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55화 (55/260)

# 55

레벨업 속도는 9.8m/s^2 055화

15. 이집트로

다음 날.

여의도에 있는 헌터 협회.

60층의 간부 회의실에서는 비상 회의가 소집되었다.

앉아 있는 이들은 모두 쟁쟁한 헌터들이다. A급 헌터라고 해도 30년 이상의 실무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거나 한 손에 꼽히는 순위권이 아니면 이 자리에는 앉지 못한다.

실제로 좌석의 절반은 S급 헌터다. 부산에 내려간 최수혁을 제외하고, 전국의 S급 헌터 다섯 명이 전부 모인 셈이다.

A급 헌터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날 무렵, 에어포스의 입술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결론은, 던전 난이도를 특정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인가요?”

A급 헌터는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신촌 백화점 붕괴 사건, 구파발 D급 던전 마족 사건. 둘 다 던전 난이도와 전혀 다른 보스가 등장했습니다. 기존 협회의 던전 난이도 감정 때는 조금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었죠.”

프레젠테이션에 지도가 나타났다. 세계지도였다.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미국 텍사스, 뉴저지, 뉴욕, 위스콘신, 몬태나. 남미에선 브라질, 볼리비아, 칠레. 유럽에서는 노르웨이, 폴란드, 크로아티아, 영국……. 셀 수 없이 많은 나라 곳곳에서 지난 5년간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게 지금은 우리나라로 온 것이죠.”

“미국에선 어떻게 하나요?”

“모든 하급 던전에 컨트롤러 역할로 A급 헌터를 한 명씩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미국처럼 상급 헌터를 엄청난 숫자로 보유한 나라만 가능한 일이에요. 우리나라는 사정상 불가능하겠군요.”

“그렇습니다.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잠깐 동안 회의 테이블에 침묵이 흘렀다. 어떤 S급 헌터들도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들은 조용히 상석에 앉은 노인을 바라보았다.

고제하.

한국 헌터 협회의 장이다. 그는 고뇌에 잠긴 표정이다. 그의 미간은 지난 세월의 시름을 가득 떠안아 주름졌다.

이 일이 끝나면 저 주름이 한 줄 추가되리라.

에어포스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제하를 쳐다보았다.

고제하는 한국 최고령의 헌터이며, 에어포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한국 최강의 헌터이기도 했다.

강대국들에 비해 헌터 자체의 수가 턱없이 모자란 한국이 잘 버텨내며 질서를 유지해온 최고의 공로는 당연히 고제하에게 있었다.

이 시대에선 대통령보다 위대한, 세간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노인이다.

그가 착잡한 듯 한숨을 뱉었다.

“일산 감염지는 어떻게 되어 가는가?”

“감염 확산을 막는 것이 전부입니다.”

S급 헌터 김성인이 대답했다. 세인트 길드의 마스터인 근접 전투 계열 중년의 남자다.

“중심부에 접근하지는 않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약 8년 전 일산.

거대한 S급 던전이 갑작스레 출현하고 10분 만에 범람했다.

바다달팽이처럼 희멀건 생물체들은 헌터계가 그동안 한 번도 발견한 적 없는 미지의 마수 종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역대 최악의 마수 종으로 판명되었다.

흰개미처럼 군집 생활을 하는 마수들의 여왕은 잡아먹은 상대의 유전자를 흡수하고 그의 힘을 가진 마수를 낳을 수 있었다.

때문에 먹이의 유전자를 흡수하는 바다달팽이인 ‘엘리지아 클로로티카’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엘리지아라고 명명되었던 것이다.

여왕은 한국의 S급 2위 헌터였던 신민수를 먹었다.

힘과 순발력이 각각 5,000점에 육박했던 신민수가 어쩌다 엘리지아들에게 살해되고 잡아먹혔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여왕은 ‘마수 신민수’를 낳았고 헌터 협회는 전쟁의 패배를 직감했다.

일방적 학살.

마수가 되어 능력치가 증폭된 신민수는 여왕의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했다.

그들은 은평구를 삽시간에 파괴하고 홍제로 넘어오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신민수 혼자서 미국에서 지원 나온 S급 헌터 둘을 살해했고 A급, B급 헌터를 도합 16명이나 죽였다.

미국은 추가 지원을 보류했고, 대통령은 대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고제하가 이끄는 최후의 헌터 대대가 서울을 사수하기 위해 신민수의 군대와 일전을 준비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명운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에 히어로가 나타나는 법.

불과 나흘 전에 헌터 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S급으로 판정받아 현장에 투입된 신인이 번개처럼 달려 나갔다.

신민수의 팔 하나가 날아가는 그 순간을 포착한 어느 카메라맨은 퓰리처상을 받았다.

신민수를 쓰러뜨린 초특급 신인. 비행이 가능한 최초의 헌터의 화려한 데뷔 무대, SS급 헌터 에어포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패배한 신민수와 엘리지아 군대는 일산까지 후퇴했고, 에어포스를 앞세운 협회는 감염 중심지까지 진격했으나 그곳에는 여왕이 있었다.

일산은 이미 전멸했다. 만약 에어포스가 여왕과 대결했다가 패배하면 한국에 미래는 없다. 헌터 협회는 일산을 봉쇄하는 정책을 펼쳤다.

가장 많은 A급 헌터를 보유한 세인트 길드가 그 일을 맡았고, 신민수가 나타나면 에어포스가 출동하기로 약속되어 있었으나, 신민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엘리지아 세력과 한국 헌터 협회의 전쟁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여왕을 제거하세.”

고제하가 오랜 고민 끝에 말했다. 헌터들 사이에서 침음이 새어나왔다.

그들이 선뜻 동의하지 못하자 고제하가 설득하기 시작했다.

“던전 난이도를 특정하는 데 기술적인 한계가 생긴 이상, 이 현상이 더 커지기 전에 우리도 미국식 모델을 도입해서 컨트롤러로 상급 헌터들을 하급 던전에 한 명씩 보내야 하네. 물론 우리는 수가 모자라지. 하지만 일산 감염지의 확산을 막고 있는 상급 헌터들을 전국으로 보낼 수 있다면 어떤가?”

김성인이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그 신민수조차 던전 중심지를 공략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신민수는 최악의 마수가 되었고요. 차라리 B급 헌터들을 함께 컨트롤러로 쓰는 건 어떻습니까?”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 하지만 아까 프레젠테이션에서 해외 사례를 보면 A급 마수가 C급이나 D급 던전에서 출몰하는 경우도 수없이 많지 않았는가? B급 헌터를 모든 던전에 컨트롤러로 보내면 결국은 지속적으로 전력이 줄게 될 걸세.”

“에어포스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S급 헌터 백마중이 물었다. 인간 진단기라고 불릴 만큼 기감이 우수한 마법 헌터. 백마 길드의 대표이기도 하다.

에어포스는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산을 수복할 것을 주장해 왔습니다. 지금도 제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여왕도, 신민수도, 제가 제거하겠습니다.”

“당신은 분명 한국 최강의 헌터입니다. 하지만 자신감이 지나친 것 아닙니까?”

김성인이 말했다.

“신민수조차 당했습니다. 당신은 데뷔한 지가 얼마 안 되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를 수 있지만. 협회장님이 지병 때문에 전선에 못 나서는 대신에 헌터들을 지휘했던 인물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 헌터 협회의 정점인 남자였단 말입니다. 그조차 당했습니다.”

“저도 그 신민수를 꺾었습니다.”

“그러니까 더 문제죠.”

김성인이 모두가 우려하던 그 문제를 꺼냈다.

“신민수조차 꺾는 에어포스. 당신이 잡힌다면……. 이 문제는 더 이상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미군이 당시에 SS급 헌터들의 투입을 막았던 명분도 그것 아니었습니까.”

“전력 손실을 겁냈을 뿐입니다. SS급들이 질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엘리지아에게 안 잡힙니다.”

“어떻게 확신합니까?”

“저는 비행할 수 있으니까요.”

“허.”

힘 빠지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반박하기도 어렵다. 분명 에어포스는 적진 한가운데 둘러싸여도 비행으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제하 협회장의 주장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너무 큰 도박이다.

“외국의 SS급 헌터들의 지원을 요청하는 건 어때요?”

세인트 길드의 2인자, 차예빈이 말했다.

“그때도 안 들었는데.”

김성인이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지금은 일산에 대한 데이터를 우리가 많이 모았어요. 그걸 잘 정리해서 설득하면 올지도 모르죠.”

“누굴 생각하고 계십니까?”

고제하가 흥미를 보였다.

“미국의 샌드맨.”

“오우! 샌드맨? 디스거스팅 가이.”

차예빈의 말이 끝나자마자 코르소가 역정을 냈다.

“그 사람 미친 자예요. 더 위험해요. S급 던전보다. 유 노우 댓? 히즈 쏘 크레이쥐.”

“하지만 실력은 확실하지.”

김성인이 말했다.

“그도 에어포스처럼 SS급 헌터입니다. 우리 길드에 컨택할 방법이 있습니다. 또한 SS급은 아니지만 일본 S급 헌터 1위, 켄지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도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백마중이 중얼거리자 고제하가 단단히 못을 박았다.

“지금은 정신병자가 아니라 연쇄살인마라도 쓸 수 있다면 써야 합니다.”

“국내에도 아직 발굴되지 않은 상급 헌터들이 더 있을 겁니다. 김성인 마스터. 당신네 첫째 아드님이 곧 등급 심사를 앞두고 있지 않습니까? S급 판정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백마중이 물었다. 김성인의 표정이 약간 침울해졌다.

“우리 아들은 A급으로 판정될 것 같습니다.”

“A급도 가능한 전부 써야죠. 감염지의 엘리지아 유체나 아성체를 제거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준성체부터는 우리가 해야겠지만.”

“마스크맨은 어떨까요?”

차예빈이 말했다. 에어포스의 어깨가 움찔했다.

“마스크맨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되겠죠.”

김성인이 동의했다.

“하지만 연락할 수가 없잖습니까?”

“마스크맨이 누구일지 혹시 짐작 가는 분 있나요?”

“마스크맨은 일단 한국인인 것은 분명한 듯하고, 협회에 등록된 S급이 아니기 때문에 재각성 헌터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재각성 헌터를 한 명 알긴 압니다만, 마스크맨 수준은 아닙니다.”

백마중이 말했다.

“그게 누구죠?”

김성인이 묻자,

“백마 길드에 들어올 인재입니다. 여기서 공개할 순 없죠. 우리 김성인 대표님이 스카우트하려 하실 테니.”

“하지만 재각성이라면 심사를 받게 해야죠. 그리고 일산 전투에서는 적절한 업무를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백마중이 딱 잘라 말했다.

“마스크맨은 제가 연락할 방법이 있습니다.”

에어포스가 말했다.

“정말입니까?”

김성인이 반색했다.

“샌텀 타워 때 제가 직접 구출했으니까요.”

“하지만 마스크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만 연락처는 받았죠.”

“연락처가 있으면 다 아는 거죠 뭐. 통신 센터에 신원조회 요청해요.”

“아니요. 굳이 찾아내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니까요. 아무튼 제가 연락해서 도움을 청해보겠습니다.”

이후 회의는 고제하의 의견대로 일산 감염지를 소탕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합치되었다.

한국 헌터 협회는 ‘샌드맨’과 ‘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고, 추가로 이탈리아의 SS급 헌터 ‘안토니오 디 나탈레’를 고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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