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레벨업 속도는 9.8m/s^2 007화
윤성은 다시 엘리베이터에 탔다. 꼭대기 층인 35층으로 간 다음 계단으로 옥상에 올라갈 생각이다.
“35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35층도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대피한 모양이었다.
윤성은 비상계단으로 올라가려고 문을 열려 했지만,
-철컥!
단단히 잠겨 있다. 철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별수 없군. 35층이 최선이다. 여기서 랜딩할 준비를 해놓자.
백화점 창문 중 열리는 것을 찾아야 했다. 대부분 단단하게 잠가놓았기 때문에 열 수가 없었다. 창문마다 두들기며 밀고 잡아당기고 했지만 아무것도 열리지 않았다.
제길, 그냥 부숴버릴까?
윤성은 의자로 창을 힘껏 후려갈겼다.
그러나 퉁! 소리와 함께 의자가 튕겨 나왔다.
무슨 유리가 이렇게 튼튼해?
“띵!”
엘리베이터 소리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전투복을 갖춰 입은 젊은 여자가 내렸다. 뒤로 질끈 묶어놓은 긴 머리카락만큼이나 긴 저격총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헌터 학교를 졸업하고 포천 던전 전멸 사건을 겪기까지의 4년 동안에는 협회를 꽤 뻔질나게 들락거려서 비슷한 급수의 협회 소속 헌터들 대부분은 얼굴을 알았다.
하지만 이 여자는 처음이다. 헌터가 된 지 얼마 안 됐거나 길드 소속이라 협회에 잘 오지 않는 사람인가 보지?
“왜 여기 계세요?”
그녀가 물었다.
“네?”
그럼 너는? 하고 되묻고 싶었지만 당황해서 생각이 마비되었다. 그녀는 윤성의 옆으로 걸어오더니 총신으로 창문을 힘껏 쳤다.
-쨍!
유리가 아래로 후두둑 떨어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헌터니까요. 후후, 파워블로거로 떠서 요즘엔 사실 준연예인이기도 하지만 말이에요. 리나라고 해요. 혹시 들어보셨나요?”
그녀가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 들었습니다만…….”
“연예인에 별로 관심이 없나 봐요? 뭐 그럴 수 있죠. 일단 제 뒤에 서계세요. 사인 필요하면 얘기하시고. 일 끝나고 해드릴 테니.”
‘얘 뭐야?’
윤성은 황당한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상황 종료되면 대피하세요. 제가 바깥으로 안내해 드릴 테니까.”
“음. 그게, 저도 헌터입니다만.”
“헌터라고요?”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윤성을 훑어보았다. 좀 전의 경찰의 눈초리보다는 덜 무례했지만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몇 급이세요?”
“E급.”
“세상에, 도망친 건가요?”
그녀가 혐오스럽다는 듯 윤성을 쏘아보았다.
“장거리 전투를 하는 분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여기 계세요? 내려가서 사람들 구할 생각을 하셔야지. 헌터가 돼가지고.”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쿠웅!
굉음과 함께 빌딩 축이 휘청거렸다. 저격 자세를 잡던 그녀는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고 윤성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이럴 수가? 설마?”
여자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창가로 달려갔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보니 땅바닥에는 코끼리만 한 크기의 거대한 벌레 같은 게 있었다.
“말도 안 돼…….”
여자는 재빨리 허리춤에서 인터폰을 꺼냈다.
“여기는 A섹터. D급 헌터 리나. 지휘부 회신 바람.”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답신이 왔다.
-지휘부. 듣고 있다.
삐빅.
“땅굴벌레가 나타났다. B급 이상 헌터의 지원을 요청한다.”
삐빅.
-이미 요청했다. 헌터들을 대피시키는 중이다. 리나 요원, 현장에서 이탈하라. 다시 한번 명령한다. 리나 요원, 현장에서 이탈하라. 백화점이 붕괴될 위험이 있다. 현재 모든 헌터와 시민들이 현장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지하 벙커로 이동 중이다. 지하도를 통해 벙커로 이동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명령한다. 현장을 이탈하라.
삐빅.
“이런…….”
리나라고 불린 헌터의 얼굴에 절망감이 번졌다.
“백화점 입구가 벌레로 둘러싸여서 탈출할 수가 없다. 지원 바람.”
삐빅.
-지원할 수 없다. 자력으로 탈출하라. 다시 한번 알린다. 현재 팀의 전력은 D급과 E급이다. 땅굴벌레를 상대할 수 없으므로 백화점에 접근할 수 없다. 지원은 어렵다. 자력으로 탈출하라.
삐빅.
“미친 새끼들아! 너희가 가라면서!”
리나가 욕을 퍼부었다. 그녀는 울상이 되어 윤성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근접 전투원이죠? 부탁해요. 같이 탈출해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윤성이 창문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땅굴벌레가 열어놓은 지하 구멍은 던전 직통이었다.
백화점을 포위한 벌레들의 수는 이제 몇 분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엄청난 숫자의 벌레들이 와글거리는 중이었다.
“아니, 대체 E급 던전에서 어떻게 땅굴벌레가 나오는 거야?”
리나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한탄했다. 그녀는 다시 윤성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쩔 수 없어요. 여기 있으면 건물이 무너져서 죽을 거예요. 곧 땅굴벌레가 이 빌딩을 무너뜨릴 거라고요. 그쪽도 헌터라면 죽더라도 싸우다 죽어야죠. 가요!”
윤성은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안 된다. 지금 저 마수들의 한가운데로 나가면 백 퍼센트 죽는다. 자살하는 수준이다.
랜딩을 할 수 있을까? 아니, 하면 저 벌레들과 싸울 수 있을까?
떨어지는 상상을 하니 아찔하다. 34미터 건물 옥상에서 떨어질 때도 지릴 뻔했는데 여긴 34미터가 아니라 34‘층’이다.
아니지, 35층이었군. X발.
“무슨 생각 해요?”
그녀가 다시 윤성을 잡아당겼다.
“빨리 나가자고요!”
20층 정도에서 뛰어내릴까? 아니면 10층……. 34미터 높이에서만 하더라도 맨몸으로 탈출할 수는 있을 텐데. 아닌가? 땅굴벌레가 쫓아오면 못 도망치려나?
-꽝!
다시 한번 강력한 충격이 빌딩 뿌리에서부터 전해져 왔다.
늦었다. 리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게 보였다.
드르르르.
이 소름 끼치는 소리는 바퀴 달린 의자들이 구르는 소리다.
윤성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세상이 기우뚱 기울고 있었다.
백화점이 무너진다.
안 돼! 이대로 건물 잔해에 파묻히면 끝장이다.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윤성은 힘껏 달려 리나가 뚫어놓은 창문을 박차고 날았다.
“꺄악!”
놀란 리나는 비명을 질렀다. 저 남자가 삶을 포기하고 창밖으로 투신해 버렸다.
하긴, 어쩌면 저게 더 현명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여기 있어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마지막으로 빌딩 최고층의 상쾌한 공기와 풍경을 맛보는 것이 나을지도.
윤성은 낙하하고 있었다.
시발. 120미터 상공에서 떨어지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안전바 없는 자이로드롭, 로프 없는 번지 점프……. 얼굴에서 핏기가 실시간으로 빠져나간다. 살려줘!
실수한 게 아닌가 싶다. 랜딩 조건들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왔어야 했다. 높이에 따른 어떤 페널티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랜딩 자세를 취하는 것뿐이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지는 지면이 바로 곧 윤성의 머리와 충돌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리를 비스듬히 구부리고, 무릎은 땅에 닿으면 안 된다.
왼팔 주먹을 아래로 수직으로 뻗어 두 발과 함께 3점이 지면을 찍어야 한다.
오른팔은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사선으로 들어 중심을 잡는다.
그러면 지면이 바로 앞까지 달려오고,
콰앙!
충격과 함께 손발이 찌릿찌릿하다. 메시지창과 시스템 음성이 쏟아져 나온다.
<최종 속력=40.07㎧, 낙하 거리=126.95m, 낙하 시간=5.50s>
<랜딩 성공!>
<랜딩 버프 : 일시적으로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힘과 순발력, 감각 능력, 지능에 각각 126.95점. 남은 시간 1,815초.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염력, 남은 시간 1,815초>
<낙하 거리 임계 돌파. 영구적 스킬 획득. ‘아이언 피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