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레벨업 속도는 9.8m/s^2 003화
“이상입니다. 피고인 신문을 마칩니다.”
변호인이 말했다.
헌터 재판정, 포승줄에 묶인 강윤성은 한탄을 내쉬었다. 혐오감과 증오감이 뒤섞인 헌터들의 시선이 그에게 사정없이 날아와 아프게 꽂혔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었다.
동료 헌터들은 전부 죽었고 그 혼자만 살아남았다. 그것도 큰 부상 없이 말짱한 모습으로. 주머니엔 마정석까지 담은 채. 던전 밖으로 걸어 나오다가 붙잡혔다고 한다.
누가 보아도 정황상 마정석을 독차지하기 위해 동료들을 살해하고 혼자 도망친 헌터의 모습이었다.
윤성은 전혀 기억이 없다.
핏빛야수에 대한 그의 증언을 검찰 측에선 ‘정신병을 가장해 법망을 빠져나가려 한다’고 받아들였다.
판사 측도 그렇게 결론지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E급 헌터 강윤성에겐 C급 헌터 송민석과 팀원들을 살해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 됨. 전투복째로 잘려 나간 헌터들의 몸에 생긴 절단면을 부검한 결과, 피고인의 힘으로는 그런 상흔을 남기는 게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는 바. 설명되지 않는 정황이 일부 있으나 강윤성에게 살인죄를 적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됨.’
재판장이 내린 판결이었다.
검찰 측에서는 던전 내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모른다는 점, 그리고 공범이 존재할 확률 등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성은 무죄로 석방되었다.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인간관계의 옥살이.
살인자의 프레임이 씌워진 그의 삶이 얼마나 망가질지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
***
그로부터 1년이 지난겨울 늦은 밤, 강남의 한 달동네 재개발 건축 현장.
“C 섹터 지원 요청!”
“남는 손 없어! 그쪽은 D급이 두 명이나 있잖아! 알아서 하라고.”
“어이, 그쪽 아니지! 큰일 나겠다. 어어어!”
“혓바닥 조심해! 납치당하면 끝장이다!”
E급 레이드 팀 셋이 전투 중이다.
공사 현장 인근에서 범람한 E급 던전. 쏟아져 나온 마수의 타입은 ‘카멜리.’ 이족보행을 하는 거대한 파충류의 일종이다.
‘지금 저런 것들하고 싸웠다간 큰일 나겠군.’
강윤성은 공사 현장의 무너진 벽과 구조물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싸우지 않는 이유는 이번 임무가 그의 것이 아닌 탓이다. 게다가 장비도 없어서 못 싸운다.
윤성이 이곳에 온 것은 레이드 팀이 전투하다 흘린 마정석을 ‘슬쩍’ 하기 위해서다.
당연히 절도다. 양심도 찔린다. 하지만 생활고에 지독하게 시달려보면 누구든 이렇게 될걸.
‘포천 던전 전멸 사건’에 대해서 윤성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요즘은 차라리 감옥 가는 게 나았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원래부터 협회에서 겉돌았던 윤성이지만 그 후 모든 일감이 끊겼고 자진 은퇴하라는 압력도 꽤 노골적으로 받았다.
그동안 모아놓았던 푼돈은 다 떨어진 지 오래.
헌터 장비들까지 팔아치웠다. 헌터 복지부서에서 몇 번 비상금을 주어서 어찌어찌 연명하긴 했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지켜볼까.’
지금 위치에서는 전황이 한눈에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 마정석을 주울 수 있을지 감이 안 온다.
윤성은 가까운 10층짜리 폐건물로 이동했다.
‘앗!’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카멜리 두 마리가 서 있었다. 한 놈은 거대한 몽둥이까지 들고 있다.
돌아갈까? 윤성은 카멜리들이 없는 쪽을 찾아 시선을 돌렸지만 워낙 어두운 밤인 데다 사방이 전투 중이라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그냥 들어가자.
윤성은 결심을 굳혔다. 카멜리들은 아직 그를 보지 못했고 건물 쪽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다.
등 뒤로 몰래 움직이면 건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고 옥상에 올라가서 상황을 주시하다가 카멜리들이 떠난 후에 나가면 될 것이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윤성은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소리를 내면 카멜리들이 그를 뒤쫓을까 봐 발을 사뿐히 떼었다.
-삐걱.
계단에서 소음이 흘러나왔다.
윤성은 숨을 멈추고 건물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멜리들은 여전히 그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휴. 큰일 날 뻔했군.
윤성은 계단의 울림에 주의하며 옥상을 향했다.
그렇게 7층쯤을 올라가던 중.
“뭐…… 뭐야?”
계단 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어린애를 발견했다.
헐렁한 옷에 때가 꼬질꼬질하고 짝이 맞지 않은 신발을 신고 있는 모습.
‘버려진 아이다.’
최초의 던전 출몰 이후 이런 아이들은 꽤 흔했다. 하지만 요즘엔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하필 이런 때에 이런 곳에!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에 윤성은 놀랐지만 아이는 더 놀랐다. 불과 열 살쯤 되었을 그 아이는 윤성과 눈이 마주치자 소스라치며 일어나더니.
-탕탕탕!
계단을 울리면서 위층으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잠깐만! 얘야!”
뒤쫓으려던 윤성이 어색한 자세로 굳었다.
발소리가 너무 크잖아!
-탕탕탕탕!
아직도 위에서 아이가 밟는 계단이 요란하게 울린다.
아이는 체중이 얼마 되지 않을 테지만 양철 계단이 만들어낸 소음은 폐건물 내의 벽에 부딪혀 퍼져나갔다.
설마? 아냐, 아닐 거야. 제발. 제발!
윤성이 착잡한 표정으로 계단 난간 너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1층에 들어와 서성이는 카멜리 한 마리. 또 한 마리는 계단을 오르는 중이다.
“X발…….”
일단 애를 잡아야 한다. 윤성은 필사적으로 계단을 뛰어올랐다.
-탕탕탕!
하지만 9층 코너를 도는 순간,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삐걱!
아이가 밟은 발판이 빠져 버렸다. 너무 녹이 많이 슬어 있었다.
놀라서 커진 눈, 충격으로 굳은 입술.
조그만 몸뚱이가 아래로, 미끄러져 흘러내린다. 마치 롤러코스터의 안전바 사이로 빠져 버리는 모양새로.
절망적인 장면이 슬로모션처럼 윤성의 머릿속으로 입력된다. 불쌍한 아이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했다. 그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위를 쳐다볼 뿐.
눈이 마주쳤다. 젠장.
-촤악!
3층까지 올라온 카멜리가 혀를 뻗었다. 마치 카멜레온이 먹잇감을 잡는 것처럼 2미터나 늘어난 혀가 아이를 칭칭 감아 낚아챘다.
“캬악!”
1층에 있던 카멜리가 소리를 질렀다.
“키이!”
아이를 낚아챈 녀석이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며 날카롭게 함성을 쏘았다. 그러더니 곧바로 혀를 당겨서 아이를 한입에 삼켜 버리려 했다. 하지만,
-촤악!
1층에 있던 녀석이 혀를 뻗어 아이를 붙잡았다. 약간 민망한 꼴로 힘 싸움을 하는 모양새.
“아악!”
팔과 다리가 붙잡힌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윤성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위쪽으로 쏠리는 카멜리들의 시선.
내가 왜 그랬지? 저것들하고 싸울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장비도 없고.
애 팔다리가 찢어질까 봐 놀라서 실수했다. 후회하면 안 되지만 솔직히 물밀 듯이 후회가 밀려온다.
“크륵!”
처음 아이를 낚아챘던 카멜리가 윤성을 가리키며 소리를 냈다. 애는 네가 먹어라, 난 저걸 먹을 테니. 대충 이런 뜻일 것이다. 왜냐면 그놈이 혀를 거두었고 애를 1층으로 보내 버렸으니까!
“멈춰! 이 도마뱀 새끼들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해야 한다.
비록 레이드에 참여 못 한 지 1년이나 됐고 동료 살해범 오명까지 쓰고 돈도 없고 인생 막장이지만 아직까지 난 헌터라고.
싸워서 이기진 못하더라도 잘하면 애를 데리고 탈출하거나 다른 헌터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애, 바닥에 두고 얌전히 기다려! 지금 내려가서 다 조져 버릴 테니까!”
난간 너머로 상체를 내밀고 소리를 빽 질렀다.
겁나는 만큼 허세 가득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윤성의 다리는 이미 파르르 떨리는 중이다. 그래도 뛰어가야지, 상황이 긴급하니…….
“악!”
발을 헛디뎠다.
게다가 아직 상체가 난간 쪽으로 기울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난간은 너무 낮다. 윤성의 골반 정도 높이였으니. 어떤 멍청이가 이런 식으로 디자인을 해놨는지. 시발, 그러니까 폐건물이 되지.
난간 너머로 빠져 버린 윤성은 간신히 난간 살을 붙잡았지만,
-우직.
부러졌다. 몸에 중력가속도가 가해지고 있었다.
떨어진다.
일이 꼬일 때는 정말 다 꼬이는구나. 저 도마뱀들이 날 받아주진 못하겠지?
최악이군.
마정석 훔치러 와서 벌을 받는 건가?
추락사라. 지난 몇 년 동안 평판이 추락하던 것과 똑같군. 의외로 나답고 괜찮은 죽음이잖아?
-후우웅.
떨어지는 속도가 실시간으로 빨라졌다. 이제는 불과 몇 초의 시간만이 남았을 뿐이다.
‘길다.’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죽음을 앞둔 찰나의 순간.
모든 것이 촛농처럼 굳어서 멈추는 듯한 기분이다.
이럴 땐 살아온 평생의 날들이 떠오른다던데 그런 건 없군. 다행이야, 내 인생은 몽땅 불우하기만 했으니까.
뜻밖에 죽음의 공포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이제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삶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이 한편으로 느껴진다.
시멘트 바닥과 충돌해서 으깨지면 카멜리들이 맛있게 먹어주겠지. 뼈 한 조각도 남기지 마라. 이 세상에서 영원히 없어질 수 있도록…….
“살려주세요!”
아이의 비명.
눈이 번뜩 뜨였다.
도움이 필요한 약자가 있어서 죽을 수 없다거나, 그런 유치하고 전형적인 히어로물의 클리셰가 아니다.
그 목소리와 말투가 어딘가 익숙했기 때문.
8년 전 일산의 ‘S급 던전 범람 사건’ 때 한국 최고의 헌터 SS급 에어포스가 윤성을 구해주었던 때다.
‘난 열 살 어린애는 아니고 중3이었지만.’
저렇게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에어포스가 ‘비행’ 스킬로 하늘을 날아와 마수와 나 사이에 착지했었지. 굉음을 울리면서, 아스팔트 바닥을 박살 내며.’
모든 마수에게 죽음을 선고하고, 모든 인간에게 희망을 전하면서, 그 살육의 현장에 랜딩했다.
바로 앞에서 펄럭이던 에어포스의 흰 망토.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일반고로 진학하기 직전에 헌터의 꿈을 키우며 헌터 학교로 진로를 돌렸던 결정적인 계기였으니까.
에어포스 특유의 착지자세는 아직도 뇌리에 인상 깊게 박혀 있다. 8년 전부터 헌터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염원해 왔던 그 자세, 그 힘.
오른손을 바닥을 향해 뻗어서.
두 발과 함께 땅을 디딘 3점 착지.
왼팔은 비스듬히 뻗어서 무게 중심을 잡는.
일명 에어포스 랜딩.
-콰앙!
아프지 않다.
지면과 충돌한 두 손과 발끝이 저릿저릿하다.
저도 모르게 취했던 에어포스의 랜딩 자세. 왜 갑자기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윤성은 아직 살아 있다. 믿을 수 없지만 몸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귓가에 시스템 음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앞에도 메시지창이 떠 있었다. 잠깐만, 메시지창?
메시지창이라고? 진짜냐? B급 이상의 헌터만 볼 수 있다는 그거?
아니, 근데 뭐라고 써 있는 거야 지금?
<랜딩 능력 각성!>
<최종 속력=23.34㎧, 낙하 거리=34.25m, 낙하 시간=2.7s>
<랜딩 성공!>
<랜딩 버프 : 일시적으로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힘과 순발력, 감각 능력, 지능에 각각 34.25점. 남은 시간 437.4초. 일시적 랜덤 스킬이 개방되었습니다 : 힐링, 남은 시간 437.4초>
<헌터 등급 상승 : J등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