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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72화 (72/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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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 072화

아이샤는 늦은 밤에 정신을 차렸다.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그녀의 오른편에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히샴이었다. 혀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

그 아래에선 아리즈가 추운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파리츠도 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다.

“여긴?”

아이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일어났군.”

윤성이 말했다.

그는 초조한 표정으로 수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죠?”

“우리는 여전히 게이트 안에 있어요. 이 아래에 재포니카가 잔뜩 있습니다. 보스는 갔지만.”

윤성이 바다 아래를 가리켰다.

아이샤가 약간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걱정 마요. 당신이 일어났으니 이제 곧 이 싸움을 끝낼 겁니다.”

오징어는 본디 주광성 생물이다. 빛을 보면 우르르 몰려드는 녀석들.

그래서 오징어잡이 배들은 조명을 환하게 켜놓아 오징어들을 유인한다.

라이트는 가장 기본적인 보조 마법.

아이샤 정도의 클래스라면 3kw급의 고출력 램프에 해당하는 강력한 조명을 켤 수 있다. 그것도 한 번에 수백 개를.

재포니카 역시 오징어의 성질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마수다. 아이샤가 라이트를 켜면 그것에 이끌릴 것이다.

윤성이 낸 이 아이디어를 레이드팀은 아이샤가 잠들어 있는 동안 충분히 검토했다.

매우 위험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전략이다. 아이샤와 윤성의 호흡에 모든 게 달려 있었다.

약 30분 후, 모든 준비를 마친 아이샤는 해변에 서 있었다.

“시작할게요.”

“좋아.”

파리츠가 말했다.

그는 히샴과 아리즈와 함께 아이샤의 호위를 맡고 있었다.

재포니카들이 육지 위로 다리를 날릴 경우를 대비해서.

<라이트 발동!>

아이샤가 강렬한 마력을 쏘아 보냈다.

해변에 순식간에 74개의 조명이 켜졌다. 순간 검은색 바닷물 속의 한켠이 훤히 보일 정도.

“최대로 끌어올려!”

파리츠가 말했다.

“알고 있어요!”

아이샤가 눈을 감은 채 양손을 꽉 쥐었다.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74개의 라이트의 조도가 극단으로 치솟으며 해변이 마치 대낮처럼 밝아지기 시작했다.

“예쁘다…….”

뜬금없지만 아리즈는 그런 생각을 했다.

조명이 매우 강렬했다.

수면으로 올라오는 재포니카들이 보일 정도로.

-퓨웅!

갑자기 바닷속에서 섬광 한 줄기가 치솟았다.

“신호다!”

파리츠가 재빨리 아이샤의 팔을 낚아챘다.

“뛰어!”

움직임이 느린 아이샤를 히샴이 거의 들쳐 업다시피 했다.

네 헌터는 그대로 해변을 등지고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바다 아래에서 무시무시한 굉음이 들렸다.

바닷속 깊이 잠수하여 바위틈에 기척을 숨긴 윤성이 스킬을 쓴 것이다.

수평 방향이 아니라 수직 방향.

정확히는 그보다는 약간 사선으로.

물속에서 육지 위를 향해.

<광폭한 물결 발동!>

거대한 면적의 해류가 막강한 위력으로 치솟았다. 마치 갈퀴로 바닷물 한 덩어리를 움켜쥐어 떼어내는 듯한 모양새로 물이 치솟았다.

“끼이이익!”

재포니카들이 기이한 울음을 터뜨렸다.

벌써 그들은 십수 미터 상공으로 날아오르는 중.

“성공이다.”

달리면서 뒤를 돌아본 파리츠가 환하게 웃었다.

“전부 전투 준비!”

히샴과 아리즈가 칼을 빼들었다.

상공에선 수십 톤의 물 폭탄이 비가 되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벌써 헌터들은 옷이 흠뻑 젖었다.

하지만 물속에서도 전투를 벌이지 않았는가.

“이제 인간의 홈그라운드다.”

파리츠가 아이스 스피어를 날렸다.

-키잉!

재포니카 한 마리의 부리를 맞고 튕겨 나왔지만 스피어는 바로 옆에서 떨어지던 재포니카의 머리를 꿰었다.

20. 무슬림에겐 예언자 같은

“캬아아악!”

“키이익.”

지면에 떨어진 17마리의 재포니카들이 끔찍한 모양으로 꿈틀대며 사방에 다리를 휘둘러댔다.

그 크기와 힘 자체가 재해에 가까운 수준인데, 숫자마저 많으니 숲 하나가 순식간에 박살 나버렸다.

하지만 놈들은 육지에서 운동할 능력이 없다. 강력한 다리로 땅 위를 꾸물꾸물 기어서 바다로 이동하려 애쓰지만 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점차 힘이 빠지겠지. 육지에서 재포니카는 숨도 쉬지 못하니까.

파리츠가 연달아 아이스 스피어를 쏘아댔다.

놈들의 힘이 좀 빠지면 아리즈와 히샴도 들어갈 것이다.

“놈들이 바다로 돌아가기 전에 모두 숨을 끊는다!”

파리츠가 소리쳤다.

“마스크맨이 올라오면 순식간에 전멸시킬 수 있을 거다.”

마스크맨. 정말이지 엄청난 헌터다.

이렇게 많은 재포니카들을 한꺼번에 바다에서 쏘아 보낼 정도의 힘. 그 마력!

어쩌면 SS급 헌터일지도 모른다.

‘이 레이드가 끝나면 반드시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 파리츠는 굳게 결심했다.

“근데 마스크맨이 안 올라오는데?”

히샴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리즈는 수면 쪽을 내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안 올라온다.”

“물속에 있으면 위험하실 텐데…….”

아이샤가 걱정을 했다.

같은 시간, 윤성은 물속에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아무래도 좆됐다.”

샌텀 타워에서 떨어지다가 골리앗한테 미사일 맞은 이후로 전투 중에 큰일 났다는 생각은 처음이다.

광폭한 물결로 재포니카들을 모두 쏘아 보낸 것까지는 예상 대로였다.

하지만 물결 한 부분이 일그러졌다.

수십 미터 직경의 동그라미 모양으로 쏘아 보낸 물결이 한 조각 잘려나간 케잌 같은 모양이 되어버린 것.

재포니카라면 물결에 저항할 수 없다. 그 부분을 파괴한 것은 분명 마케로케라스다.

거대한 다리를 휘둘러 광폭한 물결을 찌그러트린 경이로운 괴수가 윤성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큭.”

윤성이 주먹을 꽉 쥐었다.

수면으로 올라갈 길이 차단당했다. 그냥 윤성의 머리 위를 그 거대한 몸뚱이로 아득히 메워버린 것이다.

정말이지 엄청나군. 이 괴물은 규격외다. 기존 헌터 협회가 가지고 있었던 ‘마수’라는 개념의 범위 안에 아예 없다.

“아르동이 귀여워 보일 정도야.”

“크르르르.”

마케로케라스가 지상에 내려앉는 초거대 UFO처럼, 윤성을 향해 천천히 강하하고 있었다.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은 연달아 사격을 했지만,

-핑! 핑! 핑!

마케로케라스의 거대한 몸뚱이에는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라이트닝 발동!>

물속이라서 스스로도 감전될 위험이 있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윤성이 발사한 라이트닝이 사방으로 퍼지며 마케로케라스의 몸을 감전시켰다.

-쿠우우우.

하지만 마케로케라스는 여전히 끄떡없다.

대체 저걸 어떻게 잡아야 하는 거지?

윤성의 머릿속이 혼잡하다.

마케로케라스는 벌써 윤성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쐐애액!

거대한 다리 하나가 윤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윤성은 재빨리 바위틈에서 빠져나왔다.

콰쾅 하는 굉음과 함께 그가 몸을 은신하던 수초가 박살 나버렸다.

부력 때문에 움직임이 둔하다.

윤성은 마케로케라스를 올려다보았다.

그 거대한 다리가 이번엔 여섯 개나 날아드는 중이다.

“×발.”

육지에서도 이건 못 피했겠는데.

-콰앙!

양팔을 교차해서 막았지만 팔뚝이 부러졌다. 왼팔이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큰일 났군, 정말.

일단 피하기라도 해야 할 텐데.

“캬악!”

마케로케라스의 거대한 부리가 벌어지며 윤성의 몸뚱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안 돼!”

양팔로 부리 끝을 붙잡고 막았지만 윤성의 왼팔은 부러져서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크악!”

윤성의 오른팔이 마케로케라스의 부리 안에 들어가 버렸다.

끔찍한 고통이 전해진다.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피가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팔이 떨어지겠어!

“빛의 탄환도 안 통하고! 라이트닝도 안 통하고!”

윤성은 왼손으로 종단 속도의 단검을 꺼내 마케로케라스의 머리를 콱콱 쑤셨지만,

“단검도 안 먹히잖아!”

적의 체력이 너무 좋다. 체급 차이가 너무 심하니 아무리 강한 공격을 해도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쓴 것보다 더 강한 스킬은 광폭한 물결뿐인데.

그것도 저놈의 다리에 뭉개지는 걸 봤잖아?

‘어, 잠깐만.’

그렇다. 다리에 뭉개졌다.

하지만 몸속에서도 그런 방어력이 있을까?

광폭한 물결은 말 그대로 거대한 물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

그저 바닷물만이 아니다. 액체가 대상이라면 가능할 거다. 그리고,

‘내 오른손이 향하는 끝에는 먹물주머니가 있다.’

오른팔은 놈의 입을 통해 수직으로 들어갔으니까.

<광폭한 물결 발동!>

윤성의 오른손에서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회오리쳤다.

-쿠구구구!

“캬아아악!”

마케로케라스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며 윤성의 팔을 놓고 물러났다.

그 거대한 괴수가 몸을 뒤틀면서 휘청거리더니 수면을 향해 솟구치기 시작했다.

“큭.”

윤성은 부상을 입은 오른팔을 움켜쥐고 마케로케라스의 뒤를 쫓았다.

놈들의 먹물은 맹독성.

사람도 위산이 위 안에 있을 땐 괜찮지만 역류하면 식도에 데미지를 주는 법이다. 놈들도 먹물주머니에 먹물을 따로 담아서 관리하는 이유는 그게 내장과 혈관을 흐를 때 치명적인 까닭이겠지.

“죽어버려!”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난사한 섬광이 마케로케라스의 몸통 곳곳에 꽂혔다.

“크아악!”

-부우웅!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마케로케라스의 다리 하나가 날아왔다. 윤성은 재빨리 피하려고 했지만 적의 움직임이 너무 빠르다.

“크악!”

두 팔과 가슴이 꽉 조였다.

“흠!”

윤성은 온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마케로케라스의 힘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수준. 히샴 정도였다면 이미 몸뚱이가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어떡하지?

윤성은 묶인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케로케라스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경황이 없는 상태라 윤성의 숨을 끊는다거나 하는 생각을 못 한다는 것.

정신없이 주위를 파괴하고, 되는대로 움켜쥔 것 중 하나가 윤성이었을 뿐이다. 다른 다리들이 윤성을 향해 날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그 증거.

-툭.

윤성의 두 발 끝이 암초에 닿았다.

“앗!”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광폭한 물결을 써서 마케로케라스를 지상으로 날려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랜더의 전투화 발동!>

이건 어떨까?

랜더의 전투화가 떠받칠 수 있는 무게 같은 개념은 따로 없다. 아무런 조건 없이 레벨만큼의 높이를 정직하게 치솟는 S급 아이템.

섬 바로 옆인 이곳은 수면까지 수직으로 200여 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윤성의 현재 레벨로는 충분한 높이.

-콰아아앙!

윤성의 몸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치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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