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레벨업 속도는 9.8m/s^2 039화
윤성은 학교 옥상에 랜딩했다.
귀찮게 계단으로 3층까지 어떻게 올라가냐. 어차피 학교 뒤편의 후미진 곳에서 점프하면 교실 창문에서 보이는 각도가 아니니까 목격될 우려도 없다.
다만 랜더의 전투화를 컨트롤하는 게 아직 능숙하지 않은 탓에, 20미터 정도만 점프해서 옥상에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100여 미터를 치솟아버렸다.
철컥.
옥상 문이 잠겨 있다.
와직!
윤성은 힘주어 문짝을 뜯어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3층. 3학년 5반 바로 앞이다.
“강다윤!”
윤성이 문을 왈칵 열며 소리를 질렀다.
그의 눈에 다윤과 그녀를 둘러싼 학생들 일곱 명이 들어왔다.
노는 애들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일정한 레파토리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무슨 이마에다 ‘일진’이라고 써 붙여놓기라도 한 것처럼 티가 난다.
줄여 입은 교복이나 머리 모양, 액세서리 같은 것 때문이 아니라 껄렁한 눈빛 때문에.
‘제발 저 녀석들이 다윤이 친구들이 아니게 해주세요.’
기도하며 다가가던 윤성은 겁에 질린 다윤의 얼굴을 발견했다. 상황이 생각보다 더 나빴던 모양이군.
일진들이 깔깔 웃기 시작했다.
“E급 헌터 오빠? 어떡해, 야 진짜 왔잖아!”
“이제 인식이 큰일 난 건가?”
친구들의 비아냥에 힘을 얻은 김인식은 건들거리며 윤성의 앞으로 다가왔다.
“아저씨, E급 헌터죠? 저 다윤이랑 얘기 좀 하고 있는데 제가 먼저 왔으니까 먼저 얘기해도 되죠?”
“무슨 얘기?”
“소개팅 가자고 제안하고 있었어요. 다윤이가…….”
“갈 거야?”
윤성이 김인식의 말을 자르며 다윤에게 물었다. 다윤은 고개를 저었다.
“안 간다네. 됐지?”
김인식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자 일진들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아저씨 리얼 개쩔어.”
“야, 어떡해? 저 오빠 큰일 났다.”
“웃지 마, 웃지 마.”
“인식이 빡돌았다.”
김인식이 윤성을 붙잡아 세웠다.
“하아. 아저씨. 잠깐만. 아저씨. 아. 애들 앞에서 저 개쪽 주고. 아저씨 저희 아빠 누군지 아세요? 아니, 저는 누군지 아세요? 아저씨 E급이라면서? 그럼 저한테 안 되는데. 저 거의 D급 헌터랑 맞먹는 수준이에요. 알아요? 지금 나한테 이래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
윤성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김인식을 밀치고 다윤에게 성큼 다가가는 순간, 뒤에서 김인식이 코웃음을 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미친 꼰대 새끼가!”
슉!
신차민은 깜짝 놀랐지만 윤성의 눈에는 거의 하품이 나올 정도로 허접한 펀치였다.
현재 A급 상위권인 스탯 덕분만은 아니다. 최근 했던 전투들이 전부 상급 헌터들의 싸움 한복판이었던 탓.
‘이 애송아, 내가 며칠 전에는 A급 던전 하나를 단독으로 클리어한 경력도 있단다.’
슥-
윤성은 고개를 틀어서 김인식의 주먹을 가뿐히 피했다.
김인식의 깜짝 놀란 표정.
“오오!”
김인식 무리가 다시 감탄과 함께 손뼉을 쳤다.
펀치를 피한 게 요행이라 생각하는 모양.
“내 나이에 각성도 안 한 학생이랑 싸워줄 순…….”
윤성의 말이 멈추었다.
그의 눈에 다윤의 책상이 들어왔다. 김인식의 주먹 자국이 남은 철제 책상이었다. 그 옆엔 반 토막 난 책 한 권.
“이거 네가 한 거냐?”
윤성의 물음에 김인식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피식 웃었다.
‘설마 E급 헌터가 진짜 내 주먹을 피했겠어?’
그가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제가 한 건데요? 재밌는 거 알려줄까요? 이 책상 마수들이 침공해도 끄떡없는 소재로 만든 거예요. 왜요? 이제 좀 쫄리시나? 근데 내가 때린 게 다윤이는 아니라서 다행 아니에요? 아, 아저씨가 아니라서 더 다행인가?”
윤성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쾅!
바로 옆에 서 있었던 김인식조차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진 윤성의 주먹이 철 책상을 두 동강을 내버렸다. 휘거나 하는 게 아니라 ‘부쉈다’.
경악한 김인식은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고 뒷걸음질을 쳤다.
‘X발, 이게 가능한 거야? 사람 손으로 이 책상이 부러질 수가 있는 건가? 교사들도 이런 건 못 하는데.’
“네 말대로야, 진짜. 정말로 다행이다.”
윤성이 이를 악물며 저음으로 속삭였다.
김인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때린 게 책상이라서.”
오싹.
김인식의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윤성은 김인식의 일진 친구들을 한 번 훑었다. 모두 충격과 공포에 질린 표정. 교실에 침묵이 흘렀다.
윤성의 사나운 시선이 차민에게 돌아갔다.
“너도 내 동생 건드렸냐?”
“아뇨! 아닙니다! 형님. 제가 막으려고 했었습니다, 형님!”
“마, 맞아. 걔는 나 도와주려고 했어.”
다윤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윤성은 다윤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듯 보였다.
“가자, 다윤아. 너랑 소윤이. 내가 데려가기로 했다. 이모한테 얘기했어. 다시 일반고로 옮기고 대학 가.”
“뭐라고?”
“내가 평소에 신경을 못 써줬지? 미안하다. 전학하고 이것저것 하느라 공부 제대로 못 해서 아쉬우면 재수해도 되니까 너 하고 싶은 것 실컷 해. 전부 지원해 줄게. 오빠 이제 돈 많다.”
윤성은 말을 마치고 김인식 쪽을 돌아보았다.
“아, 아저씨 뭐예요……?”
김인식이 물었다.
“E급 헌터다.”
“구, 구라 치지 마. 당신 힘 숨긴 거지? 당신이 포천 사건 그 살인자라며! 당신이 죽인 거지? 그 힘으로? 아버지한테 보고 하겠어. 다시 재판 열어야 한다고 할 거야!”
“아버지가 누군데?”
“S급 헌터 김성인…….”
“성인 형님한테 단단히 따져야겠군. 요즘 길드 관리로 정신없으시던데 그 일 내가 대신해 줄 테니까,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애새끼 단속 좀 하시라고!”
사실 김성인 얼굴도 본 적 없지만 윤성의 허세는 제대로 먹혔다. 김인식이 바짝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아는 사람인가 하는 표정이다.
못된 짓 해도 애는 애군. 너무 하찮아서 어이가 없다.
그리고 짜증도 난다.
성장하기도 바쁘고 정체를 숨기는 것도 힘든데 왜 자꾸 날파리 같은 것들이 귀찮게 하는 거야.
이 이야기가 협회에 들어가면 그것도 처리하기 번거로워지는데…… 에휴.
그런데 이렇게 골치 썩이게 된 이유가, 생활비 몇십만 원 밀렸다고 수능 직전에 애를 이런 데로 보내는 이모나, 힘 좀 쓴다고 동급생 괴롭히는 애송이 때문이라니. 다들 왜 그러는 거야?
그렇게들 할 짓이 없나?
“휴우.”
윤성이 깊이 한숨을 내쉬며 분노를 삭였다.
“이 애송아. 네가 뭐라도 된 것 같냐? 학교에서 다들 띄워주니까 우쭐해? 각성한다고 대단해질 것 같아? 너 같은 건 상급 던전 들어가면 5분 안에 사망이야.”
“무, 무슨…….”
“너, 얼굴 기억했다.”
윤성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복수한답시고 우리 애 또 건드리거나 하면 나 법으로 해결 안 해. 무슨 말인지 알아? 얘한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너 찾아간다. 네 아버지도 못 막아. 그리고 네 아버지한테 박살 나고 싶지 않으면 가급적 나에 대해선 그냥 입 닥치고 있는 걸 추천한다.”
윤성은 다윤의 손목을 꼭 쥐었다.
“가자.”
이모 댁에 찾아가서 막내 소윤이를 데리고 올 생각이다.
‘내 원룸에 둘을 재울 수는 없으니 호텔을 먼저 알아봐야겠군.’
다윤이 전학 수속은 어떻게 하지? 이제 수능이 한 달 겨우 남았는데 전학이 되긴 되려나?
복잡한 심정으로 교실 문을 나서는 윤성.
갑자기 그의 발이 멈추었다.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 그래?”
다윤이 물었다.
“굉장히 불길하고 기분 더러운 느낌이 든다.”
최상급 헌터 중에서는 극도의 기감으로 이런 것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던데, 설마?
위이이이이이잉!
사이렌이 울렸다. 젠장. 진짜군.
“뭐야?”
“사이렌?”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던전이 생성됐다.
“아니, 왜 내가 가는 곳마다 이 난리야?”
랜딩 능력에 던전 범람을 몰고 다니는 페널티 같은 거라도 있는 거 아닐까?
솔직히 이 정도로 사고가 따라다니는 게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가 있나?
애초에 랜딩 능력이나 J등급이라는 것도 몹시 예외적인 개념이었다. 정말 무슨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타이밍은 또 왜 이 모양이야?”
다윤이만 좀 데리고 나간 다음에 일 터지면 어디가 덧나냐?
윤성은 인상을 찌푸리며 교실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상하다.
윤성의 기감으로는 아직 던전 출몰을 느낄 수는 없다. 던전에서 새어 나오는 마력은 초일류 헌터가 아닌 이상 체감할 수 없으니까.
‘현재 내 감각 능력으로 던전 출몰을 느낄 수 있었다면 둘 중 하나다. 던전이 바로 옆에 생성된 거거나, 엄청나게 강력한 던전이거나, 혹은 둘 다거나.’
윤성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크기의 게이트가 학교 건물 바로 아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학교 무너진다!”
학생 중 하나가 소리쳤다.
“아냐! 무너지는 게 아니라…….”
패닉 상태에 빠진 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게이트에 빨려 들어가는 거야!”
“전부 조용히 해!”
윤성이 고함을 질렀다.
“다들 창가에서 떨어져. 두 명이서 서로 팔꿈치를 걸어서 스크린을 짜고 내 쪽으로 와.”
윤성은 다윤의 팔을 잡아당겨 옆구리에 꼈다.
“이쪽으로.”
흔들리며 땅속으로 빨려드는 학교.
윤성은 학생들을 인솔해서 교실 앞문의 교탁 근처로 모았다. 붙박이 교탁 테이블은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기울어진 교실 때문에 학생들이 굴러서 다칠 위험은 없다.
“교탁 다리를 쥐어.”
윤성의 명령대로 학생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교탁에 몸을 붙였다.
“다윤아, 너도 이거 잡고 있어.”
윤성은 다윤의 팔을 놓아주면서 앞문으로 나섰다.
“오빠 어디 가?”
“다른 반들 상태 체크하러.”
윤성은 복도로 빠져나왔다. 윤성의 교실은 5반. 4반, 6반 교사들이 차례로 튀어나와 윤성과 눈을 마주쳤다. B급 헌터 서상희와 C급 헌터 김재혁이다.
“일일강사? 윤성 씨죠? 셔틀 타고 안 돌아가셨나요?”
서상희가 물었다.
“일이 좀 있어서.”
“5반은 어떻게 됐죠?”
“스크린을 짜서 교탁에 모아두었습니다.”
“잘하셨어요.”
쿠구구!
학교 밖에서 굉음이 들린다. 게이트에 완전히 들어간 학교가 공간 이동을 마친 것이다. 복도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새카맣다.
콰아!
번개 한 줄기가 운동장에 떨어졌다.
아니지, 이젠 더 이상 운동장이라고 할 수가 없군. 모랫바닥이 아니라 붉은색 던전의 흙바닥이니까.
“선생님, 이 던전 난이도나 타입에 대해서 혹시 아시는 바 있습니까?”
C급 헌터 김재혁이 서상희에게 물었다.
“글쎄요. 이런 타입은 처음이라…….”
“마계 타입입니다.”
윤성이 대신 답했다. 몇 년 전에 상급 헌터들 따라서 상급 던전에 짐꾼으로 들어갔을 때 가끔 보았던 타입이다.
“난이도는 확신 못 하지만 최소 A급.”
교사 둘의 얼굴이 굳었다.
“잠깐만 기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