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레벨업 속도는 9.8m/s^2 037화
10. Falling slowly
집에 도착한 윤성은 문 앞에서 커다란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택배!”
내 돈 주고 사고도 선물 받는 기분이라는 택배.
게다가 이 물건은 윤성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이다.
윤성은 서둘러 방문을 열고 들어가 상자를 뜯었다.
안에 있는 것은 빵빵한 배낭과 설명서.
며칠 전 알리바바에서 해외구매 주문을 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굉장히 일찍 왔군.’
내일은 이걸 써봐야겠다.
개인 낙하산.
가격은 350만 원. 꽤 비싸지만 지금 윤성에겐 전혀 부담되지 않는 금액이다.
패러글라이딩은 10여 분밖에 못 난다. 물론 상승 기류인지 뭔지를 잘 타고 어찌어찌하면 더 오래도 난다지만.
그러나 그런 복잡한 기술은 필요 없다. 윤성이 원하는 것은 ‘30분 이상 낙하’하는 랜딩 임무를 완수하는 것.
‘이제 내겐 랜더의 코트가 있다.’
1㎏으로 몸무게를 최소화하고 낙하산을 타면 한 시간 이상도 날아다지니 않을까? 깃털처럼 천천히 떨어지면.
이튿날 아침, 유명산.
윤성은 랜더의 전투화를 사용해 점프했다.
최고 고도까지 올라간 후,
<랜더의 코트 발동!>
1㎏으로 보정된 몸무게. 동시에 윤성은 등에 멘 가방의 단추를 당겼다.
펑!
활짝 펼쳐진 패러슈트의 날개.
그리고.
“몸이 뜨잖아?”
맞은편 산에서 부는 바람이 이쪽 언덕에 부딪혀 올라와서인지 공기가 위로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1㎏ 몸무게에 거대한 낙하산을 찼으니 윤성의 몸뚱이는 그야말로 바람 부는 방향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셈.
비록 상승 기류를 벗어나자 꾸준히 추락하긴 했으나 지면까지는 여전히 한참 멀었다.
약간 지겨운 기분이 들 정도다.
윤성은 높은 상공을 활보하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팀이 둘 정도 보인다.
랜더의 전투화로 점프한 윤성은 그들보다 한참 위에 있었다.
문득 랜딩 한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지금은 기껏해야 7, 800미터 선에서 랜딩하고 있지만 고도에 한계가 없다면 수천 미터도 가능할까?’
에어포스가 빛의 강체를 최고 출력으로 발동할 때 능력치 전반이 10,000점에 이른다고 들었다.
물론 평론가들의 추측이다. SS급의 능력치를 측정할 수 있는 기계는 존재하지 않고, 에어포스 본인은 자신의 상태창의 정보를 공개한 적 없으니까.
하지만 다른 SS급 헌터들의 전투력을 보면 에어포스도 그쯤 될 것이다.
10,000점.
10,000미터 상공.
보통 국제선 비행기의 운항 고도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그 높이에서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뛰어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리고 그 높이에서 랜딩이 가능할까?
너무 욕심이다.
그 높이에서도 랜딩이 되리란 보장도 없고 가능하다고 해도 그 힘을 영원히 갖는 게 아니고 기껏해야 23일 치니까.
“30분은 넘었군.”
이런저런 잡생각과 랜딩에 대한 연구로 고민하던 윤성은 손목시계를 힐끔 보았다.
아직도 지면은 꽤 멀었다.
뭐 굳이 천천히 내려갈 필요는 없지. 시간은 다 됐으니.
<랜더의 코트 발동!>
윤성은 몸무게를 다시 2.3톤으로 보정했다.
빠르게 낙하한 윤성은 굉음과 함께 지면에 랜딩했고, 750점짜리 버프를 23일간 얻었다.
<랜딩 임무 : 30분 이상 낙하. -완료- 보상 : 랜더의 손목시계 lv.2>
손목시계의 레벨이 올랐다.
전투화나 코트와 달리 손목시계에는 Lv이 붙어 있었는데, 과연 예상대로 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윤성은 Lv.2의 랜더의 손목시계를 살펴보았다.
<랜더의 손목시계(Lv.2) : 버프가 기본 시간 ‘1일’을 가짐. 모든 랜딩 버프가 레벨에 비례하는 값의 버프를 기본값으로 가짐. 이는 개인 최고 기록 범위 내에서 적용됩니다.>
레벨에 비례하는 값의 버프?
손목시계 위에는 <최고 기록> 버튼과 <버프 기본값> 버튼이 생겼다.
버튼을 차레로 누르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현재 최고 기록.>
756미터.
<현재 버프 기본값.>
-230점.
23레벨에서 230점.
이게 기본값이라는 것은 제자리에서 살짝 점프만 해도 230점의 버프가 생긴다는 뜻인가?
그럼 지상에서 랜더의 전투화로 점프하면 460점이다.
만약 500미터 유명산에서 랜딩하면? 730점!
점프해서 랜딩하면? 980점!
‘……은 아니겠군. 최고 기록 범위 내에서 적용된다고 했으니.’
지금 최고 기록인 756점까지만 보정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정말 파격적이다.
굳이 높은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제자리 점프만으로 460점의 버프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1일은 기본이잖아?
협회에서 백마중을 만났을 때의 버프와 큰 차이가 없으니 백마중을 속이기에도 매우 용이할 거다.
만약 우연히 백마중과 마주쳤는데, 그때와 다른 버프를 가지고 있다면 백마중은 의심할 거다.
하지만 안 보이는 곳에 가서 리셋하고 점프하고 돌아오면?
백마중은 ‘어라, 다시 전에 본 전투력이랑 비슷하네. 방금 전엔 내가 잘못 봤나 보군’ 하겠지.
‘대박이다!’
무엇보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기본값이 점점 높아진다는 게 맘에 든다.
비록 최고 기록이란 게 방금 전 랜딩 때부터 적용되는 모양이라 800미터를 넘었던 샌텀 타워 엘리베이터 랜딩이 빠져버린 게 아쉽긴 하지만.
“혹시 임무가 더 있을까?”
윤성은 랜딩 임무창을 켰다.
<랜딩 임무 : 3일 이상 낙하하기.>
“3일!”
윤성이 숨을 컥 들이마셨다.
“미쳤냐!”
3일 랜딩을 어떻게 해? 국제선 타고 10,000미터에서 낙하산을 메고 1㎏으로 떨어져도 3일까진 못 갈 텐데.
무엇보다 3일 정도면 공중에서 먹고 자고 해야 하는 수준이잖아? 말이 되냐? 국제선 비행기 중 어떤 것들은 침실도 있다곤 하지만, 그건 랜딩이 아니잖아.
‘아니지, 잠깐만?’
샌텀 타워에서 엘리베이터와 함께 추락했을 때도 윤성은 랜딩에 성공했다.
굳이 맨몸이 아니라 무언가에 둘러싸여 함께 떨어지는 상태여도 랜딩은 된다는 뜻.
마치 장갑과 전투화를 신고 있어서 맨살이 지면에 닿지 않아도 랜딩으로 인정되는 것처럼, 시스템은 엘리베이터 바닥 면이 지면과 닿아도 그 위에 있는 윤성에게 랜딩 버프를 줬다.
‘공중에 떠 있는 비행기에서 3일쯤 머무르다가 떨어져도 랜딩이 인정되지 않을까?’
해봐야 아는 거지.
랜더의 손목시계의 파격적인 성능을 볼 때 Lv.3도 상당히 기대된다.
윤성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걸 하려면 돈이 꽤 있어야겠군?
윤성은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꺼냈다.
그동안 랜딩 임무를 수행하며 얻은 것들, 가루다 던전에서 얻은 것들, 에어포스가 준 것 등이다.
C급 세 개, B급 마정석 열두 개와 A급 마정석 하나.
윤성은 그것들을 몽땅 들고 C+ 타워로 직행했다.
입구의 헌터들은 이번엔 윤성에게 훨씬 더 호의적이었다. 한 번 거래한 경력이 있었고 그 액수도 꽤 큰 편이었으니.
윤성은 곧바로 50층으로 직행했다.
지난번에 윤성의 거래를 도와주었던 캐셔가 이번에도 윤성을 맡았다.
“이것들을 모두 팔고 싶습니다.”
윤성은 마정석을 우르르 쏟아놓았다.
캐셔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웬만한 A급 레이드 팀이 한탕 뛰어야 모을 수 있는 양이군요. 개인이 이만한 양을 가져오시다니.”
“그렇게 됐어요.”
윤성은 마정석들을 내려다보다가 A급을 꺼냈다.
“이건 빼주세요.”
좀 아까웠다.
궁기라는 강적을 쓰러뜨리고 얻은 것이기도 하지만, 에어포스가 그에게 직접 전해주었던 물건이다.
그리고 C+ 타워에서 마정석을 밀매하는 것은 협회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불법이다. 협회의 최고 헌터인 에어포스가 준 것을 여기서 팔아치우는 건 마음이 좀 불편했다.
에어포스의 팬심 때문이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이것만 처리해도 상당한 금액이 될 것 같군요.”
캐셔는 B급 12개와 C급 3개의 무게를 달고 마력 감정을 하고 가격을 계산했다.
10억 2천 7백만 원.
A급이 포함되었다면 배로 뛰었을 테지만.
이번에도 돈세탁법은 골동품을 이용한 것이었다. 다만 조각상 대신 미술 작품. 윤성이 만 오천 원에 산 것은 약간 어색한 유화 작품이었는데, 사실 반 고흐가 그린 습작 중 하나였다.
17층에서 반 고흐의 작품을 팔아치우고 10억 2천 7백만 원을 입금받았다.
“감사합니다. C+ 타워를 또 이용해주세요.”
“수고하세요.”
만약 비행기를 타고 10,000미터 상공에서 3일을 머무른 후 랜딩에 성공하면, 그 버프로 엄청난 것들을 할 수 있다.
멀리 외국에서 일을 한다면 정체가 발각될 가능성도 낮을 것이다.
제3세계 국가에 간 후, 현지의 관리되지 않는 A급 이상 던전들을 모두 털어버리고 A급 이상 마정석을 싹쓸이하는 거다.
인벤토리에 담아오면 세관에서 걸릴 위험도 없을 테고.
집으로 돌아온 윤성은 곧바로 구글에서 서비스 업체를 찾아보았다.
연관 검색어를 타고 가다 보니 mile high club이라는 용어가 튀어나왔다.
이집트의 한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다. 중동의 석유 부자들이나 영미권의 재벌 2세들을 대상으로 한 것.
윤성은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mile high club 서비스 안내 페이지를 열고 구글 번역기를 돌렸다.
2.5마일 상공에서 파티를 즐기세요!
지상에서의 업무 스트레스를 모두 내려놓고 최대 7일간의 고공 휴가를 떠나세요!
최고급 침실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파티룸에서 고급 위스키와 맥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호텔 셰프가 매일 조식, 중식, 석식을 제공합니다.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최고의 접대를 제공하고 커리어의 성공을 노리세요!
추가 요금을 내고 ‘특별한 서비스’를 예약하실 수 있습니다.
특별한 서비스?
어쩐지 좀 이상한 느낌이다.
윤성은 구글에서 이집트 항공사의 mile high club에 대한 영미권 재벌들의 후기를 검색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특별한 서비스’는 꽤 낯뜨거운 것이었다. 젊은 여성들에게 돈을 좀 쥐여주고 데려와서는 승무원 옷을 입히고 고객과 함께 비행기에 태우는 것.
항공사에서 이런 걸 직접 하다니 정말 막장이군.
‘이 서비스는 필요 없다.’
하지만 마일하이클럽 자체는 나쁘지 않다. 3일 동안 하늘을 떠다니는 랜딩 임무를 달성할 수 있을성싶었다.
윤성은 곧바로 항공사에 메일을 보냈다.
영어가 짧은 탓에 한글로 쓰고 그 아래에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은 영문을 어설프게 썼다.
제목 : mile high club 예약.
본문 : 한국의 헌터입니다. 3일 이상 항공기에서 머무르며 생활하고 싶습니다. 숙식만 제공되면 여타 서비스는 필요하진 않습니다. 견적 알려주세요.
이렇게 하면 되겠지?
윤성은 메일 전송 버튼을 눌렀다.
월요일 오전 9시. 아직 항공사에서 메일은 오지 않았다. 그래 항공사 직원들도 주말에는 쉬어야지.
‘나도 오늘은 다른 일이 있으니.’
윤성은 오랜만에 양복을 입고 타이까지 둘렀다. 머리엔 왁스까지 바르고.
별로 긴장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할 생각을 하니 은근히 떨린다.
일일 강사들을 모시기 위한 셔틀이 윤성의 집 근처로 왔다. 윤성은 시간을 맞추어 셔틀에 올라탔다.
에어포스 헌터스쿨은 그리 멀지 않아서 약 20여 분 사이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수업 시작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기 때문에 윤성은 학교를 구경했다.
에어포스가 후원하는 만큼 그녀의 재력과 비례해서 시설이 아주 대단한 학교였다.
‘내가 다녔던 헌터스쿨은 식당 같은 게 아예 없었는데.’
여긴 식당이 무슨 백화점 푸드코트처럼 되어 있다.
학교 건물도 본관, 동관, 서관, 셋으로 나뉘어 있고, 그중에는 최고급 설비로만 갖추어진 체력 단련실, 마법 수련실 따위가 있었다.
새파란 인조 잔디가 쫙 깔린 운동장이 학교 정문 쪽에, 후문 쪽에는 마치 야구장 같은 소형 원형 경기장이 있었다.
서관에는 커다란 농구 코트와 실내 운동장이 마련되어 있다.
이 정도면 학교 다닐 맛 나겠네.
무엇보다 이 훌륭한 시설을 공짜로 쓸 수 있다는 점이 대단하다.
물론 최고의 자질을 갖춘 아이들만 입학할 수 있지만, 에어포스는 기회 균등 선발 제도를 도입해서 가난한 집안 아이들도 뽑을 수 있게 해주었다.
시간은 흘러서 오후 1시.
교무실에서 간단한 안내를 받은 후 윤성은 3학년 5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차민이 연신 히죽거리는 걸 보고 손가락을 입술에 대어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최근 구스타프 던전에 짐꾼으로 따라간 얘길 해줄 생각이다. 물론 마스크 쓰고 했던 활동들은 전부 빼고 적당히 각색해서. 핏빛야수 얘길 해주면 흥미로워하겠지.
그 전에 출석부터 부르고.
자 보자, 출석부 1번 이름은…….
“강…… 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