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25화 (25/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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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 025화

50층 마정석 샵에 들어온 윤성의 눈이 빛났다. 사방에 가득한 진열대 안에 기상천외한 마정석들이 유려한 광채를 빛내고 있었다. 최소 B급이었고 A급도 꽤 많았다. 이 정도면 어려움 없이 팔 수 있겠군.

샵의 캐셔만 약 30여 명이나 되었다. 한 층이 통째로 마정석만 취급하니까 그럴 수 있지.

윤성은 그중 빈자리로 이동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여직원이 영업적인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마정석을 팔고 싶은데요.”

윤성이 A급 마정석과 B급 두 개를 내밀었다. 사실 코르소한테 받은 것 하나는 그냥 일반 샵에서 팔아버려도 떳떳할 테지만 이왕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 그냥 여기서 한 번에 처리해 버릴 셈이었다.

직원은 확실히 큰 곳에서 오랫동안 값진 물건을 많이 취급해 온 사람답게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 정도면 A급, B급, B급으로 판정되고 협회에 보고할 때 세금은 20%입니다. 총합 16억에 판매 가능하세요. 세금을 떼면 윤성 고객님의 순익은 12억 8천 정도가 될 것으로 계산됩니다.”

“20% 세금이요?”

“네.”

“여기서 판매하는 물건은 협회에 보고하지 않는 것 아니었나요?”

“왜 보고하지 않기를 원하세요?”

직원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이곳은 협회에 있는 국가 마정석 샵의 공인 대리점 자격이 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활동하는 거다.

하지만 물건을 구매할 때마다 ‘세금’에 대한 것을 꼬박꼬박 고지해 주면서 비싼 물건을 가져온 고객들에게 밀매할 것을 은근히 권유하는 것이군.

윤성은 직원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서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최근 뉴스 중에 송파구 B급 던전에서 헌터 한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아시나요?”

“본 것 같군요.”

“제가 거기 짐꾼으로 따라갔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분의 물건들을 슬쩍했죠. 이게 그거에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고객님, 헌터 자격증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윤성은 헌터 자격증을 내밀었다.

직원은 윤성의 E급 자격증에서 바코드를 찍어 컴퓨터에 입력했다. 뭔가를 타이핑해서 잠깐 데이터를 기다리더니 곧 그녀가 말했다.

윤성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화면에서 직원이 보고 있는 것은 윤성의 임무 기록과 C+ 타워의 출입 기록, SNS 빅데이터에 기반한 주위 인물과의 관계도 분석 등의 데이터다.

장기간 임무가 없어서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 같고, 짐꾼으로 따라갔던 것도 사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잠깐 따라오실래요?”

그녀는 윤성을 데리고 복도로 나가더니 끝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51층으로 올라갔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적힌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또 다른 사무실이 하나 나타났다.

“휴대폰 주세요.”

그녀가 윤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윤성이 순순히 그 손 위에 휴대폰을 올려두자, 캐셔는 바로 옆의 사물함에 휴대폰을 넣고 열쇠로 잠갔다.

“통과.”

입구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했다. 캐셔가 윤성을 데리고 더 안쪽으로 이동했다.

“뭐가 통과라는 거죠?”

“저분은 중국의 A급 헌터세요. 윤성 씨에게 도청 장치나 카메라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신 겁니다.”

“뭐라고요?”

“여기 앉으세요.”

캐셔는 사무실 가운데의 커다란 소파에 윤성을 앉히고 맞은편에서 서류를 꺼냈다.

뭔가를 작성한 후,

“중국 은행을 통해서 세탁한 돈을 이체할 경우에는 13억 5천만에 판매 가능하세요. 안전한 돈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그녀가 말했다.

“좋아요. 그럼 한 번에 입금되는 건가요?”

“갑자기 고액 거래가 일어나면 금융정보 분석원에서 걸릴 수도 있어요. 윤성 씨 계좌를 추적하게 되죠. 물론 이 정도 금액에서는 가능성이 낮지만.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죠.”

“그럼 어떡하죠?”

“저희가 가지고 있는 차명 계좌 300개를 이용해서 돈을 분할한 다음, 석 달 동안 천천히 윤성 씨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개의 계좌로 나눠서 돈을 모아줄 거예요. 그러니 전액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셈이죠.”

“안 걸리나요?”

“100억 아래에서는 저희가 이 방법으로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어요. 금액이 커지면 방법을 바꾸지만요.”

직원이 거래서를 내밀었다.

하지만 윤성은 아직 찝찝한 기분이다. 여기 오기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범죄에 대한 거부감이 꽤 크다.

세금을 슬쩍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밀매와 돈세탁의 현장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솔직히 무섭군.’

윤성이 망설이자 캐셔는 빙긋 웃으며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두 가지 방법이 더 있어요. 하나는 25층부터 30층까지 있는 카지노에서 연속 잭팟을 터뜨리는 거예요. 저희가 드릴 Joker 티켓을 가져가면 알아서 해줄 거예요.”

“다른 방법은요?”

“우리 타워는 예술품도 판매하는데, 10층의 A-8 섹터에는 감정되지 않은 물건이 올라와요. C+ 타워를 지나는 매물이 워낙 많아서 전부 정밀한 감정을 못 하니까요. 대충 봐서 엉성해 보이거나 출처가 불확실한 물건들은 그곳으로 넘기죠.”

“그래서요?”

“일반적으로 허접한 물건이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꼴로 고가의 골동품이 올라오기도 하죠. Joker 티켓 소지자를 위해서 말이에요.”

대단한 놈들이야, 진짜.

불법도 이 정도 꼼꼼함이면 감탄이 나오는구나.

“사실 세 번째 방법도 있어요. 당첨 로또와 교환해 주는 거죠. 하지만 지금은 타워에 매물이 없네요.”

“골동품 이용한 돈세탁……. 그걸로 하죠.”

“좋아요. 10층의 A-8 코너로 가서 직원에게 이 티켓을 전해주세요.”

캐셔가 Joker 카드를 내밀었다.

뒷면에 13.5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아두셔야 할 게 있어요.”

“뭐죠?”

“물론 가능성 낮은 일이지만, 경찰이 윤성 씨 계좌를 추적할 경우에도 대비하는 게 좋겠죠. 윤성 씨는 평소에 우리 타워에서 골동품을 자주 샀고, 사 모으고 되파는 재테크에 취미를 갖고 있었던 걸로 해요.”

“어떻게요?”

“4년 전부터 약 1,700점의 물건을 C+ 타워에서 구매, 재판매했던 걸로 장부를 조작해 둘 거예요. 얼마 안 되는 돈이라 전부 현찰 거래 했는데 이번엔 너무 큰 금액이라 통장에 입금한 걸로 할 거예요. 그렇게 알고만 계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근데 웬만하면 추적 자체를 안 할 거예요. 만약을 대비하는 것뿐이니까 안심하세요. 금융정보 분석원에서 고액 거래를 감시한다고는 하지만 때마다 기준이 다르더라고요. 100억 이상 거래에 대해서도 잠잠할 때도 있어요.”

윤성은 거래서에 서명을 하고 마정석을 넘긴 후 10층으로 내려갔다.

윤성의 인상착의를 전해 들은 A-8 코너의 직원은 멀리서부터 윤성을 힐끔거렸다.

윤성이 다가가자 직원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찾으시는 물건 있으세요?”

“그냥, 인테리어에 쓸 만한 물건을 좀 보러 왔는데요.”

윤성이 Joker 카드를 전해주자 직원은 값을 확인하고 진열대 한쪽으로 윤성을 이끌었다.

눈 가리고 아웅.

금동으로 만들어진 주먹만 한 크기의 불상 같은 것이 진열대 안에 들어 있었다.

“이건 어떠세요? 어제 입고된 물건인데 20,000원입니다. 거실에 두면 인테리어로 딱이죠.”

“그걸로 주세요.”

직원은 윤성의 카드로 20,000원을 결제하고 불상을 꺼내어 포장해 주었다. 습기 제거제와 함께 흔들리지 않는 상자에 넣어 혹시나 파손되지 않게끔 했다.

20,000원짜리에 대한 것치고는 상당히 세심하고 조심스러운 작업.

하지만 당연한 거다, 13억짜리니까.

“감사합니다, 고객님. 혹시 이밖에 다른 필요한 업무가 있으신가요?”

“물건 감정을 좀 하고 싶은데요.”

방금 산 불상 얘기다. 직원은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친절하게 말했다.

“17층 감정 센터를 방문해 주세요.”

17층으로 올라가자 기다렸단 듯이 직원 하나가 윤성에게 다가왔다.

“감정하고 싶은 물건이 있으신가요?”

“이걸 감정하고 싶은데요.”

윤성이 10층에서 샀던 불상을 박스째로 내밀었다.

“감정 비용은 10만 원입니다. 진행해드릴까요?”

“네.”

직원은 물건을 가지고 들어가서 정밀 감정을 하기 시작했다.

다 형식적인 겉치레다. 이미 감정 끝난 물건이니까.

잠시 후, 감정실에서 나온 직원이 윤성에게 환하게 미소 지었다.

“축하합니다. 강윤성 고객님, 이 물건은 7세기 중후반에 만들어진 물건으로 시가 13억 5천만 원 상당의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 판매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경매에 등록하시겠습니까?”

“지금 판매하죠.”

“감사합니다. 고객님.”

허무하군.

윤성은 입금되는 금액을 확인하며 건물을 나왔다.

‘돈이 생겼으니까 차부터 산다.’

370미터 절벽에서 뛰어내릴 때도, 패러글라이딩을 할 때도 대중교통으로 얼마나 장시간을 이동했던가. 이젠 그 짓을 더 할 수 없다.

30분 후 롤스로이스 매장.

굳이 비싼 외제차 브랜드를 찾아온 이유는 헌터 전용 차량 중 하나인 ‘고스트’ 때문이다. 산악용 차량이며 강력한 엔진 때문에 40도 경사도 올라간다. 가격도 5천 정도로 지금의 자산에는 부담되지 않는다.

윤성의 차림이 후줄근해도 매장 직원들은 친절했다. 매니저 최성복이 윤성에게 사근거리며 물었다.

“찾으시는 제품 있으세요?”

“음. 고스트를 보려고 왔어요.”

“오. 고스트. 이번에 신형이 나왔죠. 헌터이신가 보죠?”

“네.”

“캬아. 대단합니다. 고스트를 쓴다면 고산지대의 던전들을 소탕하실 모양이군요? 상급 헌터이신가 봐요?”

“음, 뭐 그래요.”

윤성은 대충 얼버무렸다.

“그렇군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고스트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신형 고스트 앞으로 윤성을 안내했다.

“개량하면서 배기 기관의 효율이 좋아져서 차체의 열이 덜 올라갑니다. 그만큼 쿨링에 소모되는 배터리도 절약되고요.”

“이전 버전의 성능은 모두 유지하고 있겠죠?”

“그럼요. 게다가 엔진이 업그레이드 됐어요. 기존의 고스트 V는 E급 마정석을 쓰고 있었는데 고스트 VI에서는 D급을 사용하죠. 아, 그런데 고객님. 고스트를 굳이 고집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으신가요?”

“뭐, 그냥. 산을 탈 일이 많아서요.”

“아, 그러시군요.”

“왜요?”

“음. 아뇨. 만약 평지에서 달리실 거라면 다른 차종을 추천해 드리려고 했거든요. 스펙터X. 고스트와 거의 동일한 성능이지만 1,000만 원이나 더 쌉니다.”

윤성이 빙긋 웃었다.

“괜찮아요. 돈은 충분하니까.”

“아. 하하하! 그렇군요. 고객님 재정에 여유가 충분하시면 고스트보다 더 괜찮은 것도 있는데, 소개해 드릴까요?”

“어떤 거죠?”

“음, 사실 최상급 헌터들이 쓰는 차종 중에 ‘애퍼리션’이라는 차종이 있습니다. 시가 7억이죠. 지금 저희 매장에는 없고요. 이건 진짜 엄청난 물건입니다. 디자인도 세련되어서 고급 세단처럼 보이지만 완벽한 전투용이에요.”

“애퍼리션?”

“모든 성능이 고스트보다 월등히 높아요. 거의 배트카 수준이죠. 상급 헌터의 공격을 받아도 차체에 데미지가 가지 않고, 가고일 가죽으로 만든 타이어와 B급 마정석을 넣은 엔진 때문에 60도 경사의 산도 올라갑니다. 그쯤이면 거의 절벽을 오른다고 봐야죠.”

“하지만 세단을 타고 등산하기는 좀.”

“그렇죠. 하하. 하지만 자동 수리 마법과 부스터 마법, 클린업 마법 때문에 차가 더러워지거나 손상될 일은 거의 없어요. 반대로 공포 마법과 실드 마법 때문에 마수들의 공격을 받았을 때 살아나올 확률은 매우 높죠. 던전이 범람한 도심지나 고산지대의 던전을 공략하는 상급 헌터들이 애용한답니다.”

스킬이 다섯 개나 걸려 있다니 별 미친 차량이 다 있군.

“하지만 스킬이 아무리 많아도 마정석 배터리의 한계 때문에 얼마 못 쓸 텐데요.”

“그래서 B급 마정석을 가공해서 넣어요. 엔진과 배터리에 총 두 개가 들어가는 셈이죠.”

“근데 7억밖에 안 한다고요? 마정석 가격만 3억은 될 것 같은데.”

“지금은 프로모션 기간이라서 그렇고, 좀 있으면 8억에서 9억 정도로 뛸 겁니다.”

“대단하군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타고 싶지는 않네요. 상급 헌터들은 재력이 남달라서 사는 세상이 다른가 보죠?”

“그렇죠. 게다가 애퍼리션은 최초로 비행 가능한 자동차라니까 소유욕이 발동했겠죠.”

“켁!”

침이 기도로 넘어갔다. 놀란 윤성이 컥컥 숨을 토하면서 호흡을 골랐다.

“비행을 한다고요?”

“그래서 한국에서 판매할 때 에어포스한테 광고를 부탁했는데 에어포스가 거절했대요. 하하하.”

“얼마나 날 수 있습니까?”

“B급 마정석 기준으로 100미터 높이에서 최대 30분 날 수 있답니다. 그 후에는 마정석 배터리를 교체해야 해요. 가성비가 너무 낮으니까 사실상 그 기능을 사용하는 운전자는 거의 없다더군요.”

100미터. 너무 낮군.

“더 강한 마정석을 쓰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나요?”

“그럼요.”

“혹시 같은 마정석이라도 비행시간을 포기하면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습니까?”

“그렇긴 하죠. 고도를 높이는 거나 그 고도를 유지하는 것, 모두 같은 배터리를 쓰는 거니까요.”

“그 차 혹시 구할 수 있습니까?”

현재의 재정 수준에서 솔직히 과소비였지만 언젠가는 살 것 같은 물건이다. 지금 할인 중이라면 굳이 미룰 이유가 없다.

A급이나 S급 마정석을 구해서 그걸 차량 배터리에 꽂고, 제자리에서 고도 상승만 한다면?

이 차량을 잘만 이용하면 상당히 높은 랜딩 버프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계속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값으로 무기나 전투복 등을 더 좋은 것으로 맞추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지만, 일단은 헌터의 품격에서 산 게 있으니까.

게다가 돈도 좀 남아 있다. 이 장비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상급 던전을 가게 된다면, 그때 장비를 다시 맞추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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