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레벨업 속도는 9.8m/s^2 058화
16. 마이어의 헌터
압둘라는 실제 이집트 정부의 외교부의 고위 공직자이자 상급 헌터였고, 그와 동행한 이들도 실제 헌터 경찰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버프가 없었다 하더라도 윤성은 B급 헌터 수준이다. 어지간한 약물 따위에 쉽게 정신을 잃어버리진 않는다.
윤성의 조심성이 부족했던 게 아니다. 이 땅이 사람들의 생각 이상으로 미쳐 돌아가고 있었을 뿐이며, 음료에 들어 있었던 항정신성 물질인 카트 탓이었다.
원래는 재배된 줄기 부분을 뜯어다가 질겅질겅 씹어서 황홀한 기분을 맛보는 마약이다.
이슬람 과격주의 무장 세력은 카트에 마력을 담는 법을 개발했다.
카트를 재배할 때 곱게 빻은 마정석을 흙 속에 섞어주고 그들이 개발한 정체불명의 마법을 걸면 카트가 자연스럽게 마력을 흡수하는 거다.
그렇게 자란 ‘헌터용 마약’은 위력이 막강하다. A급 근접 계열 헌터라도 10mg이면 1시간 이상을 기절한다.
기감이 매우 뛰어난 헌터라면 그 마력을 느끼고 먹지 않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카트를 향이 강한 음료 속에 섞어버리면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
카트에 취한 윤성이 깨어난 곳은 사막 한복판.
머리가 지끈거린다. 꼭 2,000미터쯤에서 떨어진 것처럼 현기증이 심해 어지럽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본 윤성은 당혹감에 얼굴이 파리해졌다.
이슬람 과격주의 무장 군인 30여 명과 거대한 트레일러가 네 대. 그리고 겁에 질린 사람들이 약 100여 명이 있다.
그들은 네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남성, 여성, 아이와 노인들. 그리고 헌터들만 모아놓은 그룹이었다.
윤성은 물론 마지막 그룹에 있었다.
“당신도 여기 있었군요.”
뒤에서 한국어가 들렸다.
여객기에서 보았던 A급 헌터다. 대한항공의 가드.
“당신 A급 헌터잖아요? 기감도 엄청난 것 같았는데, 당신도 잡힌 건가요?”
윤성이 물었다. 상당한 실력자 같았는데 이런 남자도 납치되다니, 정말 뜻밖이다.
남자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전 일시적으로 감각 능력을 증폭시키는 스킬 때문에 기감만큼은 S급 헌터들 이상이 될 수 있지만 나머지 능력치들은 보잘 것 없습니다.”
“으음. 하지만 그래도 A급이잖아요?”
“그렇죠. 저뿐만이 아니에요. 여긴 상급 헌터들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측에도 괴물이 하나 있죠.”
“괴물?”
“알리야.”
헌터가 무장 세력들 중 가운데에 서 있는 남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키가 큰 중년의 남성이었다.
“S급 헌터입니다. 웬만한 강대국의 최상위권 헌터들과 겨루어도 안 밀리는 실력자예요.”
“S급?”
“네.”
“그런 자가 왜 테러 조직 따위를 운영해요?”
“저들 스스로는 테러 조직이라고 생각 안 합니다. 이슬람 해방운동 조직이라고 믿죠.”
“뭐라고요?”
“지금의 중동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수탈이 있었으니까요. 지금도 그 입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비정상적인 나라들이 가득하죠. 알리야는 이슬람이라는 종교 아래 아랍인들을 한데 뭉쳐서 아랍의 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모두 그 적이고.”
아니, 중동 역사가 어쨌든 그게 내 알 바인가.
랜딩을 해야 하는데.
“짜증 나게. 정말.”
윤성이 못마땅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놈의 나라가 공항에서부터 테러가 일어나고 경찰들이 납치를 해다 사람을 빼돌리고…….
상식적으로 이게 가능한 일인가?
여기서 탈출은 어떻게 하지? 랜딩 능력을 잘 쓰면 나갈 순 있을까?
일단 소지품부터 확인해 보자. 랜더의 전투화는 신고 있고. 인벤토리는 바지 주머니에 있다. 종단 속도의 단검과 랜더의 코트는 인벤토리 안에 있겠지.
다행히 소지품들을 뺏기진 않았다. S급 헌터가 있으니 이쪽이 갑자기 소동을 일으켜도 자신 있다는 건가?
“그리고 우린 무기들을 모두 뺏겨서 저항할 방법도 없습니다.”
A급 헌터가 말했다.
아예 안 뺏긴 건 아니었군. 사실상 무기는 윤성이 가진 종단 속도의 단검이 유일한 셈이다.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윤성이 물었다.
“아마 저쪽에 있는 아랍인들은 모두 리비아의 노예시장으로 넘겨질 거고, 우린 포로가 되어 본국에 팔릴 겁니다.”
“이런.”
“솔직히 저들이 사람들을 납치하고 있다는 건 알았는데 설마 카이로 시내에서부터 그럴 줄은 몰랐어요. 저도 당했군요.”
“누가 우릴 구하러 오지 않을까요?”
“글쎄요. 올 수도 있지만 그리 희망적이진 않군요. 일단 우리끼리 탈출하는 걸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당신 급수가 어떻게 되죠?”
“E급.”
“젠장. 나 혼자 해야겠군.”
윤성은 약간 빈정 상했지만 그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용서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좀 이상하군.
이 남자, 스킬을 쓰면 기감만큼은 S급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B급 수준에 이른 윤성의 힘을 알아보지 못해서 급수를 묻는 건가?
윤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마치 윤성의 의문을 느끼기라도 한 듯 남자가 설명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 중에도 굉장히 강한 헌터가 있다는 겁니다. S급 정도로 보여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마력 때문에 다른 이들의 마력이 묻혀버릴 정도군요.”
그래서 물어봤군.
“근데 당신 이름이 뭐죠?”
“강윤성입니다.”
“강윤성? 포천 사건의 그?”
“네.”
“불행의 아이콘이라더니. 젠장.”
“당신은 이름이 뭐죠?”
“이시열입니다.”
“시열 씨. 우린 탈출할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뭘 믿고 그렇게 호언장담합니까?”
랜딩을 믿고…….
말을 삼키며 윤성은 알리야를 노려보았다.
순간이동석을 써서 탑에 다녀올 수 있다면 1,900미터에서 랜딩해서 저놈을 처치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순간이동석에 마력 충전이 안 되어 있다.
“유!”
군인들이 헌터 그룹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겟 인! 더 까!”
손짓을 보니 트레일러에 올라타라는 것 같다.
윤성과 헌터 그룹은 순순히 트레일러로 올랐다.
일단 적 중에도 A급 정도 되는 헌터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보다 알리야를 이길 수 있는 헌터가 이쪽엔 없다.
정체불명의 그 S급은 일반인의 안전 때문인지, 아니면 카트가 덜 깨서인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철컥.
문이 잠기고 약 30분 정도가 지나자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마수의 가죽을 가공해서 만든 자동차 타이어가 모랫바닥에서 만들어내는 소음이 시끄럽다.
컨테이너 안은 캄캄해서 윤성은 빛의 탄환을 켜서 주위를 밝히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능력을 공개하긴 좀 그렇지.’
아무리 타지라도.
침울한 헌터들과 함께 얌전히 기다린 지 약 네 시간.
트레일러가 멈추었다.
도착지는 이집트와 리비아 국경 지대에 있는 이슬람 과격주의 무장 세력의 아지트.
-덜컹.
군인들이 문을 열자 후텁지근하던 컨테이너 안의 열기가 빠져나가며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윤성과 헌터들은 군인들의 지시대로 차례로 내렸다.
“빨로 미!”
군인들이 따라오라고 했다.
이동한 곳은 아지트 지하의 어둡고 칙칙한 복도.
군인들은 헌터들을 일렬로 줄 세워놓은 후, 저쪽 끝에서부터 뭔가를 물었다.
다행히 첫 번째 헌터가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이였다.
“B.”
그가 대답했다. 헌터 등급이었다.
다음 순번이 눈치가 빨라서 “C”라고 대답해주었기 때문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군인들은 헌터들을 총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었다.
상급 헌터인 A, B급.
C급.
D급과 E급.
첫 번째 그룹의 인원이 가장 적고 마지막이 가장 많다.
세 그룹은 각각 감옥으로 이동했는데 윤성이 들어간 방은 가장 어둡고 지저분한 곳이었다.
“nahn sataemal 'an tubae fi mazad ealni.”
사우디의 D급 헌터 하나가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꼈다. 노예시장에서 팔릴 거라는 뜻이었다.
A, B급은 국가적 인력이니 본국을 상대로 장사를 할 테지만 C급 이하는 큰 메리트가 없다.
특히나 D급, E급 헌터는 본국에 팔든 노예시장에 넘기든 별 차이가 없다.
이슬람 과격 무장 세력의 입장에선 당연히 노예시장 쪽이 더 편리하고 안전하다.
“유!”
D급 헌터 하나가 윤성에게 소리를 질렀다.
“뭐?”
“왓유쁘롬!”
어디서 왔냐고?
“한국. 코리아.”
“꼬리아!”
“여기 혹시 통역 스킬 쓸 줄 아는 사람 없나? 트랜슬레이션?”
윤성이 물었다. 하지만 전혀 기대하진 않았다.
통역 마법은 매우 유니크한 스킬이다. 보통 외교부에서 일하는 상급 헌터들이나 S급 이상의 글로벌한 헌터들이나 쓰니까.
D급 이하에서 그런 스킬을 가진 헌터가 있을 리 없지.
“'ant sakhif alasiawiat!”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mut!”
갑자기 아랍 헌터가 윤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스킬 <파괴적 주먹.>
아이언피스트보다 한 클래스 낮은 강화 스킬이다.
“아니, 이 새끼가?”
하지만 윤성에게는 당연히 조금의 위협도 되지 못한다. 윤성은 피하지도 않고 맨손을 뻗어 남자의 주먹을 받아냈다.
-꽈악!
주먹을 움켜쥐자 그가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madha allaenat?”
그들의 소리에 놀란 간수가 철창 밖에 나타났다.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고 간수의 얼굴을 확인한 윤성이 소리를 질렀다.
“압둘라!”
간수가 아니라 모스크에서 윤성에게 음료를 건넸던 이집트 외교부의 상급 헌터였다.
“이 개새끼가!”
윤성이 철창을 움켜쥐고 으르렁댔다.
“뭐야? 네가 왜 여기에 있지?”
압둘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윤성의 실력은 분명 B급 이상으로 보였다. 하급 헌터들이 갇혀 있는 곳에 들어 있을 이유가 없다.
“D급이랬더니 여기로 보냈다.”
“이놈들 일 제대로 안 하는군. 확인하고 넣으랬더니.”
압둘라는 철창문을 열고 윤성을 꺼냈다.
주먹이 압둘라에게 충분히 닿을 거리였지만 윤성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상대가 꽤 강한 탓이다.
철창 안에 있을 때는 어차피 못 싸울 걸 알고 소리 질러댔지만.
“헌터 자격증을 보여줘.”
압둘라가 말했다.
윤성이 자격증을 내밀자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강력한데 왜 D급이지? 심지어 한국 같은 선진국에서?”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힘을 숨기고 있거든.”
“흠.”
압둘라는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끼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건 어떠냐? 우리 조직에 들어오면 너에게 큰 보상을 주겠다.”
무슨 미친 소리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