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레벨업 속도는 9.8m/s^2 053화
지금 한국에서 헌터업에 종사하는 이들 중 마스크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샌텀 타워 앞에서 범람한 A등급 던전 가루다를 혼자서 클리어해 버린 헌터.
은행을 털던 강도들과 도주 중인 연쇄 살인범 B급 헌터였던 방현식을 몇 분 만에 제압한 헌터.
에어포스 헌터 스쿨을 집어삼킨 침식형 던전에서 S급 보스인 마족 남작을 처치한 헌터.
윤성은 사실상 국내에서 최근에 가장 핫한 인물이 되어 있었다.
헌터이면서 SNS 스타이기도 한 리나의 유명세도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저희를 구해주신 건가요?”
리나가 고개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지나가다 운 좋게 발견했습니다.”
윤성이 목소리를 깔고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5인 제한이 있는데 어떻게 들어오셨…… 헉!”
리나의 눈이 커졌다.
“윤성 씨가 죽어서…….”
“아닙니다. D급 헌터 말씀하신 거죠? 그분은 치료해서 귀가시켰어요.”
윤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 고유 스킬입니다. 침식 던전도 뚫고 들어간 적 있는데 5인 제한쯤이야.”
“끄으응…….”
김유정이 신음 소리를 냈다.
“유정 씨. 괜찮아요?”
그쪽으로 관심을 돌린 리나가 그녀의 뺨을 톡톡 치며 깨웠다.
“전부 외상은 치료했으니 금방 깨어날 겁니다. 저 꼬마도요.”
윤성이 신차민을 가리켰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떻게든 사례할게요.”
리나가 다시 한번 윤성에게 인사했다.
“아니 됐어요.”
“근데 던전은 클리어된 건가요?”
“그건 아니고. 그놈이 이상한 스킬을 써서.”
“이상한 스킬?”
“네, 무슨 악마의 방패인지 뭔지…….”
“마스크맨! 뒤!”
리나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늦었다.
-쾅!
윤성의 등 뒤에서 마족의 강력한 마법이 날아들었다.
방심했다.
솔직히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아무리 요즘 가는 던전마다 이상 현상들이 득실댔다지만, 그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마수가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다니.
윤성의 허리 위에 작렬한 스킬은 마계의 상급 공격 마법 중 하나인 블로잉아웃.
강렬한 충격파로 체내의 장기들을 뒤흔들어 치명상을 입히며 동시에 상대를 멀리 날려 버리는 스킬이다.
허공에 떠서 수 미터를 날아가며 윤성의 의식이 점차 희미해졌다.
쿵!
언덕 아래로 넘어간 마스크맨의 몸뚱이가 어딘가에 부딪히는 큰 소음을 냈다.
리나의 얼굴에 절망감이 번졌다.
분노한 마족이 오싹한 눈빛으로 모두를 쏘아보고 있었다.
“보, 보스가…… 여기까지 나왔잖아!”
경악한 레이드 팀원들이 재빨리 일어나며 전투 준비를 했다. 아직 부상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도 않았지만 싸울 수밖에 없다.
“흐아아압!”
박형철이 먼저 ‘도발’을 썼지만,
“그따위 잡스킬로 내 시선을 끌면 네놈이 버틸 수는 있겠느냐?”
마족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는 박형철보다 훨씬 전투력이 높은 존재였다. 마족은 차가운 눈으로 리나와 유정을 훑어보았다.
“아까도 이렇게 말했다만. 계집 둘은 지금 달아나면 살려주마. 나는 고귀한 마족 전사. 여자를 살해하는 취미는 없다.”
리나는 대답 대신 마법 소총을 겨누었다.
마족이 빙긋 웃었다.
“그렇게 모두 죽고 싶으냐?”
-탕!
리나의 총에서 발사된 마법탄이 신호였다. 박형철이 곧바로 철퇴를 휘두르고 김유정이 화염구를 쏘았다. 하지만,
“인간의 공격이란 정말 하찮군.”
마족은 박형철의 철퇴를 한 손으로 막았고, 날개를 펼쳐 화염구를 막았다. 리나의 마법탄은 날개를 찢고 들어갔으나 마족은 뿔로 탄환을 받아냈다.
식은 탄환이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철퇴가 붙잡힌 박형철의 팔 근육이 덜덜 떨렸다. 마족은 한 손으로 사뿐히 잡고 있는데도 그가 온 힘을 다한 것보다 강했다.
-퍽!
마족의 주먹이 박형철의 복부에 박혔다.
박형철은 신음을 토하며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탱커든, 마법사든, 저격수든, 급수의 차이가 많이 나면 클래스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쩍!
내리친 당수가 박형철의 뒷목을 쳤다. 박형철은 그대로 기절해서 움직이지 못했다.
이어서 마족은 날갯짓을 한 번 해서 김유정의 앞까지 날아왔다. 유정의 목을 한 손으로 죄고는 땅에 처박았다. 이번에도 단 일격에 김유정은 의식을 잃었다.
“왜 도망가지 않지?”
마족이 리나에게 물었다. 리나는 떨리는 손으로 저격소총을 겨누었다.
“내, 내가 리더니까.”
“풋.”
마족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네가 리더라고? 아까 해독제를 찾으러 왔던 그놈이 아니고?”
“뭐?”
“네 실력은 그 녀석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저 언덕 아래에서 안 올라오는 걸 보니 죽었거나 튄 모양이군. 승산이 없는 걸 모르느냐?”
마족이 주위를 둘러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리더 타이틀을 달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알량한 책임감이 어떤 결말을 낳는지 보여주마. 네년은 쉽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다음 순간, 리나는 머리카락을 뒤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에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앞에 서 있었던 마족이 순식간에 그녀의 뒤로 날아와 머리를 잡아당긴 것이다.
-툭.
마족은 리나의 다리를 걸어 쓰러뜨렸다. 그녀의 머리를 땅에 몇 번 찧은 후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뱀 같은 혀를 날름거렸다.
“따라와라, 인간.”
마족은 리나의 머리카락을 쥐고 질질 끌었다. 그녀를 데려간 곳은 쓰러진 박형철의 앞. 마족은 박형철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이놈을 총으로 쏴라. 그럼 나머지는 살려주지.”
“뭐라고?”
“아니면 내가 발에 힘을 주어 대가리를 터뜨리길 바라나?”
“잠깐만!”
“자. 시간이 없다. 네년의 선택이 나머지를 살릴 수 있다. 죽이지 않으면 전멸뿐이다.”
“아…….”
“어서!”
마족이 다그쳤다.
리나는 울컥 눈물이 솟아올랐다. 정말로 마족은 모두를 죽일 힘이 있다. 발끝에 조금만 힘을 줘도 박형철의 머리는 힘없이 으깨질 것이고, 그다음은 그녀의 차례다.
그다음엔 김유정, 그다음엔 신차민…….
“안…… 돼.”
말이라기보단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
놀랍게도 그것은 신차민이었다. 외상은 모두 치유되었고 독도 제거되었지만 체력이 고갈된 신차민은 힘없는 눈으로 셋을 바라보고 있었다. 숨을 할딱이면서 바닥을 기었다.
마족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뭐라고 옹알거리는 거야. 애새끼가. 이미 뒈진 놈인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군?”
마족은 신차민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편하게 해주지.”
손톱이 길어졌다. 그가 마력이 담긴 손톱으로 신차민의 목을 찌르려던 바로 그 순간,
“뭐냐?”
마족의 목소리.
어느새 근처 절벽에 나타난 바토리가 전장의 한가운데로 풀쩍 뛰어내렸다. 그녀는 모자를 푹 눌러써서 뿔을 가리고 있었다.
“마족의 기운이 느껴져서 와보았더니, 웬 놈이냐?”
“바, 바토리 님.”
마족은 황급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하인스.”
바토리가 마족의 이름을 불렀다. 마계의 최고 권력 중 하나인 그룬헤잘드 후작의 병참관 하인스.
바토리 역시 그룬헤잘드의 저택에서 신세를 지는 귀족이기에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바토리 님을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째서 인간계에 나와 있지?”
“그룬헤잘드 님의 명령으로 던전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현 마왕께선 그런 일을 엄격히 금하신다. 모르느냐?”
“알고 있지만, 제겐 그룬헤잘드 님의 명령이 우선입니다. 그러는 바토리 님께선 왜 인간계에 나와 계십니까?”
“아르동 남작과 싸우던 중 차원 이동에 휘말렸다.”
“아르동 남작이 정말 인간과 계약을 맺었었나요?”
“그보다 더했다. 아무튼 남작은 죽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상당히 강력한 귀족이었을 텐데요. 혼자 그 일을 처리하시다니.”
“혼자 한 건 아니고. 강력한 인간이 도와주었…….”
바토리의 말이 멈추었다.
몇 미터 건너편에서 강렬한 마력이 느껴졌다.
방독마스크를 쓴 남자가 투지를 불태우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너, 너는…….”
바토리가 몸을 떨었다.
바토리는 황급히 상황을 파악했다.
이곳에 쓰러진 헌터들. 여기저기 전투의 흔적을 안은 채 분노한 마스크맨 강윤성. 그리고 던전을 운영 중이라면서 바깥까지 나와서 마력을 불태우는 병참관 하인스.
아마 이들이 전투를 벌였던 모양이다. 하급 헌터들 정도야 하인스가 혼자서 충분히 정리할 수 있었을 테지.
하지만 강윤성이 일어났다. 아르동 남작을 박살 내버렸던 사내.
“자, 잠깐, 잠깐만 기다려라.”
“너도 죽고 싶지 않으면 빠져 있어.”
윤성의 눈이 불타올랐다.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의 양손에서 발사된 섬광이 하인스의 몸 곳곳을 꿰뚫었다.
“크악.”
하인스는 황급히 검은 장막을 둘러서 악마의 방패를 만들어냈다.
“흥.”
<랜더의 전투화 발동!>
윤성의 몸이 별안간 하늘로 치솟았다.
“뭐야?”
놀란 바토리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참 위, 까마득한 높이에서, 윤성이 추락하고 있었다.
-슈우우욱!
그는 기묘한 착지자세를 잡았다.
-콰앙!
“이제 300점 추가했다. 이 개새끼야. 됐냐?”
<빛의 탄환 발동!>
전보다 한층 밝아지고 직경이 굵어진 섬광이 하인스의 방패를 꿰뚫었다.
“카악!”
구멍 난 검은 장막의 틈에서 피가 울컥 흘렀다.
하지만 윤성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검 투척 타깃.>
온힘을 다 싣는다.
현재 그의 힘은 기본값 206점에, 추가된 버프로 806점에 이르렀다.
-콰앙!
“아아악!”
악마의 방패와 하인스의 몸을 아예 관통해버린 종단 속도의 단검이 반대편 벽에 박혔다.
하인스는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
너무 큰 데미지를 받은 악마의 방패는 저절로 부서졌고, 하인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슴에 생긴 관통상을 더듬었다.
그 순간.
“회수.”
-푸학!
반대편에서 돌아온 단검이 다시 한번 하인스의 아랫배를 뚫어버렸다.
마족 특유의 질긴 생명력 때문에 즉사하지 않았지만 치명상이다. 하인스는 바닥에 쓰러진 채 와들와들 떨었다.
윤성은 손에 쥔 단검을 칼집에 집어넣고 리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머지 둘은?”
“기, 기절했어요…….”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쓰러져 있는 박형철과 김유정을 가리켰다.
“아오. 기껏 치료해 놨더니.”
윤성이 분노 가득한 목소리로 툴툴댔다.
방금 점프하여 랜딩하면서 버프 스킬이 바뀌었다.
스킬명 티타늄 펀치.
힐링이 없어져서 쓰러진 헌터들을 치료하지 못한다.
윤성은 박형철과 김유정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둘 다 치명상은 없는 듯했다.
신차민은?
의식이 가물가물한 모양이다. 숨은 안정되었고 열도 없지만 깨어나진 못했다.
“지원 불러요.”
윤성이 리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짜증 섞인 눈빛으로 하인스를 쏘아보았다.
“이 망할 새끼야. 힐링 스킬 먹으려면 얼마나 고생해야 하는지 알아? 뒈지려고 진짜.”
언젠가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분노가 가중되었다.
지금 나온 스킬이 티타늄 펀치랬나? 딱 스트레스 풀기 좋군.
하인스에게 다가간 윤성은,
<티타늄 펀치 발동!>
스킬을 썼다.
그의 주먹이 광이 나는 흑색으로 변했다.
-콰아앙!
그야말로 살인적인 펀치.
얼굴을 정면으로 얻어맞은 하인스는 안면의 골격이 함몰되었다. 피를 콸콸 쏟으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쯧. 별로 기분 풀리진 않는군. 그냥 끝을 내주마.”
윤성이 단검을 치켜드는 순간.
“자, 잠깐만!”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보던 바토리가 튀어나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아끼는 친구다. 한 번만 살려다오.”
“너도 죽여 버리기 전에 비켜.”
바토리가 주먹을 꽉 쥐었다.
“마스크맨. 본래 하인스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분명 이곳에 던전을 연 데에도 어떤 사연이 있을 거다.”
“이, 인간!”
하인스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숨을 짜내어 말을 걸었다.
“어, 어찌 인간 따위가 어떻게 그런 힘을…….”
윤성이 못마땅한 듯 그를 가만히 쏘아보다가 바토리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안 돼. 얘는 말투만으로도 사형이야.”
윤성이 단검을 집어 들자 바토리가 재빨리 그 앞으로 달려왔다.
그녀가 다시금 윤성을 막아섰다.
“네, 네 힘은, 강력하긴 하지만 들쭉날쭉한 것 같구나.”
그녀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