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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8화 (8/260)

# 8

레벨업 속도는 9.8m/s^2 008화

찌이잉.

“큭.”

순간적인 두통에 윤성이 신음 소리를 냈다.

감각 능력이 갑작스럽게 극도로 예민해졌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싼 집게벌레들의 다리 관절에서 나는 소음부터 100여 미터 밖의 시민들이 대피하며 쏟아놓는 넋두리까지 온갖 소음이 한 번에 들어온다.

부서진 차량과 터진 가스관에서 새어 나오는 역한 냄새, 벌레들의 진액 냄새, 미약한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먼지들이 뺨에 붙는 촉감까지.

이전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사방의 온갖 정보들이 머릿속에 강제 입력되는 느낌이다.

두통이 올 법도 하지. 불과 30대였던 그의 감각 능력이 160까지 치솟았다. 다섯 살 어린애가 갑자기 농구선수의 신장을 갖게 되면 현기증 안 느끼겠는가.

윤성은 메시지창을 정리하며 의식을 다듬었다. 감각 능력만큼 다른 능력치들도 폭발적으로 치솟았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는 데는 잠깐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영구적으로 스킬을 획득했다고? 랜딩의 낙하 거리가 어느 정도가 넘어가면 이런 것도 생기는 건가?’

상태창을 열어서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다. 거대한 크기의 집게벌레들이 사방에서 우글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윤성의 머리 위에서는 백화점이 쓰러지는 중이다.

백화점은 무게를 못 이기고 허리가 꺾여 두 동강이 난 채였는데, 꼭대기가 포함된 위쪽 덩어리에 리나가 있을 것이었다.

윤성이 그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염력.

백화점의 랜딩이 준 선물이었다.

하지만.

“무거워!”

빌딩의 1/3 크기에 해당하는 윗부분을 통째로 들어 올리는 건 불가능했다. 생각해 보면 윤성의 현재 지능 포인트는 200이 채 안 될 것이고, 이런 계열의 스킬의 위력은 지능에 비례한다.

즉, B급이나 C급 정도라는 소리. 저 정도의 빌딩 파편을 지탱하려면 A급의 염력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력을 받은 잔해의 추락 속도는 현저히 줄었다.

“으그그…….”

똥 쌀 것 같은 기분이다. 건물 잔해가 천천히 떨어지는 걸 보면서 팔다리가 덜덜 떨렸다.

윤성은 주위를 힐끗 돌아보았다. 벌레들이 더듬이를 바짝 세우고 윤성을 경계하고 있었다.

거의 소년 만화 악당 수준의 페어플레이군. 변신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처럼 염력을 풀 때까지 기다리다니.

윤성은 벌레들의 마력을 가늠하고는 피식 웃었다. 대체 왜 장비가 없다고 쫄았을까? 랜딩 버프가 이 정돈데!

‘너희의 그 친절함이 곧 열릴 지옥문의 열쇠란다.’

“크르르…….”

땅굴벌레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저 집게벌레 같은 떠러지들과 달리, 확실히 위계가 높은 보스라서 그런지 땅굴벌레는 윤성의 위험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지금이 공격할 적기임도 아는 듯했다.

그러나 땅굴벌레가 윤성을 공격하려던 순간,

쿠구구구!

굉음과 함께 엄청난 모래 먼지 폭풍이 윤성과 벌레들을 휩쓸었다. 백화점 아래쪽이 먼저 쓰러지면서 일었던 것이다. 윤성은 눈을 반쯤 감았지만 염력을 멈추진 않았다.

먼지가 사그라들 때쯤, 상층부가 내려와서 모래 먼지가 또 한 번 일었다. 하지만 현저히 속도가 줄었기 때문에 아까처럼 요란하진 않았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머리 위에 메시지창이 하나 떠 있는 게 보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뭐야?”

당황해서 재빨리 상태창을 열었다.

“자가진단.”

<강윤성>

<칭호 : 없음>

<힘 : 45(+126.95), 순발력 : 42(+126.95), 감각 능력 : 48(+126.95), 지능 : 35(+126.95)>

<버프 : 랜딩 1,455초>

<디버프 : 없음>

<분배 가능한 능력치 : 20>

<스킬 : 염력(사용 가능, 1,455초), 아이언 피스트(사용 가능)>

경험치는 단순히 마수를 죽여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힐러 계열의 헌터들은 영원히 레벨업을 못하겠지.

체력 또는 마력에 부담이 될 정도의 힘을 적절한 대상에게 충분히 쓰면 경험치가 오른다. 마치 웨이트를 심하게 하면 근육이 생기듯이.

그렇다면 염력을 썼기 때문인가? 염력으로 무너지는 백화점 파편을 지탱해서? 하지만 B급 헌터 기준으로 레벨이 오르려면 최소한 반년 이상의 수련이 필요하다.

갑자기 오싹 소름이 돋았다.

‘내 레벨이 4였기 때문에…….’

몇 분 사이에 레벨업을 할 정도로 경험치가 폭발적으로 올라간 이유는, 30레벨의 염력을 썼기 때문이었다. 본래라면 E등급인 이 레벨에서는 염력 같은 고수준 마법은 아예 쓰는 사람 자체가 없으니까.

정말 그렇다면 버프를 이용하여 고급 던전을 클리어해서 순수 능력치를 폭발적으로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걸 확인해 볼 방법이 하나 있지.

‘아이언 피스트’

윤성도 알고 있는 스킬이다. B급에서 C급 사이의 헌터들이 애용하는 스킬 중 하나다.

벌레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땅굴벌레가 커다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윤성을 위협하고 있었다.

곧바로 그것을 향해 달렸다.

순발력이 세 배가 넘는 값으로 뻥튀기되어버렸기 때문인가, 이동속도가 너무 빨라서 순간 넘어질 뻔했다. 어제 폐건물에서와는 차원이 달랐다.

놀란 것은 윤성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돌진에 땅굴벌레가 기겁하며 몸을 뒤틀었다. 윤성은 벌써 그 벌레의 옆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끼에엑!”

벌레가 주둥이를 쩍 벌린 채 윤성을 향해 쇄도했다. 전투를 결심하고 주먹을 불끈 쥐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아이언 피스트 발동!>

주먹이 강철처럼 번질거리는 회색으로 변했다. 내뻗기만 하면 된다. 윤성은 힘껏 땅굴벌레의 면상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쩍!

윤성의 펀치가 땅굴벌레의 턱 아래 관절에 적중했다.

땅굴벌레의 몸이 한 번 크게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C급 던전의 보스급 마수다. 윤성의 현재 힘과 순발력은 거의 B급 헌터의 초입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지만 땅굴벌레를 한 방에 보내는 것은 무리다.

“캬악!”

땅굴벌레의 분비샘에서 뜨거운 독액이 분출했다.

그러나 윤성의 버프는 힘과 순발력뿐만이 아니다. 윤성의 눈과 위험을 감지하는 센스는 분비샘이 벌어지며 녹색 용액이 끓어오르는 것을 정확히 포착했다.

마치 복싱 선수들이 위빙을 하듯, 윤성의 몸이 유연하게 구부러졌다. 그는 초근거리에서 분사된 독액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했다.

<염력 발동!>

윤성의 왼손이 땅굴벌레의 뒤통수를 붙잡아 당겼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백화점도 지탱했던 지능 160의 염력이다.

마치 머리칼을 붙잡힌 모양새로, 땅굴벌레의 정수리가 윤성을 향해 날아들었고, 그 반대편에선 윤성이 주먹을 꽉 쥐었다.

<아이언 피스트 발동!>

원 펀치.

승패는 이번 한 번의 공격으로 갈렸다. 쩍! 소리와 함께 그의 주먹이 땅굴벌레의 두개골을 깨고 머릿속에 박혔다. 땅굴벌레의 몸이 축 늘어진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예상대로다. 아이언피스트는 C급 이상 헌터들이 사용하는 스킬이다.

이걸로 땅굴벌레를 혼자 처치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백화점을 떠받친 염력 기적에 필적할 만한 일이었다.

벌레의 입속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마정석이군.”

헌터들의 주요 수입원이다. 각종 헌터 무기를 만들거나 일상용품의 동력원에 사용되는 것이다.

“이 정도면 C급은 되겠네.”

침이 꼴깍 넘어간다. 땅굴벌레의 사체도 탐나지만 버프 시간이 아까워서 일단 마정석만 챙기기로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집게벌레들이 더듬이를 내리는 게 보였다. 그들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면서 땅굴벌레가 파놓은 굴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대로 보내줄 순 없지. 저 녀석들도 모두 때려잡으면 레벨이 또 올라갈지도 모르니까.

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염력을 써서 굴 안으로 들어간 벌레들부터 끄집어냈다.

“키익!”

공포에 질린 벌레들이 더듬이를 심하게 떨면서 달아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주먹이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벌레들이 하나하나 피떡이 되어 뭉개졌다.

리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어딘가에 부딪쳤는지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 있다. 이게 가능한가? 35층 빌딩이 무너져서 그 높이에서 추락했는데 살아 있을 수가 있나? 중간에 둥실 떠오르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

건물 잔해에서 기어 나온 그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딱 벌렸다.

어떤 남자가 맨주먹으로 집게벌레를 백 마리 정도 때려죽이고 나머지도 잡는 중이었다.

전투복도 무기도 없이! 아니, 자세히 보니 아이언피스트를 쓰고 있군. 그럼 무기가 필요 없지.

“맙소사…….”

옆으로 고개를 돌린 리나가 경악했다. 땅굴벌레까지 이미 쓰러져 있었다.

뭐야, C급? 아니면 B급 헌터의 지원이 온 건가? 아니, 잠깐만. 저 사람 아까 35층에서 본 사람이잖아?

갑자기 남자가 이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리나의 시선을 눈치챈 것이다. 리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숙이고 기절한 척했지만 소용없었다.

남자는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왜 기절한 척을 했지? 어쩐지 부끄럽다.

“살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윤성이 말했다.

몬스터 학살이 끝나고 2레벨이 더 올랐다. 처치한 적들의 수를 생각하면 그리 드라마틱한 성장은 아니다.

땅굴벌레들 사이에 D급 정도로 보이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주로 많은 경험치를 주었고, E급 벌레들은 아무리 잡아봤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자가 진단.”

<강윤성>

<칭호 : 없음>

<힘 : 45(+126.95), 순발력 : 42(+126.95), 감각 능력 : 48(+126.95), 지능 : 35(+126.95)>

<버프 : 랜딩 84초>

<디버프 : 없음>

<분배 가능한 능력치 : 80>

<스킬 : 염력(사용 가능, 84초), 아이언 피스트(사용 가능)>

이제 시간이 거의 바닥났다. 윤성은 몸에 묻은 벌레들의 체액을 털어내면서 상황을 한 번 돌아보았다.

대부분의 마수는 전멸했다. 오직 윤성 한 사람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

“일어나요. 깨어났잖아요?”

윤성이 리나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말했다. 리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긴장된 표정으로 일어나 앉았다.

“제가 상급자를 몰라보고 아까 실례했군요. 미안해요……. 아까 몇 급이시라고 했었죠?”

E급이라고 했던 것 같긴 한데, 잘못 들었으리라.

리나는 도망치지 말고 헌터라면 싸우다 죽는 게 옳다고 소리쳤던 것이 생각나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E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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