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레벨업 속도는 9.8m/s^2 057화
윤성은 그들의 말을 쿨하게 씹으며 버스 정거장을 향해 갔지만,
“정류장 안 보이는데?”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정류장 표시판이 있는 걸 못 찾는 걸까?
하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여기가 맞는 곳인가 고민하는 차에 행인 하나가 지나가다가 윤성에게 말을 걸었다.
“유 웨잇 뽀 택씨?”
“노. 웨잇 뽀 버스.”
“아! 디쓰 이쓰 놋 더 뻐쓰스똡.”
행인이 손을 내저었다.
여기가 버스 정류장이 아니라고?
윤성이 고개를 갸웃하자 남자가 환하게 웃었다.
“뽤로미 뽤로미.”
남자는 자신의 가슴을 툭툭 두드리더니 윤성을 이끌고 리드했다.
중동 억양의 영어로 뭐라고 떠들었는데 대충 들으니 자신이 정류장까지 안내해주겠다는 것 같다.
“잇츠 뚜 머취 빨”
너무 멀다는 것 같군.
실제로 남자는 윤성을 이끌고 10여 분이나 걸었다.
하지만 따라간 그곳에는,
“택시. 뽀리파운드.”
돌변한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아오. 무슨 삐끼들이 왜 이렇게 많아, 여기?”
황당한 표정으로 인상을 구기는데,
-부우웅.
바로 우측 도로에서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구글 지도에서 검색해서 찾아두었던 그 버스였다. 그리고 테리문이 알려주었던 쪽에서 나왔다.
“이런 ×발.”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온다. 바로 코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는데 이 자식이 날 기만해?
“당신 버스 정류장 찾아준다고…….”
“뽀리빠운드. 택씨. 써비쓰.”
“이 미친놈이 진짜.”
기사는 이집트에서 이런 일은 흔한 거라는 듯 헤헤 웃었다.
“아오, 안 그래도 이집트 날씨 더워 죽겠는데.”
온도는 28도. 약간 더운 정도였지만 한국에서 온 윤성은 거의 겨울 옷차림이었다.
랜더의 코트는 진즉에 벗어서 인벤토리에 넣었지만, 그 안에 입은 셔츠와 니트도 꽤 덥다.
“헤헤헤. 뽀티 파운드.”
“꺼져! 내가 택시를 타더라도 네 건 절대 안 타.”
윤성은 화를 내고 돌아섰다.
아오, 그냥 택시 타자. 돈 좀 아껴보려고 했더니 안 되겠군.
자포자기 심정으로 택시 기사를 찾아 나섰다. 헌데 아까는 그렇게 많던 삐끼들이 막상 찾으려니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십여 분을 더 헤맨 끝에 윤성은 간신히 택시 기사 한 명을 만날 수 있었다.
“하하하. 손님들 프롬 한국. 자주 있는 일이다 입니다.”
택시 기사는 어설픈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
그 점이 맘에 들어서 윤성은 얼른 택시에 올라탔다.
“미안하다 입니다. 카이로 택씨. 드라이버들이 쫌 무뢰한이다 입니다.”
한국어를 어디서 어떻게 배웠기에 무뢰한 같은 단어가 나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대꾸할 힘도 없다. 아까 사기 친 놈에 대한 분노만이 이글거렸다.
“로터스 호텔로 가주세요.”
비행편을 예매할 때 함께 예약했던 호텔이다.
3일간 비행하는 서비스는 이틀 후. 그 때까지는 호텔에 머물면서 근처 관광이나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차가 5분쯤 달렸을 때,
-콰쾅!
약 20미터 밖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뭐야?”
모스크 사원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테, 테러이다 입니다!”
“이런.”
테리문 말이 정말이었다. 그 테러가 오늘, 여기인 줄은 몰랐지만.
아니면 이게 시작인가?
테러 조직들이 이집트 국경을 넘어와 자리를 잡았다고 했으니까.
조만간에 정부에서 이집트 여행이 또 금지하겠군.
“차를 돌린다?”
“잠깐만요.”
리비아까지 가서 이슬람 과격주의 무장 세력을 물리치고 납치된 인질들을 구출해달라는 것까지야 무리지만.
‘그래도 이런 것 보고 그냥 지나칠 정도로 무심하진 않다고.’
윤성은 택시에서 내려 사원으로 향했다.
비명과 울음소리. 화약 탄내. 재와 먼지가 모래와 뒤섞여 날렸다.
“아아아악.”
“흑흑흑.”
사원에서 튀어나오는 시민들은 저마다 심각한 부상을 떠안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기절한 친구나 가족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투두두두두!
한 무장 군인 무리가 기관총을 난사했다.
총알이 박혀 피를 콸콸 쏟으며 거꾸러지는 사람들.
이런 테러의 참상에 대해 뉴스로는 많이 보았지만 실제로 보니 와닿는 정도가 다르다. 총을 맞고 사람이 죽는 장면은 전쟁영화의 한 장면과 다를 바 없지만 현장감이 다르다.
팔등에 털이 곤두선다. 머릿속에서 피가 싸하고 빠져나가는 기분. 하얗게 텅 비어버린 의식.
윤성이 주먹을 꽉 쥐었다.
헌터로서의 직업 정신이나 정의감 때문이 아니다. 누구든 이 장면을 직접 목도하면 분노할 수밖에 없다.
단지 일반인과 달리 상급 헌터 수준인 윤성에겐 그들을 해치울 힘이 있다는 점만이 다르다.
-콰아앙!
맹렬한 기세로 달려간 윤성의 발차기가 무장 군인 하나의 허리를 부러뜨렸다.
-퍽!
-쩍!
그 기세를 몰아서 윤성은 무자비하게 무장 군인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잘 차고 있다고 해도 비각성 일반인.
스킬 하나 쓸 필요도 없다.
윤성의 맨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군인들의 팔다리가 부러지고 두개골이 함몰되었다.
“헉, 헉.”
이리떼를 잡는 곰처럼 군인들을 몰살시킨 윤성은 쓰러진 시민들을 향해 다가갔다.
이미 모두 죽었다.
“×발.”
그나마 윤성의 대처가 빨랐기 때문에 그 이후에 나오는 시민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alraja' musaeadat alakharina. fi albab alkhalifi!”
5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여인이 울면서 윤성에게 빌었다.
“뭐라는 거야?”
살려달라는 건가? 내가 테러리스트인 줄 알고?
아니면 뭘 도와달라는 건가?
“플리즈!”
그녀가 소리치며 모스크 안쪽을 가리켰다.
‘안에 도움이 필요한 누가 있구나!’
윤성은 재빨리 모스크 안으로 뛰어들었다.
사원 내부는 그야말로 난장판.
전에 던전이 범람한 샌텀 타워 로비가 생각난다.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하군. 여긴 시체들이 잔뜩 있으니까.
부상자들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힐링 스킬이 없어서 저들을 도울 방법이 없는데.
-투두두두두!
또 기관총의 사격성이 울렸다. 모스크의 후문 쪽이다.
이것 때문에 도와달라고 했군!
윤성은 재빨리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바깥으로 나가자,
-투두두두!
군인들이 윤성을 향해서도 총을 갈겼다. 하지만 그의 몸과 전투복에 재래식 무기가 어떤 데미지를 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수십 발의 총알을 가슴으로 받아내고도 멀쩡한 윤성을 보고 군인들이 움찔움찔하는 게 보였다.
“쫄리냐 이 새끼들아? 잘못 건드렸다 싶어?”
윤성은 곧바로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펑!
펀치 한 번에 군인 하나를 골로 보냈다.
십여 명의 군인들을 전부 처치하는 데는 불과 3분이면 충분했다.
그들을 전부 제압한 윤성은,
-부우우웅!
앞을 지나는 트럭 한 대를 발견했다.
또 이슬람 과격주의 무장 군인들의 차다. 그리고 트럭에는 납치된 것으로 보이는 시민들이 타고 있었다.
“테리문!”
아는 얼굴을 발견한 윤성이 소리를 질렀다.
“유, 윤성 씨! 도와주십쇼!”
포박당한 채로 테리문이 비명을 지르자,
-퍽!
군인 하나가 테리문의 뒤통수를 소총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다. 테리문은 힘없이 고꾸라졌다.
“이 미친 새끼들이.”
윤성은 손가락을 뻗어 군인들을 향했다.
빛의 탄환을 발사하려는 그 순간,
-콰아앙!
폭탄 한 발이 더 터지면서 모스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날아온 건물 파편 하나가 윤성의 코앞에 떨어지며 시야를 차단했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큭.”
윤성은 재빨리 모래를 헤치고 튀어나갔지만,
“놓쳤다.”
트럭은 벌써 한참 먼 곳에 있었다.
놈들도 상급 헌터가 자신들을 죽이려는 걸 아는 것이다. 그래서 전속력으로 액셀을 밟아서 탈출하는 거다.
“젠장!”
겨우 몇 마디 섞어본 테리문한테 특별한 정이나 의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바로 앞에서 시민들이 납치당하는 것은 좀 충격이다.
-위이이잉!
사이렌을 울리며 헌터용 경비 밴 한 대가 들어왔다.
안에 타고 있는 것은 구급 대원들과 의료계 헌터들, 헌터 경찰들이었다. 그들은 모스크로 들어가 분주하게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
그와 함께 한 아랍인이 윤성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깔끔한 한국말이었다. 윤성의 눈이 커졌다.
“한국말을?”
“통역 마법입니다. 전 이집트의 A급 헌터 압둘라입니다. 이집트 외교부에서 일하고 있죠.”
압둘라가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경찰들이 윤성의 여권을 확인했다.
“사람들이 당신이 여기서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해주었다고 하더군요. 고맙습니다.”
압둘라가 말했다.
“괜찮아요. 큼. 쿨럭!”
윤성이 기침을 했다. 모래 먼지가 너무 많았던 탓이다. 그 모습을 본 압둘라가 가방에서 캔음료 하나를 내밀었다.
“원래 이집트는 모래 먼지가 많은 곳이죠. 먼지를 잡아주는 음료입니다. 맛도 좋아요.”
“고맙습니다.”
석류가 그려진 음료 캔이다.
-딱!
뚜껑을 따고 꼴깍꼴깍 들이켰다.
꽤 맛있군.
목의 따가움이 가라앉으면서 마음도 좀 진정되었다.
망할 IS 새끼들.
지금은 좀 어렵겠지만 3일 랜딩 임무를 마치고 몇천 점의 버프를 얻으면 제일 먼저 그놈들부터 족쳐버리겠어. 던전 돌면서 레벨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놈들 용서가 안 되는군.
“미안한데, 여기서 로터스 호텔까지는 얼마나 걸리죠?”
음료를 다 마신 윤성이 물었다.
“한 30분이요.”
“그렇군요.”
윤성은 휴대폰을 꺼내어 지도를 켰다.
“어라?”
화면이 흐릿하게 보인다.
윤성은 휴대폰 액정을 옷소매로 빡빡 문질렀다.
활자가 더 심하게 뭉개졌다. 이젠 잘 보이지가 않을 정도.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어지럽지.
“으…….”
-쿠웅!
윤성의 몸이 옆으로 고꾸라졌다.
압둘라는 빙긋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경찰들이 압둘라의 지시에 따라 윤성을 업었다.
그러고는 근처에 있는 검은색 봉고차에 올랐다.
-부우웅.
출발한 봉고차의 목적지는 카라 오아시스.
호텔과는 정반대이고, 도심에서도 정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