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28화 (28/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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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 028화

8. 샌텀 타워

윤성의 입이 쩍 벌어졌다.

‘진짜 연예인 뺨치게 생겼잖아……?’

헌터를 안 했으면 모델 ‘당했을’ 거라는 세간의 평가는 틀린 게 아니었다.

그녀가 움직이는 공간 인근만 마치 다른 세계 같았다. 번쩍번쩍 빛나는 아름다움은 단순히 이성적인 매력 같은 게 아니었다.

수줍고 당찬 미소에 보이는 다정함과 친절함, 그리고 카리스마.

윤성보다 불과 두 살 많은 나이. 이제 겨우 20대 후반이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에는 한국 헌터계의 정점에 오른 자가 짊어진 막중한 책임감이 가득했다. 그 책임을 훌륭히 수행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멋지다.’

정말로 그랬다. 웬만한 여배우들 씹어 먹을 외모임에도 ‘예쁘다’가 아니라 ‘멋지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인물.

사방에서 시민들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에어포스!”

“언니! 언니!”

“사인해 주세요! 언니!”

“이러면 안 됩니다.”

헌터들이 스크린을 짜고 몰려드는 시민들을 막았다.

에어포스는 이 모든 소란이 익숙하다. 또한 그녀는 ‘팬덤 관리’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 연예인도 아닌데 그런 걸 왜 하겠는가. 헌터는 헌터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매우 시크하게, 에어포스는 자신의 팬들 사이를 무심히 지나쳤다.

“코르소!”

그녀가 소리쳤다. 윤성의 뒤에서 코르소가 튀어나갔다. 그는 헌터들의 바리케이드를 훌쩍 뛰어넘어 에어포스의 앞에 섰다.

두 사람은 목소리를 낮춰 속닥속닥 얘기를 주고받았다. 윤성은 귀를 기울여 대화 내용을 들으려고 했지만 근처가 너무 시끄러워서 도저히 불가능했다.

일부만 간신히 식별한 대사 하나는,

“……급성…… 범람…… 어때요?”

하는 에어포스의 질문이었다.

두 사람은 대화를 좀 더 주고받았다. 코르소는 타워 근처 이곳저곳을 손으로 몇 번 가리키며 뭔가를 얘기했다.

에어포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끝까지 들은 후 코르소에게 뭔가를 귓속말로 전해주었다.

파앙!

별안간 에어포스가 하늘로 솟구쳤다.

“와!”

“우와! 비행이다 비행!”

“처음 봤어!”

시민들이 소리를 질렀다. 윤성도 꽤 감동을 받았다. 그의 경우에는 비행을 처음 보는 건 아니었지만.

8년 전, 일산의 S급 범람 사건으로 부모님이 살해되었던 현장에서 똑같은 걸 보았다. 비행으로 날아온 에어포스가 윤성의 바로 앞에 착지하던 것을.

윤성이 처음으로 보았던 ‘랜딩 자세’였다.

주먹 하나와 두 발로 땅을 짚으며 남은 팔을 비스듬히 펼쳐 중심을 잡는. 그 자세에서 펄럭이던 에어포스의 흰 망토가 윤성의 눈 바로 앞에 있었다.

‘그걸 보고 헌터 학교로 진학했었지…….’

윤성은 새삼 추억이 찡했다.

랜딩으로 계속 성장하다 보면 언젠가 에어포스와 함께 싸우는 날이 오게 될까?

윤성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데 에어포스가 왜 이곳에 왔지?’

에어포스는 1년 전의 윤성과 맞먹을 정도의 워커홀릭이었다. 아마 에어포스도 매주 던전 하나 이상을 꾸준히 클리어했을 것이다. 윤성의 경우엔 E급이었지만 그녀는 A급 이상을.

그 미모와 권력과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스캔들 한 번 나지 않는다.

파파라치들이 한 달 동안 에어포스를 쫓아다녔는데 밥 먹을 때 빼고 던전만 깨고 다니는 걸 보고 질려서 돌아갔다는 일화도 있다.

그런 인물이 사람 북적이는 전망대 앞에 놀러 왔을 리는 없고.

급성 범람 어쩌고 하는 질문도 불안하다.

설마 샌텀 타워 인근에 던전이라도 생길 조짐이 보이는 건가? 코르소는 그걸 조사하러 온 거고?

‘괜찮다. 아직 500점짜리 버프가 남아 있으니까.’

A급 던전이 터지지 않는 이상 이 정도 버프면 충분히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빠져나갈 순 있겠지.

윤성은 다시 타워 안으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야? 에어포스가 왔다고?”

차희가 물었다.

“헌터들이 몰려와 있기에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이 근처에 던전 출현 조짐이 있나 봐.”

“정말?”

차희가 깜짝 놀랐다.

“근데 왜 사람들 대피 안 시켜?”

“뭐, 던전이 발생하더라도 바로 범람하는 건 아니니까.”

“급성 마굴일 수도 있잖아?”

던전과 달리 급성 마굴은 게이트가 발생하자마자 바로 범람한다.

아마 헌터들이 몰려와 있는 것은 그걸 대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시민들을 대피시키진 않는다.

“마굴일 확률이 엄청 낮아서 그런 거지.”

마력 검출 반응이 던전이 아니라 급성 마굴일 확률은 십만 분의 일이다. 마력 반응 하나하나에 일일이 시민들을 전부 대피시키고 구역을 폐쇄했다간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에어포스까지 온 거 보면 마력 반응이 꽤 높은 거 아냐?”

차희가 반박했다.

지당한 말씀.

“그렇지. 여기 대기하는 헌터들 대부분 상급 헌터 같아. 마력 반응이 꽤 세다는 거지. 그렇다면 급성 마굴일 확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무시할 만한 건 아닌데.”

“우리 나갈까?”

차희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이. 괜찮아. 여기까지 왔는데 전망대나 보고 가자고.”

전망대는 꼭 봐야지. 높이감을 확인하고 뛰어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잠시 후, 윤성과 차희는 전망대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윤성의 원룸보다 더 크다. A급 마정석을 가공해서 만든 동력원은 초속 15m의 속력으로 엘리베이터를 움직일 수 있었다.

전망대 꼭대기에 이르는 데까지 2분이 채 안 걸린다.

총알처럼 발사되어 치솟는 엘리베이터 안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기압 차 때문에 귀가 먹먹해지긴 했지만 어지럽다거나 엘리베이터 차체에 흔들림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보호 마법이 걸려 있군.

윤성은 엘리베이터의 벽면도 유심히 관찰했다.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보고 진동이 어떻게 흐르는지 살펴보았다.

‘강화 마법.’

고속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의 몸체는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야 한다.

하긴. 파손되어서 사고라도 나면 끝장이니까. 어떤 솜씨 좋은 헌터가 두 종류의 마법을 모두 걸어놓았다.

이 정도면 웬만한 마수가 두들겨도 내부에선 별 충격을 안 받을 수도 있다. 유사시엔 벙커가 될지도 모르겠군.

이게 지상에 있다는 전제하에.

전망대에 도착한 윤성은 전면 강화 유리 밖으로 탁 트이는 시야에 감탄했다.

“와아.”

차희도 탄성을 내질렀다.

“꺄악!”

그녀는 폴짝거리며 여기저길 싸돌아다니면서 온갖 포즈를 잡았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윤성에게 휴대폰을 내밀면서.

찰칵-

찍은 사진을 보여줬더니 차희의 표정이 좋지 않다.

‘레이드만 하고 살아온 모태솔로 윤성이.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차희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봐, 윤성아. 휴대폰으로 전신샷을 찍어줄 땐 발을 화면 바닥에 맞추고 머리가 화면의 중앙에 오도록 해야 가장 이상적인 비율이…….”

차희의 휴대폰 카메라 강의를 한 귀로 흘리면서 윤성은 유리창을 똑똑 두드렸다.

강화 유리. 여기도 마법이 걸려 있군. 대체 돈을 얼마나 쓴 거야…….

“내 얘기 듣고 있어?”

차희가 물었다. 윤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찍어줄게.”

“아냐. 저녁이나 먹을까?”

차희가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윤성이 도저히 집중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커플처럼 다정하게 붙어서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전망대는 163층부터 166층까지다. 로비와 직통으로 이어진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163층에서 멈추고, 그곳에서 내려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더 올라갈 수 있다.

165층부터 166층까지는 식당가다. 꽤 비싸고 맛도 좋은.

두 사람은 165층에 입점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운 좋게 창가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

살치살 스테이크 400g과 파스타 하나,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메뉴가 나오기 전,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조금만 기다려.”

윤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밖으로 빠져나왔다.

사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윤성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전망대 안내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전망대 바깥으로 나가는 방법은 없나요?”

“아, 고객님. 밖으로 나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셔야 합니다.”

“아뇨. 이 유리창 밖으로 나가는 방법이요. 여기도 청소를 하거나 그럴 거 아녜요? 어떻게 하죠?”

“아하. 고객님. 옛날에는 곤돌라를 타고 청소 업체 직원이 직접 밖에서 창을 닦았는데요.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샌텀 타워의 고층 유리는 모두 제작 시에 마정석을 이용하여 ‘클린업’ 마법을 반영구적으로 걸어놓은 상태라서 자동으로 청소가 된답니다.”

직원이 방긋 웃으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전혀 원하는 대답이 아니다.

“그럼 창밖으로 나갈 방법은 없나요?”

“창밖으로……. 왜, 왜요?”

직원이 당황했다.

“그냥, 음. 이 고도에서 바깥 공기를 쐬고 싶어서?”

직원의 눈빛이 ‘뭐야 이 미친놈은?’ 하는 모양새다.

그래, 이런 방법으론 안 되겠지. 차라리 던전 범람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어수선한 타이밍에 창문 깨고 뛰어내리게.

에이. 그래도 범람은 아니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 헌터 실격인가.

윤성이 한숨을 쉬며 위층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위이이이이이잉!

수다를 싹 잠재우는 소름 끼치는 사이렌.

전망대를 구경하며 뛰어다니던 시민들의 흥분감이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

-헌터 협회에서 알립니다. 급성 마굴이 출현했습니다. 레벨 A급으로 판단됩니다. 모든 시민은 샌텀 타워 지하의 대피소로 이동하시길 바랍니다.

“무슨 소리야? 급성 마굴?”

“마굴이 나타났다고?”

“뭐야, 무서워…….”

시민들이 와글거리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재난이 터진 경우엔 엘리베이터를 안 타는 게 상식이지만 800미터를 걸어서 내려갈 수는 없으니까.

“이런…… 차희!”

윤성은 엘리베이터를 두고 계단을 뛰어올라서 위층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꺄아악!”

“으악!”

공포에 질린 시민들의 행렬이 쏟아져 내려오는 중이다.

사람들에 휩쓸려 한 계단을 내려가 버린 윤성이 이를 악물었다.

“잠깐만요! 좀 지나갈게요!”

“으아악!”

“도망쳐, 도망쳐!”

“아래층 엘리베이터를 타!”

“지하로 내려가!”

젠장. 시민들 전부 패닉 상태다.

비상구를 쾅쾅 울리며 혼잡하게 지나가는 시민들.

“꺄악!”

인파 사이에 아이 한 명이 쓰러져버렸다.

<빛의 탄환 발동!>

탕!

윤성이 쏜 섬광이 천장에서 조명탄처럼 터졌다. 강렬한 빛이 사방에 튀었다.

위력을 최소화했지만 빛의 조도는 상당히 강한 편이었다. 특히 비상구처럼 어둑한 곳에선.

“꺄아악!”

놀란 시민들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잠깐 움직임을 멈춘 사이.

“질서를 지키세요. 저는 헌터입니다. 모두 대피할 수 있으니 천천히 계단으로 내려가십시오.”

윤성이 쓰러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는 시민들을 내려 보내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바깥에서 차희가 발을 동동 구르며 윤성을 찾고 있었다.

설마 아래층으로 내려갔었을 거라곤 생각을 못 하고 165층을 뒤졌던 모양이다. 좀 미안해지는군.

“차희!”

“어디 갔었어!”

차희가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걱정했잖아. 이리와. 빨리. 대피하자.”

“먼저 내려가.”

“뭐?”

진짜로 던전 범람이 일어난 이상 이 꿀 같은 기회를 버릴 순 없지. 차희를 내려보낸 다음 창문을 깨고 랜딩한다.

“할 일이 좀 있거든.”

윤성이 창밖을 내다보며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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