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속도는 9.8ms^2-12화 (12/260)

# 12

레벨업 속도는 9.8m/s^2 012화

산에 도착했을 때는 약 세 시간이 흐른 후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등산로 입구까지 오는 데 한 시간이 걸렸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 또 두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수확은 있었다.

산 반대편에 드러난 깎아지른 절벽. 아래에는 사람도 없다. 슬럼가는 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절벽 아래는 던전 범람으로 분출한 마기가 침식하여 썩어버린 토지였다.

“후.”

아래를 내려다보니 상상 이상으로 아찔하다. 백화점 35층보다 훨씬 더 높으니까.

윤성은 다시 휴대폰을 꺼내어 던전 게이트를 확인했다. 여기서 차로 20분 거리. 보통 A급 근접 전투형 헌터들은 시속 80킬로미터 수준의 속도로 달릴 수 있고 그 페이스를 두 시간은 유지할 수 있다.

만약 윤성이 버프를 통해 A급 근접 전투형 헌터 수준의 능력치를 얻게 된다면 해당 위치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다.

전력으로 질주해야 버프 시간을 어느 정도라도 유지한 채 입장할 수 있을 테지만.

희망이 또 한 가지 더 있는데, 300미터에서 추락한다면 버프 시간도 더 길어지리라는 것이었다.

어떤 경우이든 간에 우선 랜딩을 해야 했다.

윤성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다음 절벽을 향해 몸을 던졌다.

순식간에 지면이 가까워 온다. 저 끝에서 몸이 박살 나버릴 것만 같은 속도감.

지면을 향해 뻗은 주먹 하나.

두 다리는 부드럽게 구부리고.

중심을 잡기 위해 펼친 팔이 바람 때문에 부들거린다. 공기에 쓸리는 뺨이 차다.

슈우우욱! 쾅!

짧은 시간이 지난 후 윤성은 안정적인 3점 착지를 마쳤다. 엄청난 힘이 몸속에서 솟음치고 있었다.

<최종 속력=49.83㎧, 낙하 거리=370.28m, 낙하 시간=10.74s>

<랜딩 성공!>

<일시적으로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힘과 순발력, 감각 능력, 지능에 각각 370.28점. 남은 시간 6,920초.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질주, 남은 시간 6,920초>

<낙하 거리 임계 돌파. 영구적 스킬 획득. ‘스톤 스퀴즈.’>

엄청난 값이다. 무려 370점의 버프.

물론 현기증도 상당하다.

송곳으로 쿡쿡 찌르는 듯한 강력한 편두통에 윤성은 양쪽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흐뭇한 점은 또 있다. 바로 새로운 스킬을 얻었다는 점. 어쩌면 100미터 간격으로 스킬을 얻는 게 아닐까?

윤성은 메시지창 사이에서 스톤 스퀴즈에 대한 설명을 찾아냈다.

<스톤 스퀴즈 : 인근에 바위가 있는 지역에서 사용 가능. 바위 주먹을 만들어내 강력한 힘으로 적을 쥐거나 뭉갤 수 있다. 바위 주먹의 내구성과 악력은 지능에 비례.>

“좋아.”

이번엔 버프로 얻은 질주 스킬을 테스트해 볼 차례.

질주는 다리에 마력을 실어 폭발적인 스피드로 달릴 수 있는 스킬이다. D급부터 A급까지도 많은 근접전 헌터들이 애용하는 스킬이다.

물론 그 수준은 헌터의 등급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질주 발동!>

윤성의 발끝으로 뜨거운 열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370점이나 뻥튀기된 순발력은 기본 이동속도를 한참 향상시켜 주었을 것이다.

전투형 헌터들이 그냥 달리기만 해도 자동차와 나란히 뛸 수 있는 게 다 높은 순발력 덕분이니까.

거기다가 질주 스킬을 사용하면?

굳이 20분 거리의 A급 던전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다. 인터넷에서 찾아봤을 때 B급 던전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예민하게 올라온 감각 능력 덕분에 윤성은 B급 던전의 위치 또한 대강 파악되었다.

휴대폰을 다시 꺼내볼 필요가 없다. 저쪽에서 전해져오는 마력이 느껴지니까.

파앗!

절벽 아래에 만약 사람이 있어서 윤성을 봤다면 순간이동을 했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붕-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말 그대로 총알처럼 날아가기 시작했다.

던전 범람으로 침식된 지역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아서 탁 트인 평야였지만 불과 1분 사이에 숲이 나타났다.

하지만 윤성의 질주 속도는 크게 줄지 않았다.

윤성의 감각 능력은 지난밤에 40포인트를 찍었고, 버프를 받아서 450을 넘었다.

10여 미터 앞의 바위나 나무가 다음 순간 눈앞에 있어도 윤성에게는 너무나 뚜렷하고 정확히 인식되었다.

게다가 400대의 순발력.

윤성은 장애물들을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었다.

직선으로 달리는 것에 비해 움직임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속도가 약간 떨어졌지만 사실상 거의 페이스 유지였다.

20분까지도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 16분 후, 윤성은 B급 던전 게이트 근처에 도착했다.

“엥?”

입구에서 윤성은 인상을 찌푸리며 멈춰 섰다.

커다란 텐트가 있었다. 열려 있는 문 안엔 배낭이 다섯 개가 있고, 식량과 세면도구 따위의 생필품 따위가 너부러져 있다.

‘한 팀이 먼저 도착했군.’

B급 이하 던전을 공략하는 약체 길드나 프리랜서 팀, 또는 A급의 큰 던전을 공략하는 대형 길드들이 이런 야영 준비를 갖춘다.

시간을 두고 던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다 빼내기 위해서다.

이 던전은 B급. 윤성의 기억에 의하면 B급 중에서도 협회에서 낮은 난이도로 책정된 곳이었다.

‘그렇다면 프리랜서 팀일 가능성이 높겠군. 어떡하지?’

윤성은 입맛을 다셨다.

“자가 진단.”

<강윤성>

<칭호 : 없음>

<힘 : 55(+370.28), 순발력 : 52(+370.28), 감각 능력 : 88(+370.28), 지능 : 45(+370.28)>

<버프 : 랜딩 5,831초>

<디버프 : 없음>

<스킬 : 질주 5,831초, 빛의 탄환(사용 가능), 스톤 스퀴즈(사용 가능)>

버프는 아직 1시간 반 이상 남아 있어서 지금에라도 다른 던전으로 이동할 수는 있지만, A급 던전은 버겁고 다른 던전들은 너무 멀어서 버프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윤성은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가늠해 보았다. 꽤 을씨년스러운 감각이다. 며칠 전이었으면 덜덜 떨면서 탈출해야 했을 장소다.

사실 지금도 버프가 없으면 그래야 정상이다. 지금 윤성의 순수 전투력은 아무리 뛰어나 봤자 D급 최하위권 정도였다. 장비는 그 이하였고.

“앗!”

이상한 점을 깨달은 윤성의 눈이 커졌다.

던전은 5인 입장이 상식이다. 헌터 다섯 명이 들어가고 나면 게이트의 마력이 너무 불안정해져서 색이 변하고 심하게 흔들려 추가 인원이 들어갈 수 없다. 거센 물살에 부딪히는 것처럼 입구에서 튕겨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게이트에서 흐르는 마력의 파장은 매우 안정적이다.

통행 가능한 상태.

안의 인원은 넷 이하다.

‘하지만 분명 텐트에 배낭은 다섯 개였는데?’

윤성은 재빨리 텐트를 향해 몸을 돌렸다.

협회 작전 지휘부와 연결된 무전기에서 통신이 울리고 있었다.

치직-

-작전 본부입니다. 현재 구출팀이 출발했습니다. A급 헌터 코르소와 카다시안 씨가 헬기를 타고 가는 중입니다.

치직-

-다시 한번 알립니다. 현재 구출팀이 출발했습니다. 부디 마수들을 자극하지 말고 구출팀이 도착할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세요.

이럴 수가.

레이드 팀이 당했군. 지금 입장했을 프리랜서 팀의 누군가가 죽었다. 그래서 게이트가 다시 통행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사건이 벌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구출팀도 방금 호출한 거다.

‘내가 구출할 수 있을까?’

윤성은 고민에 잠겼다. 들어간 헌터 팀이 B급이라고 해도 아마 컨트롤러로 A급 헌터 하나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컨트롤러란 던전의 급수보다 한 단계 이상 수준이 높은 헌터를 말한다. 보통 팀의 리더가 컨트롤러다.

고제하 협회장이 도입한 제도로, 모든 던전에 들어갈 때는 컨트롤러의 존재가 이제는 반 필수적이다.

그리고 만약 컨트롤러가 아직 살아 있다면 클리어를 포기하고 구출팀을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컨트롤러가 있으면 충분히 4인 클리어가 가능하니까. 최소한 자력으로 탈출이라도 할 수 있다. 구출팀을 불러서 명성에 흠집을 냈다는 건 그만큼 위급하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뜻.

즉, 지금 던전 내에서 죽은 사람은 컨트롤러. A급 헌터다.

윤성의 현재 능력치는 똑같이 A급 헌터 수준.

대신 모든 능력치가 그렇다.

마법 계열과 근접 계열 양쪽에서 모두 A급인 만큼, 가공할 원거리 공격력과 근접 대응 능력, 적의 공격을 감지할 동체시력과, 그에 대응할 빠른 순발력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해보자.’

윤성은 헌터들의 배낭 사이에서 방독마스크 하나를 집어 들었다.

혹시나 헌터들을 만날지도 모르니까.

윤성은 얼굴에 마스크를 쓰면서 던전 안으로 발을 옮겼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