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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x9999-174화 (174/176)

174화 : 라이프x9999 (4)

[Game Over

System : 체력이 0이 되었습니다.]

너덜너덜해져서 정신을 잃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이모탈을 쓰지 말았어야 했나.

죽지도 못하는 상태로 10분 동안 칼리만에게 유린을 당했다.

그전까지 칼리만이 나를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그의 본 실력은 무시무시했다.

쥬엘이 죽자마자 분노로 물든 칼리만은 쉬지 않고 내 목숨을 끊었다.

“커헉.”

“형씨!”

부활해서 정신을 차린 순간, 눈앞에 날아오는 주먹이 보였다.

파악!

발렌의 목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꺾은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고, 동시에 머리가 있던 바닥에 구멍이 뚫렸다.

“자, 이제 얼마나 남았지?”

정신을 차리지도 못한 상태로 다급히 칼리만과 거리를 벌렸다.

속도, 파워, 능력 어느 쪽에서도 내가 우위에 서지 못한다.

한 마디로 칼리만이라는 놈은 괴물이다.

나와 같은 세계에 사는 존재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한 괴물.

“넌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인간은 던전에게 선택받지 못한 종족이다. 나약하고 어리석으면서 욕심만 많지. 그런데도 던전을 지배하겠다는 탐욕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그게 네놈의 첫 번째 실수다.”

“확실히 인간은 약하지. 나도 그걸 뼈저리게 느꼈어.”

“그리고 두 번째 실수는 쥬엘을 죽인 거다.”

그렇게 말하는 칼리만의 눈에 날카로운 살기가 담겨 있었다.

“지금 남아 있는 드래곤은 나와 쥬엘이 전부였다. 유일한 드래곤 혈육을 네가 죽였어.”

“…그건 다행이네. 또 다른 드래곤이 있으면 골치 아프거든.”

이런 상황에서도 도발하는 내가 웃긴지 칼리만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원래는 네놈을 죽이는 걸 인간들에게 보여 주고 던전에 인간들만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마음이 바뀌었어. 던전 밖으로 나가서 인간들을 모조리 정리하겠다.”

어차피 여기서 칼리만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걸로 막을 이유가 더 생겼군.

심호흡하고 다시 화도를 들었다.

이모탈을 쓴 상태로 200번은 죽은 거 같다.

만 개 가까운 라이프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200번 연속으로 놈에게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한 거나 다름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정신 차려, 형씨.”

발렌의 목소리에 내 검 끝이 떨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 검을 바로 잡았다.

몇 번을 덤벼도 놈에게 이기지 못하는 게 아닐까.

결국, 여기서 끝없이 죽고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고 있군.”

“……!”

“너도 알고 있는 거겠지. 목숨이 아무리 많아도 압도적인 차이가 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처음 게이트에 갇혀서 데스나이트와 싸울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데스나이트는 같은 행동 패턴을 반복했고, 죽고 부활해도 다시 체력을 회복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칼리만은 인간보다 월등한 지능을 가진 드래곤이다.

“정말 방법이 없나.”

유일한 수단은 라이프 룰렛이다.

쿨타임이 길긴 하지만, 제대로 먹히기만 한다면 가능성이 있다.

타앗!

앞으로 단숨에 도약해서 화도를 휘둘렀고, 공격을 피하고자 칼리만이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놈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댔다.

“……?!”

표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어째 찝찝한 기분이었다.

마치 일부러 당해 준 듯한 느낌인데?

일단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지.

바로 라이프 룰렛을 사용해서 활시위를 당겼고, 칼리만은 내 자세를 보더니 뒷걸음질로 멀어졌다.

파앙-!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정확히 칼리만을 향해 날아갔고, 칼리만에게 닿으려는 순간, 그의 옆에 얇은 유리 벽이 만들어졌다.

“…뭐?!”

“자, 이제 알겠지? 네가 유일하게 믿고 있던 수단도 내겐 전혀 통하지 않는다. 모든 공격을 막는 방어막이야. 계속 쓸 순 없지만, 네가 그 기술을 사용하기 전엔 다시 쓸 수 있거든. 즉, 넌 이제 날 이길 수단이 없다는 거지.”

칼리만의 말에 점점 숨이 거칠어졌다.

죽는다.

한 번 죽는 게 아니라, 계속 죽는다.

이대로 놈에게 이기지 못한 채 여기서 수도 없이…….

도망쳐야 하나?

어디로?

던전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칼리만을 따돌릴 자신이 없다.

그리고 그사이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겠지.

“형씨! 형씨!”

“아…….”

다시 발렌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칼리만은 멍한 나를 건드리지 않은 채 가만히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당최 칼리만을 이기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왜 포기하는 거야! 정신 차려! 이길 수 있다고!”

“…라이프가 아무리 많으면 뭐 해. 놈에게 전혀 대미지를 입힐 수 없는데. 심지어 저건 폴리모프 상태라고.”

폴리모프 상태에선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그런데도 칼리만은 나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놈을 이기기 위해선 적어도 폴리모프 상태일 때 이겨야 하는데, 그조차 불가능하다는 거다.

“무리야. 틀렸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지원군을 바라는 것도 무리다.

나는 지금 칼리만의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누군가 도우러 온다고 해도 칼리만에게 죽임을 당할 뿐이다.

백진철은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싸우는 걸 보고 있다면 누군가 여기로 오지 못하도록 막겠지.

지금 누가 오더라도 도움은커녕 방해만 될 테니까.

“주인, 아직 포기하긴 일러. 우리가 있잖아.”

“맞아! 할 수 있어.”

발렌과 셀렌이 큰 힘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둘의 힘을 빌려도 칼리만을 이기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일단 우릴 소환해 줘.”

“안 돼! 칼리만이 마음만 먹으면 바로 죽일 수 있을 거야. 너무 위험해.”

“형씨, 지금 상황보다 최악은 없어. 어차피 여기서 싸우지 않으면 다 끝이라고.”

주먹을 움켜쥔 채 고개를 떨구자, 발렌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갔다.

“날 믿어. 나한테 좋은 작전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그래 왔잖아. 우린 파트너라고.”

“…알겠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건 발렌뿐이다.

지금은 발렌의 작전에 희망을 걸어 보는 수밖에.

“오? 솔직히 난 이곳에서 오크를 만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오크라는 몬스터는 상당히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니까.”

“이 몸은 오크가 아니라, 발렌이라는 이름이 있거든.”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은 칼리만이 가만히 발렌을 바라봤다.

발렌이 머릿속에 무슨 작전을 그리고 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지금은 발렌의 움직임에 맞춰서 호응해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도마뱀. 네가 할 수 있는 최대 화력이다.”

“뭐?”

타악!

셀렌에게 그렇게 말한 발렌이 앞으로 달려 나갔고, 나도 발렌의 바로 뒤에 바짝 붙었다.

순식간에 기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질 정도로 셀렌이 어마어마한 양의 기력을 흡수하고 있었다.

어지러움과 동시에 셀렌의 입에서 푸른색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쥬엘에게도 통하지 않은 불꽃이다. 내게 통할…….”

“아까랑은 다를걸?”

“……!”

불꽃 속에 있는 칼리만의 피부가 녹는 게 보였다.

“잠깐! 발렌?! 너……!”

“방법은 이것뿐이야!”

불꽃으로 뛰어든 발렌을 보고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안 돼!”

부웅-!

푸른색 화염에 뒤덮인 칼리만이 밖으로 도망치려던 도중, 발렌의 묵직한 검이 칼리만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카앙-!

“…겨우 이 정도다. 네놈들이 전력으로 덤벼도 내 피부에 작은 상처를 만들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화르륵.

푸른색 불꽃 속에서 발렌의 몸이 타고 있었고, 그런 발렌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칼리만이 있었다.

“그거면 충분하거든.”

“뭐?!”

파악!

1공식, 목란.

발렌의 바로 뒤에서 뛰어 들어온 내가 화도로 발렌이 만든 상처를 깊게 파고들었다.

목란의 예리한 찌르기는 어떤 공격보다 날카롭다.

칼리만의 옆구리를 관통한 화도를 보고 발렌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커헉… 감히… 오크 따위가…….”

“발렌! 발렌!”

칼리만을 찌른 검을 꽉 움켜쥐고 있었지만, 정신은 온통 불에 타고 있는 발렌에게 쏠려 있었다.

처음부터 셀렌의 화염은 칼리만의 시선을 가리기 위한 용도였다.

그렇지 않으면 칼리만이 빈틈을 주지 않았을 테니까.

“이게 무슨 짓이냐고!”

“형씨, 나 처음으로 도움이 된 거 같아.”

“그럴 리 없잖아! 항상 네 도움만 받았어. 처음부터 끝까지 도움만 받았다고.”

타악!

칼리만은 화염 속에 있는 나와 발렌의 발목을 잡더니 있는 힘껏 내던졌다.

“감동적인 순간을 기다려 줄 만큼 착하지 않거든!”

바닥을 한참 나뒹군 뒤, 까맣게 그을린 발렌을 향해 다가갔다.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고, 발렌의 몸이 가루처럼 부서지기 시작했다.

“안 돼… 제발…. 안 돼.”

“발렌은 지킨다라는 뜻이라며. 이제야 이름 값했네.”

눈을 감는 발렌의 모습이 너무나 편안해 보여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말했지? 감동적인 순간을 기다려 줄 만큼 착하지 않다고!”

부웅!

칼리만의 주먹이 나를 노리고 휘둘러졌지만, 옆으로 몸을 굴려서 피해 냈다.

아까보다 살기를 띠고 있는 칼리만은 흥분한 상태였다.

다른 건 몰라도 방금 공격은 제대로 들어갔다.

타격이 있었겠지.

“이제 본격적으로 죽여 주지.”

인간의 몸을 탈피하듯 벗어 낸 칼리만은 서서히 몸집이 커지더니 완전히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했다.

에메랄드빛의 푸른색 피부와 목부터 등까지 이어진 금색 털은 반짝이는 금실 같았다.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 주마.”

“…그딴 거 아무래도 좋아.”

발렌이 목숨을 던져 가며 만들어 준 변수다.

지금 발렌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건 발렌에 대한 모욕이다.

이 자식을 완전히 죽이는 게 우선이다.

“폴리모프 상태일 때의 나를 이기지 못한 네가, 원래 모습인 나를 이긴다고? 어리석군.”

“이기지 못하겠지. 한목숨으론. 하지만 내겐 아직 9700개의 목숨이 남아 있거든.”

“아무리 많이 덤벼도 똑같은 결과만 남을 뿐이다.”

“그건 해 봐야 알지.”

너무 깊게 생각했다.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데스나이트와 싸웠을 때도 발렌이 옆에 없었다면 이기지 못했겠지.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되든 안 되든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다.

머리만 싸매고 있는 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수도 없이 죽더라도 내겐 그만한 라이프가 있다.

타악!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튕겨져 나가, 칼리만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한심하군.”

퍼억!

내 몸통만 한 거대한 얼음송곳이 나를 관통했고, 체력이 순식간에 바닥나는 게 보였다.

“한… 방…….”

그대로 얼음송곳이 박힌 채로 몸을 앞으로 날려 놈의 다리에 화도를 휘둘렀다.

파악!

[-105]

힘도 실리지 않고 제대로 맞히지도 못해서 한심한 대미지가 들어갔다.

“이 자식…….”

“쿨럭…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죽여 주마.”

남은 라이프는 9700개.

아주 조금씩이라도 좋다.

어떤 죽음을 맞아도 좋다.

무슨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놈에게 조금이라도 대미지를 입힌다.

추악하고 더럽고 지저분하게 악착같이…….

그게 나니까.

[Game Over

System : 체력이 0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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