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레벨업 속도는 9.8m/s^2 068화
손목시계의 레벨이 3이 되었다.
과연 어떤 성능이 붙었을까?
<랜더의 손목시계(Lv.3) : (Lv.1)버프가 기본 시간 ‘1일’을 가집니다. (Lv.2)모든 랜딩 버프가 레벨에 비례하는 값의 버프를 기본값으로 가집니다. 이는 개인 최고 기록 범위 내에서 적용됩니다. (Lv.3)가장 최근 랜딩한 버프를 1회 반복할 수 있습니다.>
대박이다.
가장 최근 랜딩한 버프를 1회 반복할 수 있다고?
그럼 37일짜리 4,300점의 버프를 다 써도 한 번 더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잖아?
‘아, 하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36일간 영구적인 능력치 상승을 못한다는 뜻이구나.’
버프를 가진 상태에서 더 약한 랜딩을 해도 영구적 능력치 상승은 적용된다. 이건 일일 랜딩을 하는 과정에서 몇 번 확인했던 사실이다.
하지만 최종 랜딩한 버프가 바뀐다. 그럼 랜더의 손목시계로 불러올 수 있는 버프도 바뀌게 될 테지.
이건 좀 아쉽군.
‘그냥 매일 일일 랜딩을 꾸준히 하자.’
앞으로 남은 휴가는 약 1주일. 그 기간 동안 매일 일일 랜딩을 하면 모든 능력치를 약 70점 정도 영구적으로 올릴 수 있다.
지금은 기본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니까.
강력한 버프를 가지고 던전들을 빠르게 도는 것 뿐 아니라 일일 랜딩도 챙겨 가야지.
‘임무가 더 있을까?’
윤성은 임무창을 열어서 랜더의 손목시계의 레벨을 더 높일 수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랜딩 임무 : 5,000미터에서 랜딩>
높이 점수에 대한 임무뿐이다.
처음에 알약과 피자를 줬던 임무다. 그 이후 주욱, 그리 대단치 않은 마정석이나 하나씩 나왔기에 이젠 별로 감동스럽지 않았다.
-철컥
방문을 열고 나온 윤성은 수척한 몰골의 차태식을 발견했다.
윤성은 빙그레 웃으며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댔다.
어디 가서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뜻.
차태식은 약삭빠른 녀석이니 잘 알아듣겠지.
황동수는 곧바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일로 윤성은 경찰의 취조를 받게 되었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황동수가 먼저 윤성 씨를 공격했어요!”
심채영이 앞장서 진술했고 매춘 여성들이 동일한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윤성을 두둔했다.
심지어 황동수와 절친한 사이로 보였던 차태식조차,
“황동수 선배님이 먼저 윤성 씨를 공격했습니다.”
라고 수척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문제는 D급 헌터의 신분으로 입국한 윤성이 어떻게 A급 헌터라는 황동수를 보내 버릴 수 있었는가인데.
“저도 모르죠. 본국에 돌아가면 재심사를 받아보겠습니다.”
윤성의 대답에 이집트의 경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재각성이라는 게 매우 드문 일이지만 남의 나라 헌터의 재각성이야 뭐 알 바인가.
일단 황동수가 먼저 공격한 것은 사실인 모양이고, 싸움이 일어난 이유도 듣자하니 윤성이란 남자에게 잘못이 없었다.
관련 내용을 한국 경찰서와 헌터 협회로 전달한 이집트 형사들은 그것을 끝으로 수사를 종결해 버렸다.
경찰서에서 훈방된 윤성은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시장 복판으로 들어갔다. 테스트해볼 게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4,000미터에서 랜딩하면서 새로 얻게 된 ‘영구적 스킬’ 때문이다.
<낙하 거리 임계 돌파. 영구적 스킬 획득 : 현재 레벨이 낮아 이 낙하 구간에서는 두 번째 스킬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스킬 : 사구를 ‘통역’으로 바꾸시겠습니까? Y/N>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골 깨지도록 고민했다.
그동안 랜딩하면서 스킬을 획득했던 경험들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낙하 구간마다 획득 가능한 스킬의 단계가 제한되어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마계의 침식형 던전이 범람해서 아르동과 싸울 당시, 탑에서 랜딩했을 때는 영구적 스킬이 획득되지 않았다.
다만 <현재 레벨에서는 이 낙하구간의 스킬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떴을 뿐.
무려 1,900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랜딩했음에도, 빛의 탄환이나 라이트닝을 대체할 스킬이 제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서 300미터 아래는 빛의 탄환, 아이언 피스트 따위의 스킬들이 제시되고, 300미터 이상, 1000미터 이하에서는 라이트닝 같은 스킬이 나타나는 거라면?
그럼 탑에서 랜딩했을 당시에 너무 레벨이 낮아서 스킬을 획득할 수 없었다는 게 이해가 된다.
그때보다 훨씬 성장한 지금, 세 번째 스킬로 ‘사구’ 같은 어마어마한 게 나왔으니까.
그런데 그 사구를 대체하는 통역 스킬이다.
이건 아마 압둘라가 걸어준 통역 스킬과 차원이 다를 것이다.
압둘라의 통역은 아랍어 하나만 통역이 가능해서, 미군들의 영어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이 통역은 샌드맨의 고유스킬과 같은 클래스라는 점에서, 어쩌면 바토리가 사용하던 것과 같은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마계의 언어까지 번역하는 통역 스킬.
‘이걸 포기해도 되는 걸까?’
사구는 정말 강력한 스킬이지만 사실 윤성에게는 이미 막강한 전투용 스킬이 둘이나 있다.
빛의 탄환과 라이트닝. 그것만으로도 윤성은 이미 A급 가루다 던전과 아르동의 마계를 클리어해 버린 이력이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재포니카 던전이다.
중동에서 가장 영양가가 높은 S급 던전. 반드시 클리어해야 한다.
하지만 그 던전은 수중 타입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사구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대신 그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중동의 S급 헌터들과 협력해야 한다면 통역 스킬은 필수가 아닐까?
현장에서 한 번 신호 전달에 미스가 나면 누군가의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노릇이다.
S급 던전 안에 통역사를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바토리가 마법책을 가져오기로 했지만 솔직히 확신할 만큼의 믿음이 가진 않는다. 통역은 지금 당장 필요하고.
‘결정했다. 사구는 엄청 아깝지만.’
윤성은 메시지창의 Y 버튼을 눌러서 통역 스킬을 습득했다.
<통역 발동!>
스킬을 사용하자 사방에서 아랍어들이 귀에 익숙하게 쏟아졌다.
“파피루스! 카이로 파피루스 팝니다!”
“500 파운드. 택시!”
“아줌마! 상품 그렇게 만지면 안 된다고!”
“식사하고 가세요!”
전부 이해된다.
“좋았어.”
윤성은 먼저 심채영에게 위치를 물어 마닉을 찾아갔다. 방독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단 테리문에게 명함을 받은 것은 강윤성이 아니라 마스크맨이니까.
마닉은 항공사 근처의 허름한 여관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쉬는 중이다. 아버지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한국인들이 예약한 마일하이클럽에 들어갔다가 곤욕을 치를 뻔했다.
심채영, 그리고 강윤성이란 남자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정말 위험했을 거다.
“마닉.”
여관 주인이 마닉을 불렀다.
“네?”
“손님이 왔어.”
“손님이요? 저한테요?”
마닉은 혹시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미약한 희망을 가지고 나갔지만,
“안녕.”
입구에 서 있는 것은 방독마스크를 쓴 남자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아랍어가 유창한 걸 보니 아랍 사람인 모양. 한국인이었다면 아버지의 행방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약간 실망한 마닉에게,
“당신 아버지가 혹시 이 사람인가요?”
윤성이 테리문의 명함을 내밀었다.
마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명함에는 사진이 박혀 있었고 그건 분명 아버지였다.
“아버지 맞아요?”
윤성의 물음에 마닉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명함에는 주소가 적혀 있지만 윤성은 그곳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 대신 전화번호는 있다.
윤성은 테리문에게 전화를 걸었다.
“marhba?”
여보세요? 라는 뜻이다.
윤성은 자연스러운 아랍어로 테리문과 대화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테리문 씨. 접니다. 마스크맨.”
“아! 반갑습니다. 전화 주셨군요.”
“혹시 따님 이름이 마닉입니까?”
“어떻게 아셨죠?”
“지금 저랑 같이 있습니다. 데리러 오시죠.”
윤성은 현재 위치를 간략히 설명했다.
테리문이 원래 살던 곳은 카이로가 아니었지만 그는 위치를 금방 이해했다.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따님이랑 통화하실래요?”
“네! 부탁드립니다.”
윤성이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마닉은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였다. 전화를 귀에 대고 테리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녀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고생 많이 한 모양이지. 안쓰럽군.’
두 사람의 대화는 약간 길어졌지만 윤성은 끈기 있게 기다렸다. 어차피 버프는 37일이나 되니까. 천천히 해도 되겠지.
전화를 끊을 때쯤 마닉은 약간 진정되었다.
그녀는 윤성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언어 장벽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워낙 우물쭈물하며 말을 먹어버려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눈빛과 행동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전해졌다.
진심 어린 감사.
윤성은 흐뭇한 기분이 되었다.
이윽고 30분 정도 시간이 흐르자,
“마스크맨! ……마닉!”
테리문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옆에는 그의 아내도 함께 있었다.
테리문의 아내는 마닉을 보자마자 오열하듯 울음을 터뜨렸고, 마닉도 함께 펑펑 울며 서로를 와락 껴안았다.
감동적인 가족 상봉이다.
“정말.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이걸 어떻게 사례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테리문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음. 일주일 정도 저랑 같이 좀 다닐 수 있습니까?”
“함께요?”
“네. 보수는 충분히 많이 드릴게요. 이 일대의 상급 던전들을 전부 클리어할 겁니다. 택시를 타고 다니기엔 기사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요. 길을 잘 아는 사람도 필요하고.”
“좋습니다! 제가 운전해드리지요!”
테리문이 유쾌하게 답했다.
윤성은 테리문과 당장 내일부터 함께 작업을 하기로 약속하고 만날 시간과 장소를 잡았다.
로터스 호텔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광장의 택시 정류장.
테리문과 헤어진 윤성을 외진 곳에 들어가 마스크를 벗어 인벤토리에 넣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윤성 씨?”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심채영이었다.
“마침 지금 로터스 호텔로 윤성 씨를 보러 가는 길이었어요.”
마침 잘 만났다는 듯, 그녀는 윤성에게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전달했다.
“헌터들하고 접촉했어요. S급 게이트의 레이드는 6일 후예요. 마사 알람 도시의 문 리조트 마사 호텔에서 오전 11시에 미팅이 있어요. 여기, 현재 레이드팀의 리더인 파리츠의 연락처예요.”
“고마워요. 혹시 마스크맨에 대해서 얘기했나요?”
“한국인이라고만 했어요. 굉장히 강력한 S급 헌터인데 던전 레이드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고 전해줬어요.”
“뭐라던가요?”
“마침 알리야가 최근에 미군에게 사살당하는 바람에 한 자리가 비게 되었다고, 오면 끼워주겠대요.”
미군이 아니라 윤성이 죽여 버린 것이었다. 레이드팀의 빈자리를 직접 만들어 들어간 느낌.
기분 묘하군. 아무튼 잘 되었다. 던전 레이드에 낄 수 있겠군.
“좋아요. 고마워요.”
심채영과 헤어진 후, 윤성은 호텔의 숙소로 돌아왔다.
인터넷을 켜고 근처의 상급 던전들을 물색해 보았다.
이집트 한 군데만이 아니다. 리비아, 수단. 알제리까지는 너무 멀어서 시간이 안 될 것 같지만.
이집트를 중심으로 이 일대의 가볼만한 지역들은 모조리 돌면서 던전들을 싹쓸이할 생각이다.
내전과 IS 테러의 위협 때문에 치안이 엉망인 나라들. 당연히 던전들도 제대로 관리가 안 되고 있다.
그 수많은 상급 던전들이 방치된 채로 일종의 시한폭탄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던전에서 나오는 마정석과 마수의 사체들은 상당히 값지기 때문에 외국의 길드들도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였다.
무상으로 해줄 테니 던전 내에서 얻은 것만 가져가게 해달라고.
하지만 미국과 교류 중인 강대국의 최상급 헌터들이 중동 던전을 레이드하는 게 허락될 리가 없다.
중동의 최상급 헌터들은 대개 상급 던전들에 관심이 없는 편이고.
‘깨끗하게 청소해 주지.’
일단 이집트부터 시작이다. E급, D급, C급 던전들은 구태여 직접 소탕할 필요가 없다. 윤성에겐 영양가가 없을뿐더러 그 정도는 해당 국가의 하급 헌터들끼리도 레이드할 수 있으니까.
타깃은 B급 이상.
카이로에는 상급 던전이 없다. 하지만 이집트 북부 도시들, 알렉산드리아 변방에 A급이 하나 있군. 일단 저것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