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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15화 (15/260)

# 15

레벨업 속도는 9.8m/s^2 015화

높이가 낮으면 허접한 스킬들이 나오는 모양이지만 운 좋으면 괜찮은 것도 나오겠지. 전부 다 확률 싸움일지도 모르니까. 일단 몇 번 더 해본다.

‘힐링을 내놓으란 말이야!’

윤성은 버프를 계속 리셋하면서 연거푸 제자리 점프와 랜딩을 반복했다.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혀 말기 남은 시간 60초>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구취 제거(패시브) 남은 시간 60초>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고양이 자세 남은 시간 60초>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침 멀리 뱉기 남은 시간 60초>

“아오 X발, 안 해!”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아무래도 이렇게는 힐링 스킬을 못 먹겠군. 그래도 바위 위에서 뛰어내렸을 때는 붕대 감기 정도는 나왔다. 다시 바위 위로 가보자.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나무 타기 남은 시간 60초>

“나무 타기?”

윤성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거 어쩌면 되겠는데?

윤성은 근처의 나무들을 둘러보았다. 가장 높아 보이는 소나무 한 그루.

<나무 타기 발동!>

스킬을 사용하자 나무 둥치의 튀어나온 요철들이 누가 페인트로 표시해둔 것처럼 눈에 또렷이 보였다. 이곳과 이곳을 잡으면 올라갈 수 있음을 설명해 주는 듯하다.

윤성은 재빨리 나무 꼭대기까지 기어올라갔다.

파앗!

그리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지상을 향해 투신했다.

쿠웅!

이번엔 착지 소음부터가 꽤 크다. 그만큼 버프도 꽤 강력하다.

방독마스크 안에서 윤성이 환하게 웃었다.

<최종 속력=19.56㎧, 낙하 거리=21.07m, 낙하 시간=2.10s>

<랜딩 성공!>

<일시적으로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힘과 순발력, 감각 능력, 지능에 각각 21.07점.>

스킬은?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힐링 남은 시간 264초>

“됐다!”

버프가 약하니까 이 힐링 스킬도 그리 효율 좋은 스킬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버프로 얻은 능력치의 증폭값도 약해서 지능도 낮다.

하지만 구출팀이 오기 전의 시간 벌이 정도는 충분히 될 거다. 심정지가 온 환자 입장에선 의대 교수가 심전도를 들고 응급실에서 기다린다고 해도, 현장에 있는 초등학생이 해주는 어설픈 CPR이 더 도움 되는 법이니까.

<힐링 발동!>

윤성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헌터의 허리에 생긴 자상을 메웠다. 찢어진 신경도 자연히 제자리를 찾으며 붙은 것 같았다.

물론 확신은 못 하지만. 상급 헌터가 와서 힐링을 다시 써줘야 할 거다.

‘아무튼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게 다니까.’

윤성은 다른 헌터들을 모두 치료한 후 재빨리 현장을 빠져나갔다.

버프 스킬이 아니라 영구적인 스킬 중 하나로 반드시 <힐링>을 획득해두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약 15분 후.

A급 헌터 코르소와 카다시안 킴은 응급 헬기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카다시안 킴은 한국인 재미 교포. 코르소는 그녀와 결혼한 금발의 미국인이다. 두 사람 모두 한국으로 이민을 온 A급 헌터들.

“왓더퍽……. 웨얼 더 게이트?”

“오 마이 가쉬.”

두 사람은 이미 닫혀서 사라져 버린 게이트와 응급 처치가 끝난 채 나란히 누워있는 B급 헌터 넷을 보고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심지어 넷 중 세 명은 이미 의식을 회복한 상태다.

“헤이.”

코르소가 그들 중 하나에게 물었다.

“아 유 오케이? 괜찮아요?”

“네에……. 전신이 쑤시지만.”

“이미 치료가 끝났군요.”

카다시안 킴이 힐링 스킬을 쓰려다가 멈추며 말했다.

“누가 치료해 줬나요?”

“제가 봤어요…….”

젊은 여자 헌터가 손을 들었다. B급 헌터 이나영이다.

그녀는 던전 초입부에서 컨트롤러가 사망할 때 고블린들에게 옆구리를 창으로 찔리고 해머로 후두부를 얻어맞고 기절했다.

그녀는 이후에 몇 번 의식을 차렸다.

제일 처음 본 장면은 고블린 워리어가 솥에 물을 끓이는 것.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그다음에 본 것은 방독마스크를 쓴 남자가 고블린 워리어의 목을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던전이 독 타입도 아닌데 방독마스크를 왜 썼는지 의아했지만 아무튼 구출팀이 왔구나, 생각하고 안심하며 잠들었다.

그런데 별안간 그 남자가 뺨을 두들겨서 깼다. 밖으로 데리고 나갈 테니까 이따가 구출팀이 도착하면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구출팀이 아니면 이 남자는 뭘까.’

의문을 가지면서 다시 잠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그 방독마스크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점프하고 있었다. 엄청 멋지게 에어포스 랜딩 자세를 잡으면서.

‘뭐야, 이 미친놈은?’

너무 황당해서 실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방독마스크가 갑자기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더니 거기서 착지하고는 힐링 스킬로 모두를 치료해 주고 사라졌다.

“왓 더…….”

얘길 들은 코르소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Did you take drugs?”

“네?”

“당신, 약했냐고 묻는데요.”

A급 힐링 스킬로 이나영의 신경 손상을 치료하던 카다시안이 통역을 해주었다.

“아니에요! 믿어지지 않겠지만 정말이에요. 진짜로 그랬어요. 제가 본 거 다 사실이에요.”

“와우.”

코르소가 웃었다.

“Then. did he take drugs?”

“그럼 그놈이 약을 했었나요?”

카다시안이 다시 통역해 주었다.

“아뇨. 그런 것 같진 않았는데. 아, 아니지. 음. 솔직히 모르겠어요.”

“올롸잇.”

코르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헌터는 미국보다 규제도 엄했고, 이민 온 후로는 재밌는 게 별로 없었는데 오랜만에 흥미로운 사건이 생겼다.

“미스터 마스크.”

한 번 조사해 봐야겠군. 코르소가 씩 웃으며 카다시안을 쳐다보았다.

4. 패러글라이딩

집으로 돌아온 윤성은 배낭에 들어 있는 재물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관찰했다.

윤성에게는 현재 샐리강스 알이 13개, C등급 마정석이 5개, D등급 마정석 14개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B급 마정석.”

주먹만 한 크기. 반짝이는 광택. 하지만 문제가 있다.

마정석은 그 자체로 국가 경쟁력이다. 헌터들의 장비를 생산하는 데 주요한 물건일 뿐 아니라 온갖 산업용 기계의 핵심 동력이니까.

C등급, D등급은 윤성이 직접 마정석 샵에서 팔아도 상관없다. 그 정도의 급수의 물건들까지 협회가 관리하거나 감독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B등급 이상은 정부에서 개수를 모니터링한다.

‘일반 마정석 샵에 이걸 팔면 출처를 기록해야 할 테고, 신상 정보도 남겨야겠지. 그럼 곧바로 어떻게 E급 버러지가 이런 걸 얻었느냐며 협회에서 소환할 테고.’

B급을 판매하는 것은 일단 보류.

윤성은 책상 서랍에 마정석을 넣어두었다.

“아, 맞아. 랜딩 보상도 있지.”

윤성은 300미터 랜딩 임무창을 열어서 보상을 받았다.

E급 마정석 하나가 그의 손아귀로 떨어졌다.

대단치는 않지만 타이레놀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군.

다음 날 아침, 윤성은 마정석 샵에서 C, D등급의 마정석들을 모두 처분했다.

5,400만 원.

B급 마정석을 제외하고도 제법 상당한 목돈이었다. 그럴 법도 하지. 보통은 상급 헌터들이 팀을 짜서 레이드하는 B급 던전 하나를 혼자서 털었으니까.

‘좋아, 이제 랜딩 임무를 해볼까.’

윤성은 상태창을 열었다.

<랜딩 임무 : 500미터 이상 높이에서 랜딩.>

<랜딩 임무 : 5분 이상 랜딩하기.>

간밤에 곰곰이 고민해 봤는데 굳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거나 할 필요 없다.

패러글라이딩 정도는 서울 근교에서도 가능하니까.

경기도 양평군에 패러글라이딩 서비스를 해주는 곳이 있다. 체험비는 14만 원. 좀 비싸지만 이 정도야 뭐.

지하철 용문행 중앙선을 타고 아산역까지 이동했다. 예약해 둔 픽업 셔틀을 타고 집결지로 이동하는 데만 무려 2시간 반이 걸렸다.

돈 벌면 차부터 산다.

거듭 다짐하며 윤성은 얌전히 기다렸다.

풍경을 둘러보니 제법 기분전환이 된다.

유명산 정상. 830미터. 물론 해발고도니까 실제 랜딩 높이는 그보다 훨씬 적겠지만 그래도 500미터 이상은 나오겠지. 그리고 낙하 시간이 몇 분 정도 된다면 버프 시간이 얼마나 나올지도 기대된다.

“강윤성 씨?”

수염이 덥수룩한 호리호리한 아저씨가 나타났다.

이곳의 파일럿 중 하나인 신윤중 씨다. 패러글라이딩 경력 30년, 세계 패러글라이딩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적도 있는 남자다. 숙달된 선생님을 만나다니 운이 좋군.

“안녕하세요.”

윤성은 공손히 인사하고 설명을 들었다.

처음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초심자는 혼자 타지 않는다. 오토바이처럼 앞뒤로 함께 앉는 2인용 조종석에 신윤중 같은 강사들이 함께 탄다.

강사가 윤성의 바로 뒷자리에서 패러글라이딩 날개의 브레이크를 잡아서 방향과 속도를 조절해 주는 것이다.

윤성은 신윤중이 건네는 장비를 모두 착용했다. 신윤중은 꼼꼼히 다리끈의 벨트를 채워서 윤성의 하체와 조종석을 고정시켰다.

“지금 바람이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게 별로 없어요. 그쪽 바람이 강해야 뜨기 쉬운데.”

신윤중이 말했다.

“그럼 어떡하죠?”

“좀 빨리 달려야 합니다. 한 번 테스트해 보죠, 윤성 씨. 제 손 잡고 뛰어보세요.”

신윤중이 양손을 윤성에게 내밀었다. 윤성은 두 팔을 뒤로 뻗어서 그의 손을 잡고 달려야 했는데 약간 모양새가 웃겼지만 다행히 잠깐 달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오케이! 오케이!”

신윤중이 소리쳤다.

“왜 이렇게 힘이 좋아요? 당신 뭐 하는 분이에요?”

“헌터입니다.”

“캬아! 그랬구만. 나 아는 친구 중에도 헌터 몇 있어요. 나도 각성자였으면 각성자 선수권 대회에 나갔을 텐데.”

“이렇게 뛰면 됩니까?”

“저랑 달리기 박자를 맞춰야 하니까 약간 천천히 뛰어요.”

“알겠습니다.”

신윤중은 다시 한번 조종석과 날개의 연결 고리, 브레이크, 구조용 낙하산, 물 빽, 스피드 바, 고도계 따위를 점검한 다음, 날개를 뒤로 펼쳐놓고 윤성의 뒷자리로 왔다.

“자 갑시다.”

타다닥!

윤성은 신윤중을 끌고 힘껏 달렸다. 맞은편의 이륙 지점으로.

후우욱-

강력한 바람이 얼굴에 부딪히면서, 어느 순간 윤성의 몸이 살짝 떠올랐다.

“자, 이륙합니다!”

뒤에서 신윤중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떴다.

발이 땅에서 1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보통 초심자는 800미터 상공에서 몸이 떠오르면 즐거워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서워하기도 한다. 그걸 안심시키는 것도 패러글라이딩 강사의 역할 중 하나다.

신윤중은 수많은 고객에게 패러글라이딩을 서비스하면서 그쪽으로는 매우 자신이 있었다. 일부러 항상 목소리를 차분히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손님은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안해하는 것 같지도 않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루한 듯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윤성이 말했다.

“네?”

“제가 실수로 스톱워치를 안 가지고 왔는데, 지금 우리가 비행한 지 얼마나 됐을까요?”

“예?”

고도 말고 시간이 궁금하다고?

“음. 글쎄요. 한 1분 되지 않았을까요?”

“저희 한 5분은 날겠죠?”

“이 기세면 10분도 날 겁니다.”

“와!”

갑자기 윤성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재밌는 사람이군, 신윤중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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