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레벨업 속도는 9.8m/s^2 079화
23. 전자 상가 쇼핑
다윤과 소윤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다윤이 파스타를 만들었고 소윤이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었다.
오늘 윤성은 늦는다고 했기 때문에 둘이서 먼저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윤은 저녁에 돌아온 윤성을 보고 놀라서 포크를 떨어뜨렸다.
“뭐야? 그 더러운 장난감은?”
오빠가 웬 고물덩이를 들고 왔다.
“한동안 우리 집에서 같이 살 거야.”
“같이 산다고? 그게 뭔데?”
“가정용 로봇.”
“어?”
“좀 기다려.”
윤성은 아리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서 깨끗하게 씻겼다. 물론 인공지능이 우수한 아리는 어느 정도 스스로 씻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노파심에 직접 수세미로 문질러야 마음이 놓였던 것이다.
“좋아. 작동!”
아리를 거실 복판에 내려놓으면서 윤성이 말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일단 다윤이 소윤이랑 인사부터 하지.”
“안녕하십니까, 새 주인님.”
아리가 공손히 인사했다.
“뭐야, 이거?”
“이집트에서 중요한 비즈니스를 처리하면서 얻은 거야. 헌터 사무국에서 개발 중인 신제품. 가정용 가사 로봇.”
“세상에.”
“한동안 집안일은 얘가 해줄 거야. 이름은 아리.”
“작명 센스 구려…….”
“잘 부탁드립니다.”
아리가 인사를 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달그락거리며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군.’
윤성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다윤에게 슬쩍 다가가 뭔가를 건넸다.
“이건 네가 갖고 있어.”
아리의 작동 리모컨이었다.
“이게 뭔데?”
“저 가사로봇의 작동 중지 리모컨.”
위험한 로봇 같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르는 거니까.
다음 날 아침, 윤성은 용산의 헌터 전문 전자상가를 찾았다.
아리를 개조하기 위해서다.
‘헌터의 사이보그화’
한때 엄청난 붐이 일었던 헌터 리모델링 사업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로보캅처럼 로봇 몸통에 머리만 이식하고 그런 것은 아니다.
핵심은 마력이 담긴 고성능 기계 장비를 동원해 하급 헌터들의 전투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것.
상급 헌터들이야 해당 사항이 별로 없지만 하급 헌터들은 꽤 많은 도움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제트엔진로봇팔 같은 것.
손가락 끝부터 팔꿈치까지 연결된 외골격 로봇 토시를 하는 것인데, 작동시키면 마정석 엔진이 팔꿈치의 노즐에서 강력한 불을 뿜으며 펀치력을 뻥튀기하는 거다.
헌터 본인의 마력에 마정석의 도움을 받는 셈인데, 주먹 끝도 강철이니 타격력이 더 좋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아이언 피스트 같은 스킬을 사용하는 게 더 효과적이고, 기계 장비의 가격이 엄청나게 높다 보니 금방 인기가 시들해졌다.
지금은 돈 많은 E급, D급 헌터들만 찾는 정도.
하지만 이 사업의 효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많은 헌터들이 애용하는 ‘총기’가 이 리모델링 사업에서부터 개발된 것이니까. 그 전에는 검이나 너클 같이 사람이 직접 쥐고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면 마력을 싣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비록 그 가격이 어마어마한 수준이고 효율이 그리 대단하진 않지만, 그래도 쓸 만한 마력 소총과 연발 석궁 따위가 이제 헌터들에게 제공된다.
“어서 오세요.”
전문 상가에 들어서자 사방에 늘어선 가게들에서 호객행위를 시작했다.
“찾으시는 제품 있으세요?”
“어떤 분이 사용하실 것인지?”
“신상 마력 소총 나왔는데 한 번 보실래요? 저희 가게 독점입니다.”
“제가 쓸 건 아니라서. 천천히 둘러볼게요.”
윤성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영상통화를 켰다.
뭐, 가게 주인들이 남의 휴대폰 화면까지 들여다보진 않겠지만 아리는 자신의 캠을 차단해 두었다.
소리는 이어폰을 사용해서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게 했다.
윤성은 가게 진열대에 놓여 있는 온갖 로봇 부속품들을 하나씩 보여주었다.
“어때? 쓸 만한 것 있어?”
-D급 정도로 보이는 부품들이군요. 제가 굳이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몸의 고장 난 부분들을 수리하는 데 필요한 것들은 꽤 보입니다.
“그게 뭐지?”
-뒤에 있는 철물 코너의 선반 위에서 KS B-2228 규격의 둥근 모양 나사 열 개와 LS-266 규격의 렌지 둘, 45도 엘보 BNS-9887 한 개와 편심 이경 티 M 사이즈 일곱 개, 10센티미터 플렌지 다섯 장과 크로스형 리턴 벤드 S 사이즈 하나와…….
“못 알아듣겠으니 문자 보내.”
-알겠습니다, 주인님.
윤성은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혹시 A급 이상 헌터 전용의 제품은 없나요?”
“그럼 이게 딱이죠.”
가게 주인은 윤성을 카운터 근처의 보관함 인근으로 이끌었다. 가판대 아래에서 거대한 바주카포 같은 게 나타났다.
“그 왜, 최근에 샌텀 타워에서 범람한 던전에서 골리앗이 대거 잡혔잖습니까? 골리앗 부속품 중 하납니다. 마법 미사일 발사대. 작동하는 데 마력이 많이 필요해서 상급 헌터들만 쓸 수 있지만 위력은 확실하죠.”
윤성은 가게 주인이 볼 수 없게 등으로 가린 채, 휴대폰 후면 카메라로 마법 미사일 발사대를 비추며 물었다.
“어떠냐?”
-골리앗은 C-133형 전투로봇입니다. 저보다 100세대 정도 앞의 구식 물건이지만 호환은 됩니다.
“이걸로 주십쇼.”
윤성이 주인에게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이후 윤성은 지하상가 전역을 돌면서 온갖 마력 기계 장비들을 사들였다.
채피의 양팔, 와봇의 중앙 신호 제어 장치, 아시모의 바퀴 두 쌍.
윤성이 쇼핑을 시작한 지 40여 분째, 웬 젊은 헌터 하나가 온갖 로봇 부품들을 잔뜩 사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지하상가 전역에 퍼져 나간 후였다.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뚱뚱한 남자 네 명이 사람 몸통만 한 크기의 로봇 다리 두 개를 들고 헐레벌떡 나타났다.
얼마나 무거웠는지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윤성의 발치에 로봇 다리를 내려놓자마자 퍼질러 앉아버렸다.
“이거, 헉. 헉. 이거 S급입니다요. 헥. 아이고! 죽겠다.”
“S급이요?”
윤성의 눈이 커졌다.
“어디서 난 거죠?”
“몇 년 전에 협회에서 일어났던 헌터 경매에서 가져온 물건입니다. 제가 이거 3천만 원이나 주고 샀던 거예요.”
“어때?”
윤성이 휴대폰 전면 카메라로 로봇 다리를 비추며 아리에게 물었다.
-S급 메탈로이드 휴보의 다리군요. 호환 가능합니다. 저 던전은 러시아에 열렸던 것인데 당시에 동북아시아 협동 레이드팀이 그걸 클리어했고, 에어포스가 참전하면서 한국에서 던전 전리품 중 2할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건 어떻게 아는 거야?”
-제 데이터베이스에 있습니다. 그리고 다리에 모델명이 적혀 있군요. 저 모델은 러시아에 참전했던 모델입니다.
“S급 정도나 되는 물건인데 왜 여태 안 팔린 거지?”
-저 다리는 제트 엔진이 내장된 로켓형 다리입니다. 외골격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이 저 다리를 정강이에 부착하거나 장화처럼 신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해해서 쓰기에는 제트 엔진이 아까웠겠죠. 수백 미터 거리를 일순간에 도약할 수 있는 엔진이니까요.
정확한 설명이었다.
에어포스의 전리품으로 협회 소속이 되어 넘어온 휴보의 부속품들은 헌터 경매로 넘어갔고, 가게 주인은 언젠가 비싸게 팔릴 거라는 기대감에 사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해체하면 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그대로는 아무도 안 쓴다.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지 5년째.
하지만 지하상가의 거의 모든 메탈로이드 부품을 갈퀴처럼 쓸어 담고 있다는 이 기적의 사나이라면 사주지 않을까?
가게 주인은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윤성을 바라보았다.
윤성은 아리에게 물었다.
“그럼 넌 제트엔진을 그대로 쓸 수 있는 건가?”
-물론입니다. 탄소 피버 신경다발을 연결하기만 하면 됩니다.
“수직으로도 도약할 수 있냐?”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떨어지면 박살 날 겁니다. 원래 휴보는 낙하용 날개를 가지고 있는 로봇이라 상관없었을 테지만요.
“다리 두 짝 해서 얼마입니까?”
윤성이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제가 5년이나 묵혀두었던 것인데 4천 이상은 받아야 마진이 안 남겠습니까?”
“좋습니다. 4천에 사죠.”
카드로 결제한 후 윤성은 다리 두 짝을 인벤토리에 넣어버렸다. 거대한 로봇 다리 둘이 눈앞에서 싹 사라지는 걸 보고 가게 주인과 그 일행이 놀란 얼굴이 되었다.
윤성은 추가로 근처 가게에서 공구 상자를 세 통 정도 샀다. 온갖 종류의 볼트와 너트, 나사 따위가 잔뜩 들어있는 상자였다.
아리가 원했던 나사와 이음쇠 따위의 모델명을 하나하나 불러주기도 귀찮고 어차피 앞으로도 많이 쓸 것으로 예상되니까.
쇼핑을 마친 윤성은 지하상가의 정문 쪽으로 돌아갔다.
헌터용 전자상가의 맞은편에는 일반인용 전자상가가 있다. 전투용 파츠가 아니라 그야말로 일반 가전 기기들을 파는 곳이다.
냉장고, 컴퓨터, TV 따위.
이미 집안 인테리어를 모두 마친 윤성이 이곳에 들린 이유는 노트북을 하나 사기 위해서였다.
윤성이 쓸 것은 아니고 선물용.
‘다윤이가 이제 대학생이 되니까.’
대학생.
생각만 해도 뿌듯한 단어다.
고등학교를 헌터 학교로 진학하면서 졸업하자마자 헌터가 되었던 윤성에게 대학생이란 지적이고 낭만적인 청년 계급이었다.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노트북을 켜놓고 정치와 시사에 대해 토론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학생들.
어려운 전공 지식에 대해 토론하며 함께 공부하는 풋풋한 지식인들.
헌터로 평생 굴러온 윤성에겐 그들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런데 다윤이가 대학생이라니.
가슴이 벅차다.
대학교 입학 선물로 무엇을 줄까 계속 고민했는데 역시 대학생에겐 노트북이 딱이라는 생각이었다.
아주 비싸고 좋은 걸 사줘야지.
성능은 좋고 디자인은 예쁘고 무게는 가벼운 걸로.
일반인용 전자 상가는 헌터용 전자 상가보다 훨씬 크다.
아무리 헌터 사업이 커졌다고 해도, 헌터의 숫자는 일반인의 숫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일반 전자 상가에 들어서자마자 윤성은 그 거대한 규모에 당황했다.
어느 가게부터 들어서야 할지 몰라서 고민한 끝에, 일단 가장 크고 직원이 많은 가게로 들어가기로 했다.
직원은 총 다섯 명.
윤성이 그 중 하나에게 말을 걸었다.
“대학생용 노트북을 사려고 하는데요.”
“어떤 분이 쓰실 건가요?”
“제 동생이요.”
“여자분이신가요?”
“네.”
“가격대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세요?”
“가격은 상관없어요.”
직원은 가게 안쪽으로 윤성을 안내하여 진열된 노트북들을 보여주었다. 윤성에게 소개해 준 것은 총 6개.
약간씩 차이 나는 가격은 윤성이 느끼기엔 거의 똑같았고, 무게와 성능이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SSD에 RAM에……. 이게 다 뭔 소리야?’
평생 단검 하나 들고 아날로그적인 레이드만 해왔던 윤성은 컴맹이다.
화면 크기와 무게 말고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직원에게 설명을 요구하자,
“SSD는 내장 저장 공간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고 RAM은 정보처리 속도를 얘기하는 것인데요, GB는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정보처리의 용량의 총합에 대해서…….”
더 못 알아듣겠다.
윤성은 고심 끝에 휴대폰을 꺼내어 다시 아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리, 내가 노트북을 하나 사려고 하는데.”
-네, 주인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기 앞에 있는 것 중 뭐가 좋을까?”
-주인님, 집 안의 와이파이를 제가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우리 집에 와이파이가 있어?”
-정확히는 랜선만 설치되어 있고, 와이파이는 윗집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빼앗아올 수 있습니다.
“……써.”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아리의 눈이 번쩍이더니 와이파이에 접속했다.
-빅데이터를 처리 중. 현재 입력된 노트북의 개수는 총 여섯 대. 모델명은 KW-코넥티아 북 에어, KW-파빌리온 13-B216TX, 애플-두리안, 삼성-스타문6, 애플-맥북에어 MJMMT0203입니다. 세계 128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제품은 애플-맥북에어 MJMMT0203이며, 이들 중 가장 가격이 낮은 제품은 KW-파빌리온 13-B216TX로 96만 4720원입니다.
윤성은 제품 가격을 확인했다.
125만 원. 이것들이?
“이거 최저가 96만 원이라는데요.”
윤성이 점원에게 따지자 그는 당황한 듯 표정이 굳었다.
“최, 최저가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웬만한 가게들 다 이 가격에 팝니다.”
뭐 사실 125만 원이나 96만 원이나 윤성에겐 별 차이가 없었다.
그보다 성능 같은 게 더 중요하다.
윤성은 다시 아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내가 뭘 사면 되지?”
-주인님께 가장 적당한 제품은 여기 없습니다. KW-BOOK-3. 가격은 187만 원으로 매우 높습니다만 성능은 가장 월등하며, 주인님의 재정 상황이 충분히 좋은 것으로 판단되므로 위 제품을 추천드립니다.
“KW-BOOK-3 있나요?”
윤성이 점원에게 물었다. 점원의 표정이 굳었다.
“여긴 일반 전자 상가인데…….”
“네?”
“아닙니다. 잠시만요. 재고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는 가게 한쪽을 한참 뒤지더니 해당 제품을 꺼내어주었다.
“그 여자분이 헌터인가 보죠?”
물건을 꺼내면서 점원이 물었다.
“왜요?”
“이거 헌터용 제품이거든요. 크기는 일반 노트북과 동일하지만 마정석을 가공한 배터리와 메모리가 들어가서 엄청나게 무거워요. 8킬로그램짜리죠. 거의 데스크톱 수준이에요.”
“켁.”
윤성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뇨. 됐습니다. 그거 말고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아리와 연결된 휴대폰에 대고 호통을 쳤다.
“이 바보야. 내가 쓸 거 아니고 다윤이 줄 거야.”
-앗. 작은 주인님께서 쓰실 물건이었군요. 그렇다면 KW-LHD1225를 추천드리겠습니다.
“그건 또 뭐야?”
-최근 3일간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며 무게는 700g 내외로 매우 가볍고…….
“알았어. 됐어.”
윤성은 해당 제품을 점원에게 주문했다. 다행히 아리는 아주 정확히 좋은 물건을 추천해 주었다.
KW-LHD1225는 가격은 조금 더 높지만 성능도 무게도 점원이 처음 보여준 여섯 개 제품 중에서 압권이었다.
문제는 출시된 후 나흘 동안 이미 불티나게 팔려서 오전에 매진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성은 추가금을 좀 더 얹어주기로 했고, 점원은 온갖 매장들에 전화를 돌려서 결국 어딘가 꿍쳐있던 재고 하나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윤성의 앞으로 제품이 배달되기 전,
따분한 표정으로 가게를 구경하던 윤성의 눈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애다.
저 얼굴은 분명…….
“김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