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 5층 공략전 (3)
5층과 4층이 연결된 계단 앞은 팀원들이 막아 주고 있고, 6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은 발렌이 막고 있다.
차은주를 빨리 찾지 못하면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압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서둘러서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올라가던 중에 위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지가지 하네.”
일반적인 골렘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둥글둥글한 형태의 골렘은 팔에 룬 문자가 적혀 있었다.
에이션트 골렘이다.
일반적인 골렘보다 월등한 전투력을 자랑하며 날렵한 몸놀림은 골렘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런 좁은 계단에서 에이션트 골렘을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기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시간을 벌겠다는 거군.
통로를 꽉 채우고 있는 에이션트 골렘들을 보며 검을 뽑았다.
스르릉.
내가 차은주를 쓰러뜨리기 전에 다른 동료들이 당한다면 결국 나까지 당하고 말 거다.
이런 곳에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을 순 없다.
쒸익-! 쿵!
묵직한 골렘의 주먹이 내 앞에 떨어졌고, 바닥이 크게 흔들렸다.
“제가 준비한 선물이 마음에 드셨나요?”
“……!”
위쪽에서 들린 차은주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차은주의 목소리다.
“혼자서 에이션트 골렘 무리를 뚫고 오는 건 쉽지 않으시겠죠.”
마음 같아선 블링크로 골렘을 뚫고 지나가고 싶었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계단에 일렬로 서 있는 골렘들 때문에 블링크 최대 거리로 이동하더라도 골렘 사이에 끼고 말겠지.
“6층에 제가 있다는 걸 알아낸 건 대단하지만, 이래서야 제가 있는 곳까지 오지 못하시겠네요.”
부웅-!
민첩하게 움직이는 골렘은 당장 나를 쥐포로 만들 것처럼 주먹을 휘둘러 댔다.
차은주가 직접 컨트롤하고 있어서 틈을 주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골렘은 나만 보고 공격해 오겠지만, 지금은 다른 골렘들도 내 빈틈을 노리고 있어서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위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쿠웅!
골렘의 공격을 피하며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봤다.
어째서 하은주는 여기까지 와서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리는 거지.
물론 5층에서 앙그라마이뉴가 계단을 막으려고 했던 것부터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약 하은주가 정말 숨어 있을 생각이었다면 지금 계단 근처가 아니라 6층에서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 있어야 했다.
“이 자식! 그냥 가게 둘 것 같냐?!”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유한성이 헉헉대며 계단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 어떻게 여기에…….”
발렌이 분명 계단 앞을 막고 있을 텐데 어떻게 온 거지?
혹시 발렌이 당한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거다.
이미 발렌이 당했다면 다른 몬스터도 우르르 올라왔을 거다.
그러고 보니…….
“후우.”
라이프 섀도우 스킬이 각성하고 나서 이제 분신의 시야를 내가 확인할 수 있었다.
잠깐 눈을 감고 시야를 이동시키자, 발렌이 여전히 몬스터와 싸우는 게 보였다.
무사하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눈을 뜨고 유한성을 노려봤다.
“발렌을 어떻게 따돌리고 온 거지?”
“흥, 그깟 오크 한 마리 뚫고 오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한 거냐?!”
유한성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놈이지만, 놈이 쓰는 공간 능력은 까다롭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끌리는 건 위험하다.
놈들은 어떻게든 1분 1초라도 더 지연시키려고 하는 거겠지.
유한성의 능력은 닿지 않더라도 나를 자신의 공간으로 보낼 수 있다.
놈의 손만 조심한다면 당할 일은 없겠지만, 굳이 유한성과 싸울 필요가 없었다.
다시 시선을 위쪽으로 돌리고 에이션트 골렘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이렇게 된 이상, 뚫고 갈 수밖에.
“흐읍.”
처음에는 전혀 적응되지 않았는데, 계속 쓰다 보니 이제 이 검으로도 월하백화식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에이션트 골렘과는 전에 싸워 본 경험이 있어서 놈들의 약점이 뭔지 알고 있다.
부웅-!
가장 앞에 있는 에이션트 골렘이 주먹을 휘두르는 타이밍에 맞춰서 앞으로 찌르고 들어갔다.
쐐액!
정확히 검이 놈의 팔에 그려진 룬 문자를 꿰뚫었고, 그대로 골렘의 형체가 무너져 내렸다.
“…! 어떻게 일격으로?!”
뒤에 있던 유한성이 골렘이 죽는 걸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에이션트 골렘의 약점은 팔에 그려진 룬 문자다.
본래 단단한 놈이라 그 팔을 부수기도 쉽지 않지만, 이 검만 있으면 에이션트 골렘을 일격에 쓰러뜨리는 것도 가능하다.
“에이션트 골렘이라고! 무슨 수를 쓴 거냐!?”
아직 에이션트 골렘은 그다지 많은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애초에 발견하기 굉장히 힘든 몬스터이기도 하고, 자신들이 지키는 곳에서 멀어지지 않기에 굳이 헌터들이 에이션트 몬스터와 싸우는 일도 없었다.
쌔엥-! 쌩!
앞에 있는 골렘을 일격에 한 마리씩 처리하며 위로 올라가자 유한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자식……!”
라이프 파워와 더블 라이프 파워를 쓴 상태였고 이 검이 있다면 골렘은 내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
라이프 파워는 각성한 후에 지속 시간 동안 쓰러뜨린 적의 능력치를 훔칠 수 있게 됐다.
확실히 에이션트 골렘을 사냥할 때마다 느껴지는 에너지가 달랐다.
물론 지속 시간이 끝나면 사라질 능력치지만, 지금 내겐 이보다 달콤할 수 없었다.
“거기 서!”
“서라면 서겠냐?!”
뒤에서 쫓아오는 유한성은 내 움직임에 기가 죽었는지 쉽게 달려들지 못한 채 움찔거리며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사이에 골렘들을 쉬지 않고 썰어 버린 나는, 다시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계단 끝에 보이는 문 앞에 걸음을 멈춰 섰다.
문? 던전 계단에 문이 있었나?
퍼억!
“커헉?!”
뒤에서 느껴진 묵직한 힘으로 강제로 문에 날려져서 바닥을 한참이나 뒹굴었다.
에이션트 골렘의 능력치를 뺏은 덕분인지 통증도 없었고 대미지도 없었지만, 주변을 둘러보고 바로 인상을 구겼다.
젠장, 한 마리가 천장에 숨어 있었던 건가.
하은주가 직접 컨트롤 할 수 있기에 이런 짓도 꾸밀 수 있었던 거겠지.
마지막 골렘에게 떠밀려서 유한성의 공간에 들어온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따라 들어온 유한성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 어떠냐. 너를 위해 만든 내 공간이다.”
“여전히 역겨운 능력이군.”
새하얀 공간은 상당히 넓었고 수많은 문이 이곳저곳에 잔뜩 놓여 있었다.
“널 가두기 위해 다른 모든 공간을 지우고 이곳만 남겨 놨다. 자, 6층으로 가는 곳은 어디일까.”
“집착이 심하네. 날 상대하려고 이렇게까지 공을 들일 줄이야.”
문을 하나하나 열고 다니기엔 시간이 없다.
유한성은 내가 공격하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뒤에 문을 두고 있었다.
“이 검, 레인의 비숍이라는 놈에게서 뺏은 전리품이거든.”
“…? 갑자기 무슨 소리를…….”
“신기하게도 이 검으로는 모든 걸 벨 수 있다고 하더군. 특수계 능력이라던가, 아니면 초월 능력까지 벨 수 있어.”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유한성의 눈이 커지는 게 보였다.
“그럼 네가 애써서 만든 이 공간도 벨 수 있나 볼까.”
파악!
“이 자식!”
검을 바닥에 꽂고 거칠게 위로 쳐올리자, 새하얀 공간이 마치 풍선이 터진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원래 내가 있던 6층 계단 끝으로 돌아왔고, 유한성을 보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내 공간을…….”
“오, 진짜 베어지네.”
“가게 둘 것 같냐!”
쌔엥-!
공간이 없는 곳에서 유한성은 아무런 능력도 없는 한심한 인간일 뿐이었다.
능력을 굳이 조심할 필요도 없다.
앞에 있던 에이션트 골렘을 쓰러뜨리고 바로 이어서 유한성을 베었다.
“컥… 커헉.”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지는 유한성을 보고 다시 몸을 돌렸다.
“너한테는 당한 게 제법 많았지. 한심하게…….”
6층으로 올라오자 사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다지 반가운 지형은 아니지만, 반대로 하은주가 숨기에는 최악의 지형이었다.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모습을 숨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근처에 있는 붉은 로브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를 보면서도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는 그녀에게 이상함을 느꼈다.
“…포기한 건가?”
“유한성 씨를 믿은 제가 바보였네요.”
로브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분명 하은주의 목소리였다.
“설마 그렇게 쉽게 뚫릴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미안하지만, 너랑 떠들고 있을 시간이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을 팀원들을 위해 바로 그녀에게 검을 휘둘렀다.
망설임 없이 뿜어진 검은 그녀를 붉은 로브와 함께 베어 버렸지만, 손의 감각이 이상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로브 안에서 무너지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고, 씨익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건… 퀸이 쓰던 분신?!
어째서?!
레인과 앙그라마이뉴는 정말 손을 잡고 있었던 건가?
“머릿속이 복잡하시죠?”
뒤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다른 하은주를 보고 이를 꽉 깨물었다.
그녀 뒤엔 수많은 붉은 로브를 입은 하은주의 분신이 있었으니까.
“어차피 최현 씨의 일격이면 저는 목숨을 빼앗기죠. 그렇다면 이렇게 분신이 많은 상태라면 어떨까요?”
“…레인과 손을 잡은 건가?”
“글쎄요. 비밀이에요.”
아마 이 많은 분신 속에 진짜 하은주가 있을 리는 없다.
젠장, 퀸이 쓰는 분신 능력은 다른 사람의 분신까지 만들 수 있었던 건가.
아니, 그렇다면 진작 이 능력을 유용하게 쓸 수 있었을 거다.
그렇다면 하은주가 분신 능력을……?
“자, 시간이 없으신 거 아니었나요? 언제까지 그러고 계실 거죠?”
분하지만 맞는 말이다.
지금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파앗!
마치 숲에서 나무들을 베는 것처럼 하은주의 분신들을 순식간에 베어 넘겼지만, 아무리 베어도 부족할 정도로 수가 너무 많았다.
넓은 사막에 잔뜩 보이는 붉은 로브는 머리를 아찔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진짜… 진짜는 어디 있는 거지?
손은 멈추지 말고 생각해라.
6층 입구 주변은 몬스터가 없지만, 아마 뒤쪽 게이트가 있는 곳은 몬스터들이 많을 거다.
차은주 혼자서 몬스터를 세뇌하는 건 위험하니 거기까지 도망치진 않았겠지.
결국, 그녀는 이 주변에 숨어 있는 게 확실하다.
“오랜만이네요. 최현 씨. 병원에서 만났으니까 그렇게 오랜만은 아닌가.”
차은주의 분신을 베던 나는 옆에서 나타난 퀸을 보고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것도 분신인가?”
“당연하죠. 저는 절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답니다.”
“네 초월 능력이 분신이라면 수술이라는 건 뭐지? 여러 개의 초월 능력을 가질 순 없을 텐데.”
지금까지 그런 케이스는 존재하지 않았고,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퀸의 능력은 분신 외에도 모두가 말하던 수술이라는 능력이 존재한다.
“제 초월 능력은 다른 사람의 능력을 주무를 수 있는 ‘수술’이죠. 그리고 이 수술이라는 능력을 써서 저는 스스로의 몸을 집도했습니다. 복수의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