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 블랙라벨 (5)
“꼬리…? 꼬리를 먹으라고?”
당황한 내게 엉덩이를 들이민 샐러맨더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꼬리는 다시 자라거든. 자, 어서!”
잠시 망설이던 나는 샐러맨더의 꼬리를 손가락으로 잡았다.
워낙 작아서 검지와 엄지로 겨우 잡을 수 있었고, 샐러맨더는 바로 몸을 돌렸다.
톡하고 떨어져 나온 꼬리는 붉은색 도마뱀의 꼬리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정말 먹어야 해?”
“계약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샐러맨더의 꼬리를 입에 집어넣었다.
절대 씹거나 맛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단숨에 목으로 넘겼고, 이상한 감각에 절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
“형씨?!”
바닥에 엎드린 나를 보고 발렌이 당황하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속에서부터 무언가가 불타오르는 듯한 뜨거운 감각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너 이 자식! 뭘 먹인 거야?!”
“샐러맨더의 꼬리라고. 어마어마한 열기를 품고 있지. 걱정하지 마. 잠깐 괴로울 뿐이니까.”
샐러맨더의 말처럼 조금 시간이 지나자 뜨거운 감각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계약은 이걸로 끝이야. 원할 때마다 날 소환할 수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끔히 사라진 열기에 가슴 쪽을 확인했다.
옷을 살짝 들어서 보니 가슴에 붉은색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태양을 그려 놓은 듯한 문양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건 뭐야?”
“계약의 증표 같은 거지. 미리 말했듯이 나는 주인의 기력을 먹고 살아. 내가 힘을 많이 쓰면 그만큼 주인에게 부담이 가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오네.”
잠시 고민하던 샐러맨더는 다시 내 머리 위로 올라오며 말했다.
“뭐, 평소에 생명을 유지하는 정도는 주인에게 전혀 영향이 없지만, 최대 화력을 내면 생명력을 모두 빨아먹을 정도야.”
“뭐?! 그건 위험한 거 아니야?!”
화들짝 놀라며 묻자, 샐러맨더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그렇지. 가디언을 그렇게 가뿐하게 쓰러뜨릴 정도면 아마 목숨이 위험할 정도까지 가진 않을 거야.”
“그건 천만다행이네.”
계약이 끝났다고 하지만, 딱히 달라진 걸 느낄 수 없었다.
“소환은 어떻게 하는데?”
“그냥 날 부르면 돼.”
“흐음, 샐러맨더라고 부르는 건 뭔가 아쉽지 않아? 이름이 있는 게 좋겠네.”
부르기 불편하기도 하고, 기왕 계약까지 했으니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시선을 발렌 쪽으로 돌렸다.
불안감에 발렌이 흠칫 놀라는 걸 보고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발렌이랑 세트로 샐렌 어때? 뭔가 입에 착착 감기고 좋은데?”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랑 저 도마뱀을 같은 취급 하겠다는 거야?!”
발렌의 말에 욱한 샐러맨더가 불을 잔뜩 머금고 발렌을 향해 날아갔다.
“도마뱀이라니! 나는 불의 정령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몬스터라고. 당장 널 잿더미로 만들어 줄까?”
“도마뱀 주제에! 너 같은 도마뱀은 게이트 안에서 꼬치로 셀 수 없이 잡아먹었어!”
둘의 싸움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져서 가만히 보고 있다가 사이로 끼어들었다.
“자자, 진정해.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 이제 최대한 빨리 블랙 라벨을 찾아서 쓰러뜨릴 일만 남았어.”
일단 함께 온 채하나와 이민하를 찾는 게 중요하다.
두 사람을 데리고 길드로 돌아가서 이후에 어떻게 블랙 라벨과 싸울지 작전을 짜야 한다.
“형씨, 여기에도 책이 있는데?”
발렌은 구석 상자에 있는 책을 들어서 내게 보여 줬다.
일부러 가디언에게 지키도록 만든 책인가?
“읽어 줘.”
“‘만에 하나 엑스가 폭주하게 되면 가디언을 파괴하고 약물을 뿌려서 쓰러뜨릴 수 있다. 엑스는 강력한 무기이면서도 적으로 돌리게 되면 치명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엑스를 강제로 실체화시키는 약물을 만들어 두었다.’라고 하네.”
셀렌이 말한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들이 만든 블랙 라벨은 분명 제대로 아군이라면 정말 던전 공략이 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는 건 틀림 없다.
하지만 명령으로 조종하는 형태가 아니었고, 그로 인한 변수도 컸다.
“형씨, 아무래도 이 책은 블랙 라벨에 관한 것 외에도 다른 것들이 적혀 있는 것 같아.”
“뭐?”
“아까 봤던 책 다음으로 쓴 책인가 봐.”
쭉 책을 읽어 내려가던 발렌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이 책의 주인이자, 흑일의 리더는 좌표만 알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초월 능력을 가졌다고 해.”
비숍과 비슷한 능력이다.
비숍의 순간 이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지만, 같은 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던전의 좌표를 연구했고 규칙을 발견해서 던전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게 되었대.”
블랙 라벨이던가, 셀렌 같은 몬스터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과학자다.
던전의 좌표 구조를 찾았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지.
“‘고층에는 처음 보는 위험한 몬스터가 많았지만,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서 목숨을 걸고 올라갔다. 그리고 던전의 마지막 층이 20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뭐?! 정말 그렇게 쓰여 있어?!”
“‘그리고 20층에서 절대 존재해선 안 될 몬스터를 만났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 언젠가 그 몬스터를 쓰러뜨려야만 하기에 나는 그보다 강한 몬스터를 만들기로 했다.’라고 적혀 있어.”
절대 존재해선 안 될 몬스터…….
그가 20층에서 어떤 몬스터를 만났는지는 모르지만, 블랙 라벨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건 그만큼 말도 안 되는 괴물이라는 거겠지.
그보다 던전의 꼭대기가 20층이라는 건 예상 밖이었다.
외부에서 봤을 때 10층까지의 높이보다 그 위가 훨씬 길었다.
층마다 높이가 다른데, 그럼 10층 위에 있는 층들이 더 높다는 건가.
“그러니까 20층에 가서 터무니없는 몬스터를 발견하고, 그 몬스터에게 이기기 위해 블랙 라벨을 만들었다는 거네.”
발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해. 던전이 20층까지 있다는 거나, 그런 몬스터를 발견했는데 왜 세간에 알리지 않은 걸까.”
흑일의 목적이 던전의 완전 공략이라면 이런 정보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건 애초에 그의 능력 자체가 비밀이었으니까.”
“뭐?”
셀렌에게 나와 발렌의 고개가 돌아갔다.
“‘나현석’. 그는 던전 내부로 들어올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조직원 외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그래야만 이 연구소를 지킬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긴 14층이잖아? 그때 당시에 14층은 오라고 해도 못 왔을 거 같은데?”
“그때 당시에도 던전은 9층까지 공략된 상태였거든.”
던전의 공략 시도는 여러 번 이루어졌다.
하지만 브루탈의 밤,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아포칼립스처럼 매번 던전 공략이 초기화된다는 게 문제였다.
“10년이라는 긴 연구 기간 14층까지 공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책이 너무 오래돼서 뒤쪽은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어.”
습기 때문인지 글자가 번져서 어떤 글자인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그래도 챙겨 가자. 다른 두 사람을 찾아야 해.”
셀렌이 앞장서서 밖으로 안내해 줬고, 발렌을 시스템에 보낸 뒤 서둘러 이동했다.
블랙 라벨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면 유미래가 연락을 주기로 했으니 아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모양이다.
블랙 라벨을 쓰러뜨리지 않고선 위로 올라갈 수 없다.
“그런데 엑스를 꼭 죽여야 해?”
뜬금없는 셀렌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너랑 같은 인공 몬스터라 감싸려는 거야?”
“그럴 리 없잖아. 엑스가 어떻게 되든 난 아무런 상관도 없거든. 애초에 그런 생각이 있었으면 가디언의 존재를 알려 주지도 않았겠지.”
“그럼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야?”
둥둥 떠다니며 길을 안내해 주던 셀렌이 제자리에 멈췄다.
“엑스라는 몬스터는 애초에 인간과 함께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몬스터야.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우호적인 존재라는 거지. 그런데 굳이 엑스를 적으로 돌려서 싸워야 하냐는 거야.”
“우호적이라니… 먼저 공격을 해 온 건…….”
말을 하던 나는 처음 블랙 라벨을 만났을 때를 떠올리고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10층에서 블랙 라벨을 처음 봤지만, 먼저 공격했던 건 내 쪽이었다.
“설마 엑스를 먼저 공격한 건 아니지?”
“…….”
식은땀을 닦아 내며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잖아! 날 공격해 올지도 모르는데 그냥 두는 게 더 이상한걸.”
“하긴 엑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면 친해지려고 하는 건 불가능하지.”
이미 류설영에게 블랙 라벨에 대해 들은 상태였기에 더더욱 경계하고 있었다.
몬스터가 가까이 오는데 멍하니 지켜보고 친구가 되기 위해 다가가는 건 말이 되질 않는다.
“엑스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정신적 성장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인간의 정신이 성숙해지는 시간에 비해 터무니없이 빠르게 성장하겠지.”
류설영은 처음 발견했을 때 말을 하는 걸 못 봤다고 했는데, 나와 싸울 땐 짧은 말을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인간의 언어는 대체 어떻게 습득한 거지?”
“언뜻 보기에 그림자 같잖아? 밤에 움직이면 모를 거야. 인간 근처에서 주워들은 것들로 언어를 익히고 있는 거겠지.”
그렇게 말을 배울 정도의 수준이라고?!
“아마 곧 우리처럼 대화할 수 있게 될걸. 그리고 정신이 성장하면 쉽게 쓰러뜨리는 건 어려워질 거야.”
처음 싸울 땐 내 공격을 굳이 쓸데없이 방패로 막아 냈다.
능력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 통과하는 형태의 공격법도 없었다.
그런데 전투하는 동안 놈의 패턴은 점점 변화했고, 나중엔 나를 죽이는 방법을 정확히 구사하고 있었다.
“아까 했던 얘기를 이어서 하자면, 다시 엑스의 마음을 돌려 보는 건 어때?”
“…그게 가능할까?”
이미 블랙 라벨을 죽이기 위해 한 번 싸웠다.
과연 놈이 인간을 도와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힘을 보태 줄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블랙 라벨처럼 위험한 몬스터를 아군으로 들이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일단 블랙 라벨을 찾아서 얘기해 보는 수밖에.”
“형씨! 저쪽에서 소리가 나! 아무래도 누군가 싸우고 있는 모양인데?!”
“뭐?!”
발렌의 말에 불안한 기분이 들어 서둘러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곳에 다른 몬스터가 있어?!”
“원래는 나와 가디언, 그리고 엑스뿐이야. 하지만 엑스가 유적에서 떠났다면 다른 몬스터가 들어 왔을지도 모르지.”
만약 몬스터가 유적으로 들어와서 채하나와 이민하와 마주친 거라면 위험하다.
14층에선 지금까지 보지 못한 몬스터들도 튀어나오니 두 사람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왼쪽으로 꺾으면 돼!”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익숙한 검은 안개와 함께 이민하가 초월 능력으로 방패를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최현 씨!”
카앙! 캉!
낫으로 모양이 변한 팔을 연신 휘둘러 이민하의 방패를 공격했다.
초월 능력으로 만들어진 방패는 뚫을 수 없는 건가.
“두 분 다 무사하세요?!”
“일단은 무사한데… 이 방패는 오래 쓸 수 없어.”
초월 능력이 익숙하지 않은 이민하는 방패를 시전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높게 쳐든 블랙 라벨의 낫이 힘껏 내리쳐졌고, 그와 동시에 방패가 깨져 버렸다.
쩌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