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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5화 (5/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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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속도는 9.8m/s^2 005화

한 시간 후, 윤성은 집에 돌아왔다. 뱀 허물처럼 바닥에 너부러진 옷가지들을 발로 쓱쓱 밀어 치웠다.

손바닥만 한 원룸은 사람 한 명 들어가면 꽉 찬다. 하지만 혼자 사니까 상관없다.

부모님 두 분은 8년 전 일산의 S급 게이트 범람으로 돌아가셨다.

여동생이 둘 있었는데, 당시 학생이었던 윤성이 생계를 책임질 능력이 안 되었기 때문에 동생들은 이모 댁에 가서 아직도 거기에 얹혀산다.

자살하기 전에 한 번 전화를 할까 하다가 관두었었다.

‘새 인생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아직 여러 가지로 테스트를 좀 더 해봐야겠지만, 일단 이 능력을 사용해서 영구적이고 지속적으로 능력치 업이 가능하고, 일시적으로는 어마어마한 각성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등급 재심사를 받는 것은 어떨까?

협회의 등급 심사는 버프 클린 마법을 걸어서 모든 버프를 지우고 순수한 능력치를 측정하여 결정된다.

특정 능력치가 400이 넘는 게 있으면 A급. 200이 넘는 게 있으면 B급. 이런 식이다. 실제로 그 정도의 헌터들의 상태창에 등급이 그렇게 표시되기 때문이다.

비록 그 상태창이란 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는 것인지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등급 재심사는 안 된다.’

잠깐 고민해본 윤성은 금방 결론을 내렸다.

핏빛야수 참사 때의 혐의가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

당시 윤성이 혐의를 벗었던 이유는 ‘C급, D급 헌터들을 살해할 능력이 안 되어서’가 주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랜딩해서 버프 상태에서 죽였습니다’라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

포천 사건으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우연히 각성한 능력이라고 주장해 봤자 그걸 증명할 수 없다.

재판이 다시 열리면 이 끝내주는 능력이 감옥 가는 데 결정적인 증거로 쓰일지도 모른다.

일단은 숨기자.

어쩌면 랜딩을 통해서 핏빛야수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시적으로 엄청난 전투력을 갖게 해주니까.

‘그런데 이 랜딩이라는 게 실제로 가능한 일이긴 한가? 어쩌면 나 말고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윤성은 인터넷을 켜고 구글에 몇 가지 키워드를 검색해 보았다.

J등급 헌터.

Joker등급.

랜딩 능력

앞의 둘에 대해서는 검색되는 바가 아예 없고, 랜딩 능력에 대한 검색 결과는 항공기 착륙에 대한 엔지니어 지망생의 질문 글이 나왔다.

전례가 없다.

“자가 진단.”

<강윤성>

<칭호 : 없음>

<힘 : 45, 순발력 : 42, 감각 능력 : 48, 지능 : 35>

<버프 : 없음>

<디버프 : 없음>

<스킬 : 없음>

각 능력치 옆에 추가되었던 값들이 사라졌다. 버프가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보통 B급 이상이나 되어야 상태창을 볼 수 있기에 그 이하에서는 능력치가 어떤지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이 수준이 E급이었다. 어쩐지 초라한걸.

윤성은 인터넷에서 고층 빌딩들의 높이를 검색해 보았다.

낙하 거리가 6미터면 6씩, 34미터면 34씩 버프 능력치가 추가되었었지. 낙하 거리와 정비례한다면 어디 보자.

<서울 샌텀 타워 : 814미터>

“끅.”

놀라서 딸꾹질이 나왔다. 이 정도면 어떤 페널티가 있는 거 아닐까?

<사실 100미터 넘어가면 죽습니다. 너무 욕심을 부리셨군요.>

이런 메시지창이 떠오르는 거 아닐까. 오늘 미처 못 되었던 케첩이 되는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천천히 하자. 천천히.

샌텀 타워는 무리다. 무엇보다 일단 돈이 없어서 전망대 입장도 못 하는걸.

* * *

아침이 되자마자 윤성은 차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원이 필요해요.”

-알겠어요. 지금 입금해 드릴게요. 어……. 어라.

“왜요?”

-그게, 저기…….

“무슨 문제가 있나요?”

-윤성 씨 지원에 락이 걸려 있어요.

“네?”

윤성의 눈이 커졌다.

-마지막 작전을 한 지 일 년이 지나서 그렇다는데, 여기로 오셔서 상담을 받아야 할 거예요. 협회 4층 헌터 복지부서로 오세요.

“이런…….”

윤성은 이마를 짚었다. 당장 돈을 받아서 할 일이 있었는데.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낸다.

1시간 후, 윤성은 헌터 협회 로비에 있었다. 그는 복지부서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차희를 만났다.

“윤성 씨, 또 보네요.”

차희가 반갑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러게요. 근데 어디 가시나요? 퇴근 시간 아직 멀었을 텐데.”

“잠깐 바깥에 볼일이 생겨서. 상담하러 가요?”

“그래야죠. 근데 상담을 하면 뭘 하는 건가요?”

“아마 임무를 직접 줄 수도 있고, 상위 헌터 한 명을 소개해 줄 수도 있어요.”

“상위 헌터요?”

“음……. 매니저 같은 일을…….”

상담실에는 안경을 쓴 깐깐해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윤성을 보고 서류 차트를 뒤적거렸다.

“앉으시죠, 윤성 씨.”

윤성은 일단 고분고분 지시에 따랐다. 남자가 안경을 손가락으로 밀어서 고쳐 썼다.

“저는 복지부서 김시윤 차장입니다. 반갑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윤성입니다.”

형식적인 악수를 나눈 후에 김시윤 차장이 차트를 내밀었다.

“거의 1년 동안 아무런 임무가 없네요?”

“그렇습니다.”

“협회에서 임무가 안 떨어지는 겁니까?”

“네.”

“그럼 할 수 없죠. 제가 드리겠습니다.”

김시윤 차장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여덟 명 정도의 헌터들의 간단한 신상이 적혀 있었다. 대부분이 A급 이상이었다.

“뭘 하면 되는 거죠?”

“여기 계신 헌터 분들의 개인 비서 같은 겁니다. 레이드를 시키진 않을 겁니다. 윤성 씨는 E급이고 A급 이상의 헌터가 들어가는 던전에 참여해봤자 짐만 되죠. 뭐 짐꾼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그거랑 좀 다릅니다.”

“그럼……?”

“개인 비서 같은 거라고 하죠. A급 헌터님이 일하시는 데 필요한 물건 같은 걸 사드리거나 하면 됩니다. 담배나 생수 같은 거요. 쓰레기를 버리거나. 서류 작업을 하거나. 사실 E급으로 활동할 때보다 더 돈벌이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윤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김시윤 차장은 서류로 책상을 툭툭 쳤다.

“헌터로 일하다가 헌터의 비서가 되는 게 자존심 상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지원이 더 안 나와요.”

“자존심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전 헌터 일을 하고 싶어요.”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윤성 씨가 받은 지원. 그냥 주는 거 아닙니다. 계약서 보세요. 처음 3회는 무료 지급이고 그 후에는 갚아야 하는 돈이에요. 복지 차원의 지원이기 때문에 이율은 연 1퍼센트로 매우 낮습니다만.”

“그럼 제가 얼마나 갚아야 하죠?”

“흠.”

김시윤이 차트를 다시 확인했다.

“541만 4,926원.”

그가 차트를 윤성의 앞에 내려놓았다.

“사실 A급 헌터의 개인 비서로 일하면 운에 따라 하루 팁으로도 받을 수 있는 돈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무 일도 안 하고 계속 버티고 있으면 한 푼도 못 받겠죠.”

“근데 저는 동료를 살해했다는 의혹 때문에 일감이 끊긴 거예요. 게다가 E급 레이드 200회를 뛰면서 등급 상승하겠다고 설쳤던 것도 상급 헌터들한테 찍힌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요?”

“그런 저를 누가 비서로 써주겠어요?”

“하하하.”

김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저희가 비서가 없는 A급, S급 헌터들에게 윤성 씨에 대한 차트를 돌렸습니다. 이 서류에 있는 사람들은 먼저 윤성 씨를 개인 비서로 요청한 분들입니다.”

꽤 뜻밖이었다. 윤성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안 되죠. 지금 한 분이 마침 복지부서에 와 계신데 만나서 물어보시죠?”

시윤이 소개해 준 사람은 A급 헌터 황동수라는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윤성을 보자 시원스럽게 웃으면서 어깨를 툭 쳤다.

“별로 어려운 일 시키진 않을 거야. 업무 시간 외에는 자유 시간 보장해 줄 거고. 하지?”

윤성은 고민에 잠겨 김시윤을 돌아보았다. 김시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내밀었다.

“고민…… 해볼게요.”

윤성이 대답하자 황동수가 허허 웃었다.

“누구한테 가든 똑같아. 그리고 이런 게 자존심 상할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 없어. 사실 E등급으로 레이드 뛰는 것보다 이쪽이 더 벌이가 좋아서 아예 전향하는 헌터들도 많다고.”

“그런데 제가 동료를 살해했다는 소문 못 들으셨나요? 왜 저를 뽑으려고 하시는 거죠?”

“음? 그거 무혐의잖아? 아니었나? 나는 윤성 씨를 믿는데?”

황동수가 빙긋 웃었다.

“정말로 사람 죽였나?”

“아뇨!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건 핏빛야수가 한 짓이에요. 재판 때도…….”

“그래, 그래. 알았어. 아니면 됐어. 그리고 이 친구야, 자네가 정말 동료를 살해했다고 해도 말이야.”

황동수는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쿵쿵 쳤다.

“나야. 황동수. A급 헌터라고. 자네가 날 어쩌겠나?”

“황동수 씨처럼 괜찮은 헌터 몇 없습니다. 그냥 지금 계약하시죠.”

김시윤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랜딩 능력은 분명 이용 가치가 높은 특성이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계획한 것들을 하려면 지금 당장 지원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생활고 때문에 사용하던 무기와 전투복까지 전부 팔아버렸기 때문에 레이드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비를 살 만큼의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다.

“계약은 언제까진가요?”

“자네가 내가 주는 월급으로 복지 협회의 빚을 다 갚을 때까지지.”

“월급이 얼마죠?”

“계약서를 읽어봐.”

계약서에는 월 150만 원이 적혀 있었다. 이 중 최소 10% 이상은 복지 협회에 반드시 입금해야 한다. 그리고 별도의 팁이 허용되어 있다. 특별히 기한이 명시되어 있는 것은 따로 없었다.

“그럼 제가 돈만 갚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도 있는 건가요?”

“그렇지. 사인하자마자 갚는 것도 가능해.”

그렇다면 큰 부담 없지. 윤성은 펜을 들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좋아. 그럼…….”

황동수가 빙긋 웃었다.

“여기 복지부서 청소부터 좀 하겠나?”

“네?”

“뭐가 ‘네?’야? 어서 안 하고?”

“첫 월급은 계약한 날입니다, 동수 씨.”

시윤이 옆에서 말했다.

“아, 돈 줘야지.”

황동수는 지갑에서 100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꺼내서 내밀었다.

“남는 건 팁으로 가져.”

“근데 청소는 왜 시키는 겁니까? 청소부가 따로 있잖습니까. 그리고 여긴 헌터님이 쓰는 부서도 아니고요.”

“하하하.”

황동수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친구, 순진하긴. 비서 한다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 누가 찝찝하게 살인자를 쓰겠나?”

“네?”

“거기 여덟 명 전부 다, 제대로 일 시킬 생각 없어. 무슨 말인지 알아?”

황동수가 험상궂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떻게 증거 불충분 같은 걸로 법망은 잘 빠져나왔지만. 이 동네에는 사람들의 감정법이라는 게 또 있어.”

“제가 죽인 게 아닙니다!”

“오, 그러시겠지. 근데 당신이 뭐라고 말하든 내가 들을 것 같나? 많은 헌터들이 자네가 엿 먹는 걸 보고 싶어 하더군. 아무튼 내일부터 내 사무실로 출근해. 같이 잘해 보자고. 살인자씨. 아. 청소 꼭 해놓고.”

황동수는 껄껄 웃으며 부서 밖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윤성은 이를 꽉 깨물고 시윤을 돌아보았다. 김시윤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150만 원.

이 돈이면 장비를 살 수 있다. 한 번만 던전을 돌면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한 번만 참자. 딱 한 번만. 이 플로어를 청소하고 그대로 나가서 장비를 사고 던전을 돌아서, 내일 아침에 월급과 함께 빚을 갚는 거다.

한 번만 참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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