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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65화 (65/260)

# 65

레벨업 속도는 9.8m/s^2 065화

태양.

거대한 빛의 구체가 윤성의 등 뒤에 떠올랐다. 그 안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독수리의 형상.

“신의 형상을…….”

당황한 알리야의 다리가 풀렸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이즈라일보다 상위의 신이다. 이집트 고대 신화의 최고신. 소환 계열 스킬 중에 이렇게 막강한 것은 처음 보았다.

알라 자체를 소환하지 않는 이상 이것과 상대할 방법이 없다.

“라.”

윤성이 태양신을 부르며 알리야를 가리켰다.

“죽여.”

-구우우!

독수리의 부리 끝에서 강렬한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뜨거울 정도.

그 조도는 그야말로 작은 태양을 가져다 놓은 느낌이다.

‘내가 쓴 거지만 진짜 스케일 미쳤네.’

그동안 썼던 빛의 탄환이 레이저 포인터면 이건 감마나이프다. 빛과 관련된 스킬 중에서 이것보다 더 위력적인 게 있을까?

빛의 탄환으로 저 파워를 내려면 지능이 1만은 넘어야 할 걸.

-콰아앙!

발사된 빛이 알리야에게 적중했다. 마치 섬광탄 수십발을 터뜨린 것처럼 일대 전역이 강력한 빛으로 번쩍였다.

헌터, 마수 구별 없이 모든 이들이 눈을 감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윤성 본인조차.

빛의 포화는 약 5초간 지속되었고 그게 끝났을 때,

“사라졌어…….”

스티븐이 풀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알리야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끔찍한 탄내와 함께 모래가 융해되어 생긴 새빨간 액체만이 남았다. 펄펄 끓는 그 위로 뜨거운 열기가 훅훅 끼쳤다.

“자. 계속 할 테냐?”

윤성이 이슬람 헌터들을 향해 말했다.

그들은 우물쭈물하더니 무기를 버렸다. 상대가 너무 압도적이니 어떻게 저항할 엄두조차 안 난다.

“스티븐, 저놈들 체포하세요.”

윤성이 헌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스티븐은 아랍어를 모르지만 대충 눈치로 알아들었다.

윤성은 마수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구에 쓸려나가고 남은 마수의 잔당들이 아직 꽤 남았다. 그렇게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마수들이 윤성에게 겁을 먹었다.

구울들과 앨피스 무리는 얼어붙은 것처럼 자리에 서서는 윤성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너희는 체포 안 해.”

윤성이 양 손을 권총 모양으로 만들었다.

“마정석은 다 내 겁니다. 스티븐.”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탄환 한 발 한 발의 파괴력이 이전과는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다. 전에도 몇 발 정도 쏘면 구울은 죽일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한 발로도 충분하다.

탄환의 직경이 달라졌다.

전에는 빛의 탄환이 어깨에 맞으면 구울은 어깨를 붙잡고 덤벼들었는데, 지금 빛의 탄환은 어깨에 맞추면 어깨가 사라져버려서 팔이 바닥에 뚝 떨어진다.

소총보다는 샷건에 더 가까워졌다.

거대한 덩치와 탄탄한 장갑을 가진 앨피스도 사정은 똑같다.

머리에 구멍이 숭숭 뚫린 마수들이 빠른 속도로 쓰러지고 있었다.

불과 2분.

윤성이 구울 102기와 앨피르 16기를 처치하는 데 걸린 시간.

그 경이로운 전투력에 모두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와, 왓 유어 네임……?”

스티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스크맨.”

윤성은 마수들의 사체를 쏘다니며 마정석을 모으기 시작했다.

앨피르의 상아나 가죽, 구울의 무기 등은 그 자체로 값비싸게 거래될 수 있는 물건들이지만 이 정도는 미군 팀한테 주지 뭐. 상아 하나하나 뽑는 것도 귀찮으니.

마정석만 모아도 수십 개다.

그것들을 모두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윤성이 뿌듯한 표정으로 스티븐에게 물었다.

“혹시 이집트까지 데려다줄 수 있습니까? 카이로 도시로요.”

“아, 알겠습니다.”

‘카이로’를 알아들은 스티븐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성은 대화를 마친 후 미군의 군용 트럭에 탔다.

빈둥거리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마스크맨 님.”

테리문이 나타났다.

“감사를 표하러 왔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제 가족들을 찾았습니다.”

“아니 뭐. 괜찮아요. 가족 분들 다 찾으셨어요?”

테리문이 고개를 숙였다.

“딸 아이 하나만 빼고요. 좀 일찍 팔렸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집트로 돌아가서 찾아볼 거예요.”

테리문은 꼬깃꼬깃 구겨진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제가 가진 것은 전부 빼앗겨서 찾지 못했습니다. 이건 중동에서 혹시 제가 객사하면 제 신원을 확인해달라고 가지고 다니던 것이죠.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혹시 중동에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도움이요?”

“뭐, 잡일이라든지. 카이로 시내 안내라든지요.”

테리문이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17. 마일하이클럽

그로부터 약 한나절 후, 윤성은 드디어 원래 목적지였던 이집트 카이로의 로터스 호텔에 도착했다. 늦은 밤. 다행히 호텔 체크인은 가능했다.

‘진짜 빡세군.’

여유 있게 관광이나 좀 하다가 3일 동안 비행기를 타려고 했는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당장 내일 아침에 비행기 타러 가야 할 판이다.

물론 그 안에서 실컷 자면 되지만.

윤성은 숙소에 들어와 샤워를 했다.

머리를 말리면서 보니 방 안의 소형 냉장고 안에 서비스로 음료 캔이 들어 있었다.

‘설마 또 약 들어 있는 건 아니겠지?’

윤성은 캔 냄새를 킁킁 맡고는 한 모금 마셔보았다.

괜찮군.

하긴 약을 탔더라도 지금은 안 통할 가능성이 높다.

버프 때문에 능력치 전반이 4천점에 육박해버렸는데 뭘 어쩌겠어.

다만 감각 능력이 너무 높으니까 안 좋은 점도 있다.

‘다 들리잖아…….’

위층, 아래층, 옆방에서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윤성은 베개로 귀를 틀어막고 누웠다.

소음 때문에 잠이 안 올까봐 걱정했는데 너무 몸이 피곤했던 탓인지 순식간에 곯아떨어졌다.

***

다음 날.

마일하이클럽 이용객은 항공사의 특별 VIP로 취급되어 고급스러운 대기실에서 비행편의 준비를 기다렸다.

윤성은 아침 일찍 대기실에 들어가서 마련된 아침 식사를 했다.

예쁘게 꾸민 스튜어디스들이 차례로 음식을 서빙해 주었다.

“불편하신 점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스튜어디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한국말을 하시네요?”

마침 반갑다는 표정으로 윤성이 묻자,

“한국인입니다.”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집트에 와서 꽤 오래 살았다는 그녀의 한국 이름은 심채영. 이집트 항공사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스튜어디스였다.

“저랑 같이 타는 다른 손님들은 누가 있나요?”

“지금 시간이 약간 지났는데, 이제 곧 오실 거예요. 두 분 다 헌터세요.”

“그래요?”

심채영의 말대로 잠깐 기다리자 윤성과 함께 비행기를 예약한 헌터 둘이 나타났다.

둘 다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둘 다 아는 얼굴이다.

“차태식? 황동수…… 헌터님……?”

윤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둘도 마찬가지다.

황동수하고는 협회에서 여러 번 충돌해서 말할 것도 없고, 차태식 역시 동창회 때 한 번 마찰을 빚었던 사이라 껄끄럽다.

이것들하고 3일이나 같이 비행을 해야 한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발 차라리 알리야랑 싸우는 게 속 편하겠네.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황동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협회에 휴가를 냈습니다. 여행 왔어요.”

“여행 와서 마일하이클럽을? 상당히 비쌌을 텐데.”

“돈은 꽤 있거든요. 제가 골동품 재테크에 재주가 좀 있어서.”

사실은 골동품 재테크로 번 돈이 아니지만.

차태식이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황동수 선배님이 예약한 비행편에 손님 한 명이 더 끼었다길래 누군가 했는데, 그게 윤성이 너였냐?”

“그래.”

“너 이거 차희는 아는 거냐?”

“차희가 왜?”

“너랑 사귀는 사이 아니었냐? 근데 마일하이클럽 같은 것 해도 되냐고. 깨끗한 척 착실한 척 하더니 너도 똑같구만.”

“마일하이클럽이 왜?”

“모르고 온 거냐? 이건 이집트 아가씨들하고 파티를 벌이는 비행 서비스야.”

윤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또박또박 못 박아 말했다.

“난 이 비행기를 3일 동안 타고 싶을 뿐이고, 식사 외엔 여기서 제공하는 어떤 서비스도 안 받을 거야.”

“그럼 그 비싼 돈 주고 이걸 왜 타는 거야?”

차태식이 비웃었다.

“어이. 그만들 하게.”

황동수가 차태식의 말을 멈추게 하고는 윤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무튼 3일간 잘 지내보자고.”

윤성은 황동수와 악수를 하면서 말했다.

“가능하면 마주치지 맙시다. 저는 제 객실에 틀어박혀서 가급적 나오지 않을 생각이니.”

“좋을 대로 하게.”

약간 걱정된다.

황동수는 A급 헌터. 윤성은 버프를 떼면 아직 B급 수준이다. 전투 헬리콥터에서 떨어져서 얻은 4천 점에 이르는 버프는 이제 불과 다섯 시간 정도 남았을 뿐이다.

문제는 황동수가 이전에도 한 번 윤성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

버프가 풀린 상태로 3일이나 함께 비행기에 있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지금 와서 안 탈 수도 없는 것이고 비행편을 바꿔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언제 비행기에 타죠?”

윤성이 심채영에게 물었다.

“곧 타실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제 거의 다 준비되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사실 윤성이 예약한 비행기는 이탈리아 SS급 헌터 안토니오가 자신의 부하 직원 둘과 함께 예약하려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직원 중 한 명이 예약을 늦게 해서 정원이 두 명만 차 있는 상황에서 윤성이 들어가 버렸다.

안토니오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집트 항공사에 불같이 화를 냈고, 항공사 측에서는 동 시간대의 다른 비행편으로 안토니오 팀을 옮겨주었다.

이후 황동수와 차태식이 마일하이클럽을 예약하려고 했고, 한국어를 잘하는 심채영이 윤성의 비행편에 오른다는 점 때문에, 항공사 측에서는 황동수와 차태식에게 윤성의 비행기를 권유했던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심채영은 세 사람과 비행을 무사히 잘 마치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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