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레벨업 속도는 9.8m/s^2 046화
12. S급 헌터
“휴우.”
윤성은 학교 옥상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라니.
플래시 터지는 게 거의 빛의 탄환 쏘는 수준이다.
이래서 게이트 타고 이동하기 전에 마스크 벗고 강윤성으로 조용히 나오려고 했는데.
학교 운동장에서 S급 수준의 마수였던 아르동 남작을 박살 내버린 임팩트가 너무 컸던 탓인지 쏟아져 나온 학생들이 계속 주위를 바글거렸다.
몰래 숨어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거의 도망치는 느낌으로 점프해서 옥상으로 올라왔는데 그마저도 학생들이 쫓아오는 듯해서 마스크를 벗진 못했고, 학교는 게이트를 탔고, 이런 상황이 됐다.
‘다윤이 데리고 가야 하는데.’
일단 이 자리를 먼저 피한다.
윤성은 옥상 바닥을 힘주어 밟았다.
<랜더의 전투화 발동!>
콰아앙!
굉음과 함께 윤성의 몸이 치솟았다. 단순히 수직으로만 뛰어오른 게 아니다. 윤성은 사선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아르동 남작의 성을 클리어하면서 레벨이 폭발적으로 올랐다.
지금 윤성의 레벨은 30.
쿠우웅!
높이로 300미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윤성의 몸뚱이는 학교에서 한참 떨어진 도로 한복판에 착륙했다.
그대로 1,900점의 순발력을 이용해 길가를 질주하는 윤성.
그는 순식간에 학교를 벗어났다.
인적 드문 골목에서 마스크를 벗은 윤성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큰길로 나와서 대중교통을 탔다.
‘에이씨 학교까지 한 시간이네.’
너무 멀리 와버렸다.
윤성은 버스 좌석에 앉아서 휴대폰을 켰다.
다윤이와 차희한테서 부재중 통화가 왕창 와 있다.
차희한텐 미안하지만 일단 다윤이부터.
“여보세요?”
-오빠 어디야?
다윤이가 외쳤다.
-던전 안에서 오빠 갑자기 사라져서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아, 일이 좀 있어서.”
-일은 무슨 일.
던전 보스 모가지 따는 일…….
윤성은 말을 삼키며 차분히 대꾸했다.
“지금 어디야?”
-난 학교지. 아직. 오빠는 어디야?
“좀 멀리 와있어. 여기 강동구…….”
-뭐?
다윤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어쩌다 거기까지 간 거야?
“게이트 열릴 때 포탈을 잘못 탔나 나 혼자 여기로 와버렸네.”
-아니 그럴 수가 있는 거야?
“뭐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가는 중이야. 조금만 기다려. 학교에서 난리통이 나는 바람에 아까 제대로 마무리를 못 했지만 너랑 소윤이 내가 데려가기로 했으니까.”
-오빠, 그거 진심이야?
“그래. 오빠 요새 돈 좀 벌어서 이제 꽤 많다. 너희 둘 정도 책임질 순 있어. 너 헌터 학교 보낸 것 보니까 이모가 너희를 얼마나 구박했을지 안 봐도 견적이 딱 나오는데 어떻게 거기 계속 두냐?”
-솔직히 난 오빠 못 본 지 너무 오래돼서 좀 어색해.
윤성은 약간 우울해졌다.
기러기 아빠들이 이런 기분이려나.
어쩔 수 없지. 동생들한테 돈만 부쳐주고 심리적으로 케어해 주지 못했던 잘못의 대가다.
-하지만 난 오빠랑 같이 가고 싶어.
다윤이 말했다.
“정말?”
-응. 솔직히 이모 댁에서 사는 거 힘들어…….
“알았어. 소윤이 데리러 가자.”
-소윤이 여기에 있어.
“거기 있다고?”
-학교가 던전에 먹혔으니까 나 걱정돼서 왔나봐.
“오빠 걱정은 안 한대?”
-으음. 하겠……지?
쳇. 어쩔 수 없지.
윤성은 아쉬운 마음을 억눌렀다.
윤성이 동생들과 헤어진 것은 약 8년 전. 다윤이 열한 살이었고 소윤이 여덟 살 때였다.
이후 몇 년은 이모 댁에 몇 번 들렀다. 헌터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4년 정도는 너무나 바빠서 돈만 보냈지만.
다윤은 꽤 머리가 굵은 후에도 윤성을 자주 보았지만 소윤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에게 오빠란 기억에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거리가 먼 어른이었다.
-근데 나 지금 오빠 못 볼 거 같은데.
“왜 못 봐?”
-침식형 던전은 알려진 게 별로 없기도 하고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건강검진한대. 게다가 타입도 마계였고. 지금 협회로 간다는데?
“아오.”
뭐 그런 게 필요하긴 하지.
어쩔 수 없다.
“언제 끝난대?”
-몰라. 인원도 많고 검사할 것도 많아서 오래 걸린대. 엄청 늦게 끝날 거 같은데. 왜냐면……. 차 끊기면 택시비 준댔거든.
“음.”
-그리고 오빠도 건강 검진 받아야해.
“나도 받는 거냐?”
-명단에 오빠 이름도 있던데.
이런.
윤성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다윤이 말했다.
-그냥 이모 댁에는 내일 와.
“내일?”
-오늘은 검진도 받아야 하고. 오빠도 좀 쉬어야지. 그리고 소윤이도 맘의 준비가 필요해. 오늘 밤에 내가 소윤이한테 얘기해 둘게.
윤성은 다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사실대로 얘기하면 한나절에 걸친 아르동과의 전투 때문에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던 것이다.
게다가 협회에 가서 무슨 거지 같은 검진도 받아야 한다고?
“쳇.”
대중교통의 경로를 에어포스 헌터 스쿨에서 협회로 변경한 윤성은 차희한테 전화를 걸었다.
-윤성아!
“응.”
-윤성아! 너 살아 있어?
“미안하지만 강윤성 씨는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강윤성 씨의 휴대폰을 주운 마계의 아르동 남작입니다.”
-살아 있네…….
윤성이 푸흐흐 웃었다.
-농담하지 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차희의 나무라는 듯한 목소리.
“미안. 그래도 잘 돌아왔으니 됐지.”
-이번 것도 네가 한 거야? 마스크맨 난리 났어, 지금…….
“응. 혹시나 해서 하는 얘기지만 비밀이다?”
문득 무언가가 떠올라 아차 싶다.
“헉!”
-왜 그래?
차희가 수화기 너머에서 물었다.
“아냐. 잠깐만.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
생각해 보니 지금 들고 있는 버프가 역대급이다. 이 정도로 튀면 백마중 수준의 기감을 가진 헌터가 아니더라도, 상급 헌터 중에선 누군가 느낄지도 모른다.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버프 리셋.”
윤성은 버프를 지웠다.
한참 후 협회 2층.
건강 검진의 대부분은 일반적으로 하는 검진과 똑같다. 피와 소변을 검사하고, 흉부 X레이를 찍고 구강 검진.
하지만 몇 가지 스텝이 추가되어 있는데, 하나는 피폭 정밀 검사다. 마계의 공기는 방사능처럼 사람의 DNA에 데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혈액에서 1,000개의 세포를 선별해서 유전자 파괴 정도를 테스트한다.
이 과정이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세포 솔팅 기계가 많지 않고 반드시 막 뽑은 혈액의 신선한 세포로 테스트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다고 다른 날을 잡을 수도 없다. 마계의 방사성 공기에 만약 피폭되었다면 그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주위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학교에 있었던 모두가 협회에 갇혔다.
다만 윤성은.
“강동구로 갔었다고요!”
하는 협회 의사의 비명을 들었다.
그는 황급히 윤성을 끌고 진단실로 이동한 다음 최우선 순위로 피폭 테스트를 진행했다.
강동구에서 여의도의 협회까지 이동한 남자다. 피폭되어 있었다면 큰일.
하지만 테스트를 약 20분 진행한 끝에 윤성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판명되었다.
“다른 검사들 받으러 가시면 됩니다.”
의사는 윤성을 내보내고 원래 순서였던 다음 환자를 받았다.
흉부 X레이를 찍고 방사선실에서 나올 때였다.
“윤성 헌터님?”
협회의 인사과 헌터들.
인사과는 단순히 채용이나 승진을 담당할 뿐 아니라 헌터 범죄자의 체포도 담당한다.
포천 사건 때에도 이들에게 많은 빚을 졌지. 윤성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보고 인사과 직원이 웃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강윤성 헌터님. 인사과 대리인 C급 헌터 김민수입니다.”
“저한텐 무슨 일로……?”
“강윤성 헌터님은 등급 재심사 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뭐라고요?”
“E급 헌터 같지 않다는 제보가 들어와서요.”
“뭘 근거로요?”
“에어포스 헌터 학교에서 특수 소재로 마법 가공된 책상을 부쉈다더군요.”
“아…….”
혹시나 했는데 김인식 이 애새끼가 고자질을 했군.
윤성의 입에서 침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아마 이 재심사라면…….
“지금 가죠.”
윤성이 자신감 있게 인사과 직원들에게 말했다.
***
그들은 곧바로 등급 심사장으로 이동했다. 우선 악력과 순발력을 테스트했다.
테스트 결과를 모니터링하던 인사과 직원이 피식 웃었다.
책상을 부수긴 개뿔.
하긴, 학교가 A급 던전에 침식당했는데 그 상황이면 정신 놓을 법도 하지. 마수가 부수는 걸 착각한 모양이지? 마족들은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놈들도 있다니까.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착오요?”
“뭐, 학생들도 대부분 공황 상태였고. 지금 정신과 치료 중이라고 했거든요. 아마 뭔가를 잘못 보셨던 모양입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테스트 결과, 확실히 E급은 아닙니다. D급입니다. 아주 간신히지만. 종종 이런 경우가 있긴 하죠.”
직원이 덧붙였다.
“새로운 헌터 자격증은 며칠 내로 집으로 발송될 겁니다. 그때까지 쓸 수 있는 D급 임시 자격증을 만들어드릴까요?”
“아뇨. 필요 없습니다.”
협회를 나오면서 윤성은 상태창을 불러냈다.
“자가 진단.”
<강윤성>
<칭호 : 없음>
<힘 : 86, 순발력 : 83, 감각 능력 : 119, 지능 : 296>
<버프 : 없음>
<디버프 : 없음>
<분배 가능한 능력치 : 140>
<스킬 : 빛의 탄환(사용 가능), 라이트닝(사용 가능)>
아직 능력치 포인트 분배를 안 했다. 그리고 원래 근접 전투원이었던 윤성의 재심사는 당연히 근접 전투력에 대한 것이었다.
재심사의 원인도 ‘책상을 완력으로 파괴했다’였으니까.
‘악력과 순발력을 테스트할 줄 알았지.’
완력 검사 결과 별다른 게 나타나지 않으니까 그 뒤의 정밀 검사들은 생략해 버린 듯했다.
능력치 전반과 잠재력까지 측정 가능한 마력 검정은 마정석이 소비되기 때문에 잘 쓰지 않으니까.
만약 그 테스트를 실시해서 290점의 지능이 발견되었다면 내일 신문 1면이었을 텐데.
E급 판정을 처음 받을 때에 비해 힘이 약 30이나 올라갔지만 그 성장은 E급의 상위권에 있었던 윤성이 간신히 D급 하위권에 도달한 정도였다.
만약 지금 가진 220포인트를 지능에 몰아주고, 빛의 탄환, 라이트닝 같은 고급 스킬까지 고려해 준다면 그의 등급은 A급으로 판정될 수도 있다.
실제 등급은 J지만.
‘이참에 한 번 찍어볼까.’
윤성은 고민하다가 140 스탯을 힘과 순발력, 감각 능력에 적절히 나누어 할당했다.
언젠가 빛의 탄환이나 라이트닝보다 훨씬 우수한 근접 스킬이 랜딩에서 나올지도 모르니까. 모든 능력치를 올릴 셈이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크게 저질러 버렸는데, 또 난리 난 거 아냐?’
윤성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휴대폰의 실시간 검색어를 켰다.
[SS급 헌터]
[방독마스크]
[마스크맨]
[에어포스 헌터 스쿨]
[마계]
예상대로군.
이런 관심 부담스럽다고.
하지만 궁금하긴 하군.
윤성은 검색어를 클릭했다. 또 트위터의 실시간 멘션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 SS급 두 명이네, 이제. 갑자기 헌터강국됨 ㅋㅋㅋ.
-던전 사후 처리반이 들어가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던전 A급이지만 보스는 S급이었다. 그거 혼자서 잡는 거 에어포스 말고 국내에서 아무도 못 함
-방독마스크 제작 업체입니다. 마스크맨을 마케팅 모델로 모시고 싶습니다. 연락 주세요.
-스쿨 학생 중 마스크맨 포효하는 거 들은 사람?
-re. ㅋㅋㅋㅋㅋ나 마족 피해서 숨어 있다가 갑자기 무슨 천둥 치는 줄 ㅋㅋㅋㅋㅋㅋㅋ.
-re. 그때부터 아니었냐 마족들 지리기 시작한 거 ㅋㅋㅋㅋㅋ.
-언론에서 마스크맨 고유 스킬 손가락총이라는데 오늘 우리 학교 애들은 다 봤다. 갓스크맨 님의 진짜 갓 스킬은 [이기어검술]이라구. ㅇㅈ?
-마스크맨은 건강 검진 안 받나요? 마스크맨 볼 줄 알고 신나서 협회 왔는데 없네 ㅅㅂ 존나 지겹
-헌터 스쿨 학생의 어머니입니다. 마스크맨한테 정말 너무 감사하고 개인적으로 사례라도 하고 싶어요.
마지막 멘션은 약간 뿌듯하다. 기분 좋군.
그리고 학생들이 정신 충격이 심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비록 전투력은 없지만 그래도 헌터라 이건가. 하긴, 던전 범람과 마수들의 테러에 대한 정신적인 트레이닝이 스쿨의 최우선 과제니까.
윤성은 빙긋 웃었다.
의외로 마스크맨으로 계속 활동하는 것도 재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띠링!
갑자기 울리는 알람에 휴대폰을 확인했다.
회신 : <이집트 항공>
전에 보냈던 이메일에 대한 답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