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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50화 (50/260)

# 50

레벨업 속도는 9.8m/s^2 050화

“당신, 혹시 포천 던전 사건 강윤성이오?”

그때 리나의 뒤에 서 있던 덩치 큰 탱커가 물었다. E급 헌터 박형철이다.

윤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런. 재수 없게.”

“뭐라고요?”

리나가 깜짝 놀라며 돌아보았지만 박형철은 무시했다.

“어서 들어갑시다. 던전. 시간 늦었으니.”

“아니, 같은 팀원에게 방금 무슨 소릴…….”

“됐습니다. 가시죠.”

윤성이 제지했다. 박형철과 함께 온 E급 헌터 김유정도 하품을 했다.

“빨리 시작해요. 레이드 끝나고 쇼핑하러 가야 돼요. 오늘 맥 신상 나온단 말이에요.”

두 사람의 핀잔에 리나의 레이드 팀은 게이트 안으로 입장했다.

윤성은 랜딩을 하지 않고 왔다. 이젠 B급 상위권의 전투력을 가졌으니 랜딩 버프 없이도 E급 던전 따위는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었다.

레이드 팀은 탱커인 박형철이 1선에 서고, 윤성과 김유정이 그 뒤, 가장 후미에는 리더인 리나와 신차민이 서는 포지션이었다.

리나는 D급 헌터지만 원거리 저격수다. 아무래도 박형철이 장비나 힘이 더 좋을 것이기에 만들어진 포지션이다.

물론 윤성의 입장에서는 박형철이 썩 믿음직스럽진 않다. 윤성은 이미 D급 탱커와 비교도 못 할 정도로 힘이 좋았다.

보급형이지만 헌터의 품격에서 가장 좋은 제품인 전투복도 박형철의 전투복보다 더 방어력이 뛰어났고.

무엇보다 그 위를 덮은 랜더의 코트는 에어포스가 쓰던 S급 방어복이었다. 물론 레이드 팀원들은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바스락.

윤성의 귀가 움찔했다. 던전 끝에서 움직이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달그락거리는 뼈관절 소리.

스켈레톤이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윤성은 미리 주의를 줄 수 있었지만 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상황은 완전히 통제하고 있으니 문제없다. 스켈레톤 몇 정도는 맨손으로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성질 고약한 컨트롤러들은 이렇게도 레이드를 진행하곤 한다. 후배 양성을 위해서.

“잠깐.”

몇 미터 더 전진한 후 리나가 팀원들을 멈추게 했다.

성격 좋은 컨트롤러였군. 게다가 역시 D급 헌터답다. 기감이 제법이다.

그녀는 마법 소총을 들어서 마력을 불어넣었다. 전 재산을 털어서 산 마법 소총에는 C급 마정석이 박혀 있다.

탕!

발사된 총알이 마력을 받아 푸른빛을 발했다. 마치 윤성이 쏘는 빛의 탄환 같은 느낌이다.

제트기가 날아간 후에 생기는 비행운처럼 푸른색 잔상이 허공에 몇 초간 남았다.

와르르!

총알을 맞은 스켈레톤의 머리가 박살 나면서 몸이 무너져 내렸다.

리나의 공격은 정확하고 강력하고 아름다웠다.

헌터들이 탄성을 뱉었다. 물론 최근 빛의 탄환을 하루에 백 발씩 쏴댄 윤성은 그리 감동하지 않았지만.

“더 온다.”

윤성이 말했다.

따그르르.

뚜르르.

칼을 든 스켈레톤 전사들이 줄지어 달려오고 있었다. 탱커 박형철이 앞장섰다.

“와라!”

그가 도발 스킬을 사용했다. 윤성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하급 헌터 중에서는 스킬을 가진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데 제법이네.’

도발에 당한 스켈레톤들은 뒤에 있는 리나나 신차민은 내버려 두고 눈이 돌아가서 박형철에게 달려들었다.

이 랭크대에서 사용되는 전투복을 개량한 박형철의 전투복은 아머가 두 배였다. 그만큼 무겁고 힘이 많이 필요한 것이었지만 그는 거뜬히 버텨냈다.

박형철이 커다란 실드로 스켈레톤을 밀치며 무지막지한 철퇴로 그들을 하나씩 으깨기 시작했다. 그 뒤에선,

“파이어 볼 가요!”

김유정이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화염구가 튀어 올라 스켈레톤의 한가운데에서 폭발했다. 그 사이 리나는 벌써 마법탄을 네 발이나 쏘아서 스켈레톤 넷을 추가로 처치하는 중이었다.

실제 레이드를 처음 보는 신차민은 감동이 벅차올라 거의 눈물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대단해요! 여~ 억시 선배님들! 정말 엄청납니다.”

한바탕 전투가 끝난 후에 신차민이 쉼 없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존경합니다. 형님들, 누님들! 진짜 최고예요. 선생님, 마법총 한 번만 만져 봐도 되나요? 아, 물론 레이드 끝나고 나서요. 아 맞다. 보스 잡은 후에 우리 기념사진 찍나요? 저 인스타에 올려야 하는데. 저 삼각대도 가지고 왔어요.”

“삼각대?”

이런 미친놈이, 레이드에 뭘 들고 온 거야?

윤성이 쳐다보자 차민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했다.

“물론 이런 거 가져오면 안 되는 거 알고 있어요. 근데 제 첫 레이드잖아요. 잘 들고 다닐게요. 폐 끼치지도 않을게요.”

귀여워서 봐준다. 일단 리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까. 어린애한테 화내 봤자지.

윤성은 레이드 팀의 전투력이 생각 이상이라 기분이 좋았다.

정말 제법이다. 한창때 E급 레이드를 뛰던 때가 떠오르는군.

흐뭇한 미소가 나온다. 나설 틈이 별로 없었다.

던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스산하고 푸르스름한 안개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좀 소름 끼치네요.”

차민이 말했다.

“보스방에 가까워져서 그럴 거야.”

리나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윤성을 슬쩍 흘겨보았다.

“그리고 윤성 씨. 전투 좀 해요. 아까 스켈레톤 잡을 때 아무것도 안 했죠? 다음 싸움 때는…….”

“쉿.”

윤성이 리나의 말을 저지했다. 그는 차분한 눈빛으로 계단 저 아래 어둠 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D급, E급 헌터들의 눈에는 안 보이는 모양이지만 윤성의 눈에는 그 윤곽이 확연하다.

리자드맨.

그 크기로 볼 때 E급은 아니다. 어떻게 E급 스켈레톤 던전에 D급 리자드맨이 나타날 수 있지?

‘던전의 타입이 바뀌었다.’

윤성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물 냄새.

지하수로를 따라 졸졸 흐르는 나지막한 물소리.

“레이드를 중지하는 게 좋겠군요.”

“네?”

윤성의 말에 리나가 황당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이 아래는 D급 던전이에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김유정도 거들었다.

“흠.”

<단검 투척 타깃.>

윤성의 손이 빠르게 단검을 집어던졌다.

“크악!”

계단 아래의 리자드맨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리나를 포함한 다른 헌터들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지만, 윤성의 눈은 어둠을 완전히 소화해 리자드맨의 갈라진 뒤통수를 볼 수 있다.

“뭐, 뭘 한 거예요?”

리나가 말을 더듬거렸다.

“따라와 봐요.”

윤성은 계단을 앞장서 내려갔다.

“잠깐! 형씨.”

박형철이 그를 막았다.

“포지션을 지키셔야지.”

그는 윤성을 뒤로 보내며 앞장섰다. 윤성은 좀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팀워크는 중요하지.

바닥에 내려간 헌터들은 리자드맨의 시체를 면밀히 관찰했다.

리나는 약간 충격을 받은 상태다.

계단 아래는 어둡기도 하고 거리도 꽤 먼데다가 리자드맨의 피부색이 던전의 암석과 비슷해서 식별하기 어려웠다.

D급 헌터 정도의 감각 능력으로 이걸 발견하고 공격해서 맞췄다고?

말도 안 된다.

아무래도 역시 백화점 때 그 사람인 것 아냐?

리나의 머릿속에서 의심이 계속해서 치솟았다.

“당신, D급인데 어떻게…….”

그녀가 물었다.

“알아챘느냐고요?”

윤성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가 벽을 가리켰다.

끈적이는 진청색의 흙덩어리 같은 게 묻어 있었다.

“리자드맨의 분변입니다.”

윤성이 말했다.

“계단 위에도 있었어요. 즉, 계단부터 리자드맨의 영역이라는 뜻이죠. 이 녀석들의 습성을 볼 때 경비를 세워놓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단에서 우릴 멈춰 세웠던 건가요?”

“상급 헌터의 감각 능력이 없어도 한 자리에 오래 서서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하면 찾아낼 수는 있어요.”

윤성이 말했다.

“하지만 거기서 이걸 맞춘 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상태였으니까요. 운도 좀 따랐고. 그보다 이 레이드를 어떻게 할지나 결정하시죠. 리더님.”

윤성의 말에 리나의 정신이 퍼뜩 들었다.

“퇴각하죠.”

그녀가 말했다.

“뭐라고요?”

박형철이 황당한 듯 항의했다.

“이제 곧 보스방이 나올 겁니다. 지금 돌아가자고요? 대체 왜?”

“D급 몬스터가 나타났어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엔 C급 이상 헌터 없이는 진입하지 않는 게 매뉴얼입니다.”

“그래 봤자 리자드맨 하나가 나온 것뿐이잖습니까? 안쪽은 아닐 수도 있는데!”

“물소리 안 들려요?”

윤성이 물었다.

“던전 타입이 바뀐 겁니다.”

“에잇. 난 못 믿겠어. 그리고 뭘 그렇게들 쫄아? 당신들도 D급 아닙니까?”

그가 윤성을 가리켰다.

리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퇴각하라면 할 것이지 뭔 말이 이렇게 많아?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은 던전의 몬스터보다 급수가 높은 경우를 얘기하는 거예요. 그게 팀 리더의 역할이죠. 저는 이 상황을 컨트롤할 수 없어요. 퇴각합시다.”

“아오! 저쪽 좀 보십쇼. 이제 다 왔다고요! 아무런 수확도 없이 개고생만 하고 돌아가자니!”

박형철이 손을 뻗어 가리킨 곳은 물이 졸졸 흐르는 지하수로. 을씨년스러운 느낌의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다. 분명 그 너머가 보스방일 터.

두 사람이 잠깐 옥신각신하는 바로 그때,

“쉬이이익”

적을 발견한 뱀이 위협할 때 내는 소리.

윤성은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이봐요. 뭔가 옵니다.”

그가 리나에게 말했다. 곧 기감을 확대해 주위를 탐색하던 리나의 표정이 굳었다. 너무 숫자가 많아서 한 번에 어림하기 힘들지만 최대 50, 최소 30 이상의 수다.

수로 쪽을 꽉 채우고 봇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오는 그것들은, 창을 든 리자드맨과 그들이 키우는 구렁이들이었다.

“이, 이럴 수가…….”

당황해서 뒷걸음질 치는 박형철에게 윤성이 말했다.

“포지션 지켜야지.”

박형철은 뜨끔했지만 앞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그는 E급 탱커다. D급 이상의 리자드맨 수십의 공격을 한 번에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전투복이나 방패는 순식간에 넝마조각이 될 테고, 박형철은 곧바로 즉사하리라.

“전부 도망쳐!”

윤성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탁탁탁탁!

박형철이 제일 먼저 계단을 뛰어올랐다.

탱커 실격이군.

김유정이 눈물을 쏟으며 그 뒤를 달렸고, 리나는 학생인 신차민의 손목을 쥐고 뛰었다. 하지만,

“윤성 씨는?”

수 미터를 못 가서 뒤를 돌아보았다.

“저도 갑니다. 뛰어요!”

제일 뒤에서 윤성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일부러 최후미의 포지션을 골랐다.

“캬아악!”

리자드맨이 던진 창 하나를 윤성이 날카롭게 단검으로 쳐냈다. 바로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건방진 도마뱀 새끼.’

윤성은 겨드랑이 사이로 왼손 검지를 내밀어,

<빛의 탄환 발동!>

섬광을 쏘아 리자드맨 한 마리를 사살했다.

차라리 리나 팀의 헌터들이 모두 사라지면 다 쓸어버릴 수 있는데, 매우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헌터들이 전투 자체를 못할 정도로 적이 많고 강하니까 슬쩍슬쩍 도와주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1선에서 다 죽여 버리는 것은 전투력을 완전 오픈하는 셈이다.

답답하군.

‘딱 3일만 있으면 이집트에 가서 마일하이클럽의 랜딩을 하고 엄청난 버프를 토대로 아랍의 상급 던전들을 전부 쓸어버릴 수 있다. 그러면 버프 없이도 A급 수준에 이르겠지.’

그 후에 귀국하면 재각성 검사를 받아도 상관없다. 백마중은 전에 약속했듯 포천 때 윤성이 E급 수준이었음을 증명해 줄 테고.

모든 버프가 지워진 바닐라 상태에서 A급 판정이 나오면 J등급을 공개할 필요도 없다. 포천의 혐의가 부활하진 않을 것이다. 세간의 이목이야 좀 끌겠지만.

에어포스 스쿨이 침식형 던전에 먹힌 후, 협회에서 재각성 심사를 했던 담당자는 윤성에게 D급 판정을 준 적이 있다. 어쩌면 잘못 심사했다고 곤욕을 좀 치를지도 모르지만, 거기까지 신경 써줄 필욘 없지.

‘그럼 그냥 다 쓸어버려?’

윤성이 달리던 걸음을 멈칫하며 뒤를 흘겨보았다. 그의 눈빛에서 풍긴 살기가 상당히 위협적이다.

달려오던 리자드맨들이 흠칫 멈추었다.

‘에이. 관두자.’

그래도 사서 일을 벌일 필요는 없지. 다 같이 던전 밖으로 후퇴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윤성이 퇴각하려던 그때,

“으아아악!”

박형철의 비명이 던전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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