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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20화 (20/260)

# 20

레벨업 속도는 9.8m/s^2 020화

소름이 쫙 끼쳤지만 윤성은 아직 반응하지 않았다. 섣부른 움직임은 위험하다.

귀를 예민하게 세우고 미세한 소리 하나하나를 정확히 듣는다. 타이밍을 정확히 포착해야만 피할 수 있다.

쉬이익!

바람 소리와 함께 프라이미벌의 날카로운 이빨이 날아든다.

촤아악!

윤성은 곧바로 몸을 옆으로 날려 수면에 슬라이딩하면서 공격을 피했다. 프라이미벌의 날카로운 송곳니는 그대로 김찬열의 머리를 깨물었다.

“아아아악!”

마수의 아가리 속에서 김찬열이 비명을 질렀다.

공포스러운 광경.

윤성은 주먹을 꽉 쥐며 상대를 관찰했다.

약 3미터 키의 악어다. 게다가 두 발로 직립 보행을 할 수 있었다. 그 놈은 똑바로 서서 김찬열을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프라이미벌이 머리를 똑바로 들고 윤성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김찬열은 이미 스톤 스퀴즈가 움켜쥐고 있는 골반 아래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맙소사…….”

윤성이 전투를 위해 몸을 일으켜 세우는 순간,

퓽!

마법 볼트 한 대가 날아와 프라이미벌의 미간에 꽂혔다.

“캬악!”

“괜찮아요?”

윤성의 뒤, 한참 멀리 떨어진 수풀 사이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은 송민구였다. 그의 왼손에서 마법 석궁이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윤성 씨, 코르소와 카사디안 좀 찾아줄 수 있습니까?”

이쪽으로 달려오면서 송민구가 소리를 질렀다.

“네?”

“짐꾼한테 이런 거 시켜서 미안한데 지금 방법이 없으니까!”

송민구가 프라이미벌에게 석궁을 겨누었다.

<연사 발동!>

스킬을 사용하자 마법 석궁이 초당 다섯 발의 마법 볼트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볼트는 프라이미벌의 머리와 몸통에 무수히 꽂혔지만 그 질기고 튼튼한 가죽을 파괴하기엔 버거웠다.

“빨리 올게요!”

마치 송민구와 교대하는 것처럼 윤성은 송민구를 지나쳐서 그가 튀어나온 수풀 쪽으로 달려갔다.

송민구는 뛰어난 B급 헌터지만 프라이미벌을 단독으로 잡을 정도는 아니다. 코르소나 카다시안을 데려오면 잡을 수 있겠지만.

‘데려올 때쯤이면 송민구는 이미 프라이미벌 배 속에 있을걸.’

윤성은 주위의 인기척을 확인한 후 배낭을 풀었다.

그 안에서 꺼내 든 것은 방독마스크.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정체를 완전히 숨겼다기엔 좀 불안하다.

윤성은 전투복 상의를 벗어서 배낭에 집어넣고 그 안에서 여분으로 가져온 티셔츠 하나를 꺼내 입었다. 약간 우스운 패션이 되었지만 상관없다.

‘그래도 나 구하겠다고 혼자서 프라이미벌과 일기토 하러 뛰어든 사람인데 죽게 둘 순 없지.’

배낭은 바위틈과 맹그로브 나무둥치 사이에 잘 숨겨두었다.

윤성은 양손에 빛의 탄환을 장착하며 송민구 쪽으로 달려갔다.

***

송민구는 마력의 절반가량을 소모할 때까지 마법 볼트를 퍼부었다. 하지만 프라이미벌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쿵, 쿵, 쿵!

거대한 꼬리와 두 다리에서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프라이미벌이 송민구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다행히 프라이미벌의 공격은 직선적이다.

송민구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몸을 옆으로 돌리면서 프라이미벌의 공격을 몇 번 피했다. 빙글빙글 돌면서 마법 볼트를 계속 때려 박으며 지구전으로 끌고 갈 생각이다. 코르소와 카다시안이 올 때까지.

하지만.

쾅!

수면 아래에서 날아온 공격은 미처 읽지 못했다. 약 4미터에 이르는 프라이미벌의 꼬리가 송민구의 가슴을 올려쳤다.

“크악!”

그의 몸이 붕 떠서는 맹그로브 나무에 부딪혀 떨어졌다. 갈비가 부러진 듯한 느낌. 이거 상황이 많이 안 좋군.

<마법 석궁 발동!>

큰 효과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게 최선의 수다.

송민구가 발사한 마법 볼트 몇 발이 프라이미벌의 근육질의 가슴과 어깨에 꽂혔다. 피부에서 피가 새어 나왔지만 껍데기만 뚫었을 뿐이다.

“제길.”

송민구가 이를 으득 씹으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때였다.

퓨웅!

섬광 한 줄기가 날아와 프라이미벌의 어깨를 완전히 관통했다.

송민구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웬 방독마스크를 쓴 기이한 남자가 수풀 반대편에 서 있었다.

총 모양으로 만든 손가락을 이쪽에 겨눈 채…….

타다닥!

달리기 시작했다.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빛의 탄환 발동!>

뛰면서 윤성은 그대로 양손에서 마치 쌍권총을 쓰듯이 빛의 탄환을 난사했다. 프라이미벌은 비명과 함께 몸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려 휘청거렸다.

<보레이셔스 파이썬 발동!>

500미터 랜딩으로 얻은 13일짜리 스킬이다. 처음 보는 스킬인데 어떤 것인지 궁금하던 차였다.

“엥?”

아무런 반응도 없다.

윤성은 양손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공격이 잦아들자 프라이미벌이 사납게 눈을 치뜨며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촤아악!

수면 아래에서 무언가가 솟구쳤다. 뱀처럼 생긴 길쭉한 괴생물체.

하지만 그것은 눈도 코도 귀도 없었다.

끝에 달린 것은 오직 입. 그것도 거대하게 벌어지는 입이다.

“이게 무슨…….”

꽤 징그러운 비주얼이었지만 전투력은 훨씬 더 충격적이다.

쩌어억!

스킬 보레이셔스 파이썬이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뱀이 자기 몸뚱이의 몇 배도 삼킬 수 있다지만 그보다 훨씬 유연하고 크게 벌어지는 입이다.

콰직!

파이썬의 아가리 끝이 단번에 프라이미벌의 머리를 물어뜯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가지 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삼켜 버린 게 분명한 대가리가 보레이셔스 파이썬의 기다란 몸뚱이 아래로 꿀렁꿀렁 넘어가고 있었다.

첨벙!

프라이미벌의 몸뚱이가 힘없이 추락해 물속에 파묻혔다.

파이썬은 눈도 없는 주제에 다음 적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연기처럼 산화해서 스르르 사라졌다.

“가, 감사합니다.”

송민구가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B급 헌터 송민구라고 합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시죠? 이런 마법은 처음 봤습니다. 들어본 적도 없어요.”

“그냥 지나가던 A급 헌터입니다. 게이트 색깔이 심상치 않기에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온 것뿐입니다.”

윤성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대답했다.

“하지만 여긴 5인이 입장해서 정원이 꽉 찼는데 어떻게 들어오신 거죠?”

윤성은 김찬열 시체의 하반신을 가리켰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서 스톤 스퀴즈는 사라졌고, 시체는 흉한 몰골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송민구는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워낙 급박하게 돌아간 정황 때문에 시체를 눈치조차 못 챘던 모양이다.

윤성이 말했다.

“최소 한 자리는 비어 있었군요. 다른 팀원들은 어디 있습니까?”

“저도 모릅니다. 이눈다를 맞아서 모두 흩어졌어요. E급 짐꾼이 한 명 있었는데 제가 컨트롤러 두 명을 데려오라고 보냈습니다. 여기 상황이 급박했으니까.”

“저런. 위험할 텐데.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송민구 씨.”

좋아, 자연스러웠어. 괜찮아.

윤성은 빠른 걸음으로 현장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오싹.

윤성의 목덜미의 털이 바짝 곤두섰다.

흉측한 마력이 느껴진다. 윤성의 기감으로 이 정도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상대가 완전히 전투태세에 돌입해 있거나, 아니면 항상 마력을 분출하는 마수이거나 둘 중 하나다.

그리고 그 느낌을 볼 때 A급 이상이다.

“잠깐만요. 누가 옵니다.”

윤성이 굳은 얼굴로 인상을 찌푸렸다.

600에 근접한 감각 능력이 시신경을 극대화시켰다. 어느 때보다 예민해진 눈은 독수리의 그것처럼 상당한 거리에 있는 적을 수풀 사이로 정확히 포착했다.

구스타프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그 시체 옆에 서 있는 것은 인간형의 마수였다.

산발해서 풀어헤친 긴 머리카락, 붉은 눈, 사자처럼 날카로운 이빨. 보디빌더처럼 건장한 체구와 다스베이더 같은 전투복. 양손에는 예리하게 번쩍이는 클로.

“핏빛야수…….”

윤성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은 더욱 충격적이다.

핏빛야수가 허공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고 있었다. 윤성은 그 행동이 무언가와 오버랩되는 것을 느꼈다.

‘능력치를 분배하고 있다…….’

이럴 수가. 마수가 능력치를 분배하다니? 상태창을 보고 있는 건가 지금?

윤성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헌터님, 무슨 일입니까?”

송민구가 물었다.

“혹시 핏빛야수 전설에 대해 아십니까?”

“네에?”

송민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핏빛야수가 있습니다.”

핏빛야수가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능력치 분배를 마친 모양이군. 윤성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핏빛야수가 근접함에 따라 그가 내뿜은 흉흉한 기운을 송민구도 느꼈다.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은 것이다.

프라이미벌 같은 것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상대다.

하지만.

윤성에겐 버프가 있다. 그것도 무려 500점짜리 버프가.

석 달 전 포천에서는 무력하게 동료들이 도륙당하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윤성은 전투를 결심했다.

상대의 수준은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다. A급 정도. 처음 보았을 때 저 녀석이 S급 수준이라 판단했던 것은 윤성의 체급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었으리라.

해볼 만하다.

“제가 맡습니다.”

윤성이 말했다.

“빠져나가서 다른 헌터들 데려오세요. 컨트롤러를 데려와요! B급은 도움 안 되니까.”

“하지만 이미 E급 헌터가 컨트롤러를 데리러 갔으니까 그걸 믿어보고 저도 함께 싸우는 게…….”

“빨리 가라고!”

윤성이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핏빛야수가 송민구의 등 뒤, 수풀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송민구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벌떡 일어났다. 잠깐 돌았었나 보군, 같이 싸우기는 무슨. 이거랑 어떻게 싸워?

“컨트롤러 데려올게요!”

그가 재빨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핏빛야수의 눈이 그의 뒤를 쫓았다.

쉬익!

핏빛야수는 송민구를 향해 클로를 날렸지만.

콰앙!

갑자기 바닥에서 솟구친 바윗덩어리에 가로막혔다. 스톤 스퀴즈. 윤성이 주먹을 꽉 쥐고 핏빛야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핏빛야수, 내 인생을 조져놓은 이 개새끼. 이번엔 꼭 복수한다. 내가 랜딩 버프를 가지고 돌아올 줄은 몰랐지?

D, E급 헌터들의 전투복도 두부 썰 듯 잘라버리던 클로는 500대 지능의 강도를 가진 스톤 스퀴즈를 자르지는 못했다.

달리 말하면 이 싸움이 해볼 만한 것이라는 뜻.

핏빛야수가 윤성을 쏘아보았다.

“나 기억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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