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47화 (47/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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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 047화

윤성은 얼른 메일을 열었다. 친절하게도 메일은 전부 한글로 쓰여 있었다. 항공사에 한글을 잘 아는 직원이 있거나 번역을 맡긴 모양.

<마일하이클럽>

반갑습니다. 고객님, 사랑을 다하는 이집트 항공입니다.

고객님께서 의뢰하신 서비스는 이용 가능합니다. 이용료는 사용하실 비행기의 기종과 기내 다른 고객의 수에 따라 다릅니다.

아래 표에 레저용 비행 서비스의 견적이 나와 있습니다. 원하시는 옵션을 고른 후 연락 주십시오.

사랑을 다하는 이집트 항공은 항상 고객님의 안전과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아래의 표에는 약 한 달 동안 잡혀 있는 레저용 비행 계획이 나타나 있었다.

몇몇 종류는 돈 많은 부자들에게 이미 예약되어 있었는데, 그들이 다른 고객의 추가를 허용해 두었기 때문에 윤성도 해당 비행기를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날짜에 윤성만을 위한 비행기를 띄울 수 있었다. 대신 다른 부자들과 함께 타는 것에 비해 확실히 금액이 비싸다.

‘랜딩이 가능하다면 3일 후에 착지하는 시간에 맞추어 랜딩 자세를 잡기만 하면 된다. 굳이 혼자 쓰는 비행기를 골라서 더 비싼 돈을 낼 필요는 없지.’

윤성은 약 2주 후에 있는 비행편 하나를 골랐다.

해당 비행기는 승무원들을 제외하고 손님은 총 세 명만 탈 수 있는 것이었는데, 윤성이 마지막 세 번째였다.

다른 둘의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지만, 가보면 알겠지.

이집트 항공사에서 계좌 번호를 알려주면 그쪽으로 입금하고, 날짜에 맞추어 이집트로 가면 끝이다.

또 한 번의 거대한 성장을 예상하며 윤성은 흐뭇 웃었다.

하지만 그 전에.

‘다윤이와 소윤이부터 어떻게 좀 해야지.’

이모 내외를 떠올리며 다시 분노하는 윤성이었다.

***

중학교 3학년 강소윤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부지런히 걸어서 오후 다섯 시까지 집에 돌아왔다. 설거지와 청소를 해야 하니까.

에어포스 헌터 학교는 한동안 휴교라서 언니는 집에 있어야 했지만,

“언니?”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부엌에 서서 설거지를 하는데, 작은 방에서 사촌 오빠 김명열이 소리쳤다.

“야! 강소윤! 라면 좀 끓여와.”

“응.”

소윤은 방금 씻은 냄비에 물을 받고 끓였다.

그녀와 언니는 항상 집안에서 은근한 눈칫밥을 먹는 신세.

이모 내외의 노골적인 구박 속에서 언니는 바쁘게 어른이 되었고 소윤은 눈치와 행동이 재빠른, 순종적인 막내로 컸다.

어제부턴 집안 분위기가 더 안 좋다. 이모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신경질을 부리며 ‘망할 새끼가 빨리 안 데려가고 뭐 하는 거야’ 하고 중얼거렸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간밤에 다윤이 설명해 주어서 이제 안다. 에어포스 헌터 스쿨이 던전에 잡아먹히고 그 안에 오빠가 있었다는 얘길 들은 이모가 짜증을 부렸던 이유도.

“야, 강소윤!”

작은 방에서 들리는 남자 목소리. 그의 사촌 오빠인 김명열이다.

“응.”

소윤은 시녀처럼 김명열의 방문 앞으로 달려가 그의 말을 기다렸다.

“라면 끓이고 있어?”

방금 시켜놓고 또 재촉이다.

“지금 하고 있어.”

“빨리 해.”

“응.”

소윤은 부엌으로 돌아와 전기레인지에 올라간 냄비를 지켜보았다.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할 때쯤.

쾅쾅쾅!

현관문이 울렸다.

가족이면 벨을 누른다. 게다가 이모나 이모부라면 번호를 누르고 들어왔을 거다.

현관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사람은 대개 ‘물 좀 주세요’ 하는 사이비 종교인들이다.

하지만 오늘은 언니가 오빠랑 같이 온다고 했는데. 어쩌면 혹시?

소윤이 대답할까 주저하는 사이.

쾅쾅!

다시 현관문이 울렸다.

“강소윤! 오빠다! 문 열어!”

소윤의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 왔잖아?’

현관 너머에서 다윤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렇게 하면 애 놀라. 벨을 눌러야지.”

띵동!

이번에는 벨이 울렸다. 소윤은 도어락을 걸어놓은 상태로 문을 열었다. 소윤의 얼굴을 보자 윤성은 분노가 폭발해 버렸다.

동생의 뺨에 멍 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뭐야?”

“사촌오빠가…….”

윤성의 눈이 뒤집혔다.

다윤이 중재하려고 했지만 윤성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콱!

도어락을 부수는 것은 그냥 힘껏 문을 잡아당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야~! 라면 멀었냐?”

작은 방에서 들리는 남자 목소리. 윤성은 전기레인지에 끓고 있는 물을 보았다. 냄비를 집어 들자 다윤이 절박한 표정으로 팔을 붙잡았다.

“안 돼! 오빠 이건 안 돼!”

윤성은 떨리는 손으로 냄비를 내려놓았다.

쾅!

작은 방문을 박살 내고 들어갔다.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는 김명열.

그가 황급히 헤드셋을 내려놓았다.

“게임한다고 정신없네?”

“어…… 혀, 형. 안녕하세요.”

“게임한다고 바빠?”

“네? 아, 그게…….”

“바빠서 라면 하나 네 손으로 못 끓여 먹어? 근데 그 귀한 시간 짜내서 우리 막내 때렸냐?”

윤성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난 시간 엄청 많은 놈인데 어쩌지.”

“안 돼! 오빠. 그러지 마.”

다윤이 재빨리 그를 말렸다.

윤성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꾹 눌렀다.

<빛의 탄환 발동!>

펑!

윤성이 맞춘 것은 데스크톱 본체였다. 아무런 버프가 없는 상태지만 그의 지능은 이미 B급 헌터 수준이다.

산산이 조각난 컴퓨터를 보면서 윤성이 말했다.

“이제 시간 좀 있겠지? 라면 네가 끓여 먹어.”

윤성은 거실로 나오더니,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사방에 섬광을 쏘아서 거실을 박살 냈다. 텔레비전, 액자, 화분, 소파, 부엌 싱크대 배관과 전기레인지에서 끓던 냄비까지.

그리고 공포에 질린 김명열을 향해 말했다.

“이모한테 이것들 수리비 받고 싶으면 나 고소하라고 해. 그럼 나도 네가 소윤이 때린 거 고소할 테니까. 알았냐, 이 새끼야. 나 이제 돈도 시간도 많은 놈이니 자신 있으면 한 번 지저분하게 싸워보자고. 끝까지 괴롭혀줄 테니까.”

윤성은 동생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들 짐 싸. 아니, 싸지 마. 필요 없어. 나중에 이모한테 택배로 보내달라고 하자. 너희 꼴을 보니 쌀 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우리 어디로 가……?”

“오늘은 나가서 호텔에서 자. 내가 집 구해놓을 테니까. 하지만 그 전에……. 소윤이 저녁 먹었니?”

소윤은 고개를 저었다.

윤성은 동생들을 데리고 우선 자신의 원룸으로 갔다. 손바닥만 한 원룸 벽에 수없이 박혀있는 레이드 전단지와 그가 클리어한 던전들을 표시해 놓은 지도들. 치열하게 써놓은 가계부 따위가 책상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윤성의 지난 4년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모습들이었다.

“걱정하지 마. 얘들아. 요즘 돈 좀 벌 방법이 생겼거든. 앞으로는 오빠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고생 안 해도 돼.”

윤성은 동생들을 그의 차로 데려갔다. 번쩍거리는 롤스로이스.

물론 다윤과 소윤이 차종을 알 리는 없지만 비싼 차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당황해서 타지 못하고 멀뚱멀뚱 서 있었다.

“뭐야 이거? 오빠 차야?”

“그래. 돈 번지가 얼마 안 됐는데 차가 필요해서 차부터 샀다. 집도 옮길 거야. 너희한테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늦어서 미안하게 됐다. 너희한테 먼저 갔어야 했는데. 그 지경으로 살고 있는 줄은 몰랐어.”

동생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뒷좌석에 차례로 탔다.

“어, 어디로 가는 거야?”

다윤이 물었다.

“백화점.”

사치의 끝을 보여주마. 통장에는 19억 정도의 돈이 있다. 이걸 오늘 다 써도 좋다는 각오를 다졌다.

30분 후, 신세계 백화점 영 캐쥬얼 층으로 올라온 윤성은 동생들을 데리고 첫 번째 샵에 들렀다. 베네통인지 베트콩인지 하는 이름의 브랜드였다.

“갖고 싶은 거 골라.”

윤성이 말했다. 하지만 동생들은 쭈뼛거리며 아무것도 집어 들지 못했다. 점원이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와서 친절을 떨었다.

“어떤 거 찾으세요?”

어떤 거 찾는지 윤성도 몰랐다. 애들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니까. 윤성 본인도 전투복 외에 옷을 산 지가 한참 되었다. 요즘 애들이 뭘 어떻게 입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다윤이 조심스럽게 베이지색 니트 한 장을 뒤집었다. 무려 3만 8천 원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니트를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윤성의 손이 그것을 번개처럼 낚아챘다.

“또 골라.”

“아니, 오빠. 나 그거 고른 거 아닌데…….”

“그럼 사놓고 입지 마.”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소윤이는 안 고르니?”

윤성이 소윤에게 물었다. 그녀는 약간 겁에 질린 듯 다윤의 뒤로 숨었다.

소윤이 느끼는 거리감을 깨달은 윤성은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가 점원에게 물었다.

“여기 매장에서 마네킹들이 입은 거 전부 다 주세요.”

윤성은 그것을 쇼핑이라고 불렀지만 다윤은 ‘돈 지랄’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그간 동생들을 돌봐주지 못했던 죄책감을 이런 식으로 풀려는 것이다.

그리 훌륭한 방법이라 할 수는 없지만 윤성의 원룸의 처절함을 직접 보고 온 후라 다윤은 윤성을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세 사람의 양손이 핸드백으로 꽉 차서 더 이상 손가락에 무언가를 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쇼핑은 끝이 났다.

입에 쇼핑백 몇 개 물고 간다는 것을 뜯어말리느라 식겁했다.

쇼핑을 마치고 나와서 차에 올라탄 윤성은 또 한 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마스크맨?

에어포스가 전화를 받았다.

“네, 에어포스. 접니다.”

윤성은 동생들에게 안 들리도록 목소리를 죽여서 휴대폰에 속삭였다.

-반가워요. 헌터 학교에서는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연락하는 것을 원치 않으실까 봐 못 했습니다. 어떤 사례든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어, 아뇨 괜찮아요.”

윤성이 웃으며 대꾸했다.

“대신 호텔 좀 알려줄 수 있나요?”

-호텔?

“네. 아무래도 외국의 상급 헌터들이 오면 대접도 하고 그러실 테니까 잘 아실 것 같아서.”

-위치는 어디쯤이 좋으십니까?

“음. 여의도?”

-그럼 노보텔 호텔로 하시죠. 사실 제가 지금 있는 곳입니다. 협회의 임무 때문에 이곳에서 장기간 투숙하며 할 일이 좀 있거든요.

에어포스가 있는 호텔이라면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 아닌가?

완전 땡큐지.

“그곳으로 하겠습니다.”

-좋아요. 근데 호텔은 무슨 일로 쓰시는 거죠? 제가 도와드릴 게 있나요?

“아. 아뇨. 그냥, 동생들이 잠깐 묵을 거예요.”

-동생분들이요?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애들이 아직 어려서 안전한 곳으로 보내고 싶은데, 에어포스가 있는 호텔이라면 안심할 수 있겠죠.”

-그럼 동생분들에게 제 연락처를 알려주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제가 돌봐드리겠습니다.

뭐야? 왜 이렇게 친절해?

“아니에요. 에어포스한테 민폐 끼칠 순 없죠. 바쁘실 텐데.”

-전 괜찮습니다. 마스크 씨에겐 빚진 것도 많고.

“말만이라도 고마워요. 근데 거기엔 얼마나 머무르세요?”

-내달 말까지는 있을 듯합니다.

“그렇군요. 고마워요.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은 윤성은 운전에 집중하며 말했다.

“우린 노보텔 호텔로 갈 거야.”

“뭐라고?”

“그런 곳이 있어. 나도 잘 모르지만.”

예상대로 네비게이션에 노보텔을 검색하자 호텔 위치가 잡혔다.

“간다?”

다윤과 소윤은 뒷좌석을 거의 꽉 채워버린 쇼핑백들을 뒤적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들을 그의 손바닥만 한 원룸에 재울 수는 없다. 집을 구할 때까지는 호텔에 머물게 하고, 그사이에 서울에 괜찮은 아파트를 하나 구할 거다. 쓰리룸 이상으로 구해야지. 둘 다 컸으니까 각자 자기 방을 쓰게 해줘야지.

그리고 호텔에서 식사도 해야겠다. 한창 먹을 때의 애들인데 비쩍 말라서. 분명 밥도 제대로 안 준 모양이다.

그 구박을 상상하니 다시 한번 분노가 치미는 것 같다. 윤성은 간신히 화를 삭였다.

노보텔 호텔에서 제공하는 야외 바비큐 뷔페에 갔다. 그리 비싸지 않았다.

윤성은 테이블을 잡아놓고 앞장서서 접시를 들었다. 동생들은 처음 보는 바비큐 뷔페에 입을 쩍 벌렸다.

사실 윤성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호텔 요리사가 코앞에서 그릴에 구워주는 스테이크와 푹 찐 대게와 새우 등을 보자 윤성의 눈이 먼저 돌아간 것이다.

그 역시 이런 호텔은 처음 와보는 것이었다.

“와아…….”

동생들은 또 다른 의미의 신세계를 보는 중이었다.

초콜릿 분수다. 초콜릿이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아름다운 조형물이 있었다. 정말로 사람들이 컵에다 초콜릿을 떠가고 있었다.

각자 요리를 접시와 컵에 담아서 테이블로 돌아온 세 사람은 식사를 시작했다. 맛은 충격적일 정도로 우수했다.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 살에 윤성은 모처럼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오빠…….”

다윤이 말했다.

“학교에서 미안해.”

“뭐가?”

“내가 말을 못되게 한 것 같아서.”

“아냐. 무슨 소리야. 사과하지 마. 내가 그동안 너희 신경 못 쓴 게 죄지. 이제부턴 정말 잘해 줄 테니까 너흰 공부하면서 하고 싶은 것만 해.”

“고마워.”

다윤이 말했다. 그녀는 옆자리에 앉은 소윤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소윤은 약간 언 얼굴로 윤성에게 인사했다.

“고마워…… 요…….”

윤성이 피식 웃으며 소윤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아무튼 둘은 오늘 여기서 자라. 무슨 문제 있으면 전화하고. 위험한 일 있으면 에어포스한테 전화하고.”

“에어포스?”

윤성은 에어포스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아까는 괜찮다고 했지만 막상 그냥 두고 가려니 노파심에 속이 불편했다.

“내가 아는 그 에어포스야?”

다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응.”

“세상에…….”

물론 이 호텔에 박혀 있으면 위험한 일 자체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걸어놓는 것이다.

빨리 아파트를 사야지.

윤성은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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