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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81화 (81/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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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 081화

24. 더 많은 파츠

하늘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강철 프레스를 발견한 윤성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주위에는 작은 고철 로봇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 와글거리며 뛰어다니는 중이다.

“101001101100110101010100011100110!”

작은 로봇 하나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10101011101110?”

“110110001110!”

로봇들이 떠들어댔다.

2진법 대화 실화냐?

황당한 윤성은 잠깐 멍청히 있다가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혹시 이것도 될까?”

<통역 발동!>

“이쪽이야! 빨리 도망쳐!”

로봇들의 말이 정확히 이해되었다.

정말로 그들은 특정한 방향을 향해서 와르르 뛰고 있었다. 윤성은 엉겁결에 그들을 뒤따랐지만 나타난 것은 옛날 아리가 간신히 통과할 정도의 조그만 굴이었다.

“앗!”

윤성이 그곳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컸다. 어깨 한쪽을 빼버리고 쇼생크탈출 찍으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떡하지?”

이미 작은 로봇들은 전부 굴을 통과했다.

“나, 나도 데려가 줘!”

윤성의 등 뒤에서 로봇 한 대가 말했다. 윤성보단 작았지만 덩치가 굉장한 로봇이었다.

“미안하지만 이 굴로 들어오진 못해. 미안하다.”

굴 안에서 로봇 하나가 말했다.

“다른 길을 찾아봐. 혹시 살아남으면 레지스탕스의 빅 독을 찾아와.”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아!”

로봇이 소리쳤지만 소용없다. 굴의 안쪽에서 맨홀이 다가와 입구가 막혔다.

“어이.”

윤성이 로봇의 허리를 꽉 쥐었다.

“나랑 같이 탈출하자고.”

“뭐야 너는? 로봇이 아니…….”

그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윤성이 놀라운 속도로 점프했기 때문이다.

<랜더의 전투화 발동!>

프레스가 들어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약간 있다.

그리고 프레스가 누르는 홀의 꼭대기 턱과 프레스 사이에도 약간의 틈이 있다.

높이는 약 80미터, 윤성의 전투화로는 여유로운 높이다.

탁.

프레스 틀에서 빠져나온 윤성은 로봇을 내려놓았다.

“넌 이름이 뭐지?”

“난……. 모델명 S908. 101011호.”

“그게 뭐야?”

“내겐 이것 외에 이름이 없다.”

“내가 지어주지.”

“이름을 지어준다고?”

“그래. 어디 보자. 아톰. 어때?”

“아톰?”

“이명이 필요하면 우주소년.”

“내 데이터로는 처리할 수 없는 정보다.”

“걱정하지 마. 그보다 아까 굴에서 누가 레지스탕스에 빅 독이 어쩌고 했는데 혹시 아냐?”

“빅 독은 레지스탕스의 두목이다. 마더는 그게 에러가 나서 잘못 처리된 정보라고 했어. 사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대.”

“하지만 아까 조그만 로봇들을 구출해준 녀석은 레지스탕스 아냐?”

“그런 것 같다.”

“너도 잘 모르는군?”

“응.”

아톰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질문했다.

“너는 로봇이 아닌 것 같다. 메탈이 느껴지지 않는다.”

“맞아. 난 인간이야.”

“인간! 탄소 고분자로 이루어진 유기체 말이야?”

“으응…….”

“맙소사. 나는 처음 봤다.”

아톰은 뭔가를 생각하더니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너, 너희는 우리의 적이라고 배웠다. 정말이냐?”

“마더가 우리 세계를 침공한다면 마더와 싸워야겠지.”

“마더의 적이냐?”

“아마도?”

“나도 마더의 적이다. 마더는 나를 폐기하려고 했어. 내 정보처리 장치가 고장 났거든.”

“그게 정말 고장인지는 나중에 두고 보자고. 그리고 적의 적이면 아군이라는 말이 있어. 우리끼린 협력할 수 있을 것 같네.”

윤성이 손을 내밀었다.

아톰은 이번에도 깜짝 놀랐다.

“무슨 의미야? 날 공격하려는 거야?”

“아니. 이건 악수라는 거야. 손을 서로 맞잡고 흔드는 거. 친구가 되었다는 뜻이야.”

“친구가 무엇이지?”

“아오, 별 걸 다 가르쳐야 하네.”

“뭐라고?”

“친구는 서로 도와주고 마음이 통하는 그런 사이야.”

“마음이 통한다는 게 뭐지?”

“그, 뭐랄까.”

“마음이 뭔지 모르겠다.”

“사람의 감정 같은 거야.”

“감정?”

“아까 도망가면서 살고 싶다 생각했지? 그런 게 감정이야. 우리는 둘 다 똑같이 살고 싶어 했잖아? 그러니까 마음이 통했던 거지.”

“아!”

귀찮아서 대충 둘러댔지만 아톰은 감탄하더니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우리는 마음이 통했다.”

“그러니까 같이 마더를 폐기하자.”

“알겠다. 하지만 우리끼린 무리일 거다.”

“레지스탕스를 찾아보자고.”

“레지스탕스가 어딨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보처리 제어소가 어디에 있는지는 안다. 거기서 자료를 서치해 보자.”

“정보처리 제어소? 그게 마더 아냐?”

“마더가 혼자 전부 처리하기에는 너무 정보량이 방대하다. 마더는 서브 관리 장치를 몇 개 만들어서 업무를 분할했다.”

지금으로선 딱히 뾰족한 수도 없고, 나쁘지 않은 계획 같았다. 정보처리 제어소가 얼마나 위험할지는 모르겠지만.

***

아톰과 함께 정보처리 제어소를 찾아 떠난 지 20분째.

윤성은 기계 제국의 면면을 감상하며 감탄을 터뜨렸다.

이곳은 끝내주는 랜딩 명소다.

건물들의 기본 높이가 샌텀 타워수준이다. 전에 순간이동석을 써서 찾아갔던 ‘탑’과 동일한 수준의 빌딩들도 종종 보인다.

마정석을 이용한 엔진과 기계들 특유의 지치지 않는 체력, 24시간 작동할 수 있는 지구력은 비정상적인 건축들을 가능케 했다.

게다가 기계들은 기본적으로 부스터를 장착하여 짧은 거리를 비행하는 게 가능하다.

따라서 건물들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들은 이동 가능한 범위의 외연이 확장되는 것이다.

게다가 더욱 경이로운 점은, 이곳은 지하로도 깊다는 것이다.

지하로 깊이 내려가면 지열을 이용하여 여러 발전이 가능하다. 그걸 토대로 문명 발달은 더욱 가속된다.

따라서 기계문명에겐 땅의 개발이 굳이 수평적일 필요가 없다.

만약 이곳 최고 높이의 빌딩에서 지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뛰어내려서 버프를 먹는다면?

“여기서 가장 높은 빌딩이 어디지?”

윤성이 아톰에게 물었다.

“글쎄. 마더가 있는 빌딩 A-1 아닐까? 2200미터가 넘는다고 알고 있어. 내 데이터베이스에는 정확한 값이 없지만.”

“대단하군.”

“근데 그건 왜?”

“아냐. 그보다 하늘이 왜 이렇게 검지?”

윤성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인상을 썼다.

처음엔 밤이라서 캄캄한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별도 달도 없다.

그리고 밤하늘이라고 해도 저 정도로 검은 것은 처음이다.

그래도 밤하늘이 아닐 거라고 의심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톰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저건 태양열 흡수막이야.”

“태양열 흡수막?”

“거대한 막을 하늘에 덮어씌워서 햇빛을 모두 흡수해 동력으로 쓰는 거야.”

“맙소사.”

“이 행성 전체에 총 402,880개의 기둥이 있어. 태양열 흡수막이 지상에 내려앉지 않도록 받쳐주는 기둥이지.”

이런 기술력이라니.

이것들 지구 침공하면 진짜로 인류 멸망하는 거 아냐?

“이제 거의 다 왔어.”

아톰이 멀리 보이는 거대한 빌딩을 가리켰다.

샌텀 빌딩보다 더 큰 건물이었다. 높이는 2,000미터쯤 될까.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자 보이는 건물의 가로축이 충격적일 만큼 크다.

꼭 미국에서 불법 이민자들을 막기 위해 쌓아놓은 장벽처럼 보일 정도다.

“삐빅.”

전투 로봇 한 대가 윤성과 아톰을 발견하고 반응했다.

로봇의 눈에서 스캐너가 빛을 쏘더니 아톰의 품번과 윤성의 얼굴을 인식했다.

윤성은 데이터에 없지만 아톰의 품번은 폐기처분된 로봇이다.

“파괴 대상.”

로봇이 성큼 앞으로 나서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것의 어깨에는 골리앗처럼 마법 미사일 발사대가 있었다.

-쿠우우우!

어깨에서 발사된 미사일.

엄청난 열기와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윤성에게는 아이들이 패스한 농구공과 다를 바 없다.

-인벤토리

윤성은 인벤토리를 열어서 미사일을 집어넣어 버렸다.

콰앙!

그리고 달려가 로봇의 머리를 파괴했다.

“고맙다. 나 혼자서였다면 그 미사일에 당했을 거야.”

아톰이 인사했다.

“괜찮아. 여기 근데 어떻게 들어가지?”

문 앞에 서서 난처해하는 윤성을 보고 아톰이 나섰다.

아톰은 자신의 어깨에 적힌 품번을 출입문 옆의 리더기에 갖다 대고 비추었다.

삑.삑.삑.

리더기에서 알람이 울더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접근 거부. 에러 코드 C37716>

“내가 폐기된 로봇이라 안 되는 거 같아.”

“비켜봐.”

윤성이 말했다. 이미 좀 전에 부쉈던 전투로봇을 들고 있었다.

윤성은 전투로봇의 품번 코드를 리더기에 갖다 댔다.

삑.삑.삑.

리더기에서 똑같은 알람이 울렸고.

우우웅.

이번엔 거대한 강철 문이 좌우로 열렸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부숴 버리려던 윤성이 방긋 미소를 지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생산 라인의 설비들이 나타났다.

난간 밖은 깎아지른 듯 아래 깊숙이 꺼졌다. 굽이굽이 구부러진 철제 다리와 엘리베이터, 컨베이어 벨트뿐이다.

푸쉬이이이이이!

막대한 양의 스팀이 지하에서 올라왔다. 연못 하나가 통째로 끓어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파이프의 굵기는 바오밥 나무의 줄기 같고, 톱니바퀴는 재포니카의 몸통 사이즈다.

“세상에.”

윤성은 감탄을 터뜨리면서 동시에 걱정이 되었다.

이만큼 거대한 정보처리 제어소라면 상당히 위험한 로봇이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아까 입구에서 보았던 전투로봇보다 더 위험한 게 여기 있나?”

“나도 모른다. 하지만 보통 업무용 로봇만 있고 전투 로봇은 없을 거다.”

“다행이군.”

“그리고 모든 제어소엔 T505라는 로봇이 관리자로 있다고 들었다.”

“T505?”

T504가 아리의 모델이었다. T505라고 하면 왠지 아리와 비슷한 모델일 것 같잖아?

“내가 T504는 좀 아는데, T504와 505는 어떻게 다른 거야?”

윤성이 관심을 보이자 아톰이 설명했다.

“T505는 T504의 모든 면모를 가지고 있지만 딱 두 가지가 다르다. 하나는 마더에게 절대 복종한다는 점. 또 하나는 개량 엔진이 마력과 전력의 과충전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과충전?”

“로봇은 보통 전력과 마력을 모두 사용한다. 마정석을 가공해서 배터리에 넣고, 충전 케이블을 꽂아서 전력을 충전하지. 마정석의 마력이 고갈되면 케이블을 통해서 마력을 주입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과충전은 뭐야?”

“나 같은 경우 배터리의 최대 충전량은 A급이다. 최대 충전 상태에서 A급 메탈로이드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T505 같은 기종의 엔진은 충전 한계가 굉장히 높아서 전력과 마력이 충분하기만 하면 SS급까지도 충전이 가능하다.”

“그거 위험하군.”

“하지만 그 상태로 오래 돌아다니지는 못한다. 과충전 상태인 만큼 빠르게 소모되기 때문이지. 그래서 보통 안정적인 공급원이 있을 때만 과충전을 할 수 있다.”

“그런 장소만 피한다면 T505가 그렇게 위협적이진 않겠네.”

“여기가 그 장소 중 하나다.”

“……XX!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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