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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22화 (22/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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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 022화

“헉, 헉.”

윤성은 숨을 헐떡이면서 일어났다. 허리의 상처는 거의 치유되었다. 카다시안은 이미 코르소에게 달려가 그의 상처를 보는 중이다.

송민구는 얼이 빠진 얼굴로 A급 세 명의 경이로운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난 가봐야겠군요.”

윤성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왓?”

윤성의 말에 코르소가 정색했다.

“노! 노! 유 캔낫 고, 맨! 나랑 얘기해요, 좀. 유 크레이지 맨 어 쏘 인터레스팅! 누군지라도 알려주고 갑니다!”

“난 할 얘기 없으니 상처나 보셔.”

윤성은 프라이미벌 쪽으로 다가갔다.

“그냥 레이드만 도와주고 갈 생각이었는데, 뜻밖의 강적을 만나서 고전했더니 빈손으로 가긴 좀 그렇군요.”

윤성이 프라이미벌의 미간에 박혀있는 B급 마정석을 뽑아 들며 말했다.

“핏빛야수는 당신들이 가지세요. 새로운 타입의 마수를 잡은 거니까 얻을 게 많을 겁니다. 대신 이 마정석 정도는 제게 주세요.”

“노우.”

코르소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블러디비스트의 첫 발견자. 그리고 처치한 사람.”

그가 핏빛야수의 사체를 가리켰다.

“저건 당신의 것입니다.”

윤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외국인 이렇게 고집 센 성격이었나? 난 핏빛야수랑 엮이고 싶지 않다고!

‘어라? 아니지. 잠깐만. 이 사체가 공개되어서 핏빛야수의 혐의가 완전히 벗겨지면 J등급 공개해도 되는 거 아냐?’

윤성이 핏빛야수의 사체로 고개를 돌렸다. 그냥 못 이기는 척 가져갈까?

“앗! 저것 좀 보세요!”

송민구가 핏빛야수의 머리 쪽을 가리켰다.

하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다들 황당한 듯 입을 벌렸다.

핏빛야수의 몸뚱어리가 반짝이면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곳에 남은 것은 핏빛야수의 클로와 전투복, 전투화와 귀걸이 따위뿐이다. 사체는 완전하게 없어져 버렸다.

“안 돼!”

윤성이 황급히 빈자리를 더듬었다. 시체가 없어지면 안 된다! 이건 협회에 들어가서 해부되고 공개되어서 핏빛야수란 게 실존한다는 것을 세계에 알려줘야 한단 말이야!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맨바닥의 모래만 만지작거리던 윤성은 허탈하게 바닥에 남은 핏빛야수의 잔해들을 집어 들었다. 전투복과 클로 따위.

이런 걸로 핏빛야수를 입증하기는 무리겠지. 잘 제작된 공산품이긴 하지만 이런 건 누구든 만들려면 만들 수 있으니까.

“어라?”

핏빛야수의 전투복에 조그만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져 끈으로 입구를 조이는 주머니.

묘한 마력이 느껴진다.

전투복이나 클로 같은 건 아무 쓸모 없다. 하지만 이건 마법 아이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핏빛야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이걸 가져가겠습니다.”

윤성이 주머니를 흔들며 말했다.

“나머지는 전부 레이드 팀에서 분배해서 가지세요.”

“하지만 두 마수 모두 당신이 죽였는데요.”

카다시안이 말했다.

“하지만 이 던전은 당신들 거였잖아요.”

“우리끼리였다면 핏빛야수에게 전멸했을 수도 있죠.”

“흠.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나한테 주고 싶은 몫을 당신네 레이드 팀의 불쌍한 짐꾼한테 주세요.”

“짐꾼한테?”

“팀이 뿔뿔이 흩어진 후에 컨트롤러를 찾아 팀 규합하라고 시켜서 지금 헤매고 다니는 것 아닌가요? 짐꾼한테 원래는 그런 일을 시키면 안 되죠. 특히 그 사람은 E급인데 B급 던전을 혼자 탐험하면 어떻겠어요? 위험 부담과 용기를 생각하면 이 마정석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윤성이 B급 마정석을 카다시안에게 주었다.

“물론 그 사람이 살아 돌아올 때의 얘기지만. 지금 어딜 헤매고 있는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윤성이 코르소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미 카다시안의 도움으로 치료가 끝난 상태다.

“난 갑니다. 빠이. 송민구 씨. 훌륭했어요.”

윤성은 그들에게 인사하고 배낭을 놔두었던 곳을 향해 달려갔다.

자라처럼 생긴 동그란 바위와 그 옆에 자란 맹그로브 나무 틈새에 끼워놓았지. 빨리 배낭을 찾아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약 5분 정도 달린 끝에 윤성은 난처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못 찾겠어.’

분명 어딘가에 있긴 할 텐데.

밀림 타입인 이 던전은 길 찾기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모든 곳이 다 똑같이 생겼으니까!

방향은 확실히 이쪽이 맞는 것 같은데.

윤성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방독마스크를 벗었다.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할 것 같다.

‘그보다 이 주머니는 대체 뭐지?’

윤성이 주머니의 입구를 열어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팟!

거대한 홀로그램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여태 보았던 메시지창들보다 훨씬 크고 방대한 창이다.

<인벤토리>

-A급 마정석

-순간이동석

“이게 뭐야? 이거 설마……?”

윤성은 조심스럽게 방독마스크를 집어서 홀로그램 창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방독마스크가 홀로그램으로 변하며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인벤토리>

-A급 마정석

-순간이동석

-방독마스크

대박이다. 세상에 이런 물건이 있다니. 이 조그만 주머니 안에 저것들이 들어간 거야? 뭐 얼마나 많이 넣을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머니보다 몇 배는 큰 방독마스크가 들어간 시점에 이미 혁명적인 물건이다.

경매에 내놓으면 S급 보물의 가격이 매겨질 것이다.

쿠르르르!

갑자기 거대한 진동이 울렸다. 게이트가 마력을 분출하기 시작했군.

보스인 프라이미벌을 잡은 후에 핏빛야수와 전투를 치른다고 시간을 좀 허비했으니 곧 닫힐 거다.

빨리 돌아가자.

윤성은 인벤토리를 바지 주머니 안 깊숙이 집어넣었다. 복장도 좀 고치고 싶은데. 고민하던 윤성은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밀림 타입이라 후덥지근해서 괜찮지만 게이트 밖으로 나가면 춥겠군.

윤성은 서둘러 코르소 팀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윤성 씨.”

“어서 오세요.”

송민구와 카다시안이 반겨주었다.

송민구는 핏빛야수의 사체에서 나온 전리품들과 작은 마정석들, 프라이미벌의 시체에서 돈 될 만한 부분들을 챙긴 후였다.

윤성은 송민구의 지시를 따라서 여태까지 컨트롤러들을 찾아 던전을 헤매다가 돌아온 짐꾼 행세를 했다.

“암 쏴리, 윤성. 짐꾼한테 그런 일 시켰으면 안 되는 것이셨습니다. 이것은 보상입니다. 당신은 자격이 있습니다.”

코르소가 불쌍한 짐꾼을 위해 B급 마정석을 내밀었다.

윤성은 웃음이 났지만 억지로 참으며 그걸 받아들었다.

“땡큐.”

“근데 당신의 빽은 어쨌습니까?”

“빽? 가방이요?”

윤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코르소 씨 찾아서 헤매다가 무겁고 움직임이 느려져서 버렸습니다. 옷은 찢어져서 버렸고요.”

“아하.”

“게이트 닫히니까 이만 떠나죠.”

카다시안이 말했다.

윤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게이트를 향했다.

굉장히 수확이 많은 레이드였다.

6. C+ 타워

집으로 돌아온 윤성은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모두 꺼냈다.

A급 마정석.

순간이동석.

방독마스크.

마스크는 쓸 데가 없으니 도로 집어넣고.

대신 바지 주머니에서 코르소가 준 B급 마정석을 꺼냈다.

“광택 미쳤다.”

윤성이 A급, B급 마정석을 홀린 듯 관찰하며 입술을 쭉 빨았다. 이런 보물은 평생 만져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근데 이건 또 뭐지?’

순간이동석을 이리저리 굴리며 관찰했다. 순간이동석. 최상급 헌터들 중에서도 일부만 가지고 있는 S급 보물이다.

소문으로는 마력을 불어넣으면 특정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던데.

하지만 매물 자체가 매우 귀하고 극소수의 최상급 헌터들이 비밀리에 간직하는 것이라 작동 원리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과연 이 돌에 걸려 있는 순간이동 마법은 어디로 통해있을까?

윤성은 순간이동석에 마력을 불어넣어 보려다 관두었다. 너무 리스크가 크다. 아무런 정보도 없으니까.

최상급 던전에서는 순간이동 ‘비석’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마력을 주입하면 특정 스테이지로 이동되는 거대한 비석.

하지만 함정인 경우도 많다.

사용해보면 심해저로 연결되어 5,000미터 높이의 수압에 깔려 몸이 박살 난다든가 하는 식으로.

독일의 어느 유명한 헌터가 S급 던전에서 그런 식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들었다. 순간이동석을 발견하고 숨겨진 보스 방인 줄 알고 마력을 주입했다가 화산지대 용암 속으로 가버렸다던데.

‘일단 이건 지켜보자. 나중에 쓸 일이 있겠지.’

다음은, 그간의 성장을 한 번 돌아볼까.

“자가 진단.”

<강윤성>

<칭호 : 없음>

<힘 : 55(+511.25), 순발력 : 52(+511.25), 감각 능력 : 88(+511.25), 지능 : 45(+511.25)>

<버프 : 랜딩 861,018초>

<디버프 : 없음>

<분배 가능한 능력치 : 220>

<스킬 : 보레이셔스 파이썬(사용 가능, 861,018초), 빛의 탄환(사용 가능), 스톤 스퀴즈(사용 가능)>

여전히 보잘것없는 능력치지만 분배 가능한 능력치 포인트가 220점이나 있다. 당장 찍을 필요가 없어서 그냥 내버려 두었지만.

하지만 언젠간 찍을 텐데 어떤 능력치를 올려야 할까?

마법 스킬들의 효율이 압도적이지만 상급 근접 스킬이 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 아이언 피스트를 먹었던 적 있으니까.

윤성은 상태창 위에 떠 있는 금색 메시지를 읽었다.

<랜딩 임무 : 맨몸으로 종단속도에 도달하기.>

이 임무를 완수하면 낙하 속도에 비례하는 무언가가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상승시켜줄지도 모른다.

종단속도란 게 뭔지부터 알아봐야겠군.

‘동생한테 물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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