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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69화 (69/260)

# 69

레벨업 속도는 9.8m/s^2 069화

다음 날 아침 8시.

테리문과 약속한 장소에서 윤성은 테리문의 차를 탔다.

이대로 중동을 돌면 된다. 행정적인 문제가 있으면 테리문이 처리해줄 테고. 테러리스트를 만나면 박살 내면 되고, 마수를 만나면 레이드하면 된다.

“가볼까요?”

“근데 저한테 보수는 얼마나 주실 겁니까?”

“얼마나 원하세요?”

“음. 하루 일당으로 5만 원? 선생님은 제 은인이시니까 많이 받을 수는 없죠.”

테리문은 한국에서 건설업 노동자였다. 뼈 빠지게 일을 하면 한 달 임금은 210만 원.

“하루에 1,000만 원을 드리죠.”

“네에?”

이미 알리야 무리를 쓸어버리고 얻은 마정석만 해도 수억이다. 테리문은 가족들 모은 지 얼마 안 되어 이래저래 돈 필요한 때도 많을 테니까 좀 도와주는 셈 쳤다.

게다가 리비아 같은 내전 국가를 돌아다닌다는 점에서 생명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윤성의 옆자리보다 안전한 곳이 중동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러나 하루 천 만원이라는 금액은 윤성에겐 푼돈이었으나 테리문에겐 엄청난 벌이였다.

테리문은 시종일관 싱글벙글하며 윤성을 태우고 가자는 대로 쏘다녔다.

일주일 동안 7천만 원. 약 3년치 연봉에 이르는 돈을 준다는데 윤성과 모르는 사이라도 그 일을 했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변방의 A급 던전의 타입은 변형 꽃게.

집게발과 박치기가 위협적인 마수였다.

하지만 윤성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 걸린 시간은 14분 남짓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뛰어다니며 눈에 띄는 대로 족족 학살했다.

그 14분 중에서도 10분은 마정석을 수집하거나 집게발을 마수 사체에서 뜯어내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보스를 잡고는 A급 마정석 하나를 얻었다.

‘벌써 일주일치 테리문의 임금은 다 지불했군.’

이후 윤성은 베니수에프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B급 던전 셋을 더 클리어했다.

레벨은 빠르게 올랐다.

일일 랜딩도 빼먹지 않았다.

중간중간 높은 곳을 찾아가 점프를 하고 체중을 보정했다. 계획대로 윤성은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

미국 CIA의 헌터 지부.

미국의 최고 헌터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특히 SS급 넷이 한자리에 앉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샌드맨, 제다이, 슬렌더맨, 테쿰세.

모두 세계 정상급의 헌터들이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S급 헌터 스티븐의 보고 때문.

그는 작전명 <이즈라일>의 결과에 대해 프레젠테이션하고 있었다.

리비아 국경지에서 전투를 벌일 때 그의 전투복에는 캠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녹화된 광경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500톤의 토사.

헌터들은 침음을 흘리며 일제히 한 사람을 힐끔거렸다.

“이 때문에 나를 부른 거군.”

SS급 헌터 샌드맨이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각에선 저 헌터의 정체가 샌드맨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샌드맨?”

“불싯.”

샌드맨이 비웃었다.

“너희가 저 작전을 하고 있을 때 난 하와이 해변에서 옆구리에 핫한 빗취들을 끼고 마티니를 마시고 있었지. S급 던전을 소탕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아랍계 찌질이 하나 잡는데 내가 갈 것 같아?”

“샌드맨은 저런 스킬 쓰실 수 있습니까?”

S급 헌터 앤더슨이 물었다.

“당연하지. 저거 다섯 배도 다룰 수 있다. 지금 보여줄까?”

샌드맨의 양손에서 모래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불과 몇 초 사이에 그가 앉은 의자 다리가 잠길 정도로 토사가 쌓였다.

헌터들이 당황하자,

“샌드맨, 그만둬!”

SS급 헌터 테쿰세가 말했다.

제다이는 주머니칼을 꺼내어 위협적으로 만지작거렸고, 슬렌더맨의 정장 셔츠 안에서는 촉수 두 개가 빠져나와 있었다.

“하하하. 장난 조금 친 것뿐인데 다들 겁이 나시나? 전투 준비를 하는군?”

샌드맨이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그는 스킬을 거두었다.

스티븐을 포함한 S급 헌터들은 약간 마음을 놓았다.

잔인한 성정과 분노조절장애. 매일같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싸움질을 벌이는 SS급 샌드맨. 그가 끼면 항상 회의가 산으로 가지만 오늘은 그를 제어할 이들이 많다. 다른 SS급이 세 명이나 있으니까.

“마스크맨은 현재 아랍의 상급 던전들을 혼자서 털고 다닌다고 합니다. 매우 빠른 속도로 말이죠.”

앤더슨이 말했다.

“저자의 클래스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되십니까?”

그의 질문에 SS급 네 명이 차례로 감상을 얘기했다.

“S급.”

“S급 최상위권.”

“SS급.”

“S급.”

앤더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반적으로 다들 S급이라고 판정하시는군요. 솔직히 저는 마스크맨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전혀 없습니다만.”

“S급은 같은 클래스라도 수준 차이가 천차만별이잖아. 하지만 SS에는 범접하기 힘든 레벨차가 있다. 쥐와 고양이는 완전히 레벨이 다르지만 사자 앞에선 구별 짓는 게 무의미한 것처럼.”

제다이가 말했다. 테쿰세가 맞장구를 쳤다.

“S급 중에서도 저만큼 강한 녀석들이 가끔씩 있어. 당장 여기 있는 S급 중 메이가 그렇지. 이상한 건 샌드맨이야. 왜 저놈이 SS급이라 생각하는 거지?”

테쿰세가 묻자,

“네놈들도 SS인데 안 될 이유가 있냐.”

샌드맨이 빈정거렸다.

테쿰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회의를 할 거면 우리만 불렀어야 했다. 이 망나니 모래 요정은 협조적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헌터 의회의 의장이기도 한 앤더슨은 동의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샌드맨을 부른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이번에 한국에서 SS급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래?”

제다이가 흥미를 보였다.

“북한과 전쟁이라도 하나? 내가 가지.”

“아닙니다. S급 던전을 토벌하려고 한다는군요.”

“설마 엘리지아 던전을?”

테쿰세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분단국가라는 사실밖에 모르고, 일산이라는 지역명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엘리지아 던전은 알고 있다. 워낙에 유명한, 헌터계의 전설적인 던전 범람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SS급 헌터를 요청했습니다. 세인트 길드 대표 성인 킴이라는 남자가 샌드맨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샌드맨께서 가주시면 좋겠군요.”

“왓더뻑!”

샌드맨이 욕설을 퍼부었다.

“왜 하필 나야?”

“마스크맨의 국적이 한국입니다. 한국에 가면 마스크맨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나랑 무슨 뻐킹한 상관이야?”

“우리 의회는 지금 마스크맨을 미국으로 데려오는 걸 고려하는 중입니다. 마스크맨이 한국에서 굳이 정체를 감추고 활동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일하는 데 어떤 제약이 있다는 뜻이겠죠. 우리가 모시겠다고 하면 따라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마스크맨은 모래를 다루는 스킬을 쓰는 모양인데 당연히 샌드맨이 가장 잘 알 테니까요. 게다가 여기 계신 SS급 중에서 마스크맨을 가장 고평가한 분 아니십니까?”

“뻑!”

샌드맨이 회의 테이블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

주먹과 부딪친 부분이 모래가 되어 와르르 흘러내렸다.

“이 일을 잘 해결해주시면 한동안은 의회에서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앤더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마스크맨이 이집트와 수단, 리비아 등지에서 상급 던전들을 쓸어버리고 있다는 소문은 아랍 전체에 빠르게 퍼졌다. 또한 그가 리비아 국경에서 이슬람 과격 무장 세력에게 납치된 시민들과 헌터들을 구했다는 소문도.

이집트 경찰이 한번 윤성을 붙잡고 “안에서 얻은 마정석을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고 요구한 적 있다.

그러나 윤성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던전을 제거할 뿐, 마정석엔 관심 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경찰들이 그를 몸수색했을 때는 마정석이나 마수의 사체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던전을 막 클리어한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윤성은 “외국의 헌터들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건 막아버리고, 자국의 헌터들은 던전 클리어에 관심 없고. 이렇게 위험하게 던전을 방치해 두기만 하면 힘없는 국민들만 피해 보는 것 아니냐”고 카메라 앞에서 행정당국을 향해 호통쳤다.

그의 일갈은 매스컴을 타고 빠르게 번지며 국가적인 공감대를 얻었다.

아무런 수익 없이, 오직 봉사 정신만으로 혼자서 레이드를 하는 정체불명의 최상급 헌터를 처리하는 법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윤성의 던전 클리어는 중동의 일반 시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파죽지세로 진행되었다.

6일째가 되던 날, 윤성은 알제리를 빼고는 당초 계획했던 던전들을 모두 돌았다.

지중해 인근과 수단 국경 근처에서 B급 이상의 던전이 모두 사라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알제리로 이동하고 싶었지만 관두었다. 지금 알제리로 가버리면 이집트의 마사 알람 도시로 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미팅에 끼지 못한다.

따라서 윤성은 7일째에 레이드를 하지 않았다.

테리문은 오전에 마사 알람까지 윤성을 태워주었고, 그게 끝이었다.

“그동안 수고했습니다. 이건 오늘 치 임금이에요.”

윤성이 천만 원을 입금하며 말했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이미 한참 전부터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 윤성은 테리문을 보낸 후, 문 리조트 마사 호텔로 들어섰다.

-찰칵.

-차칵차칵.

호텔 문을 열자마자 사방에서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기자들이 앞 다투어 달려와서 윤성에게 아랍어로 질문을 들이부었다.

엄청난 열기.

유명세가 실감된다. 현재의 윤성은 그야말로 중동의 영웅적인 헌터로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이집트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레이드에 참여하실 겁니까?”

“요즘 던전들을 모두 클리어하고 다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게다가 정보가 꽤 빠른 몇몇 소식지들은 마스크맨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어디선가 입수했는지, 한국어가 능숙한 기자들을 파견했다. 다음은 모두 한국어로 된 질문들이었다.

“마스크맨!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

“오늘 있을 재포니카 던전 레이드에 참여하시는 겁니까?”

“한국인이라고 들었는데 아랍에서 이런 일을 해주는 이유가 뭡니까?”

“S클래스이십니까? 정체는 왜 숨기는 겁니까?”

“노코멘트.”

윤성은 손을 내저으며 기자들 사이를 헤쳐 나왔다.

상급 헌터 몇 명이 로비의 한쪽 복도를 막고 있었다.

“컴 인.”

그들이 윤성에게 안쪽을 가리켰다.

201호 스위트 룸.

심채영에게 전해 들은 미팅 장소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인기척이 싹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전까지는 분명 말소리가 들렸는데.

역시 S급 헌터들이라 그런지 꽤 영민하다.

“마스크맨입니다.”

윤성이 말하자 방문이 열렸다.

미팅에 모인 헌터들은 총 네 명, 이라크의 S급 헌터 아리즈, 히샴, 그리고 수단에서 온 S급 헌터 아이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 중 하나이자, 알리야 대신 레이드팀의 리더가 된 S급 헌터 파리츠였다.

그들은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먼저 파리츠가 질문했다.

“듣기로는 알리야 대타로 들어왔다는데, 당신의 전투력을 입증할 수 있습니까?”

“이 녀석 최근 A급 던전을 하루에 한 개 이상 혼자서 클리어했어. 그 정도 실력이면 적어도 S급은 되겠지.”

히샴이 말했다.

“좋습니다. 포지션은 뭐죠?”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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