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프x9999-153화 (153/176)

153화 : 레인 소탕 (2)

“화이트 룩!”

“땡, 지금은 평범한 범죄자거든.”

조민주가 씨익 미소를 지었고, 당황한 비숍을 향해 단숨에 달려들었다.

순간 이동 능력이 없다면 비숍을 잡는 건 일도 아니지.

쌔엥-!

“……!”

내 검이 닿기 전에 이미 비숍의 검이 조민주를 찌르고 있었다.

“안 돼!”

“컥… 커헉…….”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조민주는 날카롭게 비숍을 쏘아보고 있었다.

“배신자는 반드시 죽인다. 그게 우리 레인이다.”

“혼자는 외롭잖아…….”

피를 토하는 조민주는 바로 비숍의 팔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먼 거리에서 가장 빠르게 공격할 수 있는 건 목란이었다.

쐐액!

검이 비숍의 등을 꿰뚫었다.

아까 상대했던 다른 비숍에게서 뺏은 검은 화도보다 무거워서 아직 적응하기 힘들었다.

촤아악!

검을 뽑아내자 붉은 피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채하나 씨!”

“네!”

바로 옆에 있던 채하나가 달려와서 조민주의 상태를 살폈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조민주의 상처가 깊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말은 하지 못했지만, 조민주는 의식이 있었다.

그녀가 기절하면 능력이 풀려서 비숍이 도망칠지도 모르니까.

“위험해요. 바로 치료할게요.”

“화이트 룩에게 무효화 능력을 줬던 게 실수였군.”

바닥에 쓰러진 채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비숍은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그 여자는 어디 있지?”

“장지은 씨를 말하는 건가?”

“…….”

“네가 원하는 대로 너희 근거지로 데려갔다.”

비숍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실제로 장지은은 지금 신월과 함께 레인의 근거지를 기습하기 위해 따라갔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그녀지만, 어떻게든 같이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결국 그녀의 바람을 들어줬다.

자신 밖에 류설영을 설득할 수 없다고 했고, 그 말엔 나 역시 동의한다.

“꼼짝없이 당했군.”

“레인은 이제 끝났어.”

***

“…미안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류설영은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사적인 이유로 범죄 집단인 레인을 도왔고,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게 됐다.

류설영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지.

“하아, 왜 그러셨어요.”

“그 녀석 얼굴을 보니까 정신이 차려지더라.”

이미 룩과 비숍, 그리고 나이트까지 잃은 레인은 전력이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비전투 인원과 폰은 순식간에 신월이 정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장지은과 류설영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류설영은 어쩐지 전보다 좋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지을 줄은 몰랐어. 몸이 아픈 것보다 나 때문에 아픈 게 더 컸겠지.”

류설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만약 같은 상황이 되면 아마 나는 똑같은 선택지를 고를 거야.”

“그럼 안 되잖아요!”

“나는 누군가의 영웅도 아니고 성품이 대단한 인간도 아니거든. 그냥 평범하게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야.”

다른 건 다 정리됐지만, 가장 큰 문제는 퀸을 잡지 못했다는 거다.

애초에 퀸은 근거지에 없었고, 그녀의 행방을 아는 길드원도 없었다.

처음부터 우리가 이런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는 걸 알았던 건가.

“류설영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가?”

“정말 퀸에게 장지은 씨를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까요?”

잠시 고민하던 류설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글쎄. 그건 모르지. 거짓말이었는지, 실제로 그런 능력이 있었는지.”

뒤돌아서 걸어가는 류설영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아마 앞으로 류설영이 헌터 일을 하게 될 일은 없겠지.

그런데도 류설영은 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헌터 협회는 이번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던전 외부에서 초월 능력을 쓰는 걸 금지했다.

이제 아포칼립스는 모두 정리되어서 외부에서 초월 능력을 쓸 일은 없다.

이선우의 능력이 있으면 초월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잡아낼 수 있으니까.

던전 밖에서 초월 능력을 쓰게 되면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이 컸고, 만약 훈련에 필요한 거라면 미리 허가를 받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얘기는 끝났어요?”

“네.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네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채하나가 나를 반겨 주었다.

협회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으니 퀸도 이제 쉽게 움직이지 못하겠지.

“그런데 채하나 씨는 오늘 별일 없어요?”

평소처럼 따라와서 별생각 없었는데, 어째서 채하나가 따라온 거지?

너무 익숙해져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오늘 쉬는 날이라 할 일도 없는걸요. 최현 씨 따라다니면 보통 재밌는 일이 생기니까요.”

“…….”

부정할 수 없었다.

“조민주 씨는 어떻게 됐어요?”

그 후로 채하나와 함께 조민주는 치료를 받기 위해 이송되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들었지만…….

“치료는 했는데 후유증이 남을 거예요.”

“…그렇군요.”

그녀를 작전에 끌어들인 게 나였기에 죄책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작전을 구체적으로 짜서 조민주를 설득하러 가서 며칠이나 그녀를 꼬셨고, 결국 조민주는 우리를 도와줬다.

그녀의 능력은 앙그라마이뉴와 싸울 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부탁할 수 없겠네.

“너무 그렇게 기죽지 않으셔도 돼요. 최현 씨 잘못이 아닌걸요. 조민주 씨는 오히려 전보다 밝고 좋아 보였어요. 아 그리고 최현 씨에게 꼭 약속 지키라고 전해 주래요.”

“…그렇군요.”

“그런데 약속이 뭐예요?”

처음 조민주를 꼬실 때 레인을 완벽하게 소탕하겠다고 약속했다.

퀸을 잡지 않는 한 레인이 없어진 건 아니니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가.

“비밀이에요.”

“네?! 뭔데요!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하잖아! 이상한 거 아니죠?!”

“이상한 게 뭔데요! 무슨 상상하는데!”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날이라 이곳저곳 들리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신아람의 대장간이었다.

“왔어? 둘이 데이트?”

“네.”

“아니거든요!”

나와 채하나의 상반된 반응을 보고 피식 웃음을 흘린 신아람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어떤가요? 고칠 수 있을까요?”

“화도도 그렇고, 에렌 셀도 그렇고… 보통 검이 아니잖아. 검을 제작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명검들인데, 고치는 게 쉽겠어?”

신아람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아무리 재료가 충분하다고 해도 전이랑 같은 상태로 만들 수는 없을 거야.”

“그 말은 다시 검으로 쓸 수 없다는 건가요?”

고개를 끄덕인 신아람은 작업 중이던 화도로 시선을 옮겼다.

“아예 쓸 수 없는 건 아니겠지만, 내구도가 현격히 떨어져서 전처럼 다시 부러질 가능성이 커. 전투 중에 무기가 갑자기 망가지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 웬만하면 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군요.”

“모양은 원래대로 만들 수 있는데… 어떻게 할래?”

신아람은 두 자루의 검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고쳐 주고 싶어 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래? 알겠어.”

여전히 부러진 상태의 검을 받은 나는 인벤토리에 검들을 집어넣었다.

비숍에게서 뺏은 검이 있으니까 싸울 수는 있겠지만, 어쩐지 마음이 무거웠다.

“뭐, 데이트하는 건 좋은데 쉴 수 있을 때 쉬는 게 어때? 곧 다시 작전 들어가야 하잖아.”

“데이트 아니라니까요. 아무튼, 이제 가 볼게요.”

신아람은 손을 살짝 들어 인사를 하고 다시 작업하러 갔다.

레인을 소탕하는 건 성공했지만, 아직 앙그라마이뉴가 남아 있다.

지금도 놈들은 능력을 써서 다룰 수 있는 몬스터를 늘리고 있겠지.

조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저는 이제 협회로 가야 해서, 채하나 씨는 돌아가시는 게 좋겠어요.”

“네? 왜요?”

“그야 이번 소집은 SS급 팀 인원들을 소집하는 거니까요.”

“그럼 저도 가야죠.”

“……?”

잠시 정적이 흐르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채하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저도 그 팀원인걸요!”

“에엑?!”

***

“맞아요. 제가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왜요!”

눈을 부릅뜨고 백진철에게 소리치자, 당황한 그가 한 걸음 물러났다.

“이신예 씨가 이미 치유계와 통신계로 계시잖아요.”

의자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있는 그녀를 가리키며 말하자, 이신예가 고개를 저었다.

“나로는 부족해. 내가 통신도 하고 치료도 하고 전투 보조까지 할 수는 없잖아.”

“맞습니다. 레인 때는 전투가 길어지지 않기에 이신예 씨 한 사람으로 충분하지만, 앙그라마이뉴와의 전투는 지금과 다를 거예요. 전투가 벌어지면 상당히 오래 진행될 가능성이 커요.”

확실히 놈들은 길들인 몬스터도 많고, 길드 인원도 많으니까 레인처럼 금방 전투가 끝나는 일은 없겠지.

“그리고 류설영 씨가 팀에서 빠진 이상, 전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S급도 많잖아요. 어째서 채하나 씨를…….”

“채하나 씨의 버프 능력은 일반적인 버프를 훨씬 웃돌고 있습니다. SS급 헌터로 이루어진 저희 팀에게 이보다 어울리는 능력은 없죠.”

나는 더 이상 백진철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얌전히 물러났다.

그의 말대로 SS급에게 버프를 유용하게 써 준다면 S급 한 사람이 끼는 것보다 효과가 좋겠지.

심지어 그녀는 치유계 능력도 있으니까.

“채하나 씨가 위험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아마 실제로 위험한 전투가 되겠죠. 하지만 본인이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저희도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걱정… 걱정이 안 될 수 없지.

채하나의 실력을 의심하거나 그녀가 팀에 들어오는 걸 원치 않는 게 아니다.

만에 하나 채하나가 위험한 상황이 될까 봐 두려운 것뿐이지.

앙그라마이뉴와의 전투는 쉽지 않을 거다.

몬스터도 상당히 많아서 전투 중에 내가 채하나를 신경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바로 직전에 류설영의 그런 모습을 봐서 더 걱정되는 걸지도 모른다.

만약 채하나가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류설영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걸까.

“말씀드리지 않아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제가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죠.”

채하나 역시 어엿한 헌터고, 그녀의 의지를 부정할 권리는 내게 없다.

“자, 어쨌든 다들 모이셨으니 앙그라마이뉴 토벌 작전에 대해 설명드리도록 하죠.”

백진철은 그렇게 말하고 손에 들고 있는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옆에 있는 화면이 켜지며 5층의 전체 지도가 나타났다.

“앙그라마이뉴는 5층 던전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습니다. 원래 5층에 있던 몬스터는 모두 사냥하거나 세뇌해서 컨트롤 할 수 있게 됐죠. 그리고 일부러 게이트를 공략하지 않고 거기서 나오는 몬스터들을 세뇌해서 수를 늘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그린 라벨과 블루 라벨로 알고 있어요.”

내 말에 백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마지막에 확인했던 건 그렇지만, 지금은 네이비 라벨까지 컨트롤 가능할지 몰라요. 염두에 두는 게 좋을 겁니다.”

“아무리 저희라고 해도 그렇게 상위 라벨의 몬스터를 잔뜩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요.”

정보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고, 백진철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굳이 저희가 모든 몬스터를 상대할 필요는 없죠. 저희가 처리해야 하는 건 딱 한 사람. 교주라고 불리는 하은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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