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레벨업 속도는 9.8m/s^2 044화
평화롭던 교내는 순식간에 지옥도로 변했다.
결계만 믿고 마족들을 관찰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학생들은 공포에 질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곳엔 도망칠 곳도 없었고, 그들에겐 도망칠 능력도 없었다.
“꺄아악!”
“으악!”
신차민은 1층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달리기에는 웬만큼 자신이 있었지만 A급 마족은 그보다 훨씬 빠르다.
절망에 빠져서 눈물 콧물 다 짜내며 뛰던 신차민은 숙직실로 뛰어들었다.
문을 쾅 닫고 안을 보니 선생님들과 다윤이 모여 있다.
“선생님!”
신차민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남수담은 차민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차민이 달려간 쪽은 남수담이 아니었다.
차민은 다윤의 어깨를 꽉 붙잡고 물었다.
“강윤성 선생님 어딨어?”
이제 답은 그 사람뿐이다.
정체가 뭔지 이제 궁금하지도 않지만 일단 헌터 스쿨의 책상을 그냥 완력으로 작살 내버린 헌터다.
선생님들보다도 더 강할지도 모른다.
“오, 오빠?”
다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빨리! 어디 갔어? 지금?”
“나, 나도 모르겠어.”
“차민아, 일단 진정하고.”
남수담의 말에 차민이 왈칵 화를 냈다.
“아오, 여기서 어떻게 진정해요? 진짜 개 에바. 어딨어요? 윤성 형님 어딨어요? 빨리!”
철컥.
숙직실 문이 열렸다. A급 마족이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핑그르르.
남수담이 손가락 끝에서 검을 회전시키며 마족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쾅!
마족은 검날을 맨손으로 잡았다. 적갈색 피부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모두 따라와라. 남작님께서 기다리신다.”
마족이 명령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아르동 남작의 목소리.
남작이 숙직실 문밖에 서 있었다.
“이곳에서 강력한 마력이 느껴져 몸소 찾아왔다. 굉장한 식사 거리군. 어디 보자, 흠. 이 여자애가 가장 강력해 보이는군.”
아르동이 성큼성큼 들어와 다윤의 냄새를 맡았다.
“음?”
남작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닌가? 뭐야? 마력이 몸에서 나는 게 아니라.”
그가 코트를 잡아당겼다.
“옷에서 나는 거였잖아? 하하하, 별일이 다 있구나. 몸뚱이는 별것 없군.”
남작은 서상희와 남수담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쩔 수 없지. 이쪽으로 만족할까.”
소름 끼치는 미소와 함께 남작의 눈길이 서상희와 남수담, 김재혁에게 돌아갔다.
“흐으윽! 흑흑!”
김재혁은 머리를 감싸 쥐며 뒤로 빠졌다.
“누가 먼저 가겠느냐? 원하면 저항해도 좋다.”
남작이 묻자 남수담이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다들 도망쳐라.”
그가 말했다.
“어디로든 가서 피해 있어. 지원군이 올 때까지.”
“신차민, 다윤이 데리고 일단 피해.”
서상희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로 검을 집어 들고는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미안한 표정으로 다윤을 보며 말했다.
“아까 추한 꼴 보여서 미안했어. 하지만 이제 괜찮아.”
“선생님…….”
“햐압!”
남수담이 화염구를 쏘고 서상희가 검을 겨누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흥.”
아르동은 귀찮은 파리 떼를 쫓는 것처럼 두 사람을 밀쳐버리고는, 김재혁에게 다가갔다.
“네놈도 이 애들의 보호자로 보이는데.”
“으으으!”
“한심하군. 창피하지도 않나? 품격 떨어지는구나. 네놈을 먼저 마셔주지.”
콰악!
아르동의 손이 김재혁의 미간을 억세게 붙잡았다.
카앙!
서상희가 그의 등에 칼을 날렸지만, 칼날이 부러졌다.
“으아악!”
김재혁은 머리를 움켜쥐고 울부짖었다.
그의 몸이 미이라처럼 쭈글쭈글하게 변했다.
사체는 힘없이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전투력의 차이가 너무 압도적이다.
“이럴 수가…….”
공포에 질린 서상희는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이 되었다.
‘다 끝났다.’
그녀가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그때.
“야아아!”
엄청난 굉음이 학교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강다윤과 신차민의 눈이 커졌다.
“아- 르으- 도오옹!”
마치 사자의 포효처럼 윤성의 목소리가 학교를 직격으로 때렸다.
그는 아직 학교에 도착하지 못한 상태.
몇 분 전, 마계의 험난한 유황불 사이를 달리던 윤성의 눈에는 학교의 결계가 무너지고 마족들이 난입하는 게 똑똑히 관찰되었다.
젠장. 늦겠어!
윤성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족들을 전부 쳐죽인다고 해도 다윤이를 구하지 못하면 다 무슨 소용이냐.
‘무슨 수가 없을까?’
윤성은 가진 장비들을 생각해 보았다. 랜더의 전투화. 그 점프력을 이용해 사선으로 뛰면 상당한 거리를 건너뛸 수 있지만 그래도 달리는 게 더 빠르다.
스킬은?
빛의 탄환, 라이트닝, 그리고 버프 스킬로…….
“사자후?”
윤성은 버프 스킬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설마 이 ‘사자후’라는 게 중국의 S급 헌터 쥔 차이의 스킬인가? S급 고유스킬 사자후?
그렇다면…….
<사자후 발동!>
“컥.”
갑자기 폐가 물탱크처럼 거대해지는 느낌이다.
가슴 속에 거대한 폭탄이 하나 들어온 기분. 동시에 불붙은 뇌관처럼 목구멍이 뜨겁다.
이 힘을 그대로 발산하기만 하면 된다.
마치 오래전부터 스킬 사자후를 써온 것처럼,
윤성은 힘껏 포효했다.
“내가 널 죽이러 왔다!”
-와장창!
학교 전면의 유리가 모두 터져나갔다. 아직 수백 미터나 떨어져 있는데도 그 위력이 이 정도다.
게다가 그 유리들은 모두 에어포스의 지원을 통해 만들어진 ‘마수 침공 대비용 유리’다. 어지간한 마수들이 두드려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
윤성의 포효에서 전해진 것은 단순히 음파의 물리적인 충격만이 아니다.
<사자후.>
원래는 먼 옛날 무공의 초고수들이 심법으로 말미암아 소리에 내공을 실어 운용하는 것.
그 당시 협객들이 쓰던 내공이라는 것의 정체는 곧 ‘마력’이다.
윤성의 목소리에 담긴 마력의 크기와 질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것이었다. 충분히 거리가 가까웠다면 소리만으로 A급 마족 모두를 찢어 죽일 힘이 그 안에 있었다.
아르동의 수하들의 움직임이 굳었다.
파르르.
그들의 손발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고 아르동의 눈썹이 꿈틀했다.
“대체 어떤 놈이지. 모두들 대기하고 있어라.”
아르동은 학교 운동장으로 이동했다.
저 멀리서 방독마스크를 쓴 헌터 하나가 달려오는 중이다.
아르동의 표정이 굳었다.
좀 전 성에서 만났던 인간이다.
‘그때는 이만한 힘이 없었는데?’
아르동은 잔뜩 긴장한 채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아르동!”
학교 정문까지 달려온 윤성이 소리쳤다.
“이곳에서 해친 사람이 있나?”
“아직은 없다.”
“다행이군.”
“뭐가 다행이냐? 네가 첫 번째가 될 것인데. 아! 생각해 보니 선생인지 뭔지 하나를 먹었군.”
“이 개자식!”
휘익!
순식간에 십수 미터를 도약했다. 역수로 쥔 단검으로 아르동의 가슴을 찔렀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
“큭!”
아르동은 재빨리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지만 상황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윤성의 손바닥 위에서 한 바퀴 핑그르 회전한 단검이 매서운 기세로 아르동을 찌르고 베었다.
동시에,
<빛의 탄환 발동!>
단검술 가운데 들어간 마법 공격.
섬광 한 줄기가 아르동의 복부를 꿰뚫었다.
-퍽!
휘청거리는 아르동을 향해 단검을 던져서 가슴에 꽂았다.
“끄아악!”
아르동은 신음하며 숨을 헐떡였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윤성의 양손이 쌍권총을 쥔 것처럼 아르동을 향했다.
<빛의 탄환 발동!>
-두두두두!
무수히 날아드는 빛의 탄환이 아르동의 몸통에 수십의 구멍을 만들어냈다.
‘이상하군.’
공격을 퍼부으면서 윤성은 의아한 기분이 되었다.
이 정도의 타격을 쏟아 넣었는데 아르동이 아직도 쓰러지지 않았다. 게다가 전의도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하압!”
아르동이 마력을 방출했다.
검은 장막으로 만든 마력 방패.
방패는 빛의 탄환이 뚫지 못했다.
그 안쪽에서 아르동은 장검을 거꾸로 쥐고 땅을 찔렀다.
쿠우우우!
무시무시한 소음. 아르동의 사악한 마력이 땅으로 스며들었다.
“핀. 쓰러스트.”
콰악!
아르동이 주문을 내리자, 땅에서 검은 마력의 칼날이 치솟아 윤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칫.”
못 피할 정도는 아니다. 윤성은 뛰어난 순발력과 감각 능력으로 아르동의 공격을 피하며 방패 너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르동의 함정이었다.
쾅!
방패 안쪽으로 윤성이 머리를 집어넣자마자 아르동의 펀치가 날아든 것이다.
정확히 잰 타이밍.
펀치에 맞은 윤성이 뒤로 한 바퀴를 굴렀다.
“에이 씨.”
분명 펀치가 보였고 몸이 움찔했다. 하지만 약간 대응이 늦었다.
1,900점 버프를 먹은 이 몸은 아르동의 모든 공격을 포착하고 반응할 수 있지만, 파일럿이 E급이라서 힘을 제대로 못 쓴다.
이거야 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군.
<라이트닝 발동!>
윤성의 손에서 강력한 번개가 분출해 아르동을 꿰뚫었다.
아르동의 가슴에 아직도 꽂혀 있는 단검에서 전기가 치직 튀었다.
엄청난 파괴력. 궁기 같은 상대였다면 목숨이 열 개라도 이미 죽었을 거다.
하지만.
“흥.”
아르동은 자신의 가슴에서 단검을 뽑아내 바닥에 던졌다.
“네 잡기술은 모두 파악했다. 솔직히 그 힘은 충격적이지만 내겐 수백 명의 인간을 삼켜서 얻은 금단의 힘이 있다.”
아르동이 눈을 빛내며 장검을 치켜들었다.
그 말대로다.
윤성은 상황을 냉정히 분석했다.
아르동 본인의 전투력은 사실 그렇게까지 높진 않다.
기껏해야 궁기보다 조금 위.
다만 그 생명력이 비정상적이다.
이 정도의 타격을 입고도 죽지 않는 것은 분명 아르동이 흡수한 힘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마족이라도 남의 마력을 자기 몸에 흡수하는 게 가능한가?’
윤성은 좀 전의 싸움에서 아르동의 행동들을 되새겼다.
목걸이에 박힌 루비.
가슴으로 수십 발의 빛의 탄환을 받아내면서도 아르동은 목걸이를 양손으로 감싸며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저 안에 힘이 있군. 그걸 조금씩 빼서 쓰는 거야. 비어버린 생명력을 보충하면서.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의 손에서 분출한 섬광이 목걸이를 향해 날아갔으나.
카앙!
아르동은 재빨리 장검으로 공격을 막았다. 발사되는 빛을 보고 반응했다기보다는 손가락 모양을 보자마자 목걸이를 지키기 위해 장검을 쳐든 것에 가까웠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하지만 저렇게 지키면 파괴하기가 쉽지 않겠어.’
근접전을 해야 한다. 이 거리에서는 퍼붓는 공격은 어떤 것이든 목걸이를 최우선으로 방어할 테니까.
하지만 단검이 저놈 발아래 있는데.
“아르동!”
목소리의 주인은 바토리. 윤성을 뒤따라 한참 달려온 그녀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오! 바토리.”
윤성이 반색했다.
“날 도와줄 거냐?”
하지만 바토리는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잠깐만. 조금만 숨 좀 돌리고. 하아, 하아. 하등한 것 주제에 왜 그렇게 빨리 뛰었느냐?”
“아오. 가지가지 하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