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레벨업 속도는 9.8m/s^2 051화
“뭐야?”
윤성이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도망치던 박형철이 다시 뛰어 내려오는 중이다.
“무슨 일이에요?”
리나가 물었다.
“보, 보스! 보스!”
“네?”
“리자드맨! 샤샤가 있어요!”
샤샤.
리자드맨 전사장의 이름이다.
리자드맨들이 보스를 ‘샤샤’라고 부르기 때문에 사람들도 그를 ‘샤샤’라고 이름 지은 것인데, 사실 리자드맨들이 보스를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입버릇이었다.
뱀들의 쉬익거리는 소리와 비슷한 것.
“쒸이이익.”
박형철의 뒤에서 거대한 크기의 리자드맨이 어슬렁어슬렁 기어 내려온다. 샤샤 때문에 쫓겨 내려온 박형철과 김유정이 다시 리나의 뒤까지 왔다.
뜻밖에 레이드 팀이 다시 합쳐졌다. 앞에는 샤샤, 뒤에는 리자드맨 수십을 두고 있다는 점이 문제지만.
“으, 으으.”
김유정의 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크으으…….”
샤샤가 레이드 팀을 향해 창을 뻗었다.
“키아아아아!”
샤샤의 포효와 함께 리자드맨들이 일제히 레이드 팀을 향해 들이닥쳤다. 박형철은 떨리는 손으로 철퇴를 치켜들었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
-탕! 탕!
오직 리나만이 마법 소총을 발사하며 저항했지만 별 의미가 없었다.
‘어쩔 수 없군.’
팀원들이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윤성은 종단 속도의 단검을 들고 어깨에 힘을 주었다. 한 번 집어던지는 것만으로 직선 방향의 리자드맨 일곱 이상을 날려 버릴 수 있다.
그의 팔뚝에 힘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하지만,
“캬아악!”
샤샤가 다시 소리를 지르자 리자드맨들이 일제히 뒤로 빠졌다.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일사불란한 움직임.
하지만 뭔가 이상하군? 전혀 빠질 이유가 없는데.
의아한 표정으로 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던 윤성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독사 한 마리가 스르르 기어서 리자드맨 무리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크윽.”
신차민이 발목을 움켜쥔 채 주저앉아 있었다.
“신차민!”
놀란 리나가 차민의 발목을 살펴보았다.
“중. 독.”
샤샤가 말했다. 또박또박한 한국어 발음이다.
원래 리자드맨들은 인간의 언어를 어느 정도 모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너희. 내. 명령. 듣-는다.”
샤샤가 쉬익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사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어쩌잔 거야?”
윤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리자드맨들의 수법 중 하나다. 인간을 잡아서 중독시킨 다음 해독제를 가지고 딜을 거는 것.
“보스. 방.”
샤샤가 말했다.
무슨 딜을 하려나 조마조마한 기분이었는데, 정말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뺏. 겼다. 마. 수. 너희. 가. 죽-인. 다.”
“보스방을 뺏겼다고? 다른 마수한테?”
“쉬이익.”
리나도 황당한 표정이다.
뭐 이런 던전이 다 있어? 입구는 E급 스켈레톤. 그 안쪽은 D급 리자드맨이 나오더니, 심지어 샤샤가 보스방을 뺏겼어?
“우리 보고 보스를 처치하라는 거야?”
리나가 물었다.
“그. 렇. 다. 가라. 지. 금.”
샤샤가 창을 뻗어 던전 안쪽을 가리켰다.
리자드맨 무리가 스르르 다가와 레이드 팀을 에워쌌다.
“쒸이익.”
그들은 마치 레이드 팀을 안내하듯이 천천히 던전 안쪽으로 이끌었다.
“어, 어떡하죠?”
박형철이 물었다.
“일단 따라갑시다.”
윤성이 말했다.
“샤샤가 보스방을 뺏길 정도의 적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겨요?”
박형철이 울상이 되어 외쳤다.
‘난 이길 수 있는데.’
윤성은 말을 꼴깍 삼키며 앞장서 움직였다. 정체를 들키지 않고 차민도 구하려면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쒸이이익.”
리자드맨들이 박형철의 등을 창끝으로 툭툭 쳤다.
겁을 먹은 박형철이 비로소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죽을상을 한 김유정도 마찬가지.
리나만이 윤성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만약.
혹시 정말로 이 남자가 백화점의 그 사람이라면 C급 땅굴벌레까지 날려 버렸던 그 힘으로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서 갑시다.”
윤성은 담담히 헌터들과 함께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에서 길게 내려온 종유석과 그 끝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 동굴 곳곳의 틈새로 졸졸 흐르는 물냄새.
그 사이에서 꿈틀거리며 창으로 땅을 탕탕 치는 리자드맨. 그들의 수는 엄청나게 많았다. 언뜻 보아도 150마리 이상.
이것도 특이한 상황이다. 리자드맨이 이렇게 많다면 이들을 통솔하는 샤샤의 실력도 보통이 아닐 터. 아마 D급에서도 최상위권일 터다.
그런데도 던전을 빼앗겼다고?
레이드 팀의 헌터들은 모든 것이 공포스럽다. 던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보스방이 가까워올수록 박형철은 공포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어, 얼마나 더 가야 하죠?”
리나가 물었다.
“캬악!”
리자드맨 하나가 쇳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펴 보였다.
다섯 개.
“5분?”
리자드맨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오 분의 삼 정도를 왔다고요?”
리자드맨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 흑흑…….”
김유정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일 먼저 레이드를 포기해버린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매우 뜻밖에도,
“나, 난 못하겠어.”
윤성이 우뚝 멈춰서며 말했다.
“뭐라고요?”
리나가 황당한 듯 물었다. 그들의 뒤에 리자드맨 10여 마리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윤성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까는 담담히 나섰잖아요! 이럴 시간 없어요. 힘닿는 데까진 할 수 있는 만큼 해야죠.”
리나의 나무람에,
“아깐 미쳤었나 봐요. 이 정도로 위험한지 몰랐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무서워요.”
윤성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툭.
리자드맨 둘과 부딪쳤다. 윤성은 뒤를 힐끔 돌아보더니,
-파악!
리자드맨들의 어깨를 밀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흐악!”
몇 걸음 못 가서 그 뒤의 리자드맨들에게 붙들렸다. 리자드맨들은 윤성을 거칠게 밀어 벽 쪽에 던져 버렸다.
-첨벙!
바닥에는 석회수가 가득했고, 그 위에 쓰러진 윤성의 가슴을 향해 리자드맨들의 창이 날아들었다.
-콱! 콱! 콱!
윤성의 몸이 꿈틀꿈틀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축 늘어졌다.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충격받은 리나는 입을 가린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고, 곧 꺽, 꺽 하는 울음소리를 냈다.
“캬아악!”
“쒸이익!”
리자드맨들이 레이드 팀을 재촉했다. 그들은 헌터들을 이끌고 던전 안으로 계속 진입했다.
석회암 바닥에 그들의 걸음이 울리고 리자드맨들의 꼬리가 쓸렸다. 쓰륵, 쓰륵 하는 소리.
그 소리와 바닥의 진동이 점차 희미해지자,
“휴우.”
윤성이 고개를 들었다.
“간지러워서 웃음 터지는 거 참느라 죽는 줄 알았네.”
그가 가슴과 배를 손바닥으로 더듬으며 혼잣말을 했다.
자, 그럼 가볼까.
샤샤의 목을 따고 신차민을 구하러.
***
리나는 영민한 헌터다. 박형철과 김유정도 1인분 이상은 한다.
좀 찌질하고 이기적이며 겁도 많지만, 그래도 E급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실력자들.
그들의 호흡과 전력을 고려해볼 때 레이드 팀이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을 질질 끌며 장기전을 하겠지.
물론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샤샤를 쫓아낼 정도의 보스니까. 어쩌면 압도적인 힘으로 순식간에 팀을 다운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지수인 보스전과 달리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보스를 잡고 돌아가면 차민은 백 퍼센트 죽는다.’
차민은 스쿨 학생이다. 아무리 잠재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기껏해야 D급 최하위권이거나 E급 수준. 각성을 못 해서 마력에 대한 저항력은 E급 이하일 테고, 독성에 대한 저항도 없다.
그 이상 시간을 빼앗기면 그 애를 살릴 방법은 없다. 하지만.
“샤샤는 해독제를 가지고 있겠지.”
그래야 여차하면 즉석에서 딜을 할 수가 있으니까.
윤성은 여태 왔던 길을 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캬아악!”
중간중간 마주치는 리자드맨들에게는 빛의 탄환을 날려주었다.
퓽!
한 발에 하나씩 사살했다.
달리는 속도는 줄이지 않는다.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대한 빨리 돌아가서 샤샤의 목을 따야 하니까.
“키이익?”
던전의 타입이 바뀌었던 경계 근처.
계단 아래에 수십 마리의 리자드맨들이 모여 있었다.
그래, 아까도 이걸 해보고 싶었지.
<단검 투척 타깃.>
정면에 선 리자드맨의 머리 위에 떠오른 메시지창.
윤성은 야구공을 던지는 듯한 투구 자세를 취했다.
근육에서 힘줄이 불끈 선다. 윤성의 힘은 약 200점. 게다가 종단 속도의 단검은 그 속력의 기본값이 115㎧다.
기본값으로도 엄청난 위력인데 거기에 B급 헌터 수준의 힘이 더해지면?
-콰아앙!
윤성이 던진 종단 속도의 단검이 굉음을 내며 정면의 리자드맨과 충돌했다. 리자드맨은 머리가 사라져버렸다.
물론 단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콰직!
-퍽!
-쩌억!
직선으로 리자드맨들을 관통하며 날아갔다.
‘무슨 볼링하는 기분이군.’
점수로 치면 스트라이크. 직선으로 쓸어버렸다는 점이 약간 다르지만.
좁은 수로를 진격하던 리자드맨 여섯 마리가 단검에 한꺼번에 쓰러졌다.
“캬아아아!”
날카로운 쇳소리가 계단 위에서 터져 나왔다. 샤샤의 것.
리자드맨들이 일제히 윤성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윤성의 눈이 번뜩였다.
<라이트닝 발동!>
A급 마수 가루다도 한 번에 쓸어버렸던 막강한 스킬이다. 버프가 빠진 지금 지능은 당시보단 낮지만, 대신 적들은 가루다보다 훨씬 약하다.
-빠지지직!
번개가 휩쓸고 지나간 현장은 그야말로 학살 그 자체. 리자드맨 절반이 순식간에 엄청난 화상을 입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나 리자드맨들의 숫자는 너무 많아서 그들 중 일부가 결국은 시체들 사이를 뚫고 들어왔다.
앞장선 것은 리자드맨 중에서도 거대한 덩치와 육중한 창을 들고 있는 녀석. 놈이 윤성을 향해서 창을 내질렀다.
퉁!
그러나 랜더의 코트도, 그 안의 전투복도, 그 안의 윤성의 피부도. 모두가 하급 던전에서는 오버 스펙이다.
리자드맨의 창은 마치 요지처럼 느껴졌다. 아깐 실제로 간지러웠지.
철강을 찌른 듯한 느낌에 리자드맨이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윤성은 맨주먹으로 리자드맨의 턱을 후려쳤다.
-쾅!
윤성의 주먹이 스친 리자드맨의 턱이 아예 꺾여 버렸다. 이빨이 와르르 빠지면서 리자드맨은 그대로 쓰러졌다.
순간, 윤성은 살아남은 리자드맨 일곱이 자신을 에워싸는 것을 확인했다.
윤성은 계단 옆 벽에 박힌 단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휙!
매서운 속도로 윤성의 손아귀를 향해 빨려 들어오는 종단 속도의 단검.
이제 근접전인가.
윤성이 앞으로 성큼 나섰다.
“크르르…….”
겁을 먹은 리자드맨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윤성은 단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그들을 향해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