시선을 돌렸다.
아래에서부터 윙윙거리는 큰 소음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한 대의 비행형 전투 로봇이 일제히 치솟는 중이다.
“칫.”
아톰에게 역정을 내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걱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4,300점의 버프가 있으니까.
그리고 윤성 본인의 기본 능력치들도 이젠 A급이다.
고작 A급 전투로봇 몇 대쯤이야 별 것 아니다.
퓽, 퓨퓽!
윤성이 발사한 빛의 탄환이 적중할 때마다 로봇들은 하나씩 격추되었다.
하지만 윤성의 전투력을 인지한 적들은 공략 방법을 바꾸었다.
위이잉!
전투로봇들이 윤성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어떤 공격도 하지 않고.
엔진에서 나오는 모든 마력을 가속에만 써서 최고 속력으로 움직이기만 하는 거다.
“칫.”
이젠 조준이 어렵다.
하지만 곧, 윤성은 이들의 움직임이 일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계적인 알고리즘에는 속력 효율을 떨어뜨릴 이유가 없으니까.
“아톰!”
윤성은 아톰을 불러서 자신의 오른팔을 쥐게 했다.
“저놈들 움직임 계산할 수 있지? 내 팔로 발사 각도를 잡고 발사할 타이밍에 팔뚝을 눌러. 준비 됐지?”
“준비 됐다.”
꾹.
<빛의 탄환 발동!>
아톰이 자신의 팔뚝을 누르는 순간에 기계적으로 빛의 탄환을 쏘았더니 전투 로봇 한 대가 터져나갔다.
잠깐 사이에 윤성은 로봇들을 모두 파괴했다.
“T505는 어디에 있지?”
전투를 마치자마자 윤성이 물었다.
“505? 나도 모르겠는데.”
“그럼 여기 발전소에서 파워 케이블을 꽂아서 충전하기 가장 좋은 장소가 어디야?”
“아마 지하 바닥일 거다. 터빈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가장 큰 곳이니까.”
아톰이 난간 너머 저 아래를 가리켰다.
“좋아. 난 간다. 이따가 보자고.”
“간다고?”
“저 비행 로봇 새끼들이 시간 끄는 것 못 봤어? 날 죽일 셈이었다면 공격을 했겠지. 빙글빙글 돌면서 시간 최대한 끌려는 거잖아. T505가 과충전할 때까지!”
“아.”
“더 이상 시간을 주면 안 돼. 지금 간다.”
윤성은 난간을 밟고 뛰어내렸다.
아무리 높다고 해도 4,300점의 버프 이내다.
이 위치에서 전투력 증강을 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최근 했던 일일랜딩 중에선 최고의 높이다.
눈앞을 지나가는 것들은 끔찍한 소음을 내는 고압 드럼.
수십 개의 저장조.
냉각 펌프, 집진 설비, 초거대 복수기.
그리고 한 층 전체를 가득 메운 슈퍼컴퓨터의 본체들.
관찰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윤성의 몸은 바닥에 근접했다.
-콰아아앙!
충돌이 만들어낸 굉음이 발전소 내부에서 왕왕 울렸다.
윤성은 모범적이고 완벽한 자세로 랜딩했다. 체중까지 증가시켜서. 오늘치 일일랜딩을 해야 했으니까.
<최종 속력=149.01㎧, 낙하 거리=1,195.90m, 낙하 시간=15.76s>
<랜딩 성공!>
<랜딩 버프 : 이미 상위 버프가 존재합니다. 남은 시간 1,810,788초. 이미 상위 랜덤 스킬이 존재합니다. : 광폭한 물결 남은 시간 1,810,788초>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근력과 감각 능력, 지능에 각각 14점>
“랜딩 스킬은?”
<낙하 거리 임계 돌파. 영구적 스킬 획득 : 현재 레벨이 낮아 이 낙하 구간에서는 두 번째 스킬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스킬 : 라이트닝을 ‘급속 냉각’으로 바꾸시겠습니까? Y/N>
급속 냉각!
‘잘하는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윤성은 Y버튼을 눌렀다.
라이트닝으로 오랫동안 꿀 빨았지만 이번엔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배터리가 과충전이 가능한 놈이라잖아. 번개를 갖다 박아도 모조리 충전해 버리면 어떡해.
게다가 급속 냉각은 1,000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얻은 랜딩 스킬이다.
800미터 샌텀 타워에서 얻었던 라이트닝보다는 더 좋겠지 뭐.
“네가 침입자군.”
사람 모양의 로봇 한 대가 윤성을 보고 말했다.
로봇의 등에는 거대한 케이블 전선이 꽂혀 있다. 발전소에서 나온 에너지.
이 T505는 이미 모든 부품을 S급으로 교체한 상태였다.
게다가 충전된 마력과 전력의 양은 얼마나 클지 모른다.
“많이 충전했냐?”
“널 쓰러뜨리기에 필요한 만큼은 했다.”
“날 쓰러뜨리려면 이 정도 발전소로는 안 될 텐데.”
윤성이 허세를 부렸다.
T505가 윤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한 번 봐라.”
콰아아!
처음 발동된 스킬은 <소각> 최상위 화염 마법 중 하나다. 엄청난 고열로 적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기술.
이런 스킬을 T505가 가지고 있는 이유는 발전소의 관리자로서 불필요한 부품이나 로봇을 즉시 없애 버리기 위함이다.
즉, ‘소각’은 철을 녹일 정도로 뜨겁다.
하지만 윤성은 재포니카 던전을 거의 혼자서 클리어했을 정도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T505의 화염이 날아오는 순간 몸을 웅크리며 옆으로 빼서 열기를 피했다.
<빛의 탄환 발동!>
동시에 손가락에서 쏘아 보낸 섬광이 T505의 손등을 부숴 버렸다.
화염이 쏟아져 나오던 점화구가 파괴되자 T505는 몇 걸음 물러났다.
“네 데이터에서 내 전투력이 어떻게 집계됐는지 모르겠지만, 난 여기 들어와서 전력을 다한 적이 없다.”
T505의 머릿속에서 빠른 연산이 흘렀다.
“이상하군. 네 감각 능력은 2,000점 이하로 판단되는데. 그래서 A100이 네 머리 위를 빙빙 돌 때 그 움직임을 추적하지 못해서 로봇의 도움을 받은 것 아니었나?”
“시간을 줄이고 싶었을 뿐이야.”
윤성이 바짝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단검을 이용한 근접전.
S급 부품으로 만들어진 T505의 몸체는 S급 탱커의 피부처럼 단단했지만 종단 속도의 단검은 그보다 위계가 더 높다.
싸악!
칼날이 스치자 방어한 팔뚝에 예리한 상처가 생겼다.
T505는 이번에도 조금 놀란 듯했지만,
콰앙!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로봇 발로 윤성을 힘껏 찼다.
엄청난 힘. 윤성의 몸이 붕 떴다.
T505는 아직 148%밖에 과충전을 하지 못했다. 200%까지 채워야만 SS급에 도달하는 그의 전투력은 윤성에게는 약간 못 미쳤다.
하지만 메탈 특유의 충격력은 꽤 아프다. 윤성은 가슴이 욱신거렸다.
<소각 발동!>
콰앙!
T505가 왼손을 뻗는 순간 윤성은 땅을 억세게 찍어 눌러서 바닥 타일 하나를 뒤집었다. 튀어 오른 타일이 방패 역할을 해서 화염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물론 바닥 타일은 빠른 속도로 녹았지만,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의 섬광이 T505의 왼손을 향했다.
T505는 재빨리 공격을 피했지만 소각을 거두어야 했다.
쏴르르르-
그리고 그가 이동한 장소에선, 물이 콸콸 쏟아져 내렸다.
마지막 순간 윤성이 단검을 천장을 향해 투척했던 것이다.
거대한 파이프가 단검에 갈라졌다.
급수 탱크와 이어져 있었던 파이프에서 떨어지는 물은 T505를 흠뻑 적셨고,
<급속 냉각 발동!>
윤성은 스킬을 사용했다.
아톰은 계단 540칸을 걷고 엘리베이터 세 개를 갈아타고 15분 동안 이동해서 발전소의 지하 48층까지 왔다. 두 개 층만 더 내려가면 바닥이었다. 마지막 엘리베이터를 찾는데,
“T505! 넌 내 거야!”
하는 마스크맨의 목소리가 건물에 울려 퍼졌다.
물론 아톰의 데이터로는 해석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마스크맨! 내가 도와주러 왔다.”
마침내 지하 50층에 내려온 아톰이 외쳤으나, 그곳엔 마스크맨 한 명뿐이었다.
“뭐지? T505가 여기에 없었나?”
아톰이 혼란스러운 듯 물었다.
발전소에 침입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 침입자가 꽤 강하다면, T505는 케이블을 꽂고 과충전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 매뉴얼이다.
그러려면 분명 지하 바닥으로 내려왔을 텐데.
“이미 처치했다.”
윤성이 말했다.
“아니. 처치라고 하긴 좀 그런가. 산 채로 잡았다.”
“뭐라고?”
“이걸 선물해 줄 녀석이 있어서. 아무튼 그렇게 됐어.”
급속냉각으로 얼려 버린 T505는 엔진을 돌려서 몸의 열을 올리고, 그걸로 해동하는 전략을 취했다.
하지만 T505의 에너지 효율은 운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애초에 그의 몸체는 열로 손실되는 에너지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전투로봇으로는 사실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이었지만 지금은 최악이다.
동력 신경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 선에서 전력과 마력을 순환시켜서, 냉각된 몸이 녹을 만큼 열이 오르게 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몸체 내의 부동액과 냉각수가 둘 다 얼어버린 까닭에 몸체에 파손도 좀 생겼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모든 의식이 사라졌다.
“인벤토리에 넣어볼까?”
그 이유는 바로, 윤성이 인벤토리 주머니를 펼치며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옛날에 했던 실험 결과 생명체는 인벤토리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기계류는 들어가지 않았던가.
요즘 냉장고들은 컴프레셔 동력기로 마정석이 들어가기도 한다. 한 마디로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
하지만 그 냉장고도 윤성의 인벤토리엔 들어갔다.
똑같이 기계이면서 마력을 가지고 있는 T505도 들어가지 않을까?
의심을 절반 가지고 해본 실험이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인벤토리>
-순간이동석(탑)
-순간이동석(마계)
-순간이동석(지구)
-T505
정말로 인벤토리에 T505가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걸 그대로 아리에게 가져다준 다음 이놈 부품을 최대한 손상 없이 다 뜯어내서 아리를 개조해야지.
S급 로봇 똘마니라니. 최고잖아?
“그럼 슈퍼컴퓨터로 가볼까?”
윤성이 아톰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직접 내려왔으면 길 알겠지? 여기 바로 위층인가 그 위층이 슈퍼컴퓨터가 있는 방이야. 같이 가자고.”
윤성은 아톰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48층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