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레벨업 속도는 9.8m/s^2 034화
9. 마스크맨
정신을 차렸을 때는 협회 건물 옥상에 있었다. 응급 헬기가 착지하는 곳. A급 헌터 한 명이 윤성을 치료하고 있었다.
“읏!”
윤성이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어라?”
방독마스크가 씌워져 있는 상태다.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 벗기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어떤 분인지 매우 궁금하지만요.”
약간 떨어진 곳,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까닥거리며 에어포스가 말했다.
“휴우. 고맙습니다.”
“뭘요. 본인 입으로 듣고 싶었을 뿐이에요. 마스크 씨, 당신 이름이 뭐죠? 뭐 하는 분인가요?”
윤성이 당황해하자 에어포스는 빙긋 웃었다.
“곤란하면 얘기하지 않아도 돼요. 협회의 은인이신데 밝히기 싫다는 걸 캐묻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요.”
“고마워요. 근데 전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협회 사람들이 많이 봤을 것 같은데.”
“제가 안아서 날아온 것이기 때문에, 여기 있는 힐러 이유정 씨 외엔 당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아무도 몰라요. 샌텀 타워를 떠날 때는 카메라에 좀 찍혔겠지만.”
“에어포스 님, 이 환자 폐에 물 빼는 중이니 말 시키지 마세요.”
오른쪽에서 힐링 스킬을 쓰던 이유정이 말했다.
덕분에 이것저것 물으려던 윤성은 입을 다물었다.
근데 안아서 날아왔다고?
에어포스의 품 안에 안겨 있는 모습을 상상한 윤성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잠깐 치료 시간을 보내고 이유정의 힐링이 윤성의 다리 쪽으로 옮겨가자.
“게이트는 어떻게 됐죠? 타워 쪽은?”
윤성이 물었다.
“시민들은 모두 무사히 대피했어요. 당신 덕분이죠. 게이트는 둘 다 닫혔고요.”
에어포스가 설명했다.
“사상자는 없나요?”
“없을 순 없죠. 하지만 A급 마굴 두 개가 동시에 범람한 번화가라는 걸 감안하면 기적이라고 할 만큼 피해가 적었어요.”
“그나마 다행이군요.”
“그보다 휴대폰이 계속 울리던데 확인해 보세요.”
에어포스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띠리리.”
마치 기다렸단 듯이, 바로 그 순간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민차희 복지부서.]
윤성은 움찔하며 에어포스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발신자 이름을 보긴 봤습니다만, 전 그게 누군지 모르겠군요. 궁금하지도 않고.”
알아내려고 맘먹으면 가능하지만 그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고맙군.
“상처는 거의 다 고쳤어요.”
힐러 이유정이 말했다.
“하지만 한동안 무리하면 안 돼요.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하시고 집안에서 요양하세요.”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치료가 끝나자 에어포스가 윤성의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일단 이것부터 받으시죠.”
에어포스가 내민 것은 A급 마정석. 핏빛야수 때 얻었던 것만큼 광택이 좋았다.
“궁기가 가지고 있던 겁니다. 그걸 처치한 게 당신이었으니, 당연히 이건 당신의 전리품이죠.”
“고마워요.”
윤성은 마정석을 주머니에 넣었다.
하지만 윤성의 보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스크 씨, 당신은 저 대신 헌터 팀을 지켜주었고, 게이트를 닫아서 피해의 확산을 막았어요. 협회의 간부로서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혹시 원하는 게 있습니까? 제가 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드리겠습니다.”
“정말요?”
“네. 돈으로 드릴까요?”
윤성은 잠깐 고민하다가 거절했다.
“괜찮아요.”
돈은 이미 꽤 있고 벌 수 있는 방법도 많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에어포스가 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윤성이 고민하는 사이, 에어포스가 한 가지를 제안했다.
“의식을 회복하시기 전에 혼자 고민을 좀 해봤는데. 장비는 어때요? 당신은 뛰어난 힘을 가진 헌터지만, 장비는 솔직히 보잘것없잖아요? 이 기묘한 전투화와 손목시계를 빼면 마력이 느껴지는 제품이 아예 없군요.”
그녀가 윤성의 전투복을 톡톡 두드렸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협회 보물창고에서 몇 개 꺼내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에요.”
에어포스는 윤성을 데리고 협회 VIP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녀는 그대로 건물 지하 1층의 보물창고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길에 몇 명의 상급 헌터들을 마주쳤다. 그들은 방독 마스크를 실내에서 쓰고 있는 윤성을 보고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상급 헌터 중에선 괴짜들이 워낙 많으니까.
게다가 에어포스의 동행이라면 문제의 여지도 없다.
보물창고의 도어엔 특수 보안이 걸려 있었지만 에어포스가 눈을 갖다 대고 홍채 인식을 시키자 곧바로 문이 열렸다. 협회 내에서 그녀의 권한은 고제하 협회장 바로 다음이었으니까.
“들어오세요.”
수많은 보물이 잔뜩 들어서 있는 방.
윤성은 천천히 물건들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진귀한 것들이다. 마법 공격력을 50%나 올려주는 목걸이, 스킬 <오러블레이드>를 장착한 장검, 투시 마법을 쓸 수 있는 고글.
하지만 그중에서도 윤성의 눈길을 끄는 것은,
“이거 에어포스 코트 아닌가요?”
윤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코트를 집어 들었다.
에어포스가 빙긋 웃었다.
“맞아요. 제가 옛날에 쓰던 것이죠. 비행 스킬이 아직 미숙하던 때 그 아이템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도움을?”
“비행 스킬은 공중에 떠있는 몸을 유지시키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해요. 그렇다고 낙하산 같은 걸 쓰면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기가 어렵고.”
에어포스가 코트를 집어 들었다.
“이 망토는 질량 변화의 마법이 걸려 있어요. 사용자가 투자할 수 있는 마력의 양에 따라서 체중을 1㎏까지 줄일 수 있죠.”
“헉.”
“하지만 저처럼 비행을 쓰는 게 아닌 이상 그다지 쓸모 있는 물건은 아니에요. 몸무게가 줄면 움직임도 그만큼 가벼워질 수 있지만 적응되는 데 시간이 걸리거든요.”
“이거 체중을 늘릴 수도 있나요?”
“네?”
“이걸 입고 무게를 늘리는 것 가능한가요? 톤 단위로.”
윤성은 랜딩 임무 창을 열었다.
<랜딩 임무 : 맨몸으로 종단 속도에 도달. -완료- 보상 : 이제부터 랜딩으로 1일 1회, 최종 속력에 비례하는 영구적 능력치 상승이 가능합니다.>
‘영구적인’ 능력치 상승.
이건 버프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냥 능력치 자체가 향상되는 것일 테다.
그것이 최종 속력에 비례한다는 것은 랜딩 직전까지 얼마나 추락하는 속도를 많이 올릴 수 있느냐에 따라 성장의 폭이 달라진다는 뜻.
맨몸으로 떨어졌을 때는 종단 속도가 51㎧였고, 엘리베이터에서 4톤의 무게가 보정되었을 땐 115㎧였다.
당연히 후자일 때 능력치 상승도 훨씬 크겠지.
“올라가긴 할 거예요. 하지만 올려봤자 별로 쓸모는 없어요.”
에어포스가 말했다.
“제가 공중에서 체중을 불려서 낙하 펀치를 해본 적 있는데 파괴력이 우수한 대신 제 몸에도 데미지가 크더군요.”
“상관없어요.”
어차피 랜딩하면 충격은 거의 없으니까.
엘리베이터처럼 무거운 걸 가지고 뛰어내리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달리 얘기하면 엘리베이터만 한 물건을 매번 가지고 랜딩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코트 한 벌로 무게를 급격히 끌어올릴 수 있다면 효율성 측면에서 최고의 성장 가속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시험해 봐도 되나요?”
“그럼요.”
윤성은 코트를 어깨에 둘렀다.
“어라?”
메시지창 알림 표시가 떠올랐다.
에어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메시지창이 뜨다니? 이건 이상하다. 원래 메시지창은 마법 아이템을 습득해도 떠오르는 게 아니다.
헌터의 품격에서 김수철이 내밀었던 수많은 아이템에 대해서도 아무런 메시지창도 나타나지 않았다.
김수철이 제공한 품질보증서를 읽었을 뿐.
하지만 이런 메시지창이 이전에도 나타났던 적이 있다.
바로 <랜더의 시계>와 <랜더의 전투화>를 입수했을 때.
‘설마 이 코트……?’
윤성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시지창을 열었다.
<랜더의 코트 : 사용 가능, 질량을 변경할 수 있다. *최대 질량 한계치는 버프 상태와는 관계없고, 순수 레벨에 따라 변동함.>
정말 랜더 용품이었군.
그리고 이번에도 순수 레벨에 따라 변동하는 값이다.
한 번 해볼까.
윤성은 상태창을 살펴보았다. 현재 레벨은 23. 샌텀 타워 앞의 전투로 총합 4만큼 오른 값이다. 능력치 포인트가 80점 생겼지만 그 분배는 나중에 신중하게 하자.
쩍. 쩌적
체중을 끌어올리자 발아래의 지면에 쩍쩍 금이 갔다. 에어포스가 경악했다.
“뭐 하는 거예요!”
“아. 미안해요.”
윤성은 황급히 힘을 거두었다.
하긴, 이런 식으로는 어차피 확인을 못 하겠군. 체중이 얼마가 되었든 그걸 스스로 정확히 느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시스템은 랜더의 전투화로 점프 가능한 높이에 대해서도 친절한 답을 주었다.
“지금 최대 무게는 어느 정도까지 가능하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윤성이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띠링!
<랜더의 코트 : 현재 2,300㎏까지 증폭 가능.>
2톤!
정말 대박이잖아?
“이걸로 할게요.”
뜻밖의 득템에 윤성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이걸 드리죠.”
에어포스는 윤성에게 랜더의 코트를 내밀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우리 연락처를 교환할 수 있을까요?”
그녀가 물었다.
“연락처요?”
“물론 마스크 씨의 신원을 조회하려는 건 아니에요. 이미 아시겠지만 제가 맘먹고 알아내려면 다른 방법도 있어요. 알죠? 전 단지 한국에 얼마 없는 S급 헌터라면 제가 유사시에 연락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에요.”
“흠.”
“물론 마스크 씨도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제게 연락할 수 있어요. 마스크 씨에게 더 좋은 일일 거라고 생각해요. 신분을 감추는 데 제 도움이 필요한 순간들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좋아요.”
전혀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윤성은 에어포스와 연락처를 교환하고 협회 건물을 나왔다.
약 30분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희의 부재중 통화를 살펴보니 어제 하루만 무려 20개다.
윤성의 잘못만은 아니었지만 첫 데이트가 시원하게 박살 났기에 약간 미안한 기분.
죄인 강윤성은 차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꽤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윤성아, 너 괜찮아?”
차희는 현재 방독마스크의 정체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지금 티브이에 너 나와!”
“뭐라고!”
정말이었다.
옆의 가전 상가에서 전시해 놓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데스크에서는 샌텀 타워의 던전 범람 현장에 대해 리포트하면서 ‘마스크맨은 누구?’라는 부제를 달고 토크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문가로 A급 헌터 표진수가 나와 있다.
앵커가 브리핑과 함께 표진수에게 물었다.
“이번 던전 범람 현장에서 에어포스가 골리앗 던전을 닫으러 들어간 사이, 갑자기 또 하나의 A급 던전이 터져서 많은 사람이 위기에 빠졌는데요. 이때 엄청난 힘을 가진 상급 헌터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표진수 헌터님, 그분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엄청난 헌터였습니다. 윙 클리핑은 미국 S급 헌터인 앨비스의 고유 스킬이에요. 샌프란시스코에서 S급 던전이 범람해서 보스로 드래곤이 튀어나왔을 때, 드래곤을 추락시켰던 스킬이죠. 그건 누가 흉내 내거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앵커가 신기한 듯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럼 샌텀 타워를 구해주신 마스크맨이 헌터 앨비스였을까요?”
“앨비스는 죽은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당연히 그렇지는 않고요. 앨비스의 고유 스킬을 가진 S급 헌터가 있다고 봐야죠.”
“일각에서는 S급 헌터 차예빈 씨가 마스크맨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리포터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속보 자막이 떠올랐다.
<속보>
차예빈, ‘나는 마스크맨 아냐.’
표진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예빈 헌터님은 마법도 쓰고 단검도 쓰시죠. 분명 마스크맨과 똑같긴 합니다만 윙 클리핑 같은 스킬은 못 쓰실 겁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마스크맨은 손가락에서 에너지볼트를 발사하는 마법도 쓸 줄 알았는데요, 그런 특이한 마법이라면 차라리 세인트 길드 대표인 김성인 헌터님이라고 추측하는 게 더 합리적이겠죠.”
“또 일부 네티즌들은 얼마 전 헌터 협회를 졸업한 신인, 추준호 씨가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아. 추준호 씨는 저희 길드 소속이라 잘 아는데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준호 씨도 훌륭한 헌터지만, 능력의 고하를 떠나서 마스크맨은 신입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빠르고 단호한 판단력과 적절한 스킬로 대응하는 반응 속도는 적어도 헌터 업을 몇 년은 해온 베테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