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레벨업 속도는 9.8m/s^2 040화
11. 마계 귀족 바토리
윤성은 교사들을 두고 교실 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그가 꺼낸 것은.
<랜더의 코트 : 사용 가능, 질량을 변경할 수 있다. *최대 질량 한계치는 버프 상태와는 관계없고, 순수 레벨에 따라 변동함.>
윤성은 전투복을 다윤에게 내밀었다.
“이거 입고 있어.”
“뭔데 이게?”
“아무튼. 입고 있어.”
물론 다윤이는 랜딩 능력이 없고 체중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도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에어포스가 한때 사용하던 물건이다. 방어력 역시 웬만한 최상급 전투복 이상으로 상당히 우수할 듯싶었다.
“여기서 좀 기다려.”
복도로 다시 나와 보니 서상희와 김재혁이 초조한 표정으로 발을 구르고 있다.
“선생님 중에서 가장 급수 높은 헌터가 누굽니까?”
윤성이 물었다.
“교감 선생님이 전직 A급이셨어요. 하지만 은퇴하셨는데……. 교장 선생님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안 계세요.”
“일단 교사들을 모두 모아주세요.”
윤성이 말했다.
서상희와 김재혁은 E급 헌터인 윤성이 지시를 내리는 게 어색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일단 교사들을 모으는 것엔 찬성이었다.
잠시 후, 교무실에 모인 교사들은 총 일곱 명. 가장 급수가 높은 것은 서상희와 남수담. B급 헌터들이었다. 교감은 나이가 많아서 전력에 포함시키기 어려울 듯싶다.
“밖으로 나가봅시다.”
교감이 말했다. 던전 타입은 대충 알겠지만 난이도는 반드시 특정해야만 한다.
마력 리더기가 없으니 측정할 수는 없지만 던전 내에 자라는 잡초 따위를 확인하면 난이도를 가늠할 수 있다. 마치 수생 생물을 통해서 시냇물의 급수를 확인하듯이.
학교 밖은 난장판이었다. 군데군데 갈라진 지면에서는 당장에라도 용암이 분출할 것 같고 하늘은 미사일 폭격이라도 일어난 듯 붉다. 유황과 탄내가 물씬 풍긴다.
“A급이군요.”
윤성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혼자 클리어할 수 있을까? 이미 가루다 던전을 하나 클리어한 경력이 있지만 가루다 던전과 마계는 같은 A급이라도 질이 다르다.
샌텀 타워에서 떨어졌던 때보다 지금 가지고 있는 버프가 더 약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윤성은 교사들을 둘러보았다.
A급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윤성이 나간다면 그동안 학교와 학생들을 보호할 사람이 필요한데, 교사들의 클래스가 너무 낮다.
던전 난이도가 높은 데다가, ‘마계’라는 특수한 타입을 생각해 볼 때 지능을 가진 상급 마수들이 낯선 건물의 등장에 이곳을 직접 찾아올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들 중 둘 이상만 학교를 덮쳐도 끝장이다. 서상희나 남수담은 제법 훌륭한 B급 헌터인 듯 보이지만, 여기 있는 헌터들 모두가 힘을 합쳐도 A급 마족 하나를 처치할 수 있으리라고는 장담을 못 한다.
“학교 문을 걸어 잠그고 협회의 지원을 기다립시다. 결계 마법이 있잖아요?”
김재혁이 말했다.
‘결계?’
윤성이 반색하며 돌아보았다.
그러나 교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학교가 통째로 이동한 걸 보면 지역 침식형 게이트예요. 우리가 모두 죽거나 보스를 처치해서 클리어하지 않는 이상 외부에서 추가 지원이 들어올 순 없습니다.”
“그럼 어떡하죠?”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서 저와 함께 던전을 클리어하러 갑시다.”
교감이 말했다.
“윤성 씨는 학생들을 지켜주세요.”
가능성은 0에 수렴하지만 그들로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에어포스 헌터 스쿨은 자체적인 마법 결계 때문에 마수들의 침입이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A급 마족을 상대로는 시간문제이긴 하지만.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도록, 동요하지 않도록 심리적인 안정을 줄 어른이 필요하다. 전력에 도움이 안 될 E급 헌터 강윤성이 그 일을 맡는다.
나머지 교사들은 현재 낼 수 있는 최고 전력이므로 그들이 힘을 모아 던전을 클리어한다.
“신차민이나 김인식 같은 애들은 웬만한 하급 헌터만큼 셉니다. 그 애들을 데려가는 건 어떨까요?”
서상희가 묻자 교감이 인상을 찌푸렸다.
“힘이 세 봤자 레이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입니다. 데려갔다간 돌발 상황이 발생해서 더 위험할 수도 있어요. 하급 헌터 수준이라면 레이드에 도움이 안 되기도 하고.”
교감의 지휘 아래 레이드 포지션이 곧 꾸려졌다.
정원은 8명. 전 A급이었던 교감이 컨트롤러, B급이 2명, 나머지는 모두 C급이다.
솔직히 A급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는 전력은 아니다.
“시발, 씨발…….”
김재혁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난, 난 못해. 못하겠어.”
“여기 남아 있어봤자 죽음뿐이에요.”
교감이 말했다.
“필드 몬스터 하나라도 우리한텐 치명적입니다. 학교가 발각되어 이쪽으로 마족들이 몰려오기 전에 서두릅시다.”
“학, 학교의 결계 마법을 봐야 하잖아요!”
김재혁이 외쳤다.
“여기서 결계 마법 최고 전문가는 저 아닙니까? 제가 결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족이 학교를 침공하지 못해요.”
“김재혁 선생님이 결계를 유지하시려면 마정석을 써야 하잖습니까. 근데 학교에 지금 있는 마정석은 C급 이하 몇 개뿐이에요. 결계를 지키는 수는 없습니다.”
“으으으……. 그래도……. 난, 난 못해!”
김재혁이 비명을 지르며 학교 안으로 달아났다.
그 뒷모습을 동료 교사들이 허망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할 수 없지. 김재혁 씨 빼고 갑시다.”
교감이 말했다.
“진심이세요?”
서상희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어차피 저런 멘탈이면 함께 가도 큰 도움 안 될 거예요. 윤성 씨, 우리가 다녀올 때까지 김재혁 선생님과 함께 학생들을 잘 부탁합니다.”
“걱정 마세요.”
떠나는 교사 레이드팀을 배웅했다.
저들로서는 클리어하기 힘들 테지만 금방 무너지지도 않을 거다. 학교를 조금 정리해 두고 바로 쫓아가야지.
윤성은 학생들을 모두 대강당에 모았다.
“다들 많이 놀랐겠지만 큰일 아니니까 진정했으면 좋겠다.”
“선생님들은 다 어디 가셨어요?”
“선생님들은 던전을 클리어하러 가셨어.”
“와아!”
“우와.”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다.
지금 들어온 던전 난이도가 A급인지도, 교사진이 그걸 클리어할 가능성이 0에 가깝다는 것도 모른다.
뜻밖의 이벤트를 마냥 즐거워할 뿐.
몇 시간 후 하교 시간이 되면 집에 갈 수 있을 거라 믿는 느낌.
차라리 패닉에 빠지는 것보단 이게 낫지.
윤성은 한숨을 쉬며 학생들의 면면을 차분히 관찰했다. 이들 중 몇이나 살아남을까.
다윤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넌 꼭 집에 보낸다, 강다윤.’
윤성의 눈빛이 뜨겁게 빛났다.
그는 학생들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지시하고 밖으로 나왔다.
“인벤토리.”
창을 열고 방독마스크를 꺼냈다.
이럴 때는 유명세가 도움이 되겠군. E급 헌터의 지시라면 아무도 안 듣겠지만 S급 방독마스크의 말이라면 모두 따를 테니.
***
교무실.
김재혁은 눈물을 쏟으며 몸을 떨고 있었다.
악몽이다.
A급 던전에 갇히다니.
애초에 던전 레이드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헌터 스쿨 교사를 지원했던 그다. 매 순간 생명을 걸어야 하는 레이드 현장은 그에게 안 맞았다.
C급 헌터라면 교사직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 수 있지만 그래도 헌터 스쿨 교사로 만족했던 이유는 안전한 삶이었기 때문이다.
덜컥.
그때 교무실 문이 열리면서 낯선 남자가 나타났다.
방독마스크.
“누, 누구십니까?”
“김재혁 선생님 맞나요?”
“그렇습니다.”
“결계 마법 어떻게 쓰시는 겁니까? 혼자서 이만한 크기의 건물에 마법을 걸지는 못할 테고, 결계 마법 증폭기가 있는 거죠? 어디에 있죠?”
“그, 그걸 왜?”
“제가 결계를 설치할 겁니다. 아주 강력한 것으로요.”
랜딩 버프로 얻은 스킬이다.
보호막. 꽤 상급 결계 마법이다.
김재혁이 우물쭈물하자 윤성이 다그쳤다.
“제가 누군지 모릅니까? 뉴스 안 보세요?”
“바, 방독마스크…….”
“그래요. 마스크맨이라고요. 빨리 안내하세요!”
더 질질 끌면 빛의 탄환이라도 몇 발 쏴서 정신 차리게 할 생각이었지만, 다행히 김재혁은 움직였다.
그는 윤성을 학교 지하의 기관실로 이끌었다.
웅- 웅- 웅-
거대한 기계.
스팀이 푹푹 뿜어져 나오는 배기관 두 개 사이의 엔진부에 C급 마정석이 꽂혀 있었다.
작동 중인 마법은 ‘배리어’.
하급 결계 마법 중 하나다.
콰직!
윤성은 C급 마정석을 뽑아버렸다.
“뭐 하는 겁니까!”
놀란 김재혁이 소리쳤다. 부웅 소리와 함께 학교의 배리어가 꺼져 버렸기 때문.
하지만 이어지는 윤성의 행동에 큰 충격에 빠졌다.
[A급 마정석.]
인벤토리에서 윤성은 에어포스에게 받았던 마정석을 꺼냈다. 궁기를 처치하고 얻었던 것이다.
솔직히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학생들 목숨값이라 생각하면. 특히 다윤이 목숨값이라 생각하면.
끼이익.
<보호막 발동!>
보호막 마법을 썼다. 강력한 마정석과 상급 결계 마법.
학교 주위를 새파란 빛이 단단히 감쌌다.
“저, 누, 누구십니까?”
김재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 얘기했잖아요? 마스크맨입니다.”
“하지만, 어, 어떻게……?”
“결계를 유지, 강화하고 기다리세요. 던전 클리어하고 올 테니.”
윤성은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멀리 불타는 마계의 성이 보였다. 마계의 특성상 ‘영주’가 던전의 보스이고, 아마 저 성에 있을 것이다.
윤성은 힘껏 성을 향해 내달렸다.
대지의 균열들에서 용암이 치솟았다. 사방에서 욱신거리는 화기. 실수해서 발을 잘못 디뎠다간 골로 가겠군. 윤성은 달리기를 조심했지만 속도를 줄이지는 않았다.
30분 랜딩 임무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얻은 버프는 23일. 아직도 21일 이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상대는 A급 던전.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시간을 질질 끌면 A급 마정석의 수명이 다해서 결계가 뚫릴지도 모르니까.
마정석의 수명은 길어봤자 여섯 시간 정도일 것이다.
그 이후는 이겨도 이긴 게 아닐 테니.
승부를 본다면 여섯 시간 내에 끝낸다.
“캬악!”
마족 하나가 달려오는 윤성을 발견하고 반응했다. 헐벗은 몸뚱이. 뾰족하게 치솟은 귀와 박쥐 같은 얼굴. 상급 마족은 아니다. 기껏해야 C급?
<빛의 탄환 발동!>
달리는 기세 그대로 손가락에서 섬광을 발사했다. 마족은 가슴에 구멍이 뚫려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같은 방식으로 몇몇 마족을 처치한 윤성은 곧 거대한 성 앞에 도달했다.
입구에 있는 것은 4미터 키의 골렘이었다.
‘뭐야? 학교에서 여기까지 직선으로 달려왔는데 왜 교사진을 만나지 못했지?’
윤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골렘을 바라보았다.
이건 분명 이상하다. 교사진이 중간에 다른 곳으로 샜다는 건데.
‘일단 이 골렘부터 족친다.’
마침 골렘이 윤성을 인식하고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찰나였다.
윤성은 잽싸게 상대의 발치를 향해 달려들었다.
<빛의 탄환 발동!>
팡!
“끄악!”
발사된 섬광이 골렘의 무릎 한쪽을 꿰뚫었다.
무릎에 구멍이 난 골렘이 휘청거리자…….
팡!
윤성은 한 발을 더 쏘아서 남은 무릎도 박살 냈다.
쿠웅!
무릎을 꿇고 쓰러진 골렘. 그래도 윤성보다는 훨씬 키가 컸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괴수의 눈동자에 순간 공포감이 어리는 것 같았다.
마치 감정이라도 있는 것처럼.
웃기는군.
윤성이 빛의 탄환을 장착한 손가락을 골렘에게 겨누는 순간이었다.
“잠깐! 사, 살려줘!”
윤성의 동작이 굳었다.
“뭐야? 말을 하잖아? 그것도 한국말을?”
이렇게 어색할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