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레벨업 속도는 9.8m/s^2 042화
“이건 또 뭐지?”
남작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부터 성 내에 느껴지던 강력한 마력이 네놈이었구나. 이런 맛있는 식사가 날 직접 찾아오다니? 굉장히 훌륭하다. 잘 차려진 고급 요리 같은 너와 비교하면 A급 인간 늙은이는 돼지 잔반 수준이었군.”
“A급 인간?”
“지금 소환된 너희 성의 성주 말이다.”
“교감 말이군. 아무튼 네가 학교로 간 게 아니라니 그건 다행이다.”
“네게는 불행이지. 이제 내 먹잇감이 될 테니까 말이다.”
“한번 해보시지!”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의 양손이 연달아 섬광을 쏘았다.
두두두두!
마치 기관총을 쏘는 것 같은 난사.
궁기 정도의 적도 이만한 공격을 받으면 치명상을 입는다.
하지만.
“간지럽군.”
아르동 남작이 웃으며 몸에서 마력을 방출했다.
파앙! 하는 소음과 함께 검은 마력의 물결이 사방으로 분출했다.
‘시발.’
소름이 쫙 돋는다.
이거 실화야? 이게 무슨 A급 던전이야. 이건 누가 봐도 S급이잖아?
당황한 윤성이 뒷걸음질을 쳤다.
아르동은 바토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후후후. 바토리. 너는 혼자서도 날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큰 오산이었다. 네 상관인 그룬헤잘드를 데려왔어야 했다. 내 힘은 이미 그들을 넘어섰으니.”
“어떻게 그런 힘을 얻었지?”
“내가 인간과 계약했다 듣고 왔느냐? 그렇지 않다. 난 인간을 먹었을 뿐. 그동안 마왕의 눈을 피해서 수백을 삼켰다.”
아르동 남작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콰쾅!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바닥이 흔들렸다.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검은 마력.
점토처럼 유연히 구부러지며 끈적이는 아르동의 마법.
“크윽!”
바토리가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부식성의 마법이다. 바토리는 몸의 마력이 빠르게 제거되는 것을 느꼈다.
“보았느냐? 나는 이 힘으로 마왕을 처치하고 마계를 지배할 것이다. 바토리. 네 새로운 주인에게 절을 올리고 발에 입을 맞추어라. 그럼 목숨은 살려주마.”
“크윽.”
바토리가 이를 으득 씹었다.
“어리석은 녀석! 그 정도로 마왕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믿느냐? 그룬헤잘드 님에게 단번에 꺾일 것이다!”
“흥. 두고 보라고.”
-쩍!
아르동의 펀치가 바토리의 턱에 꽂혔다.
그녀는 기절해서 스르르 주저앉고 말았다.
“쳇,”
윤성은 손을 내뻗었다.
<라이트닝 발동!>
번개가 사방에 튀면서 아르동의 마법을 조금 몰아냈다.
“이런 것도 할 줄 아는군. 정말 대단하다.”
아르동이 칭찬했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윤성도 알고 있었다.
아르동은 윤성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넌 한 번에 마력을 빨아먹기엔 너무 아깝군. 한 방울도 남김없이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 마셔야겠다.”
콰앙!
검은 마력이 윤성의 가슴에서 폭발했다. 숨이 콱 막히는 기분.
윤성이 쓰러지자 아르동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둘 다 감옥에 가둬두어라. 바토리는 앞으로 있을 마왕과의 전쟁에서 중요한 협상 카드로 쓸 것이다. 마왕이 아끼는 여자니까. 그리고 이 인간은 모든 공물을 모은 후에 메인 요리로 천천히 마시도록 하지.”
떠나는 아르동의 뒷모습.
“제길. 안 돼…….”
윤성은 주먹을 꽉 쥐었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그대로 의식이 사라졌다.
감옥은 지하 1층. 마력 차단 마법이 걸려 있다. 윤성보다 먼저 일어난 바토리는 쇠창살을 뜯어내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조금만 더 힘이 강했으면 부술 수 있었을 텐데.’
바토리는 아쉬운 마음으로 윤성을 돌아보았다.
‘아르동이 인간의 정기를 마시고 마력을 증폭시켰다고 했는가. 그럼 나도 이 하등한 인간을 마시면 쇠창살을 뜯어낼 수 있지 않을까?’
바토리가 윤성을 향해 바짝 다가왔다.
물론 불법이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마왕께서도 이해하실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되지? 피를 먹으면 되나? 역겹군.’
하지만 만약 정기를 흡수하는 데 실패하더라도 이 남자를 죽이는 것은 나쁜 선택이 아니다. 아르동의 힘을 더 이상 키워주지 않도록 가축을 하나 제거하는 셈이니까.
그룬헤잘드 후작님이나 라플라스, 르네 같은 최상급 마족이 아르동을 잡을 수 있으려면 이 하등한 놈을 지금 제거해야만 한다.
<마력의 화살.>
바토리가 검은색 마법 화살을 만들어냈다. 활은 빼앗겼지만 화살 자체가 치명적이다.
그녀는 화살을 역으로 쥐고 윤성을 겨냥했다.
그리고 찌르려는 순간.
“헉!”
갑자기 윤성이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깜짝 놀란 바토리는 화살을 뒤로 숨기며 물러났다.
“젠장!”
윤성은 숨을 헐떡이며 창살 쪽으로 이동했다.
쾅!
창살을 두들겼으나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여기서 나갈 수 없어 이제 끝장인 상황이다.”
“제길!”
“잘 들어라, 하등한 인간아. 내가 너를 흡수하면 이 창살을 파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네 원한은 반드시 갚아주마.”
“뭔 미친 소리야!”
윤성이 악을 쓰며 소리쳤다.
이 년이 사람 죽이겠단 말을 이렇게 차분한 얼굴로 하다니.
“상황 정리 좀 해보자.”
지금 가지고 있는 게 어떤 것들이지?
빛의 탄환, 라이트닝.
둘 다 마력 차단 마법이 걸려 있는 창살을 파괴하기는 어렵다.
이런 종류의 마법이라면 오직 완력으로만 파괴할 수 있을 테니.
버프 스킬은 보호막.
이것도 지금은 아무 쓸모 없는 스킬이다. 공격 스킬이 필요한데.
인벤토리를 열어볼까?
“인벤토리.”
윤성은 인벤토리창을 살폈다.
[순간이동석]
“순간이동석?”
맞아. 이런 물건이 있었지. 핏빛야수를 잡고 인벤토리를 처음 얻었을 때 주머니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써보진 않았지만 이거 어쩌면 여기서 나갈 수 있는 카드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어디로 연결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지만.
여기 남아봤자 사망률 100%이니까.
‘나뿐 아니라 다윤이도. 그리고 학생들도 전부.’
윤성은 순간이동석을 꺼냈다.
“흠.”
차분히 마력을 모아 손끝으로 보냈다.
순간이동석에 마력이 흡수됨에 따라 돌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신기한 물건이군. 그건 무엇이지?”
바토리가 물었다.
“조용히 해라. 이 하등한 마족아.”
“뭣, 뭐라고?”
바토리가 충격받은 듯 윤성을 쏘아보았다.
하등 종족한테 이런 말을 듣다니? 하는 표정.
윤성은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우우웅.
강렬한 마력이 요동치면서 윤성의 발아래 게이트가 열렸다.
‘제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줘!’
윤성의 몸이 늪에 빠진 것처럼 암흑의 게이트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
쿵!
꼬리뼈가 아프다. 어디 떨어진 거야? 윤성은 엉덩이를 문지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밤공기가 맑고 차다.
흙과 풀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리고 들리는 풀벌레 울음소리.
그의 손에는 여전히 순간이동석이 들려 있었다.
여긴 어딜까. 윤성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랬다.
등 뒤로 고개를 돌린 윤성의 입이 딱 벌어졌다.
‘탑이잖아?’
탑.
그것도 엄청난 크기였다.
마치 ‘여기서 랜딩하면 됩니다.’라고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어마어마한 높이의 탑. 피사의 사탑, 에펠탑 뭐 이런 레벨이 아니다.
종교는 없지만 ‘바벨탑’이란 게 실존하면 이거 아닐까?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크기. 좌우 양쪽 끝도 잘 가늠이 안 되고, 위쪽은 그저 무한한 직선처럼 느껴진다.
저 꼭대기에서 랜딩하면 어떤 힘을 얻게 될까. 윤성은 전율을 느끼며 탑의 정문으로 들어섰다.
‘빨리 올라가야 해! 엘리베이터!’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물론이고 계단도 없다.
유원지의 생태 공원 같은 크기의 거대한 플로어는 완전히 풀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오랜 기간 관리 없이 방치된 정원 같은 모습.
바스럭.
멀리 수풀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윤성은 그쪽으로 손가락 총을 겨누었다. 풀숲에서 머리를 든 것은 ‘변형 바퀴’였다.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의 손가락에서 반사적으로 발사된 섬광이 바퀴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흠.’
변형 바퀴는 D급 마수. 그리 위협적인 공격력을 가진 마수는 아니지만 행동이 재빠른 데다 벌레 특유의 생명력 때문에 처치하기 어렵다. 게다가 무리 지어 다닌다.
‘이 전투가 의미가 있을까?’
탑 위로 올라가는 게 중요한데.
하지만 다른 수도 없다.
일단 나머지를 처치해야지. 그러다 보면 무슨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르니까.
윤성은 양손에 빛의 탄환을 장착하고 사방을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인근의 수풀이 한꺼번에 우수수 소릴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프가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맨몸으로 들어왔다면 아마 꽤 힘겨운 사투가 됐을지도 모르겠군.
펑펑펑펑!
조명탄을 터뜨린 것처럼 수풀 사이에서 빛이 번쩍인다. 윤성이 발사한 수십 발의 빛의 탄환이 사방을 초토화시켰다.
변형 바퀴가 거의 전멸한 후, 윤성은 탑 위층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대체 어떻게 올라가는 거지?”
바퀴 떼를 학살하며 플로어를 한 바퀴 돌았으나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따위를 발견하지 못했다.
일단 탑 위로 올라가야 랜딩을 하고 돌아가서 아르동도 박살 내고 다윤이도 구할 텐데. 큰일이군.
윤성은 순간이동석을 꺼냈다.
딱히 작동할 생각은 아니었고 착잡한 마음에 더듬었을 뿐이다.
그런데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순간이동석>
1. 층간 이동 : 이동하시겠습니까? (0층 - 200층)
2. 차원 이동 : 이동하시겠습니까? Y/N
“뭐야 이거? 층간 이동?”
층간 이동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첫 번째 선택지가 진한 글씨로 변했다. 윤성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200층.”
팟!
윤성의 몸이 새하얀 빛에 휘감기며 펑 소릴 내면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