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레벨업 속도는 9.8m/s^2 059화
윤성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조직이 대체 뭐기에? 이슬람 과격주의 무장 세력 아닌가?”
“세간에선 우릴 그렇게 부르지만, 우리의 정확한 정체는 이슬람 국가 건국 세력이다.”
“그래서 이집트 외교부가 관련되어 있는 거냐? 국가 문제랍시고?”
“외교부에서 하는 일은 아니고 내가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야.”
“대체 왜?”
“알리야는 이스라엘을 탈환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 수니파 이슬람의 국가를 건설하려고 하지. 내겐 외교부 장관직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맙소사.”
“애초에 아랍의 대륙인 이곳 중동에서 이스라엘 같은 유대인의 국가가 존재하는 게 말이 안 되지. 그놈들은 미국의 힘을 빌어서 팔레스타인을 강탈했을 뿐이야. 무려 2,000년 전에 그곳에 살았었다는 개소리를 명분이랍시고 성경 따윌 증거로 내세우며 말이지.”
“하지만 너희는 무고한 시민들을 잡아다 노예시장에 팔아넘기잖아? 잘잘못을 따지기엔 너무 지저분한 조직 아니냐?”
“전쟁은 돈이 필요하니까. 군자금을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한다는 게 알리야의 방침이다.”
압둘라는 윤성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앉혔다.
서랍에서 카트 한 상자를 꺼내서 몇 풀을 떼어내 입에 넣고 씹었다. 곧 제법 행복한 표정이 되더니 윤성에게 내밀었다.
“난 됐어.”
“네가 마신 음료보다 훨씬 좋은데.”
“됐다고.”
“좋다. 앞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테니.”
“관심 없어.”
“본국에도 별로 정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에게 합류하는 걸 생각해 봐라. 이스라엘을 탈환하면 너에게 얼마나 막대한 보상이 내려질지도.”
“다른 헌터들과 시민들은 모두 어디에 갇혀 있지?”
“지하에 있다.”
“그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팔리겠지. 중동과 아프리카에는 우리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무장 조직들이 있다. 수단, 차드, 나이지리아, 카메룬. 물론 대개는 점조직이야. 우리에게 노예를 사고, 그들에게 힘든 일을 시키지. 광업이나 농사.”
-철컥.
문이 열리면서 강력한 헌터 한 명이 들어왔다.
알리야.
마주하는 것만으로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다.
한국에서도 S급 상위권일 거다. 백마중이나 김성인 수준.
“min hu?”
알리야가 윤성을 가리키며 압둘라에게 물었다.
누구냐는 것 같군.
“kuria, hunter,”
“madha ean fiatih?”
“B.”
아마 헌터 랭크에 대한 질문과 답일 것이다.
알리야가 뭐라고 말을 하자 압둘라는 윤성에게 통역 마법을 걸었다.
“hal 'ant muqadim altlb?”
알리야가 물었다.
외교부 A급 헌터가 걸어준 통역 마법은 매우 정교하다. 윤성은 그 의미를 정확히 캐치할 수 있었다. 뉘앙스까지 완벽하게.
‘입단 희망자냐?’는 물음이었다.
“스카우트를 받은 것뿐이야.”
윤성이 아랍어로 대답했다.
“그럼 곧 희망자가 되겠군. 아니면 시체가 되거나.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노예로 내보낼 생각은 없다.”
알리야의 말은 진심이었다. 허세나 위협성이 하나도 없는 담백한 사실 전달. 입단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뜻.
“고민해보지.”
윤성이 침을 꼴깍 삼키며 답했다.
“시간을 그리 많이 주진 않는다.”
알리야는 압둘라의 카트를 꺼내 조금 씹었다.
“대신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을 받아주지.”
“왜 압둘라가 당신한테 통역 마법을 걸어주지 않고 나한테 걸었지? 이러면 둘이 중요한 얘길 할 때 나한테 비밀 유지하기가 힘들잖아?”
“좀 이따가 네게 간부들을 소개해줄 테니까. 그들 모두에게 마법을 걸기에는 압둘라의 마력이 아깝거든. 그리고 네가 무슨 얘길 듣고 어떤 맘을 먹든 내가 있으니 괜찮다.”
엄청난 자신감이다. 과연 이슬람 과격 무장세력의 수장다운 패기가 느껴졌다.
윤성이 입을 다물어버리자 알리야는 피식 웃더니 압둘라에게 말했다.
“지하에서 강력한 헌터의 마력이 느껴지더군. A, B급 감옥에 들어갔지만 S급으로 보이는 놈이 있어.”
“그게 누구지?”
“아마 미군에서 심어놓은 놈일 거야. 탈출할 가능성이 있으니 지켜봐야 해.”
“미군의 침공은 언제지?”
“얼마 남지 않았다. 두 시간 내로 들어올 거다.”
“미군이 침공한다고?”
윤성의 눈이 커졌다.
***
약 한 시간 전, A급, B급 헌터들이 수감된 감옥.
이스라엘의 A급 헌터 아비게일이 헌터들의 주의를 모았다.
“전부 조용히 하시고 제 얘기 들으세요.”
그녀가 깔끔한 영어로 말했다. 아나운서처럼 정확한 발음이다.
“지금 미국의 상급 헌터들이 이스라엘 헌터들과 연합해 IS의 요충지를 타격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못 잡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제가 잠입해서 신호를 보낼 거예요.”
“지원군이 온다고? 하지만 GPS 종류의 모든 물품은 들어올 때 빼앗겼잖습니까?”
아비게일은 웃으며 오른손을 들더니 스킬을 썼다.
<네일 나이프.>
그녀의 손톱이 마력을 받아 날카로운 칼처럼 변했다.
-푹.
그걸로 왼손의 손목을 찔렀다.
배어나오는 핏물 속에서 조그만 칩이 나타났다. 유심칩과 비슷한 크기다.
아비게일은 칩에 묻은 피를 옷에 꾹꾹 눌러 닦아낸 다음 주의 깊게 살피더니 1mm 제곱 면적의 조그만 버튼을 손톱으로 떼어냈다.
-삑.
칩에서 작은 알람이 한 번 울렸다.
“다 됐어요. 이제 이곳을 추적해 올 겁니다.”
그녀는 다시 칩을 자신의 손목에 집어넣고,
<힐링 발동!>
힐링 스킬로 상처를 메웠다. GPS가 발신되고 있지만 감쪽같이 피부 속에 숨어서 보이지 않았다.
CIA에서 특수 소재로 만든 플라스틱 칩이다. 금속도 마력도 없으므로 그 어떤 탐지기에도 걸리지 않는다.
“지원군이 온다는 겁니까?”
헌터 중 하나가 물었다.
“누가 오죠? 알리야를 이길 수 있을 정돕니까?”
“S급 헌터 리처드와 스티븐이 옵니다.”
둘 다 유명한 S급 헌터들이다. 그 정도면 충분히 알리야를 이길 수 있겠군.
이시열은 마음이 좀 놓였다.
“제가 이 얘길 하는 이유는 여러분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섭니다.”
아비게일이 말했다.
“미국의 헌터들이 이곳을 공격할 때 우린 일제히 감옥을 부수고 탈출할 겁니다. 이곳에 포로로 잡힌 시민들을 지켜주세요.”
“오케이.”
상급 헌터 몇이 쿨하게 동의했다.
“하지만 여기서 어떻게 탈출하죠?”
“저한테 계획이 있습니다.”
이시열이 끼어들었다.
“이곳 바로 아래는 지하수로예요. 바닥의 철판을 뚫으면 탈출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이시열이 말했다.
“어떻게 아시죠?”
“전 기감을 확대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감각 능력만 따지면 최대 1,800점까지 이를 수 있죠. 일시적이지만 여기서는 가장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일 겁니다.”
“그 예민한 감각으로 아래의 지하수로를 찾아냈다?”
“그렇죠. 물소리가 들립니다.”
“그럼 미군이 공격을 시작하면 우린 지하수로를 통해서 탈출하는 겁니까?”
“제 생각엔 그게 최선이군요.”
“그럼 바닥을 뚫을 만한 스킬을 찾아봅시다.”
잠시 후, 헌터들은 저마다의 언어로 비장의 스킬들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쓸만해 보이는 것은 총 셋.
하나는 독일 헌터의 매직드릴. 주먹 근처에 드릴처럼 회전하는 마력을 감아 펀치력을 극단으로 끌어올리는 기술이다.
두 번째는 멕시코 헌터의 마법 폭약. 말 그대로 마법으로 된 폭발물을 설치해서 터뜨리는 것이다.
세 번째는 러시아에서 온 조작형 보조 계열 마법 헌터의 스킬, ‘매그니파이.’ 다른 스킬의 위력을 강하게 뻥튀기시켜 준다고 했다.
작전은 이렇다. 독일 헌터가 매직 드릴로 바닥에 구멍을 깊게 뚫으면 그 안에 멕시코 헌터가 마법 폭약을 집어넣고 러시아 헌터가 매그니파이로 강화시켜 터뜨리는 거다.
-쉬이이이익.
“앗!”
이시열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들었습니까? 폭격기 소리예요.”
“무슨 소릴. 아직 신호를 보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콰아아앙!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땅이 울렸다.
“시작됐다고요!”
이시열이 소리를 지르자 곧바로 독일 헌터가 방 안쪽으로 달려와 주먹을 바닥에 쑤셔 박았다.
-쿵! 위이잉~
주먹을 둘러싼 마력이 빠른 속도로 고속회전하며 돌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아직까진 순조롭다.
하지만.
-키잉!
바닥 아래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다.
“나인!”
독일 헌터가 탄식을 뱉었다.
아래쪽에 마법 흡수막이 쳐져 있다. 아마 이슬람 과격 무장 세력의 헌터들 중 누군가가 쓴 것 같다.
멕시코 헌터와 러시아 헌터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 흡수막이라면, 마법을 삼키는 겁니다. 마력 폭탄으로는 터뜨릴 수 없어요. 순수한 완력으로 깨뜨려야 하는데…….”
그만한 완력을 가진 사람이 없지.
“일단 마력 폭탄을 한 번 해봅시다. 그걸로 안 되면 내가 해보겠소.”
스웨덴에서 왔다는 A급 헌터가 말했다. 여기서는 가장 완력이 좋은 헌터다.
그의 힘은 약 520점 정도였다. 그걸로 바닥을 뚫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생각해 보면 적들도 애초에 파괴 마법이 아닌 이상 맨손으로는 지하를 부술 수 없음을 알고 이 같은 조처를 취해둔 것이었다.
<마법 폭약 발동!>
멕시코 헌터가 스킬을 사용했다. 그의 손아귀 끝에서 손가락만한 크기의 마력 폭탄이 만들어져 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떨어져 내렸다.
러시아 헌터는 그 쪽을 향해 매그니파이 마법을 발동했다.
-콰앙!
강력한 폭발음.
지진이 난 것처럼 울리는 지면 때문에 모두가 휘청거렸다.
“안 돼!”
바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내가 해보겠소.”
감옥 구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나며 말했다.
드레드 머리를 한 덩치.
딱 봐도 강력한 마력.
워낙 파장의 범위가 넓어서 마력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시열은 몰랐지만 이젠 확실히 알겠다.
그 헌터가 얼굴에 덮어쓴 인공 피부를 뜯어내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S급 헌터.
“우마르!”
아랍의 헌터 하나가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S급 헌터가 어떻게 여기에…….”
“수니파 과격주의 놈들이 아랍인들에게 폭탄 테러를 하는 걸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기를 뺏겼잖습니까? 알리야를 어떻게 상대하시려고요?”
“알리야 따윈 맨주먹으로도 충분하다.”
우마르가 주먹을 불끈 쥐더니 바닥을 힘껏 후려쳤다.
-쿠우우웅!
굉음과 함께 박살 나버린 마법 흡수막.
순수 완력이 1,200점을 넘었다는 우마르다운 파괴력이다.
“내려가! 내려가!”
헌터들이 무너진 지면 아래로 하나씩 뛰어내렸다.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 수로를 따라서 끝까지 이동하면 아지트 건물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미군과 합류해서 시민들을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