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레벨업 속도는 9.8m/s^2 030화
마력 파장의 느낌이 이상하다. 이곳의 헌터들은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감각 능력이 600에 이른 윤성에겐 느껴진다.
에어포스가 입장했으니 저 던전은 이제 범람형이 아닌 일반형이 되었다.
일반형이라면 마력이 안정되게 흘러야 한다. 그런데 왜 대기 중에 안개처럼 분산되는 마력이 있지?
이런 파장이 느껴지는 경우는 범람형 던전 근처거나 아니면,
‘새로운 던전이 출몰하기 직전.’
쉬이 넘길 일이 아니다.
윤성은 황급히 근처의 A급 헌터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전 협회의 E급 헌터입니다. 혹시 지금 마력 측정기 반응이 어떤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음. 분산형이 나오는군. 아까보다 파장의 세기는 훨씬 줄었어. 역시 에어포스 님이야.”
“아직 분산형이라면 던전이 하나 더 출몰할 가능성은 없나요?”
“푸하하. 한 지역에 던전이 연달아 두 개가 터진다고? 게다가 파장 세기를 보면 또 A급인데? 자네가 상급 던전 범람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나 본데 이건 이전의 던전에서 새어 나온 마력의 잔파야. 걱정 말라고.”
그런 게 아니다.
윤성의 감각 능력은 지금 이곳 A급 헌터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잔파와는 느낌이 달라.
‘일단 차희를 찾자.’
지하 벙커 입구에 도착한 윤성은 벙커에서 나오는 시민들을 마주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찍어내는 사람들.
그 사이엔 샌텀 타워의 회장 서철권도 있다.
몹시 심기가 불편한 표정이다.
“건물에 금이 갔잖아!”
서철권이 A급 헌터에게 소리쳤다.
헌터는 작년 헌터 학교의 수석 졸업생 추준호다. 어리고 경험치도 모자라지만 그래도 A급.
최고의 교육을 받고 프로가 되었지만 그가 받은 교육 중엔 이런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없다.
던전 범람을 방어하고도 항의하는 시민이라니.
“어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알아? 에어포스가 전투를 치르면서 생긴 거 아냐?”
서철권의 날 서린 비난에 추준호가 억울한 듯 항변했다.
“하지만 상대가 골리앗들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정도로 막아낸 것이 천만다행인 거예요.”
“머저리 같은 새끼들!”
서철권이 추준호의 가슴을 주먹으로 쾅 쳤다.
“내가 내는 세금이 얼만데 이거 하나 못 막아?”
“저희도 최선을 다한 겁니다. 그리고 마력 반응이 있으니 시민들 모두 대피시키고 인근 지역 폐쇄하라고 권유했을 때 거절하셨잖습니까?”
거절했다는 말에 시민들의 눈빛이 따갑게 서철권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서철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던전일 가능성이 훨씬 높으니까 그렇지! 대체 네놈들이 제대로 하는 게 뭐냐? 던전인지 마굴인지, 범람하는지 어쩌는지도 모르고. 터진 것들 제대로 처치도 못 하고. 건물은 난장판이고. 여기 로비를 봐!”
그가 소리를 지르며 로비를 가리켰다. 확실히 아수라장이긴 하다. 벽도 바닥도 깨지고 소파와 인조 화분들이 모두 제멋대로 굴러다녀서 난장판이다.
인조 연못에는 서철권 조각상의 파손된 머리 부분이 빠져 있었다.
“대체 어떻게 싸웠으면 로비 안이 이렇게 되느냔 말이야!”
“이건 대부분 시민들이 대피하면서 생긴 일이고요. 처음에 저희 말대로 시민들 모두 대피시키고 폐쇄했으면 이런 일 없었죠!”
추준호와 서철권이 말다툼을 벌이는 바로 옆에서, 윤성은 안절부절못하며 주위를 관찰하고 있었다.
‘차희는 어디 있는 거야?’
벙커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모두 지켜보았는데 차희는 없었다.
이제는 벙커가 텅 비어버렸다.
‘놓친 모양이군.’
윤성은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타워 앞 공원의 분수대 앞, 차희가 휴대폰을 귀에 대고 초조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나한테 전화를 걸고 있었던 건가?
아차 싶었던 윤성이 얼른 휴대폰을 꺼냈다.
[부재중 통화 : 차희(6)]
여섯 통이나 걸었군. 미안.
윤성이 차희 쪽으로 다가가려는 순간이었다.
위이이이이잉!
갑자기 울리는 사이렌.
“뭐야?”
시민들이 웅성거린다. 에어포스가 던전에 들어갔는데 게이트에서 마수가 나올 리는 없다.
하지만 사이렌이 울린다는 것은 마수가 출현했다는 뜻.
윤성이 마스크 안에서 이를 꽉 깨물었다.
예상대로다. 일 났군.
“꺄아아악!”
타워의 뒤쪽 주차장 쪽에서 공포에 질린 시민 둘이 나타났다. 밖으로 나갔던 시민들이 모두 타워 안으로 되돌아오는 중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서철권이 추준호에게 물었다.
치직.
헌터의 가슴에 꽂힌 인터폰이 울렸다.
-여긴 작전 본부. 게이트가 또 열렸다! 두 번째 급성 마굴이다. A급으로 진단된다! 시민들을 대피시켜라! 다시 한번 알린다. 시민 대피를 최우선으로 한다. 두 번째 게이트가 열렸다!
충격에 빠진 시민들.
잠깐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아아악!”
모두 비명을 지르며 벙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말, 말도 안 돼. 급성 마굴이 두 개나 같은 장소에 같은 시간에 터진다고? 확률상 그럴 수가 있는 건가?”
충격받은 추준호가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매뉴얼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에어포스도 없다.
두 번째로 터진 급성 마굴 역시 A급.
컨트롤러 없이 A급 헌터들만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추준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콱!
누군가 그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방독마스크를 쓴 남자였다.
“인터폰 좀 빌립시다.”
“네?”
윤성은 대꾸 없이 추준호의 인터폰을 빼앗아 작전본부에게 물었다.
“작전 본부, 던전 타입이 어떻게 됩니까?”
“가루다로 추정된다.”
골리앗보다는 약하지만 위험한 마수다. 사자의 얼굴과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거대한 비행 타입의 마수.
에어포스는 ‘마력의 세기를 보고 S급인 줄 알았는데 A급이니 혼자 해결하겠다’는 식으로 얘길 했었다.
A급 마굴 두 개의 반응이 겹쳐서 S급처럼 보였던 것이군.
아무튼 이 상황은 정말 낭패다. 가루다의 공격력은 골리앗보다 훨씬 약하지만 비행 타입이라는 특성상 처치하기가 매우 어렵다.
“지금 장거리 전투가 가능한 상급 헌터의 수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물었지만,
“총 9명뿐이다.”
생각보다 훨씬 적다.
“S급 헌터의 지원을 요청했습니까?”
“아까 지원을 취소했었다. 다시 지원 요청한 상태이다. 에어포스에게 상황을 알리러 헌터 몇이 들어갔다.”
“에어포스를 부르면 안 됩니다. 에어포스가 나오면 골리앗 던전이 다시 범람해요. 강력한 헌터가 오가면 게이트 파장이 엄청 번질 테고 그럼 골리앗 던전의 보스까지 한 번에 나올 겁니다. 그럼 더 혼란해져요.”
“하지만 현재 전력으로는 가루다를 막을 수 없다. 비행 타입의 적이다. 에어포스의 도움을 요청하고 우리가 골리앗 던전을 닫는다.”
“아니, 에어포스가 나와서 골리앗이 전부 튀어나오면 더 어려워진다고요! 당신들도 A급이잖아요! 가루다는 우리끼리 처치해야죠. 일단 시민들을 벙커로 대피시켜요. 제가 들어가 볼 테니.”
“당신은 누구십니까?”
윤성은 인터폰을 추준호에게 넘겨주었다.
일단 차희부터 피신시킨다. 분명 분수 앞에 서 있었지.
분수 앞…….
“안돼!”
윤성이 비명을 질렀다.
건물로 달아나던 차희의 머리 위로,
거대한 독수리 형태의 마수가 강하하고 있었다.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이 손가락에서 섬광을 쏘았지만 빗나갔다. 가루다는 맹금처럼 날카로운 발끝으로 차희를 움켜쥐고 치솟았다.
“제기랄!”
윤성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가루다를 보면서 빛의 탄환을 정조준했다. 이대로 차희를 데리고 날아가 버리면 끝장이다.
하지만.
‘못 하겠어.’
너무 멀다. 그리고 계속 움직이고 있어서 맞출 수가 없다. 만에 하나 빗나가서 차희가 맞기라도 한다면?
윤성은 분노로 이를 으득 씹으며 가루다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어?”
별안간 타워 꼭대기 근처에서 가루다가 멈추더니 타워 안으로 몸을 반쯤 집어넣었다.
저곳에 마수가 들어갈 틈이 있었나? 열린 문이나 깨진 창문이 있다거나.
깨진 창문?
그렇지. 아까 랜딩하겠다고 창을 깨고 뛰어내렸었지. 그쪽으로 들어간 건가?
가루다는 본능적으로 고지대에 둥지를 트는 마수. 타워 꼭대기 전망대에 틈이 있으니 그쪽으로 몸을 집어넣은 것이다.
윤성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강력한 버프 때문에 800미터 상공에 있는 가루다의 모습이 망원경으로 확대한 것처럼 정확히 보였다.
차희를 붙잡은 왼발은 창틀 안으로 들어간 상태.
지금 놈을 쏘아도 차희는 전망대 안으로 떨어질 테지.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은 신중하게 정 조준한 섬광을 발사했다.
팡!
손가락 끝에서 치솟은 빛의 탄환이 가루다의 발목을 꿰뚫었다.
“캬아악!”
짐승의 비명과 함께 차희는 164층 안으로 굴러떨어졌다. 혼이 빠져 버린 듯한 기분이다. 실제로 저 괴물이 날아오를 때는 몇 초간 기절했었다.
“크르르!”
부상을 입은 가루다는 비틀거리면서 깨진 유리창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의 크기에 비해 가루다의 몸집이 훨씬 커 보였지만 머리와 두 다리가 모두 들어갔기 때문에 날개만 욱여넣으면 되었다.
“흑, 흐흑…….”
차희는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났다.
그녀는 곧바로 가루다로부터 달아나기 시작했다.
탁탁탁!
163층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그걸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캬아악!”
가루다가 괴성을 지르며 그녀를 뒤쫓았다.
마치 3단 우산처럼 몇 번 접힌 그의 날개는 옆구리 옆에 납작하게 붙었고, 이제는 거대한 타조 같은 크기가 되었다. 얼굴은 사자지만.
“꺄아악!”
공포에 질린 차희가 비명을 지르면서 비상계단으로 뛰어들었다.
가루다는 푸덕거리며 그 앞까지 달려왔지만 비상계단을 쉽게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또 머리를 욱여넣은 다음 끙끙대며 제 몸뚱이를 떠미는 중이다.
그사이 차희는 아래층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엘리베이터를 불렀다.
“흑. 흐어엉…….”
차희는 울음을 터뜨리며 후들후들 떨리는 발을 동동 굴렀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분. 그 높이를 생각하면 엄청난 속도지만 지금은 1분이 1년 같은 느낌이다.
“크아앙!”
비상구에서 가루다가 내지르는 포효가 층 전체에 쩌렁거렸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 직전,
-쉬이익!
비상계단을 통과한 가루다가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차희를 향해 달려들었다.
“꺄악!”
차희는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가루다의 공격을 한 번 피했지만, 행운은 정말로 한 번뿐이다.
가루다가 콰직 물어뜯은 벽의 콘크리트 조각들을 입에서 뱉어내며 차희를 노려보았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지만 차희는 이미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엘리베이터에 타려면 가루다의 코앞을 지나야 한다.
“흑…… 흐흑.”
겁에 질린 손발이 저절로 와들와들 떨린다. 차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숙였다.
“캬악!”
가루다가 입을 쩍 벌리며 그녀에게 달려드는 순간.
쾅!
강력한 펀치가 가루다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500㎏이 넘는 괴수는 데굴데굴 굴러 반대편 벽 앞에 나동그라졌다.
방독마스크를 쓴 남자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고, 고맙…….”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던 차희는 미처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직도 떨고 있었다.
윤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
“미안.”
“네?”
“늦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