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레벨업 속도는 9.8m/s^2 014화
약 30여 분 정도를 탐사한 윤성은 레벨이 3이나 올랐다. 아직 포인트 분배는 하지 않았다.
윤성이 사냥한 마수들은 동굴 고블린과 늑대뿐만 아니라 동굴 고블린이 가축으로 키우는 샐리강스라는 조류형 마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샐리강스의 알은 제법 비싼 값에 거래되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윤성은 보이는 족족 챙겨 배낭에 넣었다.
쉽게 깨지지 않아서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
던전 진행 속도는 혼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빠른 수준.
고블린들이 나타나면 스톤 스퀴즈로 앞을 막아둔 다음, 빛의 탄환을 난사하면 끝이었다.
고블린들은 도저히 그의 진입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10여 분을 더 굴속으로 들어간 윤성은 레벨이 하나 더 올랐고, 이윽고 보스 방을 마주했다.
입구에서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는 흉한 기운.
윤성이 마지막으로 레이드를 뛰었던 때는 보스 방에 보스가 없었고 핏빛야수를 만나 팀이 전멸하는 절망적인 사태를 맞았었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진 않겠지.
윤성은 오른손에 대거, 왼손에는 빛의 탄환을 장착한 채 보스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마치 지난 레이드에서 없었던 보스를 절충이라도 하듯, 이번에는 보스에 보너스로 헌터들이 있었다.
이 던전을 처음 클리어하기 위해 들어왔던 팀이다. 수는 총 다섯 명. 머리 절반이 날아간 탱커 한 명은 죽었고, 나머지 넷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데 기절한 건지 죽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쿠르르르-
거대한 솥에서 끓는 소리가 났다.
‘전투 중 고블린들에게 당해서 끌려왔군.’
그리고.
윤성은 인상을 찌푸리며 보스를 바라보았다. 동굴 고블린 워리어. 묵직한 존재감으로 의자에 앉아 턱을 괸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워리어는 전투 후 상대의 신체의 일부를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엔 다섯을 전부 삶아서 먹을 생각이었군.
워리어가 거구를 일으켜 천천히 자리에서 내려왔다. 윤성은 재빨리 그에게 손가락 총을 겨누었다.
<빛의 탄환 발동!>
윤성의 왼손에서 섬광이 발사되었다. 그러나 윤성의 손가락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던 워리어는 고개를 숙이며 그 공격을 한 번 피했다.
웬만한 오크보다 훨씬 큰 덩치를 가지고 상당히 민첩하다.
탁!
한 걸음 만에 윤성의 바로 앞까지 도약한 워리어가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윤성은 몰랐지만 그 공격은 앞 팀의 탱커를 한 방에 보낸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부우웅!
하지만 지금 윤성의 감각 능력과 순발력은 400을 훌쩍 뛰어넘은 상태. 고블린의 공격은 묵직했지만 그를 맞추기엔 너무 느렸다.
윤성은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몸을 뒤로 빼서 최소한의 동작으로 도끼를 피했다. 그의 눈앞에는 이제 워리어의 팔뚝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푹, 푹, 푹!
윤성의 단검이 빠르게 몇 번 날아들었다.
“크윽.”
팔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자 워리어는 당황한 듯 상처를 움켜쥐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거리를 벌리는 것은 오히려 더 위험했다.
<빛의 탄환 발동!>
퍼엉!
워리어의 폐부에 구멍을 뚫으며 섬광이 분출했다. 그리고.
쓰걱.
윤성의 단검이 워리어의 목을 그었다. 피가 콸콸 쏟아지는 목을 움켜쥐고 워리어는 앞으로 몸이 기울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한 번에 1레벨이 올랐다. 이 던전에 들어온 이후에만 벌써 5레벨이 오른 셈이다. 그야말로 기적적인 속도의 성장이다.
윤성은 워리어의 목에 걸려 있던 큼직한 마정석을 집어 들었다. B급 마정석!
윤성은 떨리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하며 포박된 헌터들 쪽을 돌아보았다.
살펴보니 탱커를 제외한 나머지 넷은 살아 있긴 했다. 마법 계열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과 서브 탱커로 보이는 무장한 남성, 그리고 마법 소총 저격 타입으로 보이는 인상 험한 남자. 그리고 윤성보다 한두 기수 아래로 보이는 젊은 여자 하나.
앞의 셋은 후두부에 타격을 받아 기절한 것뿐,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 듯 보이지만 마지막은 상태가 좀 나쁘다.
‘안색이 창백하다. 피를 많이 흘렸어.’
게다가 허리 아래에 깊은 자상. 아마도 신경을 다쳤을 것이다. 원래 이런 환자는 전문가가 들것으로 조심해서 옮기는 것이 원칙이지만.
쿠르르-
게이트가 닫히기 시작했다.
‘쳇. 일단 나머지 셋을 먼저 옮기자. 이쪽은 그다음에 생각해 봐야겠군.’
윤성은 마치 햄버거 패티를 쌓아 올리는 것처럼 부상자 둘을 왼쪽 어깨에 메고 팔로 감쌌다. 오른쪽 옆구리에 부상자 한 명을 더 꼈다. 두 명을 한쪽 어깨에 짊어지는 것이 꽤 까다로웠지만 막상 자세를 잡아 고정시킨 후엔 별로 어렵지 않았다.
이게 A급 헌터의 완력.
늑대보다도 후각이 예민한 초인들이다. 힘도 이미 인간의 범주에 있지 않았다.
세 사람을 던전 밖에다 내려놓은 윤성은 다시 던전으로 들어섰다.
쿠구구구-
게이트에서 발산되는 마력이 대기 중으로 흩어지며 천둥소리 같은 것이 났다. 이거 자칫하면 닫히겠는데?
윤성은 서둘러 보스 방을 향해 달렸다.
‘이게 문제군.’
신경을 다친 여자 헌터.
만약 바깥에서 이 사태가 벌어졌다면 최선책은 힐러를 불러서 응급 치료를 한 후 병원으로 운반하는 것이고, 그다음 차선책은 들것으로 조심스럽게 운반한 다음 치료하는 것이다.
둘 다 지금은 여의치 않다. 게이트가 닫히는 중이므로 여기에 두고 힐러를 기다릴 수도 없고.
“이봐요, 의식 있어요?”
윤성이 그녀의 창백한 뺨을 톡톡 두드렸다.
“으으…….”
그녀는 눈을 뜨지 않았지만 작게 신음했다.
“지금부터 당신을 안아서 밖으로 옮길 겁니다. 구출팀이 오는 중인데 아마 힐러가 있을 거예요. 신경이 틀어져도 바로 치료하면 문제없을 겁니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동의를 구하려고 한 얘기가 아니니 상관없다.
윤성은 머리가 날아간 탱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시체도 그냥 두고 갈 순 없지.
윤성은 사망한 탱커를 등에 업고, 마지막 부상자를 양팔로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처음 셋을 옮길 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뛰려니까 아무래도 환자의 신경이 손상될까 불안해서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게이트가 닫히기 전에 윤성은 모두를 데리고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직 구출팀은 안 도착했나.’
‘느려터진 것들. 이쪽은 목숨이 아슬아슬한데.’
윤성은 다시 여헌터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신경을 다친 것도 문제지만 출혈량도 꽤 위험하다.
“앗!”
순간,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버프로 힐링 스킬을 먹으면 되지!’
윤성은 재빨리 근처의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바로 아래의 지상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탁!
<최종 속력=4.98㎧, 낙하 거리=1.27m, 낙하 시간=0.51s>
<랜딩 성공!>
<랜딩 버프 : 이미 상위 버프가 존재합니다. 남은 시간 1,751초. 이미 상위 랜덤 스킬이 존재합니다. : 질주 남은 시간 1,751초>
앗, 참. 상위 버프가 적용되어 있어서 이게 안 되는구나. 시스템이 다 좋은데 이런 데선 융통성이 없구만. 1,700초를 어떻게 기다려?
“이걸 리셋할 수가 없을까?”
딱히 답을 원했던 질문은 아니고 답답해서 뱉은 혼잣말이었는데 뜻밖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현재 랜딩 버프를 리셋하시겠습니까? Y/N>
Yes!
윤성은 재빨리 Y 버튼을 누르고 다시 바위 위로 올라갔다.
착!
여유롭게 뛰어내린 그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최종 속력=4.97㎧, 낙하 거리=1.24m, 낙하 시간=0.50s>
<랜딩 성공!>
<일시적으로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힘과 순발력, 감각 능력, 지능에 각각 1.24점. 남은 시간 60초.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붕대 감기 남은 시간 60초>
<낙하 시간이 너무 짧아 버프 시간이 기본값으로 적용됩니다.>
버프 시간 기본값이라니. 이런 개념이 있었군. 버프 시간을 결정 짓는 게 낙하 시간이었단 말이지?
“어라?”
황금색의 메시지창이 떠 있었다.
<버프 시간의 기본값 파악.>
<랜딩 임무 발생 : 5분 이상 랜딩하기.>
뭐야, 이건 또? 5분 이상 랜딩을 어떻게 해? 어디 비행기에서 떨어져야 하나?
아니, 잠깐만. 이걸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윤성은 메시지창에서 버프 스킬을 확인했다. <붕대 감기.>
힐링 스킬을 먹으려고 했는데 붕대 감기 같은 게 나왔다. 이걸 스킬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싶지만 아무튼,
“힐링을 먹으려면 좀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 이건가.”
하긴 처음 힐링 스킬을 먹었을 때도 폐건물의 꼭대기 층에서 떨어져서 약 32미터를 추락했었다.
하지만 여기엔 마땅한 랜딩 포인트가 없다.
윤성은 주위를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절벽은 너무 높고 멀었으며 바위 따위의 오브젝트는 전부 높이가 부족하다.
제법 큰 나무가 몇 그루 있지만 올라갈 자신이 없다.
“젠장. 이거 정말 점프 정도로는 힐링이 안 나오는 건가.”
윤성은 랜딩 버프를 리셋하고 제자리에서 점프했다.
<최종 속력=3.62㎧, 낙하 거리=0.67m, 낙하 시간=0.37s>
<랜딩 성공!>
<일시적으로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힘과 순발력, 감각 능력, 지능에 각각 0.67점. 남은 시간 60초.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귀 움직이기, 남은 시간 60초>
<낙하 시간이 너무 짧아 버프 시간이 기본값으로 적용됩니다.>
버프 스킬로 귀 움직이기? 미쳤냐 진짜.
움찔-
움직여지긴 하네. 이거 되는 사람 몇 없다던데.
아무튼 이딴 걸 스킬이라고 내놓은 거야 지금? 제대로 된 스킬을 내놓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