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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27화 (27/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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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 027화

차희는 좀 전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윤성을 돌아보았다.

잠깐 동안 테이블에 당혹감이 흘렀다.

“너 이거 얼마짜린지 아냐?”

차태식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여기 동네 호프집 아냐. 이 테이블 세 개 세팅한 거 오백만 원이야. 인원수로 나눠도 두당 10만 원 이상 나오는 거야, 인마. 여기 있는 양주들이 어떤 건데…….”

“상관없어. 요즘 돈 좀 벌게 됐거든. 그리고 나 힘들 때 차희가 돈을 꽤 빌려줬었는데 갚긴 했지만 심적으론 아직 빚진 상태야. 그러니까 오늘 식사랑 술은 내가 살게. 2차도.”

당황한 동기들.

차희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종잡을 수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전에는 백마중한테 스카우트를 받더니 이번엔 뭐?

그녀의 눈빛에 물음표가 가득한 걸 보고 윤성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얘기 안 해줄 거야. 아직은.’

불편한 공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동기 중 하나인 문성준이 곧 화제를 전환해 주었다. 던전 관리부서에서 일하는 녀석이다.

“근데 최근에 동굴고블린 타입의 B급 던전 있잖아. 프리랜서 팀 하나가 다운됐던 거. 거기 들어갔던 B급 헌터 팀이 어떻게 당했는지 아냐?”

“어떻게?”

분위기를 바꿔준 것에 감사하며 윤성이 물었다.

“사망자가 A급 탱커야. 컨트롤러로 들어간 거지. 근데 입구에 던전 보스가 잠복하고 있다가 도끼로 찍어버렸대. 초반에 방심하고 있다가 바로 마빡에 도끼 박혀가지고 골로 갔다더라고. 그대로 팀도 다 다운당한 거고.”

“미친.”

“말도 안 돼.”

동창들이 정색했다.

“어떻게 보스가 입구까지 나올 수가 있냐?”

“뭔가 잘못 알았겠지.”

“근데 컨트롤러가 죽은 것은 의외이긴 하다.”

동창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으며 윤성은 생각에 잠겼다.

전에 던전에서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듣고 보니 정말 이상하다.

컨트롤러로 A급 헌터가 갔다면 동굴 고블린들을 충분히 물리쳤을 것 아닌가? 워리어와 싸우다가 졌다고 하더라도 보스 방 앞까지는 큰 피해 없이 진행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당시 던전의 초반부부터 20여 마리의 동굴 고블린이 들끓지 않았던가. 레이드 팀은 정말로 던전을 거의 진행하지 못했던 거다. 그럼 고블린 워리어가 입구에 잠복하고 있다가 컨트롤러를 암살했다는 게 사실이라는 건데.

백화점에서는 E급 던전에서 C급 땅굴벌레가 출현하질 않나, B급 던전은 고블린 워리어가 입구까지 나와서 잠복하질 않나. 심지어는 레이드를 뛰며 상태창에 능력치를 찍는 마수 새끼가 나타나기도 하고.

그간의 상식들을 뒤집는 기현상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윤성은 왠지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자리는 몇 시간이 더 지난 후에 파했다.

윤성은 정말로 오백만 원짜리 식사를 계산해 버렸다. 차태식은 놀랍게도 그 상황까지도 떠나지 않고 붙어 있었다. 창피할 텐데, 어떤 의미론 이것도 참 대단한 놈이다.

이미 동창 중 절반 이상은 먼저 귀가한 후였다. 차희는 좀 전에 택시를 타고 갔고, 남은 사람은 다섯 명.

그들은 술에 취해서 붉어진 얼굴들을 새벽 공기에 식히면서 택시를 기다리고 대리 운전기사를 기다렸다.

재미없는 농담과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약속들을 잡고 있었다.

두 명이 떠나고, 하나가 화장실에 들르자 윤성과 차태식 둘만 남게 되었다.

“대림 쪽으로 가시는 분?”

대리 운전기사가 나타났다.

“나 먼저 갈게. 다음에 봐.”

윤성이 인사를 하고 차로 이동하려던 찰나.

“야야, 강윤성.”

차태식이 그를 붙잡았다.

“내가 오늘 좀 심했냐? 근데 그거 다 너 위해서 했던 말인 거 알지? 새꺄, 나도 네가 잘 됐으면 싶어서 하는 말이잖아, 인마. 아무튼 뭐, 너 돈 얼마나 벌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일 앞으로도 더 하긴 할 거 아냐? 혹시 일감 계속 안 들어오면 얘기해라. 내가 레이드 뛸 때 짐꾼으로라도 써줄 테니깐. 하루 일당은 될 거야.”

그가 명함을 꺼내서 내밀었다.

“고마워, 근데.”

윤성이 그의 명함을 차태식의 손바닥 위에 도로 얹어주었다.

“필요 없다.”

차태식의 당황한 눈길.

윤성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 도와준다는 호의는 고마워. 하지만 차희 같은 친구들이 날 많이 도와줘서 괜찮아. 혹시 내 도움 필요하면 얘기해. 난 명함은 없지만.”

“어……?”

“나 먼저 들어간다. 다음에 봐.”

윤성은 주머니에서 리모컨을 꺼냈다.

삐빅-

롤스로이스가 불을 번쩍이며 시동을 켰다. 대리 기사와 함께 차에 올라타는 윤성을 보는 차태식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야 저거? 무슨 차야? 술이 덜 깼나?’

***

윤성은 술병으로 쓰러져 한나절을 보냈다.

아침의 알람도 그를 깨우지 못했지만 오후 늦은 시간의 전화에는 일어날 수 있었다.

벨소리가 한참 울린 후, 윤성이 휴대폰을 들었다.

“으으……. 여보세요?”

-오빠?

다윤이다. 그러고 보니 종단 속도 계산을 부탁했었지.

-지금 일어난 거야?

동생의 물음에서 약간의 안쓰러움이 묻어난다. 직장인의 진을 뽑아버리는 야근 같은 걸 상상하고 있는 걸까? 사실 술 먹고 늦잠 잔 건데. 윤성은 황급히 목소리를 다듬었다.

“으응, 이제 일어났어.”

-전에 오빠가 부탁했던 거 있잖아?

“응. 어떻게 됐어?”

-대충 450미터 이상은 돼야 해. 500미터 이상이면 더 좋고. 근데 공기 저항 계수는 낙하할 때 자세나 복장 같은 것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스카이다이버를 기준으로 했어.

“오. 좋아, 좋아. 고맙다. 500미터 정도란 말이지.”

그리 높진 않군. 패러글라이딩하러 가서 그냥 조종석 아래로 뛰어내리면 되지 않을까? 그랬다간 강사가 기절해 버리려나.

“수고했어. 이모 편으로 용돈 좀 부쳐줄게. 소윤이랑 맛있는 거나 먹어.”

-어? 아냐. 안 줘도 돼.

“왜? 좀 줄게. 많이 줄 수 있어.”

-아냐! 진짜 아냐. 안 줘도 돼. 주지 마.

뭐야? 왜 이렇게 정색해?

약간 수상하다.

“너 무슨 일 있냐?”

-응? 아냐. 무슨 일이 있겠어.

“학교에서 누가 뭐라고 해? 성적 떨어졌어?”

-아니. 괜찮아. 잘 지내고 있어.

“이모가 뭐라고 해?”

-괜찮다니까. 나 공부하러 가야겠다. 끊어.

통화를 종료한 후 윤성은 잠깐 고민에 잠겼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동생들 못 본 지도 오래되었고, 시간 내서 한 번 봐야겠다.

그보다 지금 몇 시야?

윤성은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시 반.

망했다.

차희랑 오늘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그런데 장소와 정확한 시간을 제대로 안 잡았군.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있고 차희에게 메시지도 와 있다.

윤성은 얼른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미안. 뻗어 있어서 못 받았다.”

-어제 나 가고 나서 오래 있었어?

약간 실망한 목소리.

실제로 차희는 기분이 좀 상했다. 그녀는 오전 열 시부터 일어나서 깨끗이 씻고 공들여 화장하고 렌즈를 쓰고 옷장의 옷을 계속 꺼내가며 다섯 번 정도 코디를 바꾸었던 것이다.

윤성이 원래 자신에게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그만큼 신경 써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오후가 되도록 연락도 안 받고 퍼질러 자는 건 너무하지 않았는가.

‘약속 취소되는 줄 알았네.’

하지만 차희는 황동수나 차태식한테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붓던 성격을 꾹 눌렀다.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나쁜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었다.

“6시쯤 만날까?

윤성이 물었다.

-응. 어디서 볼까?

“샌텀 타워 어때?”

사실 윤성은 전에 협회에서 저녁 약속 얘기가 처음 나올 때부터 샌텀 타워를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샌텀 타워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니까.

높이 859미터.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높이다. 전망대만 해도 무려 814미터.

잠실에 있던 롯데 타워가 던전 범람으로 무너진 후 국민들의 절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던 시기. 초대형 건설 회사인 ‘샌텀 건설’은 잠실에 샌텀 타워를 건설했다.

-나, 거기 가보고 싶었어!

차희가 반색했다.

-전망대 야경 엄청 예쁘대!

“그렇다더라. 지금 집이야?”

-응.

“그럼 나 좀 씻고 이따 다섯 시쯤 데리러 갈게. 어디로 가면 돼?”

데리러 간다는 말에 차희의 기분이 약간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저녁 6시 15분.

윤성은 조수석에 차희를 태운 채 샌텀 타워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댔다.

오는 길에 차희는 계속 백마중의 스카우트를 받게 된 경위나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따위를 물었지만 윤성은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차희는 약간 뾰로통했지만 금방 풀렸다.

타워 입구에 이르자 애처럼 좋아한 것이다.

하지만 윤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 진짜 많네…….’

유명한 관광지답게 입구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중에는 근육질의 외국인이 있었다.

윤성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그는 이미 윤성을 발견했다.

“오우! 미스터 킴! 하우 얼 유!”

코르소가 윤성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강입니다.”

“아! 쏴리. 미스터 강.”

코르소가 웃음을 터뜨리며 윤성의 어깨를 연신 두들겼다.

“코르소 씨가 여긴 어쩐 일입니까?”

“이곳은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많아요.”

“뭐, 그렇긴 하죠. 전망대 보러 오셨습니까?”

“노우! 난 아니에요 관광. 사실 여기 몇 번 와봤습니다.”

“그럼 왜?”

“썸띵 라이크 어 졈킷……. 음. 한국말로는 아 돈 노우. 정찰?”

“정찰?”

윤성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뒤에서 다른 헌터가 코르소를 불렀다.

“코르소! 거기서 뭐 하십니까?”

그는 협회의 B급 헌터였다.

“곧 에어포스가 옵니다. 여기 조사 다 하셨어요?”

에어포스가 온다고?

윤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윤성뿐만이 아니었다. 주위 시민들의 시선이 일제히 B급 헌터를 향해 돌아갔다.

“야, 들었냐? 에어포스 온대.”

“에어포스? 여기에?”

“에어포스가 여길 왜 와?”

“헐 대박! 나 에어포스 덕질 좀 하는데.”

순식간에 시민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B급 헌터는 말을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서 코르소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서 가요. 코르소. 에어포스가 지금 곧…….”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직전이었다.

“와아아!”

“우와!”

샌텀 타워 메인 게이트 바깥부터 엄청난 환성이 일었다. 아이돌 팬미팅 현장 같은 분위기.

윤성 역시 그 팬 중 하나다.

윤성은 황급히 정문을 향해 달려 나갔다.

“윤성아?”

차희가 뒤에서 소리쳤다.

“잠깐만.”

인파 속에 섞여서 함께 밖으로 나간 윤성.

정말로 그곳에 에어포스가 있었다.

새하얀 머리카락, 새하얀 코스튬. 투명한 흰 피부의 알비노.

한때는 선천적인 색소 결핍 때문에 대인 기피증도 있었다던 그녀는 이제 당당한 헌터로서 사람들 많은 광장 한가운데를 거닌다.

‘비행’ 스킬을 가진 세계 유일한 헌터이자 한국 최초의 SS급 헌터 에어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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