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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54화 (54/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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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 054화

바토리 역시 아르동과 싸우던 윤성의 힘을 알고 있기에 그에게 대드는 것이 두려웠다. 윤성이 쏘아보자 바토리가 움찔했다.

하지만 그녀는 용기를 내어 말을 계속했다.

“나, 나는 기감이 뛰어난 편이라 너처럼 전투태세에 들어온 적에게선 마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지금 너는 아르동과 싸울 때의 절반도 안 되는구나. 나까지 감당할 수 있겠느냐?”

“글쎄. 그럼 그때의 힘을 내줄까?”

윤성이 허세를 부렸다. 바토리가 이를 으득 씹었다.

“제발. 내 은인과 싸우고 싶지 않다. 부탁이다.”

“그럼 이놈을 두고 가.”

“그럴 순 없다. 이 녀석은 내 친구니까.”

“아오!”

분노가 폭발했다.

“이 망할 새끼는 나와 이 헌터들을 공격했다. 이 꼴을 봐! 근데 살려주라고? 염치도 없지!”

윤성이 바토리를 확 밀치며 소리쳤다.

“대신 너도 하인스를 충분히 두들겨 팼다. 저들도 아직 죽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인스도 살려다오. 제발!”

“누가 먼저 쳤느냐의 문제지!”

-털썩

갑자기 바토리가 무릎을 꿇었다.

“만약 언젠가, 네가 내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언제든지 네 은혜를 꼭 갚겠다. 나뿐 아니다. 하인스도 이 빚을 반드시 갚을 것이다.”

“빚이란 게 나한테 칼빵 맞은 거 반드시 갚아주겠다는 얘기겠지? 난 그런 빚 남겨놓지 않아.”

윤성이 빈정거리며 단검으로 하인스를 겨누었다.

하인스는 공포에 질려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니다. 나도, 하인스도, 마계의 긍지 높은 전사들이다. 우리는 절대로 은혜를 잊지 않는다.”

아오, 이년이 생각보다 끈질기네. 어떡한담?

솔직히 지금 싸우면 바토리를 상대로 승산이 크지는 않다. 탑에서 뛰어내려서 1,900점의 버프를 얻었을 때야 바토리쯤 한 손으로도 농락할 테지만.

지금은 기껏해야 600점 정도의 버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바토리와 전투를 벌이는 것은 사실 위험하다.

그렇다고 살려주기에는 분이 안 풀려!

뒤통수 얻어맞기도 했고 왔다갔다 생고생을 얼마나 했는데.

‘뭔가를 얻어내야지. 못 이기니까 봐준다, 바토리가 무릎 꿇고 비니까 용서해준다. 이런 게 아니라 처 맞았던 것의 깽값을 받아낸다. 뭐 이런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말이야.’

윤성이 눈을 빛내며 하인스 앞으로 바짝 다가가 앉았다.

“이렇게 하자.”

“무, 무엇을…….”

“아까 나한테 하려던 얘기를 다시 해봐라. 넌 내가 흥미로워 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수호자에 대한 얘길 다시 해봐. 정보의 질이 좋으면 살려주지.”

하인스의 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워, 원래 지구는 다중 우주로 이루어져 여러 차원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마계도 그 차원들 중 하나입니다.”

헌터계에서도 꽤 유명한 가설이다. 여기까진 별로 흥미로운 내용이 없고.

“그래서?”

“수호자는 그 차원들을 관리하는 신입니다. 원래는 차원간의 간섭을 막기 위해서 차원을 나누었지만, 최근에 그 틈을 열어두셨지요. 이제 뛰어난 마력을 가진 존재들은 차원을 넘나들 수 있습니다.”

“왜 갑자기 막을 열었지?”

“그건 저도 모릅니다.”

“수호자를 만날 방법이 있나?”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계 외에 다른 차원은 무엇이 있지?”

“그것도 잘…….”

“좋아. 넌 사형이야.”

윤성이 단검을 꽉 쥐며 일어났다.

“안 돼! 살려주십시오! 제가 아는 차원이 하나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하나 있어요!”

“뭔데?”

“엘리지아 차원입니다.”

윤성의 표정이 굳었다. 그 대화를 듣던 리나도 마찬가지다.

신차민과 나머지 두 헌터는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했지만.

“엘리지아라고 했냐?”

“그렇습니다…….”

“그 엘리지아가 내가 아는 일산 감염지의 엘리지아냐?”

“맞다.”

바토리가 대신 대답했다.

“인간계로 온 후에 내가 직접 그들을 보았다. 확실하다.”

엘리지아.

일산 S급 던전의 타입이다. 여왕을 중심으로 군집 생활을 하며 개체 하나하나가 막강한 힘을 가져서 헌터 역사를 통틀어 최악의 던전으로 분류된다.

한국 헌터 협회는 아직까지도 그것을 처리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엘리지아는 지금도 일산을 지배하고 있다.

“엘리지아가…….”

윤성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에게는 엘리지아에 대한 분노가 더욱 특별했다. 부모님이 죽고 세 남매가 고아가 되었던 날이 바로 엘리지아 군대가 홍제로 넘어오던 때였기 때문이다.

중3이었던 윤성은 부모님이 살해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어린 두 동생을 등 뒤에 둔 채 겁에 질려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던 그때, 에어포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엘리지아가 다른 차원의 마수라고?”

윤성의 물음에 뒤에서 바토리가 대답했다.

“마수라고 하기엔 어려움이 있지. 그들에겐 우수한 지능이 있다. 마족이나 인간처럼. 엘리지아는 다른 차원에서 지구를 지배하는 지성종족이다.”

윤성이 이를 부득 씹자 바토리는 지금이 적기임을 깨달았다.

“만, 만약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릴 살려주면, 후에 인간이 엘리지아와 싸울 때 우리가 너흴 돕겠다.”

“그딴 말을 믿을 것 같아?”

윤성이 하인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넌 아까 마왕이 강림하면 어쩌고 했지? 너희들도 결국 지구를 지배하려는 것 아니냐? 엘리지아처럼! 이곳에서 S급 던전 범람을 일으키려는 것 아니냐고!”

“마, 마왕님께선 그런 생각이 없으십니다.”

“근데 넌 여기서 던전을 운영하고 있잖아! 이 개자식아! 약 그만 팔고 사실대로 불어!”

“정말입니다. 현 마왕께선 전혀 그런 생각이 없으십니다. 하지만, 그룬헤잘드 님은…….”

“그건 또 누구야?”

“나와 하인스의 상관이다.”

바토리가 말했다.

“마계의 절대 권력 중 하나인 그룬헤잘드 후작. 라플라스나 르네 같은 강자들과 함께 차기 마왕 후보들 중 하나다.”

“그놈이 마왕이 되고 싶어 하는 건가? 마왕이 되면 지구를 침공할 거고?”

“반대입니다. 이곳을 삼키고 그 힘을 바탕으로 마왕이 되고 싶어 하시죠.”

“×발.”

미친 새끼들이 지구에서 왜 이러는 거야?

“그룬헤잘드를 지난번 아르동과 비교하면 어떻지?”

윤성이 묻자 바토리가 우물쭈물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아르동 남작은 엄청나게 강력했지만, 나는 그룬헤잘드 님의 힘의 끝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아르동과 비슷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보다 몇 배 이상 강할 수도 있다.”

“결국 그룬헤잘드가 지구를 침공하면 그놈 편에 붙어서 인간을 죽이려 하겠군?”

하인스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바토리는 고개를 저었다.

“난 그룬헤잘드 님의 저택에서 신세를 지고 있지만, 그분의 하인은 아니다. 나는 몰락한 귀족 가문 바토리의 유일한 후계. 내 주인은 마왕 한 분뿐이다.”

“바토리 님!”

하인스가 소리쳤다.

“그룬헤잘드 님을 배신하겠다는 겁니까?”

“그룬헤잘드 님께서 이곳을 침공하겠다고 하신다면.”

“흠.”

윤성은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하자. 바토리는 아직까지 마계로 돌아가지 못한 걸 보니 가는 법을 모르는 모양이지?”

“그렇다.”

“하지만 하인스? 이름이 하인스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넌 마계에서 이곳으로 직접 왔다. 던전을 운영하려고. 반대로 돌아가는 길도 알겠지?”

“좀 번거롭지만 방법은 압니다.”

“그 방법을 내게 넘겨라. 그럼 널 살려주마.”

“설마 그룬헤잘드 님을 직접 칠 생각이냐?”

바토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하인스는 코웃음을 쳤다.

“이런 것은 용기가 아니라 판단 미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목숨을 가볍게 쓰지 마십시오.”

“어찌 되는지는 나중에 두고 보고. 일단 길부터 알려줘.”

갑자기 하인스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조그만 돌 두 개였다.

“하나는 바토리 님께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당신이 가지시죠.”

“순간이동석?”

윤성이 알아보자 하인스의 눈이 커졌다.

“아시는군요. 하지만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어째서지?”

“순간이동석은 한 번 사용하면 방전되는 것입니다. 이 돌은 마계가 기록되어 있지만 사용하려면 많은 마력을 충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탑으로 가는 순간이동석도 재사용이 안 되었었군.

“어떻게 충전할 수 있지?”

“마력을 가진 존재를 죽이면 자동으로 충전될 겁니다.”

“설마…….”

윤성이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하인스가 황급히 변명했다.

“저, 저 아직 인간을 죽인 적은 없습니다! 오늘이 처음이 될 뻔했습니다만.”

“좋아. 혹시 이 돌이 엉뚱한 데로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니겠지? 함정을 파두었다거나.”

“왜 그러겠습니까? 그룬헤잘드 님께 직접 죽으러 가신다는데. 세상 그 어떤 함정도 그룬헤잘드 님의 저택보다 위험하진 않습니다.”

하인스는 거짓말로 추궁 받은 게 기분 나쁜 듯 말했다.

“의심스러우면 제가 가진 다른 것들이나 바토리 님 것과 바꾸시죠.”

“아니. 됐어.”

윤성은 순간이동석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룬헤잘드라는 놈을 지금 잡을 수는 없겠지만 이집트에 다녀오면 얘기가 또 다를 거다.

그리고 하인스와 바토리.

하인스는 모르겠지만 바토리는 여차하면 이쪽의 전력에 보탬이 될 수도 있는 여자다. 하인스 같은 떨거지를 살려주어서 바토리의 호의를 살 수 있다면 하인스를 굳이 죽일 필요는 없다.

게다가 지금 가진 버프로는 바토리를 이길 가능성 자체도 낮고.

“그럼 너는 살려주마.”

윤성이 자비를 베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으마.”

바토리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막 돌아서려던 그녀에게 윤성이 물었다.

“그리고 혹시 통역 마법 스킬석 같은 것 있냐?”

만약 얻을 수 있다면 꼭 챙겨야 한다. 이집트에서 요긴하게 쓰일 일이 있을 테니까.

“인간 헌터들은 스킬석 같은 걸 쓰는 모양이군. 우린 주로 마법책을 사용한다. 마계에 가면 가지고 오겠다.”

“흠. 알았어.”

별로 믿음은 안 가지만 밑져야 본전이니까.

“반드시 가져오마. 그리고 다음에 내 도움이 필요하면 너를 꼭 크게 돕겠다.”

바토리가 다시 한번 윤성에게 인사하고는, 초주검이 된 하인스를 일으켜 세웠다.

“가자. 하인스. 한동안 나와 함께 있어라. 마계로 돌아갈 때까지. 이 일에 대해서 그룬헤잘드 님께 따질 것이다. 상황에 따라 나는 마왕성으로 가겠다.”

“잠깐만. 샤샤는 죽였냐?”

윤성이 묻자 하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던전이 왜 안 닫히지?”

“내가 보스니까…….”

“그럼 널 죽여야 하냐?”

“아, 아니!”

하인스가 황급히 마법을 발동했다. 윤성은 몰랐지만 던전의 주인들만 쓸 수 있는 스킬이었다.

-쿠우우우!

게이트에서 마력이 대기 중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부상이 심각한 하인스는 큰 마법을 쓴 탓에 더욱 지친 몰골이 되었다.

바토리가 그의 팔을 목 뒤에 둘러 부축했다.

천천히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윤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저기…….”

그의 뒤에서 리나가 말했다.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스크맨.”

“괜찮아요. 이 정도야 뭐.”

“박형철 씨랑 김유정 씨를 혹시 다시 치료해 주실 수 있나요?”

아까 했는데.

“지금은 못 합니다. 제 스킬에는 쿨타임 비슷한 게 있어서.”

“그렇군요…….”

“아무튼 지원 불러서 다들 치료받고 귀가하시고.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윤성은 리나를 내버려 두고 산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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