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 5층 공략전 (2)
발렌이 처리한 헌터는 넷으로, 우리가 확인하기 위해 갔을 땐 이미 곤죽이 되어 있었다.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심하긴, 팔다리 못 쓰게 만들려다가 참은 건데.”
기절한 상태의 헌터들을 보고 바로 계단으로 향했다.
“놈 중엔 통신계 헌터도 있을 텐데 괜찮을까요?”
“아까 통신하는 거 같던데…. 오크 한 마리랑 전투 중이라고.”
그 오크에게 전멸당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겠지.
아무튼, 발렌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어차피 계단을 올라가면 놈들에게 발각되겠지만, 조금이라도 늦게 대응하게 한 건 다행이다.
“아마 전투가 벌어진다면 입구에서 어떻게든 막기 위해 전력을 집중시킬 거야. 그때 네가 돌아서 이동해.”
차윤지가 날 보고 말했다.
“괜찮을까요?”
“어떻게든 버텨 봐야지.”
사실상 내가 빠지고 다른 5명이 앙그라마이뉴와 전투를 벌이는 건데, 그게 정말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빨리 하은주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우리 팀이 전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깨가 무거운걸.
“……! 적습! 적습이다!”
계단 앞을 지키고 있던 헌터가 우리가 올라오는 걸 발견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통신계 헌터들이 우리의 침입을 바로 전달하겠지.
화르륵!
올라오자마자 바로 정보라의 불길이 주변을 뒤덮었다.
가볍게 불을 주변에 뿌렸을 뿐이지만, 나무에 불이 붙어 단숨에 주변을 태우기 시작했다.
“뒤를 부탁할게요!”
불길이 시야를 뺏는 동안 빠르게 먼저 옆으로 빠져나갔다.
계단 쪽으로 모이기 전에 서둘러 이동해야 한다.
“어떻게 찾으려고?”
“아마 우리가 이렇게 움직일 거라는 건 놈들도 예상할 거야.”
“그럼 꼭꼭 숨어 있겠는데?”
하은주는 몬스터를 세뇌해서 컨트롤 할 수 있는 초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 하은주라는 사람은 전투 능력이 제로에 가까우며, 어떻게든 공격이 닿으면 쉽게 쓰러뜨리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다른 무기가 있다.
“하은주는 남들보다 똑똑해. 여러 상황에 대책을 세워 뒀겠지.”
저번에 당하면서 이미 하은주는 내 스킬에 대해 모두 파악하고 있다.
물론 드래곤을 사냥하고 각성 스킬에 대해선 모르지만, 기본적인 스킬 구성을 알고 있으니 각 스킬을 파훼할 방법을 마련해 뒀을 거다.
“일단 그 여자를 찾는 것부터 문제인데?”
“시간이 없어. 위험하더라도 던전을 가로지르면서 찾아내는 수밖에.”
사실 이 전투는 우리에게 극단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다.
상대는 어떻게든 하은주를 꼭꼭 숨기고 찾지 못하도록 하면 되는 거고, 우리는 하은주를 찾지 못하면 결국 패배한다.
그나마 5층은 다른 층에 비해 좁은 편이지만, 마음먹고 숨겨 두면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형씨!”
발렌의 목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수많은 몬스터들이 계단 쪽으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결국, 내가 빨리 하은주를 찾는 수밖에 없는 건가.
“이쪽이다! 최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할 거야?”
발렌의 물음에 한숨을 내쉬고 검을 뽑았다.
도망치면서 하은주를 찾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여기서부터 돌파하는 수밖에.
라이프 파워와 더블 라이프 파워를 사용하고 앞으로 단숨에 돌진했다.
버프가 지속하는 동안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쌔엥-!
“…검이?!”
앞에 있는 헌터의 검을 베어 버리고 그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교주는 어딨어?”
“말할 것 같나!”
쐐액!
옆에서 파고든 데스나이트의 검에 황급히 몸을 피했다.
벌써 몬스터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라도 시선을 끌면 정면이 조금 편해지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가 불리해진다.
카가각!
데스나이트의 검과 갑옷을 통째로 찢어발기며 삼 등분으로 만들었다.
“엄청나잖아?! 그 칼!”
몬스터들이 계속 몰려와서 하는 수 없이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숲을 통과하며 달리며 주변을 살폈다.
사방에서 붉은 로브를 입은 앙그라마이뉴의 길드원들과 몬스터들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마음 같아선 이 칼로 다 처리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단 말이지.”
“뭐든 다 벨 수 있는 칼 아니야? 형씨 지금 능력치에 월하백화식이면 혼자서도 다 쓸어버릴 수 있을 거 같은데.”
만약 이 검의 내구도가 무한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아람에게 검을 보여 줬을 때 좋지 못한 대답을 들었다.
내구도가 없는 장비는 없으며, 이 검은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어서 수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즉, 내구도가 떨어지면 다시 쓸 수 없다.
몬스터들이나 상대하면서 내구도를 소모하기엔 너무 아깝다고.
“발렌, 너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디에 숨을 거 같아?”
“난 숨지 않는다고!”
“가정이 그렇다는 거잖아!”
쌔엥-! 쌩!
덤벼 오는 몬스터들을 하나씩 베어 가며 꾸준히 도망쳤다.
“글쎄. 동굴 같이 안 보이는 곳에 숨지 않을까? 5층은 다른 층보다 좁다며. 그런 곳을 다 뒤지고 다니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발렌의 생각이 일반적이겠지.
나라도 몸을 숨겨야 한다면 가장 찾기 힘든 구석진 곳으로 숨을 거다.
하지만 뭔가 교주라는 놈은 그보다 더 깊은 곳으로 몸을 피할 거 같은데…….
“그럼 이건 어때?! 이 붉은 로브를 뒤집어쓴 인간들 사이에 숨는 거지.”
“오!”
발렌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감탄이 나왔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으로 가라는 말이 있듯이 발렌의 말처럼 이런 곳에 숨어 있으면 오히려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카칵!
그사이에도 계속 몬스터들이 나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전에 싸웠던 몬스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접한 장비지만, 일단 몬스터가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는 것부터 일반적인 몬스터보다 까다로웠다.
그리고 놈들은 단순히 달려드는 게 아니라, 서로 연계를 해 오고 있었다.
“아마 그렇진 않을 거야!”
“어째서?”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부정하자 아쉬운 듯 되묻는 발렌이었다.
“우린 정보라 씨와 도진욱 씨가 있잖아. 만에 하나라도 무차별 공격에 맞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런 위험성을 감수하진 않을 거야.”
도진욱의 능력은 중력을 단숨에 높여서 상대의 움직임을 막고 오래 사용하면 목숨까지 빼앗을 수 있다.
아직 제대로 다루지는 못하는 능력이지만, 일반인에게 사용하면 위협적인 능력이다.
정보라의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위험한 판에 들어갈 만큼 도박을 즐기진 않는 스타일이었으니까.
“흐음, 아예 던전 밖으로 나가서 숨는 게 가장 안전하긴 할 텐데.”
던전 밖……?
확실하진 않지만, 몬스터들에게 이런 장비를 채워 주고 있는 걸 보면 외부와 길이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앙그라마이뉴의 길드 마스터인 유한성의 능력이라면 가능하니까.
“그것도 아니야.”
헌터 협회가 대대적으로 초월 능력을 던전 외부에서 사용하는 걸 금지했다.
하은주의 능력은 몬스터를 세뇌할 때 사용하는 거니 잡히지 않을지 모르지만, 유한성의 능력은 공간의 문을 여닫는 것 자체가 능력의 사용이니까 통로가 발각되고 말 거다.
“하지만 발렌 덕분에 알 거 같아.”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면서, 던전 밖처럼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곳.
말 그대로 전장 밖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면 된다.
“뭐? 어딘데?! 어디 숨어 있는 건데?!”
“위!”
쌔엥!
앞에 있는 스킬라를 베어 내며 6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녀가 반드시 5층에 있을 거라는 틀에 갇혀서 생각했다.
5층에 숨을 만한 곳들을 미리 물색하고, 그곳 어딘가에 하은주가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예 그런 곳에서 벗어나 동떨어진 곳이 훨씬 안전하겠지.
“위라면 6층을 말하는 거야?!”
“맞아. 6층이라면 충분히 우리에게 들키지 않고 숨을 수 있는 좋은 장소니까.”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고, 직접 6층으로 올라가서 확인하지 않으면 모른다.
계단으로 서둘러 달려가면서 내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형씨.”
“아무래도 우리가 정답을 찾은 거 같아.”
앙그라마이뉴가 6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막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6층 계단으로 향할수록 점점 몬스터의 수와 헌터들의 수가 늘어나는 게 보였다.
허겁지겁 나를 막기 위해 달려드는 적을 볼 때마다 정답에 가까워졌다는 게 느껴졌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내 앞을 막아선 남자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너희들이 그렇게 지키려고 하는 교주, 위에 있는 거지?”
“…올라가려면 가 보시던지!”
유한성의 뒤쪽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들이 막아서고 있었다.
아까 5층 계단으로 그렇게 많이 보냈는데, 여기에도 이만한 숫자가 남아 있을 줄이야.
우리가 너무 오래 걸린 탓에 몬스터를 모을 시간이 충분했던 건가.
“넌 여기 들어가서 쉬고 있으라고!”
달려든 유한성이 내게 손바닥을 펼쳤고, 푸른색 빛이 뿜어졌다.
두 번이나 당했던 수에 또 당하면 사람도 아니지!
칠흑의 묵갑으로 뒤로 이동한 나는, 그들을 무시한 채 다시 계단으로 뛰었다.
여기서 시간 낭비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형씨! 놈들을 따돌리는 건 무리야. 6층까지 올라간다고 해도 놈들이 따라오면 교주라는 여자를 찾기도 힘들 거고.”
“그건 그렇지만, 방법이 없는걸.”
앞에서도 이미 놈들이 몇 겹으로 막아서고 있는 걸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막을게.”
“뭐?!”
아무리 발렌이라고 해도 이렇게 많은 수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무리다.
심지어 저 몬스터들은 그냥 몬스터도 아니고 장비를 착용한 데다가 컨트롤까지 되고 있다.
이번엔 정말 발렌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고개를 저었다.
“무리야! 안 돼! 너무 위험해!”
“형씨! 나도 이 팀의 일원이라고 인정받았다고. 언제까지 형씨 안에 숨어 있으면 내가 팀원인 이유가 없잖아.”
“…그래도 안 돼!”
발렌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 상황은 위험하다는 말로 끝나는 게 아니다.
저 많은 숫자를 상대하는 건 나라도 힘들 텐데, 발렌 혼자서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죽더라도 막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야. 형씨가 빨리 교주를 처리하면 되잖아.”
내가 어떻게든 하은주를 죽이면 몬스터들은 세뇌가 풀리고 이곳은 단숨에 아수라장이 되겠지.
확실히 그런 상황이라면 발렌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다.
“형씨, 부탁할게.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게 해줘.”
“…알겠어. 발렌을 믿을게. 하지만 혼자만 두고 갈 순 없어.”
언제든 발렌이 위험한 상황이면 돌아올 수 있도록 라이프 섀도우를 써서 분신을 소환했다.
계단 앞에 멈춰 선 나는 발렌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어떻게든 버텨. 내가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올 테니까.”
“믿고 있다고 형씨. 그러니까 형씨도 나를 믿어.”
지금까진 라이프 섀도우를 미끼로만 썼지만, 내 분신이고 그만한 전력이 있다.
쒸익! 빠악!
계단을 막고 있는 헌터를 몽둥이로 후려친 발렌이 소리쳤다.
“올라가 형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