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레벨업 속도는 9.8m/s^2 061화
-싸아악!
우마르의 가슴에 길고 날카로운 상처가 새겨졌다. 구울의 발톱이 그의 피부를 찢어버린 것이다.
붉은 피가 샘솟았지만,
“흥!”
우마르는 옷으로 상처의 피를 한 번 찍어내고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콰앙!
구울의 얼굴을 향해 무지막지한 펀치를 날렸다.
<네이팜 펀치.>
우마르의 고유 스킬 중 하나다. 그것 때문에 한동안 그의 사진이 일본에서 불주먹이라는 이명으로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좀 다르다.
우마르의 펀치는 주먹 자체가 불꽃이 되는 게 아니라,
-화아악!
타격점에서 불이 피어나기 때문.
“끄아악!”
구울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약간 여유가 생긴 우마르가 몸과 얼굴에 난 상처들을 살펴보았다. 눈 위가 찢어져서 흘러내린 피가 한쪽 눈의 시야를 자꾸 차단했다.
눈을 몇 번 끔뻑인 우마르.
사실 생각보다 많은 마력을 소모해서 좀 걱정이다. 알리야와 싸울 때까지 체력을 보존해두어야 했는데. 그래서 가능하면 큰 스킬은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몇 번의 난타를 주고받아 보니 네이팜 펀치 정도를 쓰지 않으면 이놈을 제압하는 게 불가능했다.
문제는,
-첨벙!
“젠장! 이럴 줄 알았어.”
구울이 수로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네이팜 펀치가 아무리 뜨겁고 지속력이 좋은 화염을 일으킨다고 해도 자체적으로 산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에 들어가 버리면 결국 꺼진다.
그리고 이곳은 지하수로. 물은 얼마든지 있다.
-촤아악.
구울이 다시 수로 위로 기어올랐다.
“크르르르.”
“후우.”
우마르는 숨을 내쉬고는 전투 자세를 잡았다. 구울의 공격을 기다렸다.
무기만 있었어도 이놈을 상대로 이 정도로 고전하진 않았을 텐데.
참으로 난처하군.
“캬아악!”
갑자기 달려드는 구울.
우마르는 자세를 낮추고 머리를 움직여 구울의 공격을 피했지만,
-싸악!
구울의 손톱이 또 우마르의 몸 곳곳에 날카로운 상처를 새겼다.
하지만 우마르는 견뎌냈다. 강력한 일격 하나를 꽂아 넣어 이놈을 끝장내버리기 위해.
-휘익!
우마르가 구울의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시야 한쪽이 차단되어 있었기 때문에 잘 안다. 네이팜 펀치를 맞고 오른쪽 눈이 불타버린 구울 역시 시야가 제한되어 있다는 걸.
우마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콰악!
“캬아악!”
옆구리에 강력한 펀치를 먹였다.
주먹이 썩은 살을 뚫어버렸다. 손끝에는 갈비뼈 하나가 뿌듯이 쥐어진다.
-우지직!
부서진 뼈를 뽑아버린 우마르는 그대로 구울의 목을 찔렀다.
“키익!”
비틀거리는 구울을 향해 우마르가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순간,
-푹!
구울의 손톱 끝이 우마르의 옆구리를 찔렀다.
우마르의 공격은 구울의 목젖에 적중하여 숨을 끊는 데 성공했지만,
“으으윽.”
우마르 역시 큰 부상을 입었다. 그는 상처를 움켜쥐고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움직이기가 힘들다.
-움찔!
우마르의 몸이 꿈틀거렸다. 전투로 날카로워진 신경에 위험 신호가 잡혔던 것이다.
수로 저 끝에서부터 무언가가 오고 있다.
“젠장!”
우마르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투 자세를 잡았지만,
“후후후.”
알리야는 비웃었다.
거의 대부분의 마력을 소진하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데다 장비도 없는 우마르.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다.
이 정도면 A급한테도 당하겠군.
“젠장. 네가 여기 있다는 건.”
우마르가 말했다.
“오는 길에 헌터들을 살해했나?”
“음? 헌터들? 길이 엇갈린 모양이군. 난 아무도 못 만났는걸.”
“다행이군.”
“다행? 푸후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보다 구울을 처치했잖아? 대단한걸?”
알리야는 재밌다는 듯 구울의 사체를 만지작거렸다.
그 뒷모습을 향해,
<네이팜 펀치 발동!>
우마르가 혼신의 힘을 짜내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콰악!
펀치는 구울의 사체에 박혔다. 알리야가 재빨리 시체를 집어 들어 펀치를 막은 것이다.
“워, 워. 좀 진정해. 피날레가 지금부터인데.”
알리야는 숨을 훅 들이마시더니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터뜨려.”
그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미군 헌터들이 투입된 아지트 건물 곳곳에 설치된 마정석 폭탄 12개가 일제히 폭발했다.
독일의 헌터 막스 그린베르크가 개발한 무기.
엄청난 제조비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운송이 까다로우며 설치에 필요한 시간도 꽤 길다. 따라서 지뢰처럼 미리 설치해둔 후 접근한 적에게 사용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이런 단점 때문에 그 압도적인 살상력에도 불구하고 던전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도시 한복판에 범람한 마수를 잡기에는 제격이다. 마수들의 진행 경로, 혹은 휴식처에 몰래 설치해두고 터뜨리면 되니까.
그 치명적인 무기가 이번에는 헌터들을 향했다. 아지트 건물에 설치된 마정석들이 산화하면서 뿜어낸 푸른색의 마력 화염이 건물을 에워쌌다.
“무, 무슨 짓을 한 거냐…….”
우마르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지트에 들어온 것들을 모두 죽여 버렸지. 한 번 미군의 세를 꺾어놓을 필요가 있었어. 그래야 이스라엘을 탈환할 때 걸리적거리지 않을 테니.”
“그걸 위해서…….”
“모두 미끼로 썼다. 너희도, 납치한 시민들도, 내 부하들도. 아. 오해는 하지 마. 내 부하래 봤자 비각성 군인들뿐이니까. 헌터들은 아껴야지.”
“이 악마 같은 놈!”
“흐흐흐. 굳이 부정하진 않으마.”
알리야가 뒤춤에서 쿠크리를 꺼내들었다.
“네 말대로 나는 악마라서 심판을 받으면 지옥으로 갈지도 모른다. 넌 천국에 가겠지. 지금 보내줄 테니 기대하라고.”
알리야의 스킬 <알라의 분노>는 손에 들고 있는 것과 형상이 동일한 마력 무기를 만들어내는 것.
그가 애용하는 쿠크리는 투척용으로 최적이다.
손아귀의 쿠크리에서 똑같이 생긴 푸른색의 쿠크리가 튀어나왔다.
엄청난 마력이 실린 공격. 보통 쿠크리로는 S급 헌터의 몸을 찢거나 전투복을 파괴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알라의 분노로 만들어낸 마법 쿠크리는 다르다.
우마르는 이제 자신의 삶이 다했음을 깨달았다.
이 중동의 악마를 처치하지 못하고 간다는 것이 죄스럽다.
알라여!
어째서 이놈을 내버려 두는 겁니까?
왜 그를 심판하지 않습니까?
왜 그 어떤 예언자도 보내주지 않습니까?
우마르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코앞으로 날아드는 마법 쿠크리.
하지만,
-카앙!
웬 단검 한 자루가 날아와 쿠크리를 날려 버렸다.
정확히는 마법 쿠크리를 ‘부쉈다.’ 쿠크리가 산산조각 나서 떨어졌으니까.
단검은 그걸 부수고도 위력이 줄지 않아 수로 반대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돌아와.”
수로의 반대편 끝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스크를 쓴 정체불명의 사내.
그의 손아귀로 자석처럼 빨려 들어가는 단검.
-착!
단검을 쥔 남자는 우마르와 알리야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제부턴 제가 하죠. 피하세요.”
그가 아랍어로 말했다.
“고, 고맙습니다.”
우마르는 윤성에게 인사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S급 헌터다. 게다가 자신과 달리 장비도 완전히 갖춘 듯 보인다. 어디서 온 건진 모르겠지만.
미군 헌터인가?
아무튼 전투 불능 상태인 우마르가 여기 남아 있어봤자 도움 될 일은 없었다.
“자, 들어와 봐.”
윤성이 단검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
알리야는 섣불리 공격하지 않고 상대의 전투력을 가늠했다.
단검을 던져서 <알라의 분노>를 격추시켰다. 이런 작업은 상당히 높은 감각 능력과 순발력을 요구한다.
S급에서도 상위권이다.
어디서 이런 놈이 나온 거지? 제임스는 전투불능이고 스티븐은 보조 계열이라서 이런 걸 못할 텐데. 게다가 이놈은 스티븐이 아니다. 체격이 다르잖아.
“안 오냐?”
윤성이 물었다.
종단 속도의 단검은 목표를 알아서 추적하는 기똥찬 기능이 있다.
달려오는 동안 수로 끝에서 우마르와 알리야가 투닥거리는 게 보였고, 쿠크리에다 단검 투척 타깃을 지정해놓았더니 알아서 해결됐다.
어느 순간 종단 속도의 단검이 저 혼자 출격해서 알리야의 마법 쿠크리를 요격한 것.
“흠.”
알리야는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끼며 윤성을 바라보았다.
“안 오면 내가 가지.”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의 공격은 이번에도 예상외다.
알리야는 황급히 몸을 뒤로 빼며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 몇 발의 섬광이 어깨와 발을 맞추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느꼈다. 상대의 전투력은 그 정도로 대단하진 않다. 풀장비를 갖춘 우마르와 비슷한 수준.
그러나 알리야는 중동 최고의 S급 헌터 중 하나다.
<알라의 분노 발동!>
알리야의 손에서 튀어나온 마법 쿠크리가 윤성을 향해 매섭게 쇄도했다.
“큭!”
윤성은 간발의 차로 그 공격을 피했지만,
-퍽!
알리야의 주먹이 명치에 꽂혔다.
엄청난 위력이다.
윤성이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뭐야, 이놈! 힘 엄청나잖아.
“내 힘은 2,000점이 넘는다.”
알리야가 웃으며 말했다.
현재 윤성이 가진 힘의 2.5배였다. 지능이나 감각 능력은 윤성이 더 높을 수도 있지만 근접전 헌터로서 가장 중요한 힘이나 순발력은 알리야가 압도적으로 우위였던 것.
근접전에선 승산이 없다.
“아까 단검은 어떻게 한 거냐? 궁금하군.”
알리야가 물었다.
“알 거 없잖아?”
콰앙!
알리야의 발차기가 윤성의 턱에 꽂혔다. 윤성은 그대로 몇 번 굴러 바닥에 엎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